철학으로 휴식하라 - 회복과 치유를 위한 33일간의 철학 세러피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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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가치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하는가?'

 

새로운 책이 나올 때 마다 챙겨서 읽는 안광복 선생의 신간이다. 이 책의 목적은 저자의 여는 글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p7

아무리 바빠도 밥 먹고 화장실 갈 시간은 있어야 하는 법, 성찰의 시간도 다르지 않다. 하루 15분, 30분이라도 조용히 물러나 삶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를 가지시길 바란다.  

 

하루에 한 챕터씩, 33일간 읽을 수 있게끔 나눠져 있다.

상처, 욕망, 집착, 매너리즘, 용기, 혜안 등 굳이 순서대로가 아니어도 내가 필요로 하는 지혜와 조언을 지성인들을 통해서 구할 수 있다. 

 

  

 

■ ■ ■ ■ 

 

 

인생의 모든 순간에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공자)

공자의 말씀을 빌어 '스물 살다움'과 '50대다움'에 대해 말한다. 종종 SNS나 지인들을 보면 '어른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들을 본다. 어린시절의 순수함과 '꼰대'가 아님을 강조하는 표현일까? 아마 더하여 책임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 않을까한다. 그런데, 사실 모든 사람이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라. 어린 시절이 순수하기만 하지는 않다. 지나간 과거이기에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그 시기에도 치열하게 성장의 아픔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나 잘못은 어리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다. 이를 거쳐 어른이 되는 것인데, 어른이 되기 싫다니...... .

갈수록 어른이 필요한 세상이다.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노후에 누군가에게 혜안을 줄 수 있는. 

 

  

 

다 이기지 마라 ㅡ 다원적 평등 (마이클 월저)

다원적 평등이란 어떤 측면에서는 존경받지 못할 사람들도 다른 면에서는 명예롭게 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어린시절부터 각자의 다양한 재능을 인정받은 경험이 필요할 듯 하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의 성적이 절대적인 현 교육제도에서 한 분야에 천재성을 보이면 모를까 입시 주요 과목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나타나는 재능은 묻히기 쉽다. 미술이나 음악에 재능이 있어도, 엘리트 체육 특기자가 아니라면 체육에 관련한 재능도 성적이 우수해야 하며, 다중지능에 나와 있는 항목들은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재능을 끄집어 내기도, 그 재능에 평등을 부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현재 한참 자라고 있는 아이들만큼우 이제라도 다양한 평가 방식을 통해 다원적 평등을 꾸준히 보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러면 다음 세대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좀 달라지지 않을까? 

  

  

 

번아웃 탈출 (아우구스티누스)

'진정 번아웃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의미 찾기'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이 문장에 무척 동감한다.

한 시절 그렇게 살았다. 진학을 하고, 취직을 하고, 샐러리맨이 되어서 수입이 생기면 갖고 싶을 것을 샀다. 왜? 주변 사람이 모두 그렇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야하는 거라고 가르쳐 준 이는 없지만, 그렇게 배웠다. 타고난 성정과 교육이 더해져 성실과 정직을 모토로 집단생활을 했기에 나름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근래 시중에 직장 생활이나 번아웃에 관련한 서적들이 쏟아지듯 출간되는 걸 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삶의 방식을 누구도 표면적으로는 강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부모에게서, 선생에게서, 주변인들에게서 학습되어져 의미 부여 없이 달린다는 거다. 달릴 때 달리더라도 자신이 왜 달리는지 알고 달리면, 그 달리기에 가치를 부여하면, 조금이나마 힘이 덜 부칠듯 싶다.

  

  

 

노예는 반복할 뿐이지만 자유인은 성찰한다 (아리스토텔테스)

오랜 전 광고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가 있었다. 그런데 책에서는 더 보태자면 "열심히 일했으나 성과가 없더라도 쉬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쉴 틈이 없다고 불평한다. '나'는 일상의 노예인가, 아닌가!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해 볼 일이다. 

 

  

 

최고의 스펙은 도덕성 (디오게네스)

얼마 전 의도치 않게 EBS 다큐에서 도덕성에 관한 실험을 한 프로그램을 동영상으로 시청했다. 이 얄궂은 도덕성은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나라고 얼마나 다를까싶다. 정도의 차이일 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성공을 향해서는 도덕성 쯤은 그저 철학책에 나오는 구시대적 유물같은 단어에 불과하다. 저자의 '욕심이 없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마냥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고개를 숙인다. 

  

 

 

성장을 끌어내는 '관심의 눈' (제러미 벤담)

신독愼獨 :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도 도리에 더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마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신독의 태도를 갖추는 과정이다(p139)'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운 행동과 사고를 취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자존감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남의 시선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시선으로 타인을 보고, 타인의 어떤 시선을 의식하며 살고 있을까? 비난과 경쟁에 사로잡힌 시선이 아니라, 서로서로가 각자의 보이지 않는 인내와 노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면, 그리고 내가 나를 자주 들여다 본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만해지리라 생각한다.  

 

 

 

혐오하지 말고 분노하라 (마사 누스바움)  

누스바움은 분노와 혐오를 나눈다. 분노는 세상을 발전시키지만 혐오는 사회를 타락시킬 뿐이다. 왜 그럴까? 분노는 정당하지 못한 처사에 대해 상대와 맞서게 한다. 반면, 혐오는 상대를 피하고 외면하게 만든다. 분노는 눈을 치켜뜨고 상대와 싸우는 가운데 진실을 밝히게 하지만, 혐오는 상대를 멀리한 채 편견만 키워 나간다. 

p149

 

혐오에 대한 질문을 소수집단 혹은 사회적 약자에게 던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혐오'의 주체가 아니다. 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간 집단과 그 사회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을 혐오하느냐고. 

 

 

 

유혹하지 말고 설득하라 (귀스타브 르봉) 

 

"대중을 유혹하려 하지 말고 꾸준하게 설득하여라. 옳은 신념을 가꾸고 내려놓지 마라."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천에서 떨어진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어떤 후보는 당선이 되면 복당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린다. 이들의 정치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재선을 노리는 후보들 중에도 장기적인 플랜이 있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당선이 급급해 옳든 그르든 다수가 원하는 공약을 천편일률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들 뿐이랴. 하루를 초시대로 사는 현대인들은 당장에 성과가 보여야 하고, 대기만성형은 무능력자임을 돌려 말할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옳은 신념을 설득하는 것도, 지켜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하라. 세상은 더 빨라지지만 그 빠른 세상을 기억하며 사는 인간의 수명은 더 길어질테니.  

 

 

 

보고 싶은 것 말고 보아야 할 것을 보라 (아마르티아 센)

깊게 뿌리 내린 민주주의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가 광복과 경제적 자립을 스스로 하지 못한 반면 민주화 만큼은 시민의 힘으로 이뤄냈기에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이를 잘 지키기 위해서는 누구도, 무엇도 절대적으로 옳은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때문에 드러나는 문제점을 수용하고 공감하며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입된 욕망에서 탈출하라 (발터 베냐민)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늘 새롭고 화려한 상품에 둘려싸여 있다. 광고에 등장하는 상품만 사면 광고 속 주인공처럼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꿈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꿈을 실현하기도, 어떤 이는 꾸는 것 조차도 어려운 세상이다. 세계가 하나의 금융으로 묶여 있는 현재에 자본주의의 출구는 어디일까? 저자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묻는다. 

 

새로운 대안은 자본주의가 심어 준 욕망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하는 용기'를 품을 수 있을 때 열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과연 쇼윈도가 가리키는 세상과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을까? 

p104

 

어려운 듯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틀어보면 크게 어렵지 않다. '성공=부자'라는 공식의 틀만 깨면 된다. 인간이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이상,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부자의 기준이 매일 달라질테니까.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 가치로 인해 매일의 삶이 만족스러운가? 그렇지 않다면 그 가치를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 □ □ □ 

 

 

독자가 철학을 이토록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쓰는 분이 얼마나 될까싶다. 저자는 '철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늘 깨뜨린다. 철학에 관련한 책을, 누구나 차 한 잔 하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철학 에세이요, 명상집같은 느낌도 함께 든다.  

요즘에는 '하루 견과류', '하루 비타민'처럼 영양 식품을 하루 분량치로 소포장해서 판매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하루에 서너쪽씩 읽는 '하루 철학'. 마음 영양제 한 봉씩 먹는다는 생각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그날만큼은 넉넉하고 든든한 하루가 될테다. 

 

 

 

참을 수 없는 세계란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강박적 추구에도 불고하고 '영원히 지속되는 일상적 진부함'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이런 세상은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반복되는 삶의 패턴들 속에서 진지한 생각거리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다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생각할 것 없는 상태 자체에 대해 따져 뭉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그 다른 세계를 상사하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는데서부터 출구가 열리기 때문이다.

발터 베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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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없는 검사 표정 없는 검사 시리즈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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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사법기관이다. 

p172

 

 

오사카 지검의 검찰 사무관으로서 검사 보좌 일을 맡은 지 얼마 안된 미하루는 처음 만난 검사로부터 '자네 같은 사무관은 필요 없다'라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다. 그녀에게 독설을 내뱉은 사람은 1급 검사로 표정이나 몸가짐에 한 치의 빈틈이 없고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오로지 신념과 원칙에 입각해 사건을 대하는 오사카 지검의 에이스 후와 슌타로 검사다.  

 

감정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사무관 미하루와 감정 없는 로봇처럼 보이는 후와 검사,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된 이후 첫 사건이 송치된다.  

  

 

여덟 살 어린 여자아이가 살해된 사건으로 용의자는 소아성애자이며 8년 전에 여자아이를 납치, 감금죄로 복역한 이력이 있는 32세 남성 야기사와 다카히토. 그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지만, 용의자는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없다. 증거 목록에는 현장에서 수집한 야기사와의 머리카락과 그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사진, 흙 뿐이다. 그런데 경찰서에는 그나마 증거 현물이 남아 있지 않다. 결국 증거가 불완전한 상태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 

 

용의자의 가족, 주변 이웃들의 탐문까지 마친 후와는 진범이 따로 있음을 알아낸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정확한 알리바이를 말하지 않는 야기사와. 이대로라면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는 왜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일까? 

 

  

 

두 번째 사건.

4월 15일 니시나리구 기사노사토의 다세대 주택 203호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203호에 세 들어 살고 있던 25세 여성 스마 나쓰미와 동거인으로 보이는 34세 남성 구스바 미네타카. 두 사람은 칼에 의한 자상과 절창으로 사망했다. 현장에서는 흉기인 등산용 나이프가 발견되었으나 시중에 흔하게 유통되는 상품이고, 지문도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머리카락, 체액, 지문, 발자국 등은 피해자들의 것이다.

 

수사 선상에 오른 용의자는 시내 대형 마트에서 근무하는 35세 남자 야타가이 사토시. 경찰은 평소에 스마를 스토커한 야타가이를 체포하지만, 그는 그날 스마의 집에 가지 않았으며 명백한 알리바이를 주장한다. 그러나 경찰에서 작성한 서류에 의하면 그의 알리바이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사건 수사를 위해 초건을 끝낸 후와는 야타가이가 주장한 알리바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툼이 있었다는 술집과 근처 파출소를 찾아가고, 그의 알리바이가 주장한대로 사실임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경찰 기록에는 왜 누락되어 있었을까? 또한 살인에 사용된 흉기 및 그외 증거품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간 후와는 이번에도 증거품이 분실됨을 알게 된다. 지난 사건에 이어 박스 채 사라진 증거품.  

 

경찰서 내부에 깔려있는 안이한 업무 태도인가, 혹은 단순한 관리 소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의도된 계획인가! 후와는 이를 계기로 오사카 내 경찰서의 증거품 분실 및 관리에 대한 대대적인 확인 절차에 들어가고, 이 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오사카 경찰들을 모두 적으로 만든 후와. 그러나 그는 늘 그랬듯 전혀 개의치 않는다. 

 

증거 불충분으로 용의자 무혐의 처리된 상황에서 원점으로 돌아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피해자와 관련한 사람들을 탐문하는 미하루와 후와.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죽은 구스바의 문란한 이성 관계와 그들 중 임신 후 자살한 여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여성의 신원을 확인하고 범인이 누군지 확신한 그날, 후와는 누군가로부터 총으로 저격 당하고 응급 수술에 들어간다. 후와를 저격한 사람이 진범일까?

 

  

 

 

■ ■ ■ ■ 

  

 

소설은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소설로만 읽히지 않는다. 조직 내 제 식구 감싸기와 검경 유착, 상명하복 방식의 조직 체계, 인력과 시간 부족이라는 핑계로 안이하게 관리되는 사건 자료와 증거들 등 사회적으로 권력이라는 칼을 가진 자들이 범할 수 있는 부정부패와 비리, 인습과 안이함에 대해 지적한다. 또한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충분히 딜레마에 빠질만한 질문을 던진다. 

  

 

법은 사람이 만든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법의 오류를 의심하지 않고 원칙만 지킨다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111.

검찰은 피의자에게 벌을 주는 기관이 아니야. 피의자의 위법 행위를 입증하고 추궁하는 것. 검사의 것 책무는 굳이 따지면 그 정도고,피의자의 행위를 판가름해서 형량을 정해 벌을 내리는 건 판사의 임무라고. 우리는 법의 수호자이기는 하지만 집행자는 아니라는 말이야. 우리가 증오해야 할 것은 죄지, 그걸 저지른 인간이 아니야. 그런데도 피해자에게 과다하게 감정을 이입해 쓸데 없는 징벌 의식을 지닌 상태로 법정에 임하는 것이야말로 유치한 정의감을 남용하는 행위지.

 

221.

자네(후와) 사전에는 '정'이나 '적당히' 같은 단어가 없지. 오로지 흑과 백, 혐의가 있다, 없다의 양자택일이었고 피의자의 집안 사정이나 자라 온 환경 등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어. 

 

두 사건을 대하는 후와 검사의 태도에는 비인간적이라든가, 냉혹한 면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기적인 권력과 야합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통쾌하다. 그리고 용의자의 성향이나 개인사와는 별개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합리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없기에 억울하게 누명을 쓸 뻔한 용의자를 구해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옳기만 할까?

신념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그 신념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내야 하는지에 따라서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부분은, 후와 검사는 사법 종사인이 감정에 휘둘리는 건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못을 박지만, 정작 미하루가 배심원들의 감정적인 결정에 대해 비난하자 이 부분에 있어서는 충분히 용납을 한다. 그는 이런 부분까지 모두 감안한다. 재판에 있어 감정이 필요한 부분의 역할까지. 

 

 

 

후와에게 정의란 무엇일까?

그는 정의를 풋내나는 감정이라고 일축한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정의, 기득권 층과 사회적 약자의 정의, 성별에 의한 정의, 연령층에 따른 정의. 점점 더 다양화 되고 세분화 되며 도덕과 윤리 개념이 사라져가는 현대에 정의란 무엇일까? 인본주의를 기본으로 한 정의도 이제는 정의롭지 못하다. 언제까지 정답도 없는 정의의 딜레마에 빠져있어야 하는가? 정의 실현은 히어로 영화에서나 존재할 것인가?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 그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자신을 벼리고 벼린 후와 슌타로. 그가 법과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법전에 명시된 원칙과 스스로 세운 신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때론 비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사람이 눈 앞에 보이는 상황과 원인, 까닭을 납득시켜야 하는 이는 오직 자신이다.

 

53.

누군가를 믿는 건 나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과 같은 뜻이야. 절대 허투루 생각할 만한 게 아니지. 조직을 상대할 때는 더욱 그렇고. 

    

일부러 적을 만들려고 그러는 건 아니야. 그냥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할 뿐.  

p203

 

자신이 속한 집단, 권력, 출세에 영합하지 않는 검사. 꼭 검사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원칙과 윤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후와 슌타로, 매력있네.

 

[소설 속으로]

204.

대체 이렇게까지 정의감을 부정하는 사법 관계자가 존재하기는 할까. 사법에는 엄연한 법의 정의가 있고, 검사에게는 질서, 판사에게는 판결이라는 정의가 있다. 

286.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상명하복의 수직 사회라는 점과 끼리끼리 문화까지. 경찰과 조폭은 밖에 내거는 기치는 달라도 조직을 구성하는 논리에 큰 차이는 없다는 걸 자네도 알지 않나? 

288.

다른 직업이면 몰라도 사법 종사자는 주변에 영합될 필요도, 영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313.

예산과 인원 부족, 비좁은 자료실 환경 따위와는 상관 없다. 수사 자료가 분실된 가장 큰 원인은 관계자들의 시선이 오로지 내부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상사와 부하, 부족한 예산과 불편한 시설, 그리고 자신들이 일으킨 불상사에 대한 책임전가. 그들은 하나같이 내부만을 바라봤고, 범죄 피해자는 보려고 하지 않았다.

 

 

조직의 이익이 먼저인가, 개인의 윤리가 먼저인가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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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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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보라색 치마'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첫문장

 

담한 체형과 어깨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 뺨에는 드문드문 기미가 나 있고, 머리카락은 탄력이 없어 푸석푸석하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상점가 빵집에서 크림빵을 산 후 늘 같은 자리인 공원의 제일 안쪽 벤치에서 크림빵을 먹는다. 공원에서 놀던 아이들은 '보라색 치마'에게 장난을 걸고, 그녀는 아이들의 장난에 짜증 내지 않는다. 

 

녀가 아케이드상가 맞은편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네 부류로 반응을 보인다. 모르는 척하는 사람, 잽싸게 길을 비켜주는 사람, 길조로 여기고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 징크스 삼아 못내 슬퍼하는 사람. 한 마디로 유명인사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보라색 치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걷던 속도를 유지한다. 시장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녀는 물건이나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 '나' 즉 '노란색 카디건'이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는 이유는 '보라색 치마'와 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노란색 카디건'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보라색 치마'는 정규직이 아니다. 근무를 하는 날이나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한 달을 일하면 한 달 쉬기도 하고, 한 달 중 며칠만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가 연속 두 달 동안 무직 상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노란색 카디건'은 그녀가 늘 앉는 공원 벤치에 구직 정보지를 슬쩍 놓아둘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직장을 직접적으로 표시까지 해놓는다. 심지어 면접볼 때 사용하라고 향이 나는 샴푸 샘플을 그녀의 집 현관 문고리에 걸어둔다. 드디어 '노란색 카디건'이 유도하는 직장에서 근무하게 된 '보라색 치마'. 그곳은 바로 '노란색 카디건'의 직장이다. 이제 그녀는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기만 하면 된다! 

 

텔 메이드라는 직업상 단정한 용모를 규정할 수 밖에 없는데, '보라색 치마'는 거의 낙제에 가깝다. 그녀가 제대로 적응할까 걱정스러운 '노란색 카디건'.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가는 '보라색 치마'는 직장 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조차 그녀의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직장 동료와 잘 어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례처럼 내려온 소소한 부정행위에 대해서도 배운대로 실천(!)한다. 급기야 소장과 부적절한 관계까지 이르는 '보라색 치마'.  

 

'보라색 치마'를 동정해 보살피듯 하던 직장 선배들은 이제 더 높은 시급을 받는 그녀를 질투하고 헐뜯는다. 본사에서 분실된 비품에 대한 관리 감독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사항이 전달되면서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부정 행위를 모두 '보라색 치마'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다. 또한 관계를 정리하고자 하는 소장은 상황이 녹록치 않자 그녀를 스토커로 몰아붙인다.   

 

'보라색 치마'는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 칭찬 일색이었던 그들은 왜 자신을 비난할까? 

 

 

 

 

■ ■ ■ ■ 

 

 

'노란색 카디건'이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보라색 치마'는 타인의 시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외모와 입성, 그리고 공원에서 빵을 먹는 행동 등 일반적으로 남을 의식할 만한 상황에서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더구나 동네 꼬마들이 짓궂은 장난을 걸어와도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준다. '노란색 카디건'은 (어떤 의미에서든)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당당한 그녀가 부럽다. 

 

아쉽게도 '보라색 치마'와 달리 '노란색 카디건'은 그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p7

 

그런데 심지어 그녀는 운동 신경도 뛰어나고, 적응력도 빠르며 출근한지 얼마 안된 직장에서까지 칭찬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 안타까운 건 '노란색 카디건'이 아무리 옆구리를 찔러대도(?) 그녀는 '노란색 카디건'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쯤되면 질투할만도 한데, 가장 극적인 순간에 슈퍼 히어로처럼 나타나 그녀를 구원해 주는 '노란색 카디건'. 그러나 애쓴 보람도 없이...... . 

 

그렇지만 사라진 '보라색 치마'의 공원 벤치 자리에 '노란색 카디건'이 앉았다. 이제 그 벤치는 그녀 전용이다. 

 

 

 

 

□ □ □ □ 

 

비정규직이자 일용근로자이고 관계에 미숙한 '보라색 치마'는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도 모르는 새에 '노란색 카디건'의 도움으로 사회 집단 안에 들어오면서 단정한 용모와 익숙해져가는 사회 생활에서 독자는 뭔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게 되지만 이것도 잠시, 자신과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는 '비교'가 개입이 되면서 '보라색 치마'는 이전과는 다른 혐오의 대상이 된다.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게서 배운 사회적 지식이 오히려 화살이 되어 돌아온 상황.

단지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대상을 스토킹하는 '노란색 카디건'. 의도를 생각하면 안쓰럽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정도면 범죄다. 그러나 '보라색 치마'와 굳이 비교하자면 보통의 일반적인 직장 여성이다. 그녀는 어떤 결핍으로 '보라색 치마'를 스토킹한 것일까? 집단 구성원에서 너무 평범해 존재감이 미비한 다수의 사람들. 극단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노란색 카디건'은 타인의 관심에 굶주린 현대인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두 여성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 동네 사람들을 보면서 결국 우리가 '일반적', 혹은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범위가 기준을 들이대는 대상에 따라 잣대가 달라진다면 어떤 의미가 있나싶다.

결국 '보라색 치마'가 떠난 자리를 꿰차고 앉아 뿌듯해 하는 그녀를 보면서 흔하디 흔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관심'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자신을 본다면 경쟁적으로 올라오는 SNS, 댓글 폭력, 혐오와 비난의 수위는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물건이 든 봉투를 옆에 놓고 크림빵 봉투를 꺼냈다. 빵은 살짝 따뜻하다. 우선 반으로 갈라서, 한쪽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다른 한쪽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바로 그 순간, 탁!하고 누가 어깨를 때렸다. 

절묘한 타이밍에 내 어깨를 때린 아이가 꺅꺅 웃으면서 도망갔다.

소설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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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제중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19XX년 5월 24일 화요일 낮 12시 15분.

프렌치백화점, 폴 라버리 디자이너의 프랑스 초현대적 침실 전시가 시작되면서 벽침대가 내려오고 그와 동시에 피투성이 시체 한 구가 굴러 떨어진다. 사망자는 프렌치백화점 대주주이자 대표이사 사이러스 프렌치의 아내 위니프레드 마치뱅크스 프렌치다. 

 

삽시간에 백화점은 혼란에 빠지고 마침 6층 아파트에서 회의 중이었던 사이러스 프렌치와 그의 비서 웨슬리 위버, 이사 네 사람이 내려오고 퀸 경감과 엘러리도 사건 현장에 도착해 수사를 시작한다. 

 

해자의 사망 추정 시간은 자정부터 새벽 2시 이전으로 범행 시간의 범위는 월요일 밤 11시 30분부터 화요일 오전 9시 30분으로 추정한다. 현장에 흘린 피의 양과 부검 결과 실질적인 범행 현장은 전시실이 아닌 다른 장소이며 사인은 총상이고 총알의 각도상 피해자는 앉아 있는 상태에서 살해당했다. 

 

경찰과 엘러리는 피해자 발견 장소가 사망 현장이 아니라는 점과 프렌치 집안의 사유 장소인 6층의 아파트는 가족과 비서만이 각자의 이니셜이 새겨진 열쇠를 가지고 있으며 그외의 사람은 출입이 제한된다는 점에 백화점을 모두 수색한다. 뿐만 아니라 프렌치 사장의 집을 찾아가 피해자와 실종자의 방을 살펴 본다.

 

장과 아파트에서 발견된 증거품은 M.F라는 약자가 새겨진 스카프, 피해자의 핸드백에서 나온 C가 새겨진 립스틱, 그리고 사라진 아파트 열쇠. 그리고 아파트 서재의 탁자에는 연관이 없는 다섯 권의 책과 담배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털이, 옷장에는 피해자 딸 버니스의 옷과 구두가 있다. 또한 색깔이 다른 북엔드의 펠트와 펠트에 흔적이 남아있는 지문 채취용 가루.  

 

러리는 백화점 마감 이후에 출입이 가능한 출입구와 사용 용도, 그리고 조명의 밝기를 확인한다. 피해자의 핸드백에서 나온 립스틱의 주인은 그녀의 딸 버니스이며 립스틱에는 마약 캡슐이 숨겨져 있었다. 현재 실종 상태인 버니스 카모디. 엘러리는 이 사건이 단순 살해 사건이 아닌 마약 범죄와 연관되어 있음을 유추하고 범위를 확대해 추리한다. 

 

 

붓 자매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기적이며 문란한 생활을 했던 의붓어머니를 지켜보았고 피해자에게서 나온 스카프의 주인 마리온 프렌치, 위니프레드와 불륜 관계인 소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험악한 성정의 소른 부인, 딸에게는 관심도 없는 전처에 진저리를 치는 빈센트 카모디, 백화점 아파트에 북엔드를 기증했던 그레이, 위니프레드의 오빠 위니프레드의 마치뱅크스, 버니스의 돈을 노리는 그녀의 약혼자 트래스크, 아파트의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어 언제든 철통 보안의 백화점 내 어디든 갈 수 있는 보안반장 크라우더, 사건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서적 판매부 책임자 스프링어.

이 사람들 중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사건 범행 시간에 알리바이를 확인해 줄 이가 없다.

누가 범인일까? 

  

 

엘러리는 사건 발생 후 이틀이 지나 사건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은다. 아버지 퀸 경감의 건강 상태를 들어 자신이 대신 브리핑하는 것에 양해를 구하며 사건의 경위를 설명해 나간다. 

재에 펼쳐져 있었던 책이 던진 단서와 버니스의 립스틱, 스프링어의 행적을 통해 살해 살인 사건이 마약 범죄와 연관이 있으며 뿐만 아니라 실종된 버니스가 마약 밀매단 고객이자 유통에도 관계했음을 밝힌다.

황상 백화점 폐점 이후 입장은 용이하나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나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예정에 없던 회의로 인해 일찍 출근한 웨슬리의 면도날이 아파트 욕실에서 사라졌다. 아파트 옷장 안 구두 가방에 놓여진 버니스의 구두 위치가 미심쩍다. 서재 재털이에 쌓인 담배 꽁초의 길이와 버니스의 방에 남겨진 담배 꽁초의 길이가 다르다. 버니스가 열쇠를 분실한 것도 모른 채 집으로 걸려온 미심쩍은 전화. 프렌치 부인이 앉아서 총상을 입은 것으로 보아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과 살해 후 아파트를 원활하게 드나들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사라진 부인의 열쇠.

이를 통해 엘러리는 범인은 남자이며 단독범행임을 확실히 한다. 이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단 한 사람.

범인은 바로 그다!

■ ■ ■ ■

사건 발생 후 엘러리가 증거와 정황을 놓고 추리한 시간은 이틀, 그런데 책은 450여 쪽에 달한다. 개인적으로 스토리를 논리적이고 세밀하게 풀어놓는 방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호흡이 긴 장편이 맞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는 읽는 내내 독자로서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엘러리의 천재적 추리가 흥미진진한데, 읽다보면 그가 남다른 지능을 갖고 있음과 더불어 많은 독서량과 호기심이 지능을 앞선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면 그럴 것이고, 아는 만큼만 보는 것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이 엘러리의 가장 크고 탁월한 장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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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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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영도

'공주님'이라고 불릴만큼 마마걸인 딸 유비가 하루 아침에 연락이 닿지 않는다.  사위 사사 도모키는 아내가 장모와의 갈등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며, 현재는 치료와 안정을 위해 정신과 클리닉에 입원해 있다고 알려줄 뿐 일체의 면회를 사절할 뿐만 아니라 딸과의 전화 통화조차 막아놓은 상태.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하코자키 시즈코는 딸의 안전과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사립탐정사무실을 찾는다.  

 

화촉

한 예식장에 같은 날 시간차를 두고 예약된 두 예식이 모두 어그러지는 사태가 벌어진다. 한쪽은 신부가 도망가고, 한쪽은 신랑의 전 여자친구가 나타나 신랑 대기실에서 성관계 도중 발각된다. 이십대 초반인 신부는 집안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예순 살이 넘은 남자와 마지못해 결혼을 결정하고, 다른 예식의 예비 신랑은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심리적으로) 양다리였으며 결혼식에서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이 두 결혼식, 뭔가 수상하다. 같은 날, 같은 예식장에서 예정된 두 예식 모두 파혼이라니!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동네에서 평판이 좋지 못한 모녀가 어린 아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자가 있다며 탐정사무실을 찾아온다. 아들의 목숨을 노리는 자는 바로 아들의 친할머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혼한 전 남편의 어머니다. 등교길에 칠십대 노인의 운전 미숙으로 일어난 교통 사고. 모든 상황과 증언, 근거는 단순 사고임을 말하고 있는데, 오직 구치다 미키는 전 시어머니의 사주라고 억지를 부린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 ■ ■ ■ 

 

동네의 골목 사립탐정 스기무라가 의뢰받은(정확히, 의뢰는 두 건, 한 사건은 어쩌다 보니 휩쓸리게 된) 세 사건을 중편소설로 엮은 옴니버스 소설집이다. 

위의 세 사건은 체육계 혹은 남성 집단의 서열화와 그에 대한 폐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의해 함몰되는 가족의 붕괴, 특히 여성을 향한 혐오와 인권유린을 다루고 있다. 

  

 

<절대영도>에서는 같은 대학 재학생, 졸업생으로 구성된 필드하키 동아리에서 선배(다카네자와 데루유키)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사생활은 아예 인정되지 않는다. 양해 따위는 필요없다는 듯이 후배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건 예사고, 회원들(특히 후배)의 연인이나 부인을 불러내 술시중 뿐만 아니라 저속한 농담과 음담패설, 외모 비하 등 여성 혐오를 드러내며 하대하고 희롱 및 성추행까지 한다. 이란 모임이 싫어서 탈퇴를 결심한 다마키 고지의 집으로 속임수까지 써가며 쳐들어가 결국에는 그의 아내를 집단 성폭행하고 자살로 몰고 간 '그' 집단을 다마키는 응징한다.  

 

소설에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 다카네자와가 가장 나쁜 사람일까(사실 그는 이 소설에서 거의 절대악이다)? 가족보다 선배의 말을 더 우선하며 자신의 아내를 희롱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선배의 명령이라는 이유로 아내가 지켜보는 곳에서 후배의 아내를 집단 강간하는 도모키는 정상인가?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배만 아니면 멋진 남편이기에, 남편이 시키는대로 변죽을 울리는 유비는 같은 여성으로서 갖는 수치심과 모멸감 따위는 길에 내다 버린 것인가!

 

사실 이렇게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집단에서 학연 지연에 의한 따돌림과 여성의 성폭행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가까운 사례로 학연으로 갈등을 겪어 러시아로 귀화한 A 선수, 얼마 전까지 코치의 성추행 사건으로 떠들썩 했던 S 선수 등 어렵지 않게 접하는 사회 문제다. 특히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이용해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행위는 얼마나 비열하고 야비한가. 특히 최근에 n번방 사건처럼 큰 이슈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앞으로 학생을 가르칠 예비 선생인 교대 남학생들조차 카톡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외모 비하와 성희롱을 일삼았다. 이러한 행위들이 얼마나 일반화 되어 있는지 생각하면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지금, 자신의 단톡방을 점검해 보는 건 어떨지...... . 

 

 

<화촉>에서는 개인의 행복과 선택보다 돈을 우선하는 부모로부터 결혼을 강요받는 스가노와 엄마를 오랜 죄책감과 피해의식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시즈카, 두 여성이 등장한다. 16,7세기 이전에는 여성이 사람이기보다는 물건, 상품에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이름을 내놓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가문의 명예나 권력에 의해서 결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충효사상을 으뜸으로 치는 지역에서는 수절이 영광이고, 재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허락이 필요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는 여전히 결혼을 결심한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허락'을 받는다. 부모는 자식의 배우자가 될 사람의 집안 내력, 학력, 심지어 연봉까지 물어본다고 들었다. 사실 가장 개인적인 부분을 부모라는 이유로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월권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자식의 결혼을 허락하고 말고가 어디있나? 물론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본인들의 선택인 것을. 부모로서 먼저 살아온 연륜으로 조언 정도는 할 수 있을테다.  그러나 결정은 본인들의 선택이고 부모의 몫은 축복으로 끝내야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느정도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트라우마를 안고 살든, 이겨내든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엄마의 피해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결혼식을 이용한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 이는 엄마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냉정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자신이 안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는 각자 짊어져야 한다. 자식 혹은 부모의 짐을 대신 지는 것, 타인에게 짐을 지우는 것,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짐으로 인해 사는 것이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두가 혼자서 배를 저어 시간을 강을 나아가도 있다. 따라서 미래는 항상 등 뒤에 있고 보이는 것은 과거뿐이다. 강가의 풍경은 멀어지면 자연히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아니라 마음에 새겨져 있는 무언가라고.  

p301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에서는 다 남 탓인 두 여인이 있다. 언니 미키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이른 나이부터 소위 '문제아'였다. 사고를 일으켜 관심을 끌고 동정을 얻어내며 외모를 이용해 남자를 유혹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음에 있어 남편도 자식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아?'라는 듯 더 자극적이고 강하게 꾸미고 행동한다. 덕분에 십대에 아이를 낳고, 결혼 후에 다시 출산을 하지만 사실 두 아이 모두 아빠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동생 미에는 학생 시절부터 언니의 추문과 나쁜 평판으로 인해 제대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 누구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고,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는 말이 뒤통수를 당겼다. 내가 원해서 그녀의 동생이 된 것도 아니고, 언니와 자신은 다른 사람인데, 아무도 두 사람을 별개로 보지 않았다.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저지른 범죄. 하지만 미에의 내면에는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을까. 

 

461.

아무리 괴로운 과거라도 그건 당신의 역사에요. 어제의 당신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당신이 있고, 당신의 내일이 있는 거예요.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행복한 미래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아요. 

 

자신의 '어제'를 한번도 선택할 수 없었다는 미에의 비명. 미에의 말대로 '어제'는 선택할 수 없지만, '내일'은 선택할 수 있지 않나. '내일'은 곧 '모레'의 어제. 이 사실을 미에가 알았더라면 언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려나...... .  

모쪼록 미키의 딸 사자나미만큼은 엄마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 좋은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스기무라 탐정.

필립 말로의 고독한 분위기도, 엘리리 퀸의 천재적 추리도, 셜록의 젠틀한 면도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따뜻한 인간미가 전해지는 새로운 캐릭터다. 소설에서 스기무라의 추리나 수사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러한 면이 좀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스기무라 탐정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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