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9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이혜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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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4부로 구성된 소설은 도리포스(엘름우드 경)을 중심으로 1,2부는 그의 아내 밀너와 3,4부는 그들의 딸 머틸다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의 유언으로 후견인인 카톨릭 사제 도리포스와 한 집에서 살게 된 밀너 양은 시간이 흐르면서 도리포스를 사랑하게 된다. 당시 여성으로서 사제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흔치 않은 일인데, 그녀가 도리포스를 사랑하는 방식이나 남성을 대하는 태도가 당돌하다고 할 만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도리포스가 사교모임과 외출을 제한하자 왜 그래야하는지 이유를 따져 묻고, 그가 배우자로 권하는 남자를 단칼에 거절한다. 후견인이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한 동생에 대한 분노로 생계 지원만 할 뿐 정서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고아가 된 그의 세살박이 조카를 사전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데려오는가 하면, 후견인의 스승인 샌퍼드 신부 면전에서 부러 어깃장을 놓고 그와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밀너는 도리포스의 조언과 가르침에 순종하기보다는 한평생 수도원과 서재에 틀어박혀 사는 사람이 사랑과 사교계를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시로서 보기 드문 주체성과 자아의식이 강한 여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현명하지 못하고 경솔한 태도가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자신에 대한 도리포스의 사랑을 확인하겠다고 그를 시험하는데, 정도가 지나쳤다. 후견인과 예비 남편의 말에 복종할 수도 있지만, 연인에게는 복종하지 않겠다며 막무가내로 더 엇나가 도리포스를 자극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철부지 어리석음이 결혼까지 가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된 셈이니 그녀가 의기양양할만하다. 이 경솔함이 결혼 이후까지 이어진 것이 문제지만. 멀리서 보면 고지식한 샌퍼드 신부가 그녀를 싫어하는 게 당연하지 싶다.   


ㅡ 


세상 일은 알 수 없다더니, 쓸쓸히 죽어가는 밀너의 곁을 지키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샌퍼드 신부였고, 그녀의 딸 머틸다를 끝까지 보살피겠다는 맹세를 한 이도 역시 그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밀너를 위로한 것은 도리포스의 사랑이 아니라 샌퍼드의 연민이다.  


밀너는 편지를 통해 도리포스에게 머틸다를 받아주기를, 당분간만이라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 수 있게 해주기를 간청했다. 남편이자 자식의 친아버지에게 후견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결국 딸이 자기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밀너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내의 후견인이었다가, 딸의 후견인이 되는 도리포스의 심경은 또 어떨까. 아내에게 향한 분노와 딸을 분리시키지 못하는 도리포스의 완고함은 참 비정하다.  


도리포스는 죽은 아내의 부탁을 받아들여 자기의 시야에 걸리지 말라는 조건으로 머틸다를 엘름우드 하우스에 들이면서, 아내와 딸의 이름을 금지어로 선포했다. 도대체 아내에 대한 애증이 얼마나 깊으면 이럴 수 있을까.  


머틸다는 지나칠 정도로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한다. 자유롭게 생활하다가 도리포스가 런던에서 돌아오면 머틸다는 은둔자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바람처럼 소리없이 다녔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한 집에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열일곱 살,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처음 만난 때와 비슷한 그 나이.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밀너에게 일어났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런 상상만으로도 독자는 두 모녀가 얼마나 다른지 짐작이 가능하다.  


독자는 도리포스의 완고함과 어리석음도 짚고 넘어갈 수 밖에 없다. 그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기를 기피했고, 분노와 애증을 해결하지 못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학대했다. 그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처하거나 죽음을 통과하고 나서야 자신의 감정과 대면한다. 한때 신을 향한 오롯한 소신과 완고함이 인간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독으로 작용했다.  



작가는 열린 결말로 소설을 마무리 한다. 머틸다가 과연 러시브룩의 청혼을 받아들였을까? 머틸다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그들 모두는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작가는 밀너 씨가 후견인을 두어 모든 재산을 딸에게 상속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올바른 교육을 부여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도리포스가 먼 친척에게 재산을 상속함으로써 머틸다는 가난과 정서적 학대라는 역경을 딛고 올바른 교육을 통해 순종적인 여성으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상반되는 성향을 지닌 두 모녀를 대조한 이 소설에서 이와같은 작가의 의도는 의미심장하다. 


이런저런 시대적 배경과 과정을 차치하고, 머틸다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복종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과연 '교육'에 있겠는가. 어머니는 유언 한 줄, 유산 한 푼 없이 죽고, 아버지에게는 내쳐졌으며, 자신을 내친 아버지는 친척 오빠를 후계자로서 곁에 두고 살뜰히 보살핀다. 재산가 부모를 두고도 생계의 위협마저 받았던 머틸드는 엄밀한 의미에서 부모 양쪽에게 모두 버려졌다는 피해의식과 완전한 보호자가 없다는 불안감으로 피폐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어느 누가 복종하지 않겠는가. 


어느 의미에 있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18세기 남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폭군이다. 러시브룩조차도. 쓰다보니 작가는 이것을 말하고 싶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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