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1천 권의 조선 - 타인의 시선으로 기록한 조선, 그 너머의 이야기
김인숙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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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쉽게 만나지 못할 책과 그 책이 품고 있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조선을 다녀간 혹은 조선에 대해 간접적으로 접한 서구인들이 쓴 우리에 대한 글이 실려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 소설 <소현>에서 보였던 김인숙 작가님의 역사에 대한 고찰도 곁들여지는데, 소소하나마 이 부분의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은 개항기의 책들만이 아니라 하멜 이전의 유의미한 기록들, 그리고 기록의 길이 탓과 그외의 이런저런 이유로 어쩌면 영원히 번역본으로는 출간되지 못할 내용들에 대해서도 담겨있어 역사와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소중한 읽기의 시간이었다. 









 
사실 언급된 문헌의 내용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슬슬 빈정이 상하기 시작한다. 넘쳐나는 오류, 조선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시선, 약소국의 비애가 전해진다(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한국인이니까 어쩔 수 없다). 일례로 마테오 리치의 기록에는 임진왜란이 일본과 조선의 전쟁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승자가 조선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만봐도 당시 조선이 갖는 존재감을 짐작할만하다. 다른 하나를 더 보자면 맥레오드의 <조선과 사라진 열 지파>에서는 조선인이 유대민족의 후손이라고,  미케위치의 <한국인은 백인이다>에서는 고대 그리스인의 후예라고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한다. 일본의 일본의 천황이 이스라엘의 후손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고 하는데,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은 끝이 없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들이 있는데, 오래된 문헌들의 번역과 원전의 충실도가 중요한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된다. 또한 기록이 사실이라고 해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 그리고 객관성에 따라 전달하는 바의 온도는 달라진다. 스웨덴 기자 아손과 차벨의 서술 방향이 전혀 달랐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해할 수 있다. 보이는 것 이상의 이면을 보지 못할 깜냥이라면 적어도 비틀린 선입견과 왜곡된 시선을 불러일으킬만한 주관적 판단은 지양해야함을 다시 새긴다. 개인적으로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는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사실 하멜이 표류기를 쓴 이유는 억류 기간 동안 밀린 임금을 청구하기 위한 보고서에 불과했는데 상업적으로 출판되어 조난 모험 소설처럼 팔렸다. 정작 하멜은 조선을 야만의 나라라고 한 적이 없건만, 유럽 독자의 입맛에 맞추려다보니 하멜의 모험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조선을 부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처럼 상술에 의해 왜곡된 경우가 있는가하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뒤크로와 로티의 기행문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른 차이가 얼마나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지 알 수 있다. 사실이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삐뚤어진 고정관념에 의한 시선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아손과 차벨의 서술 방향이 전혀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ㅡ 


이 책은 우리나라를 다녀간 기록문과 항해기 뿐만 아니라 백과사전, 잡지, 지도, 화집 등 다양한 문헌들을 다루고 있다.  


미국성서공회의 <선교 안내 목록> 에 들어있는 지도 중 하나가 호텔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데, 지도의 상단에는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이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통치하는 경성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약도에 가까운 지도 한 장만으로도 당시 국제사회에서 대한제국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어 씁쓸했다. 라페루즈의 <항해기> 부분을 읽을 때 제임스 쿡에 대해 잠깐 언급하는 대목에서 문득 어린 시절 제임스 쿡의 전기를 읽으며 그가 하와이에서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원주민들을 야만인이라고 비난했던 내가 떠올랐다. 고작 열 살 무렵에 이방인에 대한 나의 시각이 18, 19세기 유럽에서 조선을 바라본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그래서 객관성을 잃은 채 비판없는 책읽기가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새삼 느낀다. 


흥미뤄웠던 장은 올링거의 <코리언 리포지터리> 와 헐버트의 <코리아 리뷰>. 코리언 리포지터리는 1892년, 서울에서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 잡지다. 학술기사부터 기행문, 에서이, 최신 뉴스, 광고 등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한마디로 종합잡지였는데, 이 잡지가 발행된 1892년에 우리나라에는 신문을 비롯해 언론이라 불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이 잡지는 실제로 발행 당시 우리나라 근대의 생생한 기록이 담겨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사실. 직접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다. 


쥐 베르의 <조선 원정기>, 오페르트의 <금단의 나라 조선 탐험기> 를 보면 침공과 약탈의 순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쥐베르의 기록이 1873년에 발표될 때 외규장각을 비롯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는 이미 파리 국립도서관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후 의궤는 파리 국립 도서관의 폐지 창고에 중국 관련 문서로 분류된 채 버려져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11년, 145년이 걸려서야 완전한 반환이 이루어졌다. 작가의 말처럼 예술인이든 종교인이든 침략하는 순간에는 침략일 뿐이고 도적질을 할 때에는 도적일 뿐이다.   


작가는 우리나라를 소개한 서양 외서를 이야기할 때, 그 시작은 쿠랑이라고 말한다. 쿠랑의 <한국서지>는 조선의 책에 관한 책이다. 책에 관한 이야기, 책의 역사, 책의 언어, 책의 숨결이다. 책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야말로 책과 조선이다. 쿠랑이 서지로 작성한 조선 책이 3,821종에 이른다는데, 그는 조선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고. 모리스 쿠랑이 조선에 온 것은 개항 초기 1890년이었다. 파리에서 동양학을 전공한 후 베이징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다가 조선 공사관으로 발령이 났다. 당시 쿠랑의 상사이자 프랑스 초대 공사관이었던 플랑시는 우리의 금속 활자본 직지를 프랑스로 가져간 사람이다. 인간의 관계는 몇 다리 건너 모두 얽혀있다는 말을, 이 책을 읽으면서 곱씹게 된다. 


작가가 '나가는 말'에서 쓴 <함녕전 시첩>을 읽자니 참담하기 그지없다(이완용의 마지막 문구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내가 이러한데, 이 참담한 시를 비로 만들어 침전 후원에 세웠다니 고종은 다리 뻗고 잠들 수 있었겠는가.  


​ㅡ 


이 책에 등장하는 문헌들이 모두 조선을 중심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아주 적은 분량을 차지하고나 스치듯 지나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기록들이 중요한 이유는 각 시기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룬 마흔다섯 권의 책들이 현재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시 관람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보니 책에 실린 풍성한 사진 자료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또한 문헌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각 책들의 저자에 대한 에피소드와 사연, 그리고 이면의 이야기들이 상당히 재미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독서보다 책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만족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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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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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아옌데 특유의 장대하고 아름다운 여성 서사. <영혼의 집> <운명의 딸>과 함께 작가의 최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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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구 : 흙의 장벽 1~2 - 전2권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마리즈 콩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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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구는 술책이 자라나는 정원이다. 세구는 배신 위에 세워진다. 세구 바깥에서 세구에 대해 말하라. 하지만 세구 안에서는 세구에 대해 말하지 마라." (첫문장) 








출간 전부터 진심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그들의 긴 이야기의 읽기를 마친 지금,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작품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감히 말한다. 이 장대한 이야기에 대한 소감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난감하다. 어느 하나의 감정과 이성으로 단정하기에 그들의 인생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대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운명은 가혹했다.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네 형제의 운명이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였을까. 


 ㅡ 


소설은 세구의 전성기 최정점에서 시작한다. 세구의 지배력은 대규모 교역 도시 제네, 사하라 사막의 경계에 위치한 통북투, 페울족의 마시나 왕국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쳤고, 이외의 여러 부족들은 세구라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를 조아렸다. 그 중심에는 밤바라족이 있다. 밤바라족을 대표하는 트라오레 가문, 그 가문의 '파' 두지카와 그의 아들들. 소설은 그들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제국주의, 노예무역, 이슬람 전파 등 18~19세기 격동의 아프리카를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인간성, 종교, 종파, 부족주의, 민족성, 가족애, 여성차별, 노예무역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상징성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영국, 브라질 등 광대한 공간적 배경과 사대를 잇는 긴 시간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쫀쫀한 밀도감을 유지하는데, 천 쪽에 가까운 소설을 읽는 동안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깝다가도, 그들의 운명에 이입해 다음 장을 얼른 넘기고 싶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두 가지 핵심 사건은 노예무역과 이슬람 개종과 종파 간 대립이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인 트라오레 네 형제의 운명이 결정된다. 다신교이자 '파'중심의 가족주의 나라인 세구에서 과감히 이슬람 신도의 길을 걷는 장남 티에코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태어나 몇 시간 먼저 태어난 형의 운명에 결속된 시가, 단 한 번의 일탈로 아버지의 땅에서 끌려나온 나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된 방황으로 인해 비극적 운명의 족쇄를 차게 된 말로발리. 


우리가 미처 깊게 알지 못했던 노예무역의 사실, 노예무역 이후 대체된 팜유무역,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던 이슬람 종파의 대립, 신앙이 갖는 본질과 근원적 사명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권력과 야합하고 변질된 종교, 가부장 사회에서 비롯된 여성 차별, 같은 인종 내에서도 벌어지는 인종 차별, 제국주의의 폐해와 세월이 흐를수록 밀려오는 서구 문명을 두고 갈등하는 아프리카의 젊은 세대 등 이들의 운명을 따라가다보면, 참혹했던 그 시대를 대면하게 된다.  


특히 소설 후반인 1840년 겨울, 에우카리스투스가 사제 교육을 받기 위해 영국에 도착한 후에 갖는 소감이 인상적이다. 백인을 정중하게 맞았던 다호메 왕국과는 달리 백인은 흑인을 짐승처럼 간주하는 것, 빈부격차가 극심해 거지와 다를 바 없는 백성이 이토록 많은 영국이 자기네 나라에서 해결해야 문제들이 산재해 있음에도 그들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다른 대륙에 전파하려는 것, 이를 보면서 가장 아름다워야할 건축물인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실추되었음에도 물리적 건축물에 관심을 갖는 것 등을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문자와 문헌들의 경이로움에 매혹되어 유럽인들의 성과에 열렬한 찬미를 보낸다. 에우카리스투스는 이러한 자신의 이중적 행태가 스스로도 혼란스러우면서 동시에 남미 원주민의 문명을 가차 없이 파괴하는 유럽 문명을 통해서 아프리카의 미래를 예감한다. 이러한 모습은 에우카리스투스 뿐만 아니라 그들과 유사한 근현대사를 겪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졌을 양가적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소설 속 주인공들 만큼이나 많은 감정과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유약하게만 보였던 티에코로의 예상치 못했던 강인함, 더없이 슬펐던 나바의 삶과 나디에의 절망, 거칠고 비겁하게 보이지만 죽을 때까지 성장하지 못한 내면의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살아야했던 말로발리에 대한 안타까움, 더할 수 없는 사랑이 전부였던 로마나의 측은함, 트라오레 가문을 실질적으로 지켜낸 니아의 굳건함이 전하는 감동. 자책과 후회, 치욕과 인내, 사랑과 욕망, 혼란과 갈등이 점철된 인생. 죽음을 맞이한 자도, 타인의 죽음에 책임을 갖는 자도, 그 아프고 고된 삶에서 그들만의 화양연화가 있었음이 독자에게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그보다는 트라오레 가문과 연관된 많은 인물들의 삶 속에 깊숙이 빠져드는 독서를 추천한다.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었던 세구. 소설의 마지막에서 흙으로 둘러쳐진 세구의 장벽이 무너짐은 무엇을 상징할까. 뻔한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소설을 완독하면 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모하메드의 마지막 말이 오래 기억될 듯 하다.  


483.
더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살아남는 것 말고는. 


 

사족.
사이사이 문장이 주는 이 벅찬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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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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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 



여중.여고를 거치면서 그 흔한 선생님에 대한 동경을 가져본 적도, 유명인을 대상으로 팬을 자처해본 적도 없는 내가 짝사랑한 사람이 있었으니 <모스크바 신사>의 로스토프 백작이었다. 그 기억이 여전히 생생해 작가의 신작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에밋
1954년 6월 12일, 에밋 왓슨은 15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윌리엄스 원장과 함께 설라이나 소년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3개월 일찍 돌아온 에밋에게 남겨진 것은 아버지의 빚이었고, 그 빚을 상환하기 위해서 여덟 살 동생 빌리를 데리고 조만간 집을 비워줘야한다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형제에게 빚만 남긴 건 아니었다. 에밋의 1948년형 스튜드베이커 랜드크루저에 숨겨져 있던 편지 한 장과 현금 3천 달러를 유산으로 남겼다. 

 
더치스 / 울리
윌리엄스 원장의 차에 몰래 숨어들었던 더치스와 울리. 설라이나에 있어야할 두 사람이 에밋의 앞에 나타나서 기껏 한다는 얘기는, 울리의 증조부의 별장에 설치되어 있는 금고 안에 울리가 상속받을 현금 15만 달러가 있으니, 그 돈을 빼내어 3둥분하자는 것. 별장은 항상 6월 마지막 주말 동안만 개방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돈을 빼내올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런데 뉴욕까지 타고갈 차량 소유주인 에밋이 이 계획에 동참할 의사가 전혀 없다. 그리고 현금 15만 달러의 주인인 울리가 정작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빌리가 아버지의 사망 후 그의 방에서 찾아낸 그림 엽서 아홉 장. 그 엽서들은 어머니가 집을 나간 직후에 보낸 것들로서 아들들을 수신자로 하는 어머니의 필체가 적혀 있었다. 엄마가 보내왔던 엽서는 링컨 하이웨이가 통과하는 지역이다. 캘리포니아로 가면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빌리의 기대감과 자신의 실수와 과오, 그리고 무기력한 아버지에 대한 적대적인 기억이 남아 있는 곳에서 떠나고 싶은 에밋의 바람이 합쳐져 왓슨 형제에게 거의 유일하게 남은 스튜드베이커에 몸을 싣고,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로 향하고자 한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복병과 사건이 발생하고 그들은 캘리포니아와 정반대 방향인 뉴욕으로 차머리를 돌린다. 


ㅡ 


소설은 여러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번갈아 사용함으로써 때로는 사건을 제3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그보다는 좀더 가까운 입장에 이입되어 관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요 인물들이 열아홉 살 전후로 매 사건에 부딪칠 때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성장소설이면서 동시에 당시 시대를 통해 현재의 우리 모습을 함께 조명하고 있다.  


울리는 기숙학교와 감옥을 비교하면서 그 두 곳의 공통점이 대상을 관리하기에 쉽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훌륭한 직장인을 생산해 내기 위함임을 짚는다. 특히 울리가 사회성이 부족하고 때로는 사회 부적응자로 비춰진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구성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음을 새삼 각성하게 된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 에밋의 입장에서 뭔가 한발짝씩 어긋나는 느낌이지만 결국 그들이 가야할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는 읽으면서 "아, 이런..." "안돼!"를 중얼거리다가 어느 순간에 이 난처한 상황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밋을 따돌리려고 했던 더치스가 빌리를 데리고 의도치 않게 에밋이 있던 곳으로 오게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에서 악인은 없다(존 목사가 악인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그에 대한 히스토리가 깊지 않으니 독자는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다). 더치스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해 누명을 썼고, 타운하우스는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죄를 뒤집어 썼으며, 울리는 선행이라고 여겼던 행위가 불상사를 일으켰다. 그리고 에밋은 단 한 번의 실수가 최악의 불운이 되었다. 그들이 새로운 인생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의 키맨은 여덟 살 소년 빌리 왓슨이다. 
율리시스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후 가족의 가치를 깨달았으나, 가족을 잃은 후 희망 없이 사는 부정적인 삶의 방식만을 취하다가 자신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갖고 있는 율리시스왕의 이야기를 빌리로부터 듣게 된 뒤 희망을 품고 싶어진다. 기적같은 만남으로 빌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책 속에서 존재하는 모험을 넘어서 현실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노년에 과감하게 펜을 던져버린 애버커스 교수의 새로운 시작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외에도 빌리는 낙담하는 사람들에게 의도와 사심이 없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그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빌리는 자신이 크세노스라고 생각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우리 주변 인물로서 이름이 밝혀지지않는, 보통의 사람. 그러나 항상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나타나서 필수적인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 실제로 이 소설에서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관지어 고민을 던지면서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도록 하는 매개체다.  


소설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들은 엇길린 길 위에서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알아가며, 선입견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타인을 판단해 왔던 것들에 대해 반성한다. 여러 사람을 대면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그들. 우리가 타인과 어우러져 사는 데에 필요한 미덕은 용서라는 메세지가 깊게 와닿는다.  


이를 이미 알고 있었던 울리와 빌리, 그리고 세라. 그래서 울리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이들 중 가장 가슴 아파할 사람은 세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든 사람이든 버려두고 방치하면 안 될 터. 샐리의 바람처럼 자신이 하는 행위가 오로지 스스로를 위한 삶이 될 수 있는 세상이기를, 과거의 잘못된 사슬을 과감히 끊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서로에게 아낌없이 박수쳐줄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람한다. 



811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으면서 단 한 장도 지루하지 않았다. <스토너> <모스크바의 신사> 에 이어 머릿속에 꽉 박힐 소설이 될 듯하다. 



599.
다시 희망할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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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잠수복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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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를 얘기할 때면 다수의 독자들이 <공중그네>를 떠올리는데, 나에게 있어 그의 대표작은 <남쪽으로 튀어> 다. 호쾌, 통쾌,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진한 페이소스가 소설 전반에 가득했던 그의 작품이 최근에는 훈훈한 인간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아내의 외도로 당분간 별거를 결정하고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바닷가 마을의 낡은 빈집을 단기 임대해 머물게 된 무라카미 고지. 조기 퇴직 권고를 거부해 교외 공장의 위기관리부에 발령이 난 다섯 명의 중년 남자들. 지명 1순위로 프로구단에 입단했으나 부상과 성적 저조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에만 머물렀던 남자친구 다무라 유키가 입단 4년만에 상승세를 타면서 올스타 명단에 이름이 오르자 위기감을 느낀 아사노 마이코. 자신이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확신해 스스로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잠수복을 입은 채 생활하는 야스히코. 55세가 되자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젊은 시절 너무나 갖고 싶었던 1980년 초대 피아트 판다를 사기로 결심한 고바야시 나오키. 


ㅡ 


아는 후배는 결혼 생활을 자식 때문에, 혹은 의리로, 혹은 정으로 지속하는 건 별로라고 했다. 결혼이든 연애든 영원히 열정적이기만한 사랑이 있을까? 쉽지 않은 세상의 풍파를 함께 견뎌온 사람이라면 그 이름이 의리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함께 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으려나... .


그야말로 청춘을 다 바친 회사에서 사실상 지명 해고를 당한 중년의 다섯 남자들은 복싱을 하면서 잊었던 청춘의 기억을 떠올린다. 기업은 설득과 타협, 상생의 과정없이 가장 손쉬운 해고를 선택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비인간적인 처우로 해고 대상자의 모멸감을 자극하는 가혹한 방식으로 목적을 이룬다. 직원들은 그 화살이 언제 자기한테 향할지 모르니 함부로 나설수도 없다. 중년을 맞는 대다수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이들이 복싱을 통해 얻은 것은 과연 흐릿한 청춘의 기억 뿐일까. 


학벌, 집안, 연봉, 재산이 결혼 조건의 우선 순위가 된지는 이미 오래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삶의 위기가 왔을 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마찬가지의 상황에서 자신은 상대에게 품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나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힘이 있는지를 살펴야한다. 자립이 가능한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더 사랑할 수 있을테니.  


팬데믹 시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부분 달라졌고, 달라진 세상에 익숙해졌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세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와 시각에 차이는 있을 것이다. 이제 세상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졌음은 분명해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를 염두해 두고 여러 책들이 출판되고 있으나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작 내가 생각하는 건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잃은 것과 새롭게 만들어진 것,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다. 


그나저나 한동안 잠잠했던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증가 추세다. 왜 이러냐, 또... .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있는 요즘이다. 작가는 인류의 구세주가 다음 세상을 이끌어갈 아이들이라고 얘기하는데, 그 아이들이 잘 넘겨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 이들은 지금의 어른이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크게 생각되어진다.   


<판다를 타고서>는 수록된 소설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 도미타의 추억 여행보다는, 쉰다섯의 나이에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물리적 심정적 여유가 생기고, 타인의 인생을 통해 치열하게 달려왔던 자신의 지난 인생을 위무하며 안식하는 나오키를 통해 우리 시대 중년들의 모습에 뭉클함을 느낀다 (나오키가 '파이트 클럽'의 멤버 중 한 명이라고해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내가 쉰다섯 살에 한 가지를 산다면 뭘 살까... 생각해 봤는데 단번에 피아노가 떠올랐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대여섯살 무렵부터 함께 한 지금의 투박한 피아노를 과연 내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처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우리 주변에 아는 누군가의 사연이라고 해도 믿겨질만큼 지금을 살고 있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각각의 단편인 소설들에는 공통적인 장치가 등장한다. 비현실적인 소설 속 이 장치가 현실의 우리에게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인생에는 믿기지 않는 비극도, 믿기지 않는 희극도 존재하니까.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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