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여자들 3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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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0년 5월, 로마는 보니파가 실권을 쥐었고, 로마는 와해되고 있다. 


징세청부업자는 폼페이우스의 동방 속주 네 곳에서 가져온 막대한 전리품을 보고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입찰을 계약하고, 감찰관들은 최고 액수를 써낸 입찰자들을 선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징세청부업자들이 예측한 것보다 전리품의 값어치가 낮았고, 동방 속주들은 청부업자들이 아무리 독촉해도 그들이 요구하는 금액을 지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징수업자들은 크라수스를 찾아가 동방의 세금 징수 계약들을 취소하고, 적정한 금액의 새 계약을 감찰관들이 내놓도록 지시하는 청원을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크라수스는 그들의 부탁대로 원로원에 청원을 했으나 보니파의 반대로 인해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원로원이 크라수스의 요청을 거절하자 징세청부업자들이 보복으로 국고에 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통에 원로원과 기사 계급의 힘싸움이 교착상태에 놓여 있었다.  


보니파가 파괴적으로 변한 이유는 카툴루스의 죽음 때문이다. 그가 죽은 후 보니파가 비불루스와 카토의 손아귀에 떨어졌으니 두 사람의 성정을 떠올려보면 어떤 상황인지 그림이 그려진다.  


원로원은 카이사르가 속주에서 부당취득이나 횡령을 저지르는지 감시하지만, 흠집낼 꼬투리가 없다. 먼 히스파니아 속주민들은 자기들의 총독이 공정하게 관리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으며, 이 소식은 원로원에 그대로 전해졌다. 의사당에서 카이사르의 처신은 총독들의 교범 감으로 치하되고 있고, 온 로마는 그가 수석 집정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원로원 보니파는 카이사르가 다음해 집정관 선거에 출마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법안을 바꾸고, 더하여 인심쓰듯 카이사르에게 개선식을 권하면서, 그 날짜를 집정관 후보 등록 사무소 폐쇄일의 8일 후로 정하고 부재중 출마를 불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집정관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와야하고, 개선식을 앞둔 사령관은 개선식 전에 로마로 들어올 수 없는 법을 악용한 것이다. 이 편지를 5월 중순에 받은 카이사르는 집정관 출마를 위해 그 먼 히스파니아에서 6월 5일 이전에 도착해야 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법을 입안하고 통과시키는 게 떡 구워먹듯 손쉬운 건지. 스스로를 마그누스라고 칭하는 천하의 폼페이우스도 어쩔 수 없다.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 그나저나 나는 카토를 글로만 만나는 데에도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시 사람들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물론 그 우직함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의 최후를 떠올리면 독이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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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31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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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이나 희귀본을 좋아하는 길버트 오즈먼드는 영국 귀족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워버턴의 청혼을 거절한 이사벨의 태도를 희귀본으로 여기며 그녀가 자신과 결혼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으로 자부심을 느낀다. 오즈먼드는 이사벨의 유산을 탐내는 것도 모자라 그녀를 자기의 수집품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사벨은 길버트가 가난하지만 숭고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믿으며 약혼한다. 그러나 길버트와 마담 멀이 이 결혼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이사벨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알고 있다. 이에 대한 리디아의 충고가 명쾌하다. 오즈먼드가 돈을 갖기를 바란다면 그에게 돈을 주고 결혼은 다른 사람과 하라고.  


결혼이라는 새장에 갇혀도 자신이 그 새장을좋아한다면 상관없다는 이사벨의 말은 자유를 소중하게 여긴 1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랠프에게 일 년 동안 세상을 많이 둘러보았고 세상이 아주 유혹적인 광활한 공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는 이사벨이 좀더 세상을 두루 살펴보기를 바라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간과한다.  



이사벨은 여자에게 있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숭고한 일이라고 말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자기가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란다고 오해한다. 혹시 이사벨은 복권 당첨처럼 받게 된 유산에 대한 부담감으로 더 오즈먼드와 결혼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는 속물이 아님을 무의식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것일까? 


랠프는 오즈먼드와 약혼하는 것을 이사벨의 추락이라고 표현하는데, 이쯤되면 독자를 포함한, 마담 멀과 오즈먼드 본인을 제외한 대부분 등장인물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이사벨은 왜 오즈먼드와 결혼했는가?"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가 간단 명료함에도 천 쪽이 넘는 분량을 차지하는 이유는 주요 등장인물의 복잡한 심리 때문이다. 자유를 갈망하지만 한편으로는 보수적인 귀족 사회에 대한 동경을 뿌리치지 못하고, 돈과 명예에 급급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내세워 나름 괜찮은(?) 남자들의 청혼을 거절했으나, 자격이 없는 처지에 유산을 상속받은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불편함 때문에 가난하지만 고귀한 영혼을 소유한 심미주의자를 사랑한다고 착각해 사기꾼과 다름없는 인간과 결혼한 후 배우자의 본질과 민낯을 확인하고 모든 이의 반대를 물리치고 꾸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어디까지 내려놓아야할지 자괴감에 빠진 이사벨의 심리는 그야말로 꼬일대로 꼬여 복잡하기 그지없다.   


또한 이사벨을 잊지 못해 나이 차가 스무 살이 넘는 그녀의 의붓딸고 결혼하겠다는 워버턴(당신이 페드로도 아니고, 무슨!)의 마음도 그렇고, 이사벨을 돕겠다고 내뱉는 말마다 오히려 그녀에게 상처만 더해주고 있어 착잡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고만 볼 수 없는 랠프의 심경도 이해가 된다. 독자 역시 19세기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보면 옳고 그름을 단정지어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오즈먼드가 아주 나쁜 놈인 건 분명하다). 이처럼 소설은 인물마다 제각각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서 보이는 저마다의 심리를 굉장히 면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내내 불편한 점은 이사벨의 자책이다. 이사벨은 간혹 자기의 결혼에 마담 멀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결혼의 결과가 어떻든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킨다. 더하여 결혼 생활이 불행해진다면 적어도 그 원인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어야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녀는 독자적이고, 더 독자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했던 여성이었고, 오즈먼드는 독립성을 여성의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사벨은 이러한 자기 본연의 모습을 오즈먼드에게 온전히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속인 것은 자신이라고 자책한다. 과분한 유산에 대한 부담감을 가난하지만 고귀한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으로서 양심을 가볍게 하고 싶었다는, 그래서 오즈먼드에게 자선을 베풀고 싶었다는 이사벨의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녀의 방식으로 우아해지기 위해서 오즈먼드와 결혼했고, 이것이 이사벨이 그와 결혼한 절반의 이유다. 


길버트는 아내에게 난폭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았으나 온전히 복종하지 않는 이사벨을 미워했다. 이사벨은 오즈먼드가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믿었지만, 그는 교묘하게 이사벨을 앞세워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탐욕과 오만함으로 치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결혼을 하고나서야 이사벨은 오즈먼드의 허위를 알게 됐고, 오즈먼드는 이사벨이 인형이 될 수 없는 사람임을 파악했다. 서로의 본질을 뒤늦게 인지했으나 이런 상황에서 약자는 여성일 수 밖에 없다. 그는 이사벨의 경제력으로 현재를 누리고 있음에도 그녀가 갖지 못한 것들을 약점 삼아 공격한다. 이사벨은 자유를 명분삼아 저항했으나 오즈먼드로부터 돌아오는 건 그녀를 저속하게 취급하는 비웃음 뿐이다. 거기다 의처증에 가까운 질투심이라니. 그런데 여기서 오즈먼드가 갖는 모순은, 이사벨이 미국 여성으로서 전통성도 없고 귀족적이지 않다는 것인데, 오즈먼드 역시 미국인이고 귀족이 아니다. 그저 귀족을 흉내내는 허세에 찬 한량일 뿐이다. 


사실 소설을 다 읽은 후에도 랠프처럼 사려 깊고 공정한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어 자주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해주었음에도 이사벨이 이러한 무모한 선택을 한 것은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다.   


ㅡ 


랠프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보를 받은 이사벨이 랠프에게 가봐야겠다고하자 독설을 쏟아내며 영국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는 길버트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결혼이 갖는 굴레, 즉 결혼이란 한 여자가 남편에게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사벨. 거기다 길버트와의 결혼 배후에 숨겨진 모든 비밀을 알게 되자 죽음을 떠올릴 정도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랠프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아직 살아 내야 할 인생이 남아 버티고 있음을 생각한다. 아주 먼 곳으로 떠나야 할까, 체념하고 감당하며 다시 돌아가야 할까. 그 어떤 예측도 할 수 없지만, 이사벨이 아는 것은 고통만 느끼고 살 수 없으며, 그러기에는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해질 힘이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것, 그래서 도피하지 말고 대면해 끝까지 버텨야한다는 것이다.  


자유를 갈망하고 많은 기회가 열려있었으나 잘못된 결혼으로 주저앉아 버린 이사벨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섣불리 단정해서 안되는 것은, 이사벨을 비롯해 가정에서 안주한 여성들의 삶이 보잘 것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여성이 문인으로서 기자로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을 경험하고 새로운 현재에 눈을 뜨는 헨리에타의 삶을 살 수는 없다. 또한 헨리에타의 삶이라고 해서 마냥 경이롭기만 하겠는가.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에서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랑 또한 사람이 하는 것인지라 환경과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사랑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것을 함께 경험하고 극복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일 터다. 미국인으로서 남다른 애국심을 가졌던 헨리에타가 오랜 기간 우여곡절을 겪은 밴틀링과 영국에서 정착하는 데에는 이와같은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 단단하게 느껴진다.  


워버턴, 굿우드, 헨리에타, 간접적으로는 팬지까지 이사벨에게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버트를 선택했듯, 이번에도 역시 선택은 이사벨의 몫이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는 변함없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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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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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외곽의 작은 마을 맬러드. 백인으로 받아들여질 일은 없으나 니그로로 대우받기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타운이다. 1848년 앨폰스 드퀴어가 물라토와의 결혼을 시작으로 그들은 세대를 이어갈수록 피부색이 옅어졌다. 맬러드 마을 사람들의 목표는 각 세대가 직전 세대보다 더 하얀 피부가 되는 것이다. 맬러드에서는 아무도 피부가 검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고, 타운을 떠나는 사람도 없었다.


데지레는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도 아무것도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맬러드 밖의 삶에 대해 늘 환상을 품고 있었고, 그와달리 스텔라는 아주 현실적이었다. 학업에 열중했고, 맬러드고등학교의 교사가 되고 싶었으며 엄마를 두고 맬러드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가난한 살림으로 인해 아델은 열여섯 살 쌍둥이 자매에게 학업 중단을 통보하고 그들의 일자리를 구해놨다. 대학을 갈 계획이었던 스텔라에게는 청천벽력이었고, 언젠가 스텔라를 대학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질 것이 두려웠던 데지레는 오히려 안도했으나 부유한 백인의 집에서의 청소일은 쌍둥이가 맬러드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데지레는 맬러드가 아닌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검은 남자와 결혼했고, 스텔라는 데지레를 남겨두고 소리없이 떠난 후 패싱했다. 그리고 사라졌던 쌍둥이 중 데지레가 14년 만에 블루블랙빛 피부를 가진 딸 주드를 데리고 맬러드에 돌아왔다. 


ㅡ 


소설은 1968년부터 약 20여 년간의 시간을 오가며 서술한다. 쌍둥이는 어린시절 아버지 리언이 백인에게 폭행을 당하고 총에 맞는 모습을 목격했다. 특별한 잘못도 없이 화풀이 대상이 된 리언은 두 번째 린치를 당할 때 머리에 총 두 방을 맞고 사망했다. 쌍둥이는 인종이 가져오는 사회적 모순과 폭력적 차별을 바로 눈앞에서, 그것도 아버지를 통해 깨닫는다. 아무리 얼굴이 백인과 가까워져도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유색인이라는 것을.  


데지레는 워싱턴에서 까맣지 않은 피부 때문에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고, 그녀의 딸 주드는 맬러드에서 유난히 까만 피부 때문에 학교폭력을 당했다. 맬러드에서의 짙은 피부색 흑인, 백인 사회에서의 유색인, 백인과 흑인 사회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패싱. 소속된 집단에서 벗어나면 어디에서도 오롯이 자기 자신일 수 없는 세상.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텔라는 자신을 늘 가둔다. 유색인들이, 백인들이, 그녀가 패싱임을 알아볼까봐.  


나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맬러드에, 딸까지 데리고 제 발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데지레보다 유색인 세계에도, 백인의 세계에도 쉽사리 마음을 열 수 없어 평생을 거짓 가면을 쓰고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야했던 스텔라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백인 부유층이 사는 마을에 흑인 유명 배우가 이웃집으로 이사를 온다는 소식에,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봐 두려운지, 아니면 그들을 저지하려는 백인들의 행동이 두려운지 스스로도 갈피를 잡을 수 없을만큼 혼란을 겪는 스텔라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안타까웠다.  


어린 시절 백인들에게 모욕과 차별을 당했던 경험이 있는 스텔라가 패싱 이후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위치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을 무의식중에 그대로 따라할 정도로 그녀는 어느새 백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린치를 견디지 못한 이웃 흑인 일가족이 떠나자 데지레를 잃었을 때(비록 본인이 몰래 떠났지만)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백인처럼 행동하고, 백인처럼 사고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그녀는 여전히 외줄을 타고 있는 곡예사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ㅡ 


엄마가 아빠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고 집을 나와 찾아간 곳은 외할머니가 계신 맬러드. 마을 사람들 모두 백인에 가까운 하얀 피부를 갖고 있어 흑인 중에서도 유독 까만 피부를 가진 주드는 별종 중의 별종이다. 아무도 그녀가 데지레의 딸이라는 것을 믿지 못할만큼 그녀는 까맣다. 그렇기에 주드는 맬러드에서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  


케네디는 자신이 니그로 혈통임을 믿을 수 없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아름다운 엄마가 흑인일리 없다. 종종 롤러코스트를 타듯 감정기복이 심하고 자신의 과거를 꼭꼭 숨겨둔 아름다운 엄마의 신비로운 모습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주드는 경제적 궁핍에도 불구하고 연인과 신뢰와 사랑을 다지며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나아가고 있다. 케네디는 그녀의 소식을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지하층 아파트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남자와 동거하고 대학 학위도 없고 매일 밤 빈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커피를 서빙하고 있는 자신을. 케네디는 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케네디의 일탈과 방황이, 스스로를 감추어야했고 유년 시절과 결혼 이전의 삶에 대해서 함구하는 엄마 탓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드를 만나 엄마의 정체를 알게 되고, 결혼 이후 엄마의 삶이 거짓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무엇보다 딸인 자신보다 조카라고 할 수 있는 흑인 여성이 자기 엄마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케네디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더구나 엄마의 거짓된 삶은 곧 자기의 삶 역시 거짓이라고 여겼을테니 정체성 혼란까지 일었을 터다. 케네디는 늘 새로운 삶을 만들어냈고, 흔들렸다. 따지고 보면 스텔라의 거짓된 삶이 케네디에게는 해롭지 않았다(물론 이런 부분까지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만). 하얀 피부, 아름다운 금발, 부유한 아버지. 스텔라가 흑인의 삶을 살았다면 케네디가 누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방황조차 사치로 취급되는 것 역시 엄마인 스텔라의 거짓된 삶 덕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케네디가 더 혼란스러웠던 것은 아닐까.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만은 관계는 흑인 주드와 성전환자 리스, 그리고 데지레와 얼리의 사랑이다. 흑인, 여성, 성소수자, 전과자 등 사회적 약자인 그들의 사랑은 오랜 세월을 지속하며 진실과 신뢰, 그리고 이해와 배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반면 스텔라는 처음 블레이크와의 만남부터 거짓으로 시작해 늘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했고, 진실을 알게 된 딸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다. 타인에게 악의를 갖은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었음에도 스텔라가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는 거짓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PTSD로 인해 하루도 편하게 잠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자신 역시 아버지처럼 언제라도 벡인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데지레와 스텔라. 두 사람 모두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강요받지만, 아무도 이것을 강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발적 선택, 우리에게 과연 '자발적'인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사족
넬라 라슨의 <패싱>, 마리즈 콩데의 <이반과 이바나...>도 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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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9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이혜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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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4부로 구성된 소설은 도리포스(엘름우드 경)을 중심으로 1,2부는 그의 아내 밀너와 3,4부는 그들의 딸 머틸다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의 유언으로 후견인인 카톨릭 사제 도리포스와 한 집에서 살게 된 밀너 양은 시간이 흐르면서 도리포스를 사랑하게 된다. 당시 여성으로서 사제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흔치 않은 일인데, 그녀가 도리포스를 사랑하는 방식이나 남성을 대하는 태도가 당돌하다고 할 만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도리포스가 사교모임과 외출을 제한하자 왜 그래야하는지 이유를 따져 묻고, 그가 배우자로 권하는 남자를 단칼에 거절한다. 후견인이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한 동생에 대한 분노로 생계 지원만 할 뿐 정서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고아가 된 그의 세살박이 조카를 사전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데려오는가 하면, 후견인의 스승인 샌퍼드 신부 면전에서 부러 어깃장을 놓고 그와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밀너는 도리포스의 조언과 가르침에 순종하기보다는 한평생 수도원과 서재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이 사랑과 사교계를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시로서 보기 드문 주체성과 자아의식이 강한 여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현명하지 못하고 경솔한 태도가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자신에 대한 도리포스의 사랑을 확인하겠다고 그를 시험하는데, 정도가 지나쳤다. 후견인과 예비 남편의 말에 복종할 수도 있지만, 연인에게는 복종하지 않겠다며 막무가내로 더 엇나가 도리포스를 자극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철부지 어리석음이 결혼까지 가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된 셈이니 그녀가 의기양양할만하다. 이 경솔함이 결혼 이후까지 이어진 것이 문제지만. 멀리서 보면 고지식한 샌퍼드 신부가 그녀를 싫어하는 게 당연하지 싶다.   


ㅡ 


세상 일은 알 수 없다더니, 쓸쓸히 죽어가는 밀너의 곁을 지키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샌퍼드 신부였고, 그녀의 딸 머틸다를 끝까지 보살피겠다는 맹세를 한 이도 역시 그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밀너를 위로한 것은 도리포스의 사랑이 아니라 샌퍼드의 연민이다.  


밀너는 편지를 통해 도리포스에게 머틸다를 받아주기를, 당분간만이라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 수 있게 해주기를 간청했다. 남편이자 자식의 친아버지에게 후견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결국 딸이 자기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밀너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내의 후견인이었다가, 딸의 후견인이 되는 도리포스의 심경은 또 어떨까. 아내에게 향한 분노와 딸을 분리시키지 못하는 도리포스의 완고함은 참 비정하다.  


도리포스는 죽은 아내의 부탁을 받아들여 자기의 시야에 걸리지 말라는 조건으로 머틸다를 엘름우드 하우스에 들이면서, 아내와 딸의 이름을 금지어로 선포했다. 도대체 아내에 대한 애증이 얼마나 깊으면 이럴 수 있을까.  


머틸다는 지나칠 정도로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한다. 자유롭게 생활하다가 도리포스가 런던에서 돌아오면 머틸다는 은둔자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바람처럼 소리없이 다녔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한 집에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열일곱 살,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처음 만난 때와 비슷한 그 나이.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밀너에게 일어났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런 상상만으로도 독자는 두 모녀가 얼마나 다른지 짐작이 가능하다.  


독자는 도리포스의 완고함과 어리석음도 짚고 넘어갈 수 밖에 없다. 그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기를 기피했고, 분노와 애증을 해결하지 못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학대했다. 그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처하거나 죽음을 통과하고 나서야 자신의 감정과 대면한다. 한때 신을 향한 오롯한 소신과 완고함이 인간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독으로 작용했다.  



작가는 열린 결말로 소설을 마무리 한다. 머틸다가 과연 러시브룩의 청혼을 받아들였을까? 머틸다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그들 모두는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작가는 밀너 씨가 후견인을 두어 모든 재산을 딸에게 상속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올바른 교육을 부여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도리포스가 먼 친척에게 재산을 상속함으로써 머틸다는 가난과 정서적 학대라는 역경을 딛고 올바른 교육을 통해 순종적인 여성으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상반되는 성향을 지닌 두 모녀를 대조한 이 소설에서 이와같은 작가의 의도는 의미심장하다. 


이런저런 시대적 배경과 과정을 차치하고, 머틸다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과연 '교육'에 있겠는가. 어머니는 유언 한 줄, 유산 한 푼 없이 죽고, 아버지에게는 내쳐졌으며, 자신을 내친 아버지는 친척 오빠를 후계자로서 곁에 두고 살뜰히 보살핀다. 재산가 부모를 두고도 생계의 위협마저 받았던 머틸드는 엄밀한 의미에서 부모 양쪽에게 모두 버려졌다는 피해의식과 완전한 보호자가 없다는 불안감으로 피폐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어느 누가 복종하지 않겠는가. 


어느 의미에 있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18세기 남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폭군이다. 러시브룩조차도. 쓰다보니 작가는 이것을 말하고 싶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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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9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이혜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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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의 막무가내 구애에 화가난 도리포스는 그의 뺨을 때리고 만다. 이렇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행동은 도리포스 스스로에게도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운 일이었으며,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난폭함에서 보호해야할 피후견인에게 그 자신이 난폭함을 노출시킨 데에 대해, 그리고 성직자로서 갖춰야 할 인품에서 멀어진 것에 대해.  

프레더릭은 도리포스에게 결투를 신청해 왔고, 도리포스는 이에 응할 생각이다. 이 소식을 샌퍼드 신부로부터 전해들은 밀너는 도리포스에게 프레더릭을 사랑하고 있으니 제발 결투를 하지 말라고 간청한다. 도리포스는 밀너에게 그녀의 경솔한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배웠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런데 밀너가 프레더릭을 사랑한다는 말은 결투를 막기 위한 거짓이었다. 밀너는 자신이 한 거짓말이 프레더릭 귀에 들어갈까 걱정하며 우들리 양에게 도리포스가 자기의 거짓 고백을 프레더릭에게 전하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밀너가 남몰래 사랑하는 사람은 도리포스였던 것이다.  

도리포스가 밀너의 감정을 프레더릭에게 전할 시기를 알려달라고자 밀너는 아직까지 결혼할 정도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니 때를 미뤄달라고 부탁한다. 도리포스가 이를 용납하지 않자 밀너는 프레더릭과 결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를 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도리포스는 그녀의 변덕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밀너의 진심을 알고 있는 우들리 양은 그녀에게 도리포스와 떨어져 지내야한다고 얘기한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도리포스와 우들리 양과의 우정을 지키고 싶은 밀너는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배스에 있는 먼 친척인 레이디 루넘의 초청장을 핑계로 밀너는 결혼하기 전까지는 후견인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뒤로 하고 홀로 배스로 떠났다. 


​밀너가 분별력이 부족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녀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의 후견인을, 그것도 사제인 남자를 사랑하게 됐으니 그녀 자신은 스스로에게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렇다고 자신의 혼란스러운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사람도 마땅치 않았을 그녀가 안쓰럽긴다. 이제 열여덟 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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