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철학자 - 키르케고르 평전
클레어 칼라일 지음, 임규정 옮김 / 사월의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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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단독자이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인간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키르케고르의 문제에서 발단한 이 책은 1843년 그의 귀향 여행으로 시작한다. 총 세 부로 나뉘어진 이 책은, 1부에서는 인간이 존재해야 하는 방식, 2부에서는 실존 문제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면서 저작에 열정을 쏟는 그의 모습을, 3부에서는 죽음과 더불어 종결되는 세상과의 투쟁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키르케고르의 뒤를 따라간다. 이 평전의 특이점이라면 서른 살에서 처음 시작해 그의 중년과 유년 및 청년 시절을 거꾸로 되짚어간 후 마지막에 그의 말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마치 키르케고르를 마치 옆에서 지켜보듯 현재 시점으로 썼다는 점에서 더 현장감있는 글읽기였다.  


마지막 40여쪽은 그의 사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키르케고르의 사상과 저서(유고집을 포함한 원고)들이 어떻게 보존.기념되고 있는지 다루고 있는데, 분량은 적지만 이렇게 정리하는 것도 꽤 괜찮더라는.








절망에 빠진다는 것은 최악의 불행이자 고통이고, 자신의 참 자기를 상실한다는 차원에서 파멸이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에 빠지는 것을 정신적인 질병이라 칭하면서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이 복잡하고 혼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정신으로서 영원히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키르케고르는 오로지 '자기에게 투명하게' 됨으로써, 절망을 감지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인간이 겪는 여러 종류의 절망을 진단했다면, <나에게로 오라>는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치유책을 제시한다. 어떻게 인간으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관한 키르케고르의 물음은 종교적 과제로 수렴되고 있다. 기독교인이 되는 키르케고르의 방식은 관습과 의무라는 전통적인 명령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내적 필요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군분투이며, 종교적 구조 안에서 '단독자'로 남아 균형을 잡는 행위이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이 행해야 하는 바와 행하기를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살고 죽을 수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심오한 이념과 진리를 찾고자 했다. 인간은 대개의 경우 존재자들 간의 차이를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부여한다. 그런 특징들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암묵적 논리다. 키르케고르의 논지는 그 누구든 자신이 삶을 영위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철학을 추구하는 사람은 실존의 극도로 절박한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봤다. 즉 철학적 논리를 윤리적 삶에 적용하지 않는 학자(헤겔 등)들을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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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에게 있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해결하는 일은 그의 철학과 삶의 핵심에 놓여 있는 문제임과 동시에 영적인 과제로서, 어떻게 신과의 관계 안에서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는 플라톤의 철학에서는 '세상에 반대하는 논쟁'을, 기독교의 성서에서는 신성한 진리가 세상 안, 즉 인간의 육신 안에 구현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그는 학문적 기획 전체가 현실적 실존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지적 이탈을 지식의 상업화와 연결시켰다. 근대 대학들의 교수들은 상인들이 상품을 사고 파는 것처럼 사상을 사고 팔았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포장되어 매매되는 그 학문에는 참된 지혜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저작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통해 지적한다.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키르케고르는 어떻게 전통철학의 방법이 현상과 실재, 믿음과 앎, 필연과 자유 등의 개념들을 구별함으로써 진행되는가를 비틀어 삶 자체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종류의 사유를 전개하여 '어떻게 인간으로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를 끌어냈다. 그의 방법은 개념들을 구별하는 게 아니라, 실존의 영역들과 인간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구별하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 있어 그중 최고의 것은 종교적 영역으로서 신과의 관계라는 축을 중심으로 선회하며 그 지평과 깊이는 무한하다. 


키르케고르는 저작 <반복>에서 지식의 차원이 아닌 사랑에 의한, 마음에 관한 진리를 탐구했다. 산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하는 타인과 만나는 것이며,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실존하는 동안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하고 깨닫기를 반복한다. 키르케고르는 성경을 통해 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님과 그 자신의 마음에 충실할 수 있을까하는 실존의 딜레마를 탐구한다. 


키르케고르는 열린 마음을 '겸손한 용기'라고 부른다. 그는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얘기하는데,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게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인간 실존은 어쩔 수 없이 공적인 동시에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우리 내면의 삶이 심오해질수록 이 모순 역시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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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는  당시 교회가 기독교적 이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세속적인 것에 기울어져 있다고 여겼고, 기독교가 유럽 그 어느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역설한다. 즉 더 이상 진정한 기독교는 없다면서 19세기 기독교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러한 투쟁은 그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피폐하게 했으며, 결국 병까지 얻게 만들었


키르케고르는 전 생애에 걸처 세상에서 어떻게 인간으로 존재할 것인가 하는 실존의 문제에 매달렸다. 그는 누구도 자기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의 종말론적 전망에 관한 성찰을 시작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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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키르케고르의 철학 사상에 영향을 미친 인물과 사조 및 시대적 배경까지 서술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독선적인 아버지의 영향과 타고난 성정(외골수이고 호전적이고 논쟁적이고, 예민한)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적지 않은 비난을 감수하면서 한편으로는 반항적인 성격이 갈수록 굳어져갔던 키르케고르가 불안감이 컸던 이유를 내 나름으로 납득할 수 있었다.


소설같은 구도와 매끄러운 문체가 평전임에도 읽기에 상당히 부드러웠다. 인간의 고유한 본성, 부재와 현존 등 실존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끊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열정적으로 파고들며 노력한 키르케고르의 순수한 앎을 향한 철학적 열망과 동시에 저작자로서의 야망, 그리고 학자이기 이전에 인간 키르케고르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미래는 미지의 심연이다. 인간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며 불안에 싸여 눈에 보이는 유한한 것들을 아무것이나 붙들고 늘어진다. 그것이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 혹은 우리 자신들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제쳐 놓은 채로. 키르케고르는 인간은 타고나기를 불안한 존재이고, 이 세상에서는 온전히 편하지 못하며,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안식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마지막에서 저자는 키르케고르의 생애를 통해 삶의 신비한 의미와 놀라움을 느꼈다고 썼다. 나는 삶의 신비함보다 키르케고르의 다양한 모습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해야할 것 같다. 레기네에 대한 감정과 태도, 윤리적 철학에 대한 강박, 신앙과 종교를 분리하면서 추적하는 과정, 끊임없는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욕망과 저술가로서 갖는 명예에 대한 집착 등 하나의 명제로만 단정하기 어려운 그의 삶을 보면서 스스로를 이토록 닥달했으니 정신적으로 어지간히 고단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인간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사랑했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말을 통해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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