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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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카니의 꿈은 방 여섯 개, 진짜 식당, 욕실 두 개가 있는 리버사이드 528번지 4층의 아파트다. 거리에서 되는대로 살아 온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카니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비도덕성을 인지하고 스스로를 제어하며 살아왔다. 어린시절부터 사촌 프레디의 소소한 범죄에 간접적으로 끼어있었으나 문제가 될 만한 범죄 세계에는 거리를 두어 온 카니 앞에 매력적인 거래를 제시하는 프레디. 잠시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건만, 사건은 카니의 의지와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소설은 1960년대 할렘을 재현하면서 권투선수, 재즈 뮤지션, 아폴로 극장 등 당시의 할렘 문화를 옮겨놓았다. 또한 뒤마 클럽을 통해 흑인 내에서도 신분 및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 남부와 북부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이 있었음을, 또한 카니의 장인인 릴런드 존스를 통해 흑인 할렘 상류층에서 벌어졌던 탈세를 비롯한 부정부패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페퍼는 카니에게 사업가는 세금 내는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사기꾼이다. 1부의 마지막에서 가난한 카니가 망해가던 가구점을 인수할 수 있었던 비밀이 공개되는데, 칼비노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역설이 소설 곳곳에 슬쩍 슬쩍 깔려있다.  




이제 카니는 어둠(?)의 세계에서 공식적인 장물아비로 이름을 올렸다. 갈취라면 도가 튼 부패 형사 먼슨과 조직 폭력배 보스인 칭크에게 뇌물을 상납하고 있다. 뒤마 클럽에 가입하면 장래가 탄탄대로라는 피어스의 조언을 듣고 뒤마 클럽 회장인 듀크에게까지 돈을 상납했건만, 이 능구렁이같은 인간에게 돈만 뜯기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 눈에는 이에는 이다.  


카니가 들여다본 뒤마 클럽은 그안에서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구축하고 있으며,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조직 폭력배 일당과 다를 바 없다. 부정기적 갈취와 무노동 착취. 페퍼의 말이 딱 들어맞는 대목이다. 2부에서 카니는 범죄의 세계에 점점 더 깊게 개입하게 되고 이중 생활을 한다. 낮에는 유능한 가구상이자 사업가이고, 도르베 특급을 타게 되면 그가 지향하는 삶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산다. 어차피 케네디 대통령이 제시한 뉴프런티어는 흑인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풍요로운 뉴프런티어는 백인의 몫일 뿐이니 제 살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딸이 할렘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하기를 바랐던 엘리자베스의 부모는 남편 카니와의 소박한 일상에 만족하며 사는 딸이 못마땅하고, 사위는 성에 차지 않는다. 릴런드는 카니가 어떤 방법으로 뒤마 클럽에 가입하고 자신을 뒷방 늙은이로 내몰았는지 알게 된다면, 그 방법이 자신들이 그동안 행해왔던 것과 똑같은 방식임을 안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백인 경찰이 비무장한 흑인 소년을 세 차례 쏴서 죽인 사건을 계기로 시위 및 폭동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다쳤으며 할렘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폭동 당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디아스 씨가 가게의 전면 유리를 네 차례나 바꿔 간 것에 대해 카니는 그의 인내가 희망인 상징인지, 광기의 상징인지 묻는다.  이미 잃은 것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얼마나 더 오랫동안 노력할 수 있을까. 법을 수호하는 자와 범법자가 한 편이 되고, 약자는 더 약한 자를 팔아넘겨 목숨을 부지한다. 정직한 자와 범죄자의 경계선은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한 소년이 죽었고, 할렘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대배심은 경찰의 혐의를 벗겨주었고, 흑인 청소년들은 백인 경찰들의 야경봉과 권총 앞에 쓰러졌다. 프레디와 라이너스는 죽었고, 강도 사건은 애초에 없었던 일처럼 해소되었으며, 부자들은 계속해서 이득을 취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지구가 계속해서 돌고, 계절이 바뀌기를 반복하듯 세상은 변하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된다. 불의는 여전하 벌어지고, 여전히 잊혀진다. 한쪽에서는 빈 병에 휘발유를 채워 던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일도 없는 듯 자신의 일상을 살아간다. 그렇게 뒤섞인 채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미국 노예 탈출, 인류 종말, 소년원 폭력 실화 등 출간하는 작품마다 다른 소재와 개성있는 구성 방식을 선보이는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된 작품들 중에서 이 소설만의 다른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전의 작품들이 공감과 연대, 사랑과 희생을 기저에 두고 독자의 가슴을 몽글몽글하고 애잔하게 했다면, 이 작품은 불의를 불의로서 대항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점, 그리고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자와 블랙 유머를 통해 뒷맛 씁쓸한 웃음을 던져주며 동시에 은근한(?)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히어로가 아닌 소시민의 반격은 그 감정을 배가시킨다는 면에서 더 통쾌할 수도(마지막에 느껴지는 헛헛함은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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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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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하나씩 소멸되는 섬. 소멸되는 그 무언가는 눈에 보이는 물건일 수도, 생명체일 수도, 무형의 것일 수도 있다. 리본, 방울, 우표,  향수, 새... .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들새 연구가인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 어느날, 새가 소멸됐다. 새가 소멸된 다음날에 비밀 경찰이 느닷없이 들이닥쳐 온 집안을 뒤져 그나마 남아있던 새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더불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척까지 사라졌다. 
 
​ 
 

-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소설 사이사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분위기도 느껴지고. 제법 무거운 감정선을 '그냥 그래'라는 듯 담담하게 풀어가는 문장들이 나쁘지 않게 다가온다. 이제 초반이니 더 읽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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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2 아이네이스 2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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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을 읽으면서 4권에서 놓쳤던 흥미로운 한두 가지를 이야기해보자면, 먼저 달리기 시합에서 선두에 있던 니수스가 마끄러져 우승을 놓치게 되자 3등으로 달리고 있는 친구 유랄룻을 위해 2등으로 달리고 있던 살리웃의 앞을 가로막아 결국 친구를 우승자로 만든다. 이에 살리웃은 니수스의 간계로 빼앗긴 명예를 돌려달라고 탄원하는데, 그리스군의 계략에 분노했던 아이네아스가 내린 처방은 의외다. 명예와 공정과 우정, 아이네아스는 이 중에 어느 것을 우선할까?  


 
다른 하나는 이벤트로 준비한 소년 기병대의 행진을 통해 베르길리우스가 율리우스 가문과 아우구스투스를 에둘러 칭송하는데, 디도가 우정의 보증으로 선물한 시돈의 말을 타는 소년이 율루스다. 별것 아닌듯 하지만,카르타고 전쟁에서의 승리와 제정 이후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인들에게 어떤 존재였을지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6권부터 7권까지 신화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6권에서, 저승의 문을 열고 들여다 본 모습은 여느 문헌들과 마찬가지로 끔찍하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터다. 바다에 빠져 시신이 땅에 묻히지 못한 팔리눌이 자신의 유골을 흙에 뿌려달라고 호소하지만 뱃사공 카론의 허락이 없으므로 단칼에 거부하는 무녀의 단언은 잔인하기까지하다. 아이네아스가 저승에서 디도를 만나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데, 그 옆에 디도의 전남편 쉬케웃이 있는 아이러니는 베르길리우스가 나름 로맨티스트였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 이유가 주석에 따르면 '통곡의 들판'에 쉬케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과는 아무 상관없이 디도의 오라비인 피그말리온의 탐욕에 의해 살해됐기 때문이다. 유노는 자신의 종족에게 돌아가는 아이네아스를 보면서 '밉살스런 민족'이라고 말하는데, 최고의 여신이 너무나 인간적이다싶어 웃음이 나기도 한다(새삼 이 신이라는 작자들은 왜 이렇게 유치한 건지).  
 



7권에서 열거하는 참전한 도시들의 이름을 보면 앞으로 로마사에서 익숙하게 될 지역들ㅡ캄파니아, 삼니움 등ㅡ이  등장한다. 로마 제국이 유지되는 동안 충성과 반목을 거듭하는 이탈리아 도시들과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음을 떠올린다. 그나저나 군 규모를 보면 아이네아스 일행이 도저히 이길 수 없어 보이는데, 마침내 벌어진 전쟁. 아이네아스는 티베리우스강 하신의 지시로 에반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에반더의 땅은 후일 로마가 세워질 장소다. 이런 면에서 하신의 계시와 동맹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로마는 이방인으로서 약탈이 아닌 동맹으로써 건국됐음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에반더가 아이네아스에게 자랑삼아 들려주는 영토의 역사는 에반더도 몰랐던 로마 건국이 시작될 이 땅이 얼마나 축복받은 땅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한 셈이다.   
 



베누스가 아이네아스에게 건넨 무장을 살펴보면 불을 뿜고 있는 깃털 달린 투구, 죽음을 가져오는 검, 청동판의 굳센 흉갑, 호박금 순금으로 만든 가벼운 정강이받이와 투창, 직조된 방패. 도저히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무장이다. 그런데 죽음을 가져오는 검이라는 것이, 전쟁터에서 휘둘러지는 어떤 검이 죽음을 부르지 않겠는가. 요리를 목적으로 하는 칼이 아닌 다음에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장면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모습ㅡ로물루스, 악티움 해전, 아우구스투스 등ㅡ을 형상화고 있다.  


630 - 638
또 새겼다. 마르스의 푸른 동굴에 젖 먹이는 
어미 늑대가 누웠고 늑대 젖 주변에서 쌍둥이 
소년들은 매달려 놀며 어미젖을 빨고 있었다, 
겁도 없이. 어미 늑대는 살찐 뒷복을 뒤로 돌려 
번갈아 둘의 몸을 핥아 주고 만져 주고 한다. 
그 옆에 로마와 사미눔 여인들의 불법 납치,. 
함께 앉아 있는 관람석, 경기장의 큰 볼거리가 
덧붙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새로운 전쟁, 
로물룻 패와 싸운 타티웃 노인과 거친 쿠레스.  
(후략)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건국에 시발점으로 삼은 이 동맹 전쟁을 쓰면서 당신 혼자 감정이 북받친 건 아닐까라는 조금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8권의 마지막 문장인 '후손들의 명성과 운명을 어깨에 짊어졌다'라고 썼는데, 이는 아이네아스가 아닌 베르길리우스의 시선에서 썼다는 게 너무 강하게 와닿았다. 







 




베르길리우스는 그야말로 온전히 아우구스투스가 다스렸던 시대를 살던 사람이다. 베르길리우스와 아우구스투스는 각각 BC19년, BC14년에 사망했다. 팍스 로마나를 이룩한 황제에 대한 경외심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더불어 로마인으로서 갖는 자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겠더라는. 읽다보면 베르길리우스가 호메로스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베르길리우스 본인도 호메로스를 뛰어 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며 책을 덮었다. 그나저나 3권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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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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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는 5학년 학교를 그만두고 셀룰로이드 제조회사에서 잔심부름을 시작으로 사기꾼들과 좀도둑 주위를 기웃거렸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그는 감옥 대신 전쟁터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세상이 무심하고 잔인하며 비열한 곳이라는 것을, 흑인 병사에게는 더 가혹하다는 것을 배웠다. 아서의 죽음을 전해들은 페퍼는 칭크의 짓인지, 아니면 마이애미 조의 배신인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돈과 보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게 문제였다. 그는 잠적해버린 마이애미 조를 찾아 카니의 트럭으로, 카니를 끌고 다니며 오후 내내 할렘을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인연과 사건의 해결.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이 유쾌한 마무리는 무엇? 이러면 다음 에피소드가 기대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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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드디어 다윈 4
찰스 로버트 다윈 지음, 김성한 옮김, 최재천 감수,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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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종의 기원>을 두번째 읽으면서 앞으로 다윈의 책을 읽을 일은 거의 없겠다했는데, 이 책을 읽게 됐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셀 수 없는 수많은 관찰과 경우의 수를 들어 지구가 회전하는 동안 이어져 온 생명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직접 관찰과 지인을 동원한 정보, 그리고 여타 다른 문헌들을 참고해 인간과 동물이 밖으로 나타내는 다양한 감정 표현들의 특징을 서술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에게서 살펴볼 수 있는 모든 주요 표현들이 전 지구적으로 대동소이하다는 것이고, 이 점이 흥미로운 까닭은 단일 혈통의 선조로부터 여러 인종들이 유래되었음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이나 동물이 보여 주는 주요한 표현 동작이 개인적인 습득이 아닌 유전적인 것이며, 그중 다수는 학습이나 모방과 상관없고 어릴 때부터 나타나는 동작들은 평생  개인의 통제 능력을 벗어나 있다. 그러나 눈물이나 웃음처럼 타고 난 감정 중에서도 충분하고 완벽하게 표현될 때까지 개인적인 연습이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기도할 때 합장한다거나 애정의 표시로 입맞춤을 하는 등의 우리가 선천적이라고 믿을 만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일부 몸짓은 분명 학습된 것이다. 또한 일정한 목적을 위해, 혹은 모방을 통해 의식적.자발적으로 수행되어 이후 습관화된 것들이 있다. 그런데 주요한 표현 동작들은 대체로 선천적이거나 유전을 통해 물려받은 것이다. 물론 일부 두드러진 표현 동작들은 노력으로부터 생겨나기도 했다.  



언어는 동일 종족의 성원들 간에 의사 소통을 하는데 뛰어난 능력으로써 인간이 진화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다양한 표현 소리를 내는 음성(소리) 기관은 처음에 성적인 목적을 위해 발달했으나 이후 점차 발달하면서 의사 소통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다윈은 이 책을 저술하면서 의지, 의식, 의도라는 용어를 적절히 적용하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자발적이었던 동작이 습관화 된 것도 있고, 최정적으로 유전적인 것이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동작이 의지를 거슬러 수행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표현 동작들이 대부분 선천적이거나 본능적이지만 이들을 인식하는 능력이 그러한지는 별개로 고찰해봐야 함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표현 동작이 점차적으로 습득되다가 나중에 본성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듯, 비록 경험적 증거는 충분하지 않지만 표현 동작에 대한 인식 능력은 본능적인 것이 되었다는 주장에 개연성이 있다고 여긴다.  



다윈은 우리의 호흡 및 순환 기관의 구조가 조금만 달랐더라도 우리가 짓는 대부분의 표정을 지금과 많이 달랐을 거라고 짐작한다. 여러 표정을 지을 때 나타나는 근육의 변화에 대해서 지나치다 싶을만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는데, 다윈의 직접 관찰이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에 머물렀음은 살짝 아쉽지만, 근육의 수축이나 눈물 분비, 안구 표면에 가해진 압력 반사 작용 등 이러한 결과물을 대부분 관찰로 이끌어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짓는 표정들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고착되어 왔음을 다윈의 집요한 관찰을 통해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예를 들어보자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고, 부정적일 때 좌우로 흔드는 행위를 우리는 대부분 당연하게 여긴다, 냉소와 무시의 표정은 오직 얼굴 한 편의 송곳니만을 보이는 방식으로 윗입술이 수축한다, 우리는 결의(결단) 찬 모습을 보일 때 입을 굳게 다문다(물론 전 인류가 공통적이지는 않다). 이처럼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여겼던 표정이나 행위들을 통해 타인과 무언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그래서 범죄 프로파일링이 가능한 거 아닌가 싶고).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공감이 본능이라는 접근이다. '공감의 본능'을 매개로 슬픔을 비롯한 여러 감정들이 촉발된다는 것(사실이든 아니든 멋진 가설이다). 따라서 공감을 기반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표현 동작은 언어에 비해 훨씬 진실되게 생각이나 의도를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명체에 대한 많은 것들이 증명된 현재에 비전문가로서 이 책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 에른스트 마이어는 <이것이 생물학이다>에서 현미경의 발명 덕분에 생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말씀했는데, 기술이 아닌 관찰로서 인간과 동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큰 인내와 관심을 필요로 한다. 다윈이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며 장엄함에 경의를 표했다면, 나는 그의 관찰과 인내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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