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이스 2 아이네이스 2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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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604 - 608
이때 느닷없이 바뀐 운명은 약속을 바꾸었다.
여러 경기들로 무덤가에 경건히 제사 드릴 때
사툰의 따님 천상의 유노는 이리스를 내려
일리온 배로 보내 걸음에 순풍을 불어 넣었다.
묵은 앙심을 풀지 못하고 많은 일을 꾸민다.  
 

709 - 710
여신의 아드님, 운명이 이끄는 대로 따릅시다.
어떻든 운명은 무두 견딤으로 극복해야 할 바.
(노인 나우텟) 
 
​ 
 
도대체 신화에서 여신들의 컨셉은 왜 (대체로) 이렇게 설정해 놓은 것일까.
그리고 자꾸 뭘 견디래... ㅜㅜ
​ 
 

그리스.로마 신화 뿐만 아니라 여타 신화들을 읽다보면 간혹 인간은 오래 전부터 위기와 운명을 극복한 위대한 영웅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마블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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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1 아이네이스 1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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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는 트로이아 멸망을 시작으로 하는 로마 건국 서사시로서 총12권으로 되어 있으며 베르길리우스의 11년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트로이아 목마로 유명한 그 시점부터 신의 계시를 받은 후 일행을 이끌고 망명길에 오른 아이네아스가 카르타고를 떠나는 장면인 4권까지 실려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질 때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베르길리우스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문구마다 감정이 격렬해 따라가기 바빴는데, 쓰는 장본인은 이 격한 감정을 어떻게 눌러가며 글을 썼을까싶다. 눈앞에서 아들을 처참하게 잃고, 무너져가는 남편을 지켜봐야하는 헤쿠바와 멸망 왕족의 여인으로서 살아남은 죄로 처절하고 기구한 운명에 던져진 안드로마케.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보면서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는 그녀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남편을 오라비가 살해하고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가까스로 마음의 문을 연 디도의 애절한 호소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 가슴이 아픈 건, 처연하기까지 한 그녀의 죽음이 아니라 아이네아스와의 이별이 전 남편의 주검에 정절(신의)를 지키지 않은 대가라고 여기며 자신에게 탓을 돌리는 디도의 절망감이다. 디도가 아이네아스의 이별 선언에 죽음을 선택한 까닭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 찾아오는 상실감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 상실감과 그 이후에 강요받을 혼인에 대한 압박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디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도구가 아이네아스에게 선물로 요구해 받은 칼인데, 주석에서 보면 디도가 '트로이아의 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상징성을 언급한다. 상징성이 차후 세 번에 걸친 카르타고와의 전쟁, 그리고 한니발을 끝으로 로마의 속주가 되는 것을 말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감정 뿐만 아니라 상황의 묘사도 상당히 역동적이다. 목마가 열리고 시작된 살육과 파괴의 현장을 묘사한 문구는 어떤 설명없이도 오롯이 전해진다. 이어지는 일행의 방랑길은 극한의 연속이다. 첫번째 정착지에서는 영혼이 떠나라고 하고, 두번째 정착지에서는 역병이 돌고, 중간에 태풍과 괴조의 출몰은 서비스다. 정착할 땅을 찾아 떠도는 패배자이자 망명객의 고단함과 열패감 , 처절함이 애절하게 전달된다. 카르타고에 난파되기까지의 여정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감정을 흔드는 부분은 3권이다. 
 


 
지극히 트로이아인의 관점(굳이 따지자면 로마인 관점)에서 쓴 작품이다보니 베르길리우스의 약간 유치한 면도 있어 웃음이 나는 구석이 꽤 있고, 주석을 읽으면서 오뒷세이아까지 뒤적거리며 맞춰 읽다보니 번역하신 선생의 말씀에 나 혼자 궁금한 점이 생기기도 했더랬다. 예를들어, 2권에서 꿈을 꾸고 있는 아이네아스는 헥토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는 주석이 있는데, 왜일까? 헥토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나?'처럼. 베르길리우스는 코로이부스를 통해 '간계'가 그리스 사람들의 전유물인 양 표현했다고 해석했다. 즉 그리스인들을 에둘러 폄훼한 것. 그리고 속임수를 쓰는 그리스군이 승리한 것에 아이네아스는 분노하는데 올림픽도 아니고 전쟁에서 무슨 정정당당한 승부를 외치시는지. 





 
고대 문헌을 읽을 때 주석을 따로 읽는 편이다. 원문을 한 번 읽고, 원문을 보지 않은 채 주석만 읽는다. 그러면 두 번 읽는 효과도 있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다. 주석을 읽다보면 해석에 대해 아직까지 논쟁되는 부분이 있다고하는데, 이런 부분은 과감(?)하게 통과하면서 읽었다. 
 


이 판본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가능한 원전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물론 의역해 놓은 판본들보다는 읽고 소화하는데 시간이 좀더 필요하지만 아름답고 호소력 짙은 문장을 즐길 수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읽는 중이다. 두번째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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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드디어 다윈 4
찰스 로버트 다윈 지음, 김성한 옮김, 최재천 감수,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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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표현의 일반 원리 ㅡ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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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애초부터 의지에서 독립한, 그리고 일정 정도습관에서 독립한, 신경계 구성에 기인한 행동원리 : 감각 기관이 강하게 흥분할 경우, 과도하게 생성된 신경력이 신경 세포의 연결 방식에 따라, 그리고 부분적으로 습관에 따라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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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 원리에 대한 고찰 
 
특정 행동은 신경계 구성의 직접적인 결과이고, 이것은 애초부터 의지와 독립되어 있으며, 상당 부분 습관과도 별개다. 이에 대한 예로, 신경계가 강하게 영향을 받았을 경우 머리카락 색깔이 없어지는 경우, 근육의 떨림, 신체 기관의 분비와 활동이다. 떨림을 야기하기 쉬운 감정은 두려움 혹은 분노다. 그러나 여러 사례를 통해 육체적 원인가 감정 중에서 떨림을 설명할 수 있는 공통적인 것은 거의 없는 듯하다고 말한다. 한 예로, 신체 기관의 분비는 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그 방식은 의지나 연계 습관과 무관하게 감정 중추가 신체 기관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또다른 사례다. 이에 대한 영향의 정도는 사람마다 편차가 매우 심하다. 다윈은 인간과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고통과 분노의 특징적인 징후를 살펴본 뒤 두 가지의 경우에 직간접적으로 댜양한 기관들에 영향을 준다고 단정한다. 반대로 즐거움 혹은 강렬한 기쁨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은 목적 없는 여러 행동(손뼉을 친다거나 큰소리로 웃는 등)을 하는데. 이는 즐겁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쾌락을 얻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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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세번째 원리에 대한 적절성에 대해서, 자발적인 동작이 이루어져야 해소  내지 충족되는 다른 어떤 강한 감정을 고찰해 보고, 흥분된 마음 상태와 낙담한 마음 상태 간의 특징을 대비해 봄으로써 가늠한다.  이 장에서 재미있는 점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위협이 가해질 때 나타나는 분노의 감정이 모성애가 아닌 습관적 행동에 의한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이에 따르면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받게 되는 셈이다.  
 
​ 
 
결론적으로, 우리는 신체에 대한 감각(흥분, 낙담, 두려움 등) 중추의 직접적인 작동 원리가 수많은 표현들의 구제적인 모습을 결정하는 데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저자는 이러한 작동 원리가 신경계의 구성 방식에 좌우되고, 처음부터 의지에 독립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개별 사례에 따라서 단정지을 수 없는 경우가 흔히 있을 것임을 첨언한다.





♤ 리딩투데이 선물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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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으로 빚은 집 - 1969 퓰리처상 수상작
N. 스콧 모머데이 지음, 이윤정 옮김 / 혜움이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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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문학이 익숙하지 않다. 그동안 이와 관련해 읽었던 책을 떠올려 보면 곧바로 생각나는 책은 <모히칸족의 최후> <내 영혼이 따뜻해던 날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정도다. 그나마도 원주민이 직접 쓴 작품은 체로키 혈통을 이어받은 포리스트 카터의 작품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다(시애틀 추장의 책은 문학이라고 볼 수 없는 듯 하고). 원주민 역사에 대해서도 교과서에서 배운 정도와 이후 위의 책들을 읽을 때 찾아본 상식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데 나바호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 카이오와족 출신 작가가 쓴 이 책을 손에 쥐고 오랜만에 만나는 북미 원주민 문학과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고향 땅 왈라토와 협곡으로 돌아온 나바호족 청년 아벨과 그의 할아버지 프란치스코의 과거를 통해 원주민의 아름다웠던 땅, 하늘, 사람들과 백인들로 인해 비참하게 내몰린 그들의 이야기다.  
 


콜럼버스에 의해 졸지에 인도 사람이 되어버린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쫓겨났고, 야만인으로 낙인 찍혀 강제로 개종당했다. 각 부족의 전통과 문화와 관습은 무시된 채 수용소 생활과 기나긴 이주를 반복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순 노무로 푼돈을 벌며 남는 시간에는 술집에서 빈둥대는 것 뿐이다. 문명인이 그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저 시간을 죽이는 일. '보호'라는 명분으로 인디언 자치 지구를 만들어 지배자 편의에 맞춰 부족 간의 관계 혹은 관습에 상관없이 재배치하고,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경고와 감시를 해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은 서정적으로 표현한 원주민들의 대지와 자연, 그리고 영혼이다. 과하지 않은 간결한 문장으로 써내려간 자연의 모습은 종종 그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처절한 원주민 서사를 몇 안되는 등장 인물을 통해 사실적이면서 아프게 그려냈다. 아벨은 환각에 빠져 백인 남자를 위협적인 뱀으로 착각해 살해했는데, 이는 원주민을 위협하는 침략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느껴졌고, 아벨이 재판 당시 묵비권을 행사한 까닭은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을 통해 자신(원주민)의 상황을 백인들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얀 악마들. 원주민이 바라본 문명인의 모습일 터다. 
 


고향에 돌아왔으나 예전의 문화와 전통에 스며들지 못하고 겉돌던 중, 술과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환각 상태에서 백인을 살해해 7년을 복역하고 인디언 재배치 기관에 의해 LA에서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지만 급속하게 변화된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벨에게 더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 아벨의 할아버지 프란치스코의 죽음과 할아버지를 자신이 땅에 묻지 않고 교구 신부에게 부탁한 후  '여명으로 빚은 집'으로 달려가는 아벨의 모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생각해 볼 일이다. 프란치스코와 아벨이 추억하는 세상과 현실의 괴리는 극명하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영혼을 놓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스스로에게 변해야 한다, 변해야만 한다고 읊조리는 그들의 이 자조가 낯설지 않다. 변해야만 한다는 강박, 변하지 않으면 도태할 것이라는 불안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 협찬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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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생리학 인간 생리학
루이 후아르트 지음, 홍서연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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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생리학 시리즈 저자들의 입담도 만만치 않은데 특히 더 신랄한 입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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