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2 열린책들 세계문학 279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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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이 유일한 단점이라고 느껴질 만큼 현명하고 정숙한 메그, 간혹 분별력이 부족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충동적인 면이 있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한 조, 존재만으로도 가정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베스, 영리하고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에이미. 이렇듯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네 자매의 성장소설이자 가정소설이다. 






 




1권에서 네 자매의 소녀 시절이 마무리되고, 2권에서는 각자의 인생을 찾아 독립적으로 제 갈 길을 나서는 그들의 본격적 갈등과 성장을 그리고 있다.  



메그의 결혼 생활, 몸이 허약해 여전히 가족들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베스, 대고모 덕분에 유럽으로 건너가 시야를 넓히는 에이미, 여전히 아무도 지워주지 않은 책임감에 스스로를 묶어두며 돈과 순수성 사이에서의 글쓰기로 혼란을 겪고 있는 조. 


이 소설 전체에서 갈등과 대립이 가장 큰 관계는 조와 에이미다. 어린 시절부터 사사건건 부딪치는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세상 이치가 그렇다는 건 알아. 그 이치를 거슬러 봐야 힘만 들고 비웃음만 살 뿐이야. 난 개혁가는 싫어." (에이미) 


"난 개혁가가 좋고, 될 수만 있다면 되고 싶어. 비웃음을 살지는 몰라도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세상은 절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넌 구세계에, 난 신세계에 속해 있으니까 우리 의견이 일치할 수는 없겠지. 넌 아주 잘 살겠지만 난 떠들썩하게 살 거야. 신랄한 비평과 야유도 재밌을 거야." (조) 


어쩌면 이 두 인물의 대립은 단순히 성향이나 가치관이 다른 개인에서 머물지 않고, 당시의 여성의 위치를 대변한다고 느껴졌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류와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부류. 작가는 어느 방향이 더 올바르다고 주장하지 않으면서 각각의 독자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놓는다. 이러한 사유의 장치는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라 상업성과 작품성을 두고 갈등하는 조의 글쓰기, 양육과 부부 관계, 사랑과 우정 등 소설 전반에 걸쳐 얘기하고 있다.  


ㅡ 


어릴 때는 에이미를 얄밉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나만 그런 건 아닐 터다). 아마 다수의 독자들이 조한테 크게 이입해서 그랬을텐데, 사춘기가 지나고 어른이 되어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에이미만큼 억울한 캐릭터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무지고 지나치다싶게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원고를 태운 일은 예외),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했을 뿐인데 본의 아니게 조와 엮이는 일이 많아서 비호감이 되어버렸다. 인물들 중에서 성장하는 모습이 두드러지는 인물 또한 에이미다. 로리를 배우자로 선택한 과정보다는, 실연을 당한 로리한테 충고하는 에이미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마치 로리보다 몇 년은 인생을 경험한 연장자 같다(당연히 나이가 많다고 해서 현명하다는 것은 아니다). 


ㅡ 


사실 이 작품은 굳이 따지고 들자면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한 소설이다. 끊임없이 훈계를 늘어놓고, 반성을 요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교훈을 전하기 위해 애쓴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장점은 부와 가난, 이상과 현실, 돈과 명예, 사랑과 결혼을 이분법적으로, 대결 구도로 설정하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이는 장치들이 꽤 있다. 부유한 남성과 결혼하는 것만이 경제적 신분 상승의 거의 유일한 방법이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남편에게 아내가 아닌 딸처럼 느껴지는 메그의 모습도 종종 보인다. 다른 한편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립과 독립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가 있다. 그러나 결국 대고모의 유산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는 보인다. 물론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게 수월치 않았던 당시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무척 사랑스럽다. 어느 시대건 간에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은 누구나 꿈꾸는 소망이다(아닌가?). 마치家 사람들이 보여주는 가족과 이웃의 연대, 특히 마치 부부의 모습은 여러모로 너무나 이상적이라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소설 한 편쯤 있다는 것이, 나는 참 좋더라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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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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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 소설로서 어린 시절의 기숙학교 생활과 홀로코스트, 그리고 아우슈비츠 이후 결혼생활까지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써내려간 노년에 접어든 화자의 회고록이자 자기청산의 과정이다.  
 








어린시절 집에서 삭발한 폴란드 여인을 본 것을 계기로 자신이 유대인임을 알게 된 화자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이, 그것도 생사를 위태롭게 하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유쾌하지도, 이해되지도 않았다고 술회한다. 더하여 유대인이라는 결속력 때문에 오히려 타인과 자연과 심지어 자기 스스로와도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잃으며 명확하게 짚어 말할 수 없는 도덕적 비참함을 맛본다. 그러나 유대인을 혐오하는 여성 앞에서 그 자신 역시 삭발한 폴란드 여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저주이며 구원은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생존의 공범자라고 지칭하며 태어남과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 자신의 생존에 치욕을 느낀다. 그러기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생존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화자는 무엇이 자신에게 글쓰기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 딱히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존재하므로 쉼 없이 글을 쓴다. 즉 그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생존이다. 


강제수용소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끔찍한 기억은 일상에서 무시로 몰려온다. 화자에게는 두 가지의 삶이 존재하고 그중 하나가 정신의 삶, 정신적인 현존의 형태라고 말하면서 전쟁이 끝났어도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혹은 참혹한 과거의 기억은, 정신적인 삶의 사망선고와 다름없음을 이야기한다.   


화자는 대중이 흔한 범죄자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미치광이 히틀러를 신격화해 영웅으로 만들었고 말한다. 즉 그를 범인凡人이 아닌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추종자였던, 혹은 방관자였던 스스로에게 명분을 부여한 자기합리화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날조와 교조에 무릎꿇은 다수를 향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어린 시절에 수용소로 수송될 당시 자리를 이탈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더 연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버리면서까지 화자에게 식은 배식을 전해준 '선생님'의 행위에 대해 화자는 어떠한 이름을 붙이려 들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오히려 여타 이물질이 섞이지 않는 가장 순수한 이념이 퇴색될 것을 우려한 것은 아닐까. 또한 화자는 '선생님'의 행위가 그가 인간으로서 살아남는 방식임을 통해 결국 인간이 진정으로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를 역설한다. 


화자에게서 돈 또는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일 뿐이다.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떠안아야 하는 불평등, 부자유, 독립성 훼손 등에서 오는 부조리함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돈은 곧 강제수용소에서의 배식과 같다. 자신의 삶의 주인일 수 없는 변하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함이여.


ㅡ 


세상을 단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고, 다른 세상 혹은 죽음 이후의 실존 여부가 가능하다고 믿지 않으며, 정서적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살고 있는 삶을, 화자는 이름붙여 특정할 수 없는 죄의식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화자가 시도하는 삶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은 냉담해지기다. 아무리 자신의 본질과 존재 이유를 자문하지만 답을 구하지 못하는 그는, 자신이 스스로를 소유할 수 있다면 그의 정체성은 실현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나 깊게 마음이 아팠다. 소외감을 느끼며 안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자신을 온전히 소유함으로써 정체성을 실현하고 싶다는 화자의 말이 왜 이토록 절박하게 들리는지. 그러면서도 타인이 내미는 이해심은 감당할 수 없어 선뜻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이를 원하는 아내에게 "안 돼!"라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한 화자. 그는 아이의 울음 소리에서 "나는 유대인이 되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상상한다. 그 "안 돼"의 의미가 '유대인은 안 돼'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비록 유대인이라는 추상적 관념으로서는 화자에게 아무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기에 그 절망감은 더욱 크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미래의 어린 누군가에게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화자에게 있어서 유대인이라는 추상적 관념은 빨간 잠옷을 입은 대머리 여자이고, 체험으로서의 관념은 그의 생존 자체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숙학교와 아우슈비츠를 같은 선상에 놓으며 공포가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폐해에 대해 얘기한다. 세계가 모두 아우슈비츠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폭압이 난무하고 경외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약자는 어쩔 수 없이 폭력에 동조할 수 밖에 없는 부조리한 세상에 과연 희망은 있을까?  



이 소설은 태어날 수 없는 화자의 아이를 향한 애도 혹은 태어날 아이들에게 이러한 세상을 물려주는 것에 대한 사죄가 아닐까. 그리고 화자가 아내에게 했던 고백이, 저자가 쓴 이 글이,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한 애도이자 동시에 치유가 아니었을런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적응과 조화를 이유로 들어 복종을 교육받아왔다. 가끔 주변 지인들로부터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시키는대로 하지 않아서 힘들다는 하소연을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스스로의 삶이 얼마나 만족스럽길래 아이를 자신의 삶의 궤적대로 키우고 싶어할까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얘기하면서 실상은 허울좋은 단어를 사용해가며 지금도 복종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화자는 진정 자신과 화해했을까. 슬픔과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뒤덮여 한편으로 냉소적이기까지 한 이 글에서 나는 그의 안온함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책을 덮으며 그를 위해 기도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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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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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내가 오직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나 스스로를 그렇게 보고, 만지고, 소유하게 된다면, 물론 이것이 소유자나 소유에 대해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지만, 다만 그렇게 된다면 나의 정체성이 실현될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너무나 깊게 마음이 아팠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소외감을 느끼며 안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자신을 온전히 소유함으로써 정체성을 실현하고 싶다는 화자의 말이 왜 이토록 절박하게 들리는지.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나는 온전한 정체성을 실현하고 있는가'였다. 화자는 '왜 내가 어딘가 다른 곳에 존재하고 있을 삶 대신에, 우연히 할당된 망가진 파편들을 살아내야만 하는 것인지'를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가? 어딘가에서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서 의도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긴 적은 없었을까? 성별도, 가족도, 육체도, 내가 원해서 얻어진 것이 아닌데, 내가 나를 온전히 소유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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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신해경 옮김 / 엘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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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나 평범한 작품이 없다. 대부분 1960년대부터 1990년 이전에 집필한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기발하기 짝이 없다.   


책을 읽다가 작가가 궁금해 도저히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1915년생 여성으로서 그의 삶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본명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 ‘여성 SF작가’ 라는 간판으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기에 필명을 남성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대부분 영국 식민지에서 보냈고 그림 실력이 뛰어났으며, 미술 평론가와 기자로도 활동했던 이력을 보아서 다방면으로 재능과 경험이 풍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과 불임, 이혼과 재혼, 육군 항공대 입대, CIA 근무, 실험 심리학 박사 학위 취득, 그리고 51세부터 SF소설 작가 입문 등 그의 삶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소설들 안에 이러한 삶과 그가 거쳐왔던 생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책에 실린 열세 편의 중단편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눈은 녹고 눈은 사라지고> <엄마가 왔다> <수영장이 비면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다.  


<눈은 녹고 눈은 사라지고>는 장애를 안고 있는 두 존재가 서로를 보완하며 다수를 상징하는 Y-염색체 남성을 납치한다는 설정과 에티오피아 광야와 숲을 달리는, 한 편의 장쾌한 영화같다. <엄마가 왔다>는 지구에 온 카펠라 행성의 여성들을 통해 지구와는 다른 성 지배 구조를 보여준다. 카펠라 행성을 대표하는 여성들은 지구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일삼는데, 맥스는 카펠라 여성이 남성들을 성노예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 살아있는 악몽이라고 말한다. 이를 바꿔 말하면 성범죄에 취약한 지구의 여성들은 늘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맥스의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전해진다. "백인들이 배를 타고 하와이와 타히티에 도착했을 때, 선원들 몫으로 폴리네시아 여자들을 한 무더기 태웠지." 과연 우주선에 올라탄 수십 명의 지구인 남성들은 무슨 일을 당했을까?  


<수영장이 비면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는 문명을 전파하기 위한 제국주의의 수순과 아주 닮아 있다. 종교와 교육으로 접근하고 동화의 제스처를 취하며 마치 전적으로 그들을 위한 것인 양 산업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 문명인이랍시고 온 인간은 고작 사춘기를 막 지난 소년 한 명 뿐임에도 불구하고 토착민들은 나름의 저항을 하지만 불가항력이다. 제 맘대로 휘저어 놓은 고돌퍼스 행성을 뒤로 하고 미련없이 떠난 이후 토착민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수십 광년이나 떨어진, 한때 잠시 들렀을 뿐인 소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캐멀링은 '테라식 계몽운동'이라고 말하지만, 그 잣대는 소년의 말처럼 '테라식'일 뿐이다.   


ㅡ  


이외에도 소설은 식민주의와 그로인한 피해의 흔적, 산업화된 국가들이 연합을 맺어 세계 지배를 위한 전쟁에 돌입하는 폭력적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등 국제사회에서 약소국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함을 다룬다. 또한 성매매도 모자라 마약까지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세상에 팔 수 없는 건 없듯이 오로지 돈과 이익만을 좇는 이들을 풍자한다. 


작가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폐해만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극과 무통의 극단적인 증상에서 오는 고통, 인류가 지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사랑, 고향에 대한 그리움, 소수자이며 동시에 약자인 이들의 연대와 공존 등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놓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고통에 밝은>에서 주인공이 온갖 잔인한 고통에 대한 실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고 싶은 곳은 고향, 지구다. 이 소설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독을 안고 행성과 행성 사이를 유영한다. 그리고 롤링스톤스의 음악을 들으며 첫 토성탐사대원과 그들의 우주선을 기억하는 <다이아몬드 가득한 하늘에 계신 어머니>의 우주안전감독관 골렘이 멈춰버린 라그나로크에서 본 토팡가의 실체, 또한 우주를 동경해 왔던 <빔 어스 홈>의 토비가 병실에서 향한 곳은 무엇을 상징할까.



소설 속 그들은 그리움을 안은 채 각각의 '집'으로 상징하는 어느 곳으로의 귀환을 꿈꾼다. 인류는 문명과 기술의 발달로 더 편한 세상에 살면서 인터넷으로 경계없는 정보와 감정을 공유하는데도, 왜 점점 더 외로워지는 건지... .  


헛헛하고, 쓸쓸하고, 달달하고, 다정한, 그러면서 통쾌한 이야기를 기상천외하고 역설적인 SF로 버무려낸 소설들. 어떤 면에서는 스트루가츠키 형제보다 더 엉뚱하다면 짐작이 되려나?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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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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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내 몫의 급식이 사라지자, 갑자기 이 모두가 매우 미심쩍은 것처럼 여겨졌다, 반면에 '선생님'의 생존 가능성은 내 몫의 급식으로 인해,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정확히 두 배로 늘어나 있을 터였다. 



타인의 죽음으로 연명하는 삶이라니. 비단 누구 한 사람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학살의 현장에서 오는 공포라면, 이와 같은 선택은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비루한 삶이라도 연명하고픈 게 나약한 우리네 모습이다. 처해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누군가의 배식으로 나의 목숨이 하루가 더 연장되고, 나의 가족을 한 명이라도 살리게 된다면, 어느 누가 어쩌다 내 손에 들어온 밥 한 끼를 모른 척 받아챙기지 않겠는가. 


'선생님'의 지극히 이타적인 행위에 어떠한 이름도 갖다붙이지 말라고 얘기한다. 아마도 이름을 만드는 순간 오히려 그의 순수한 행위가 퇴색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리라.





♠ 민음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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