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김나현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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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소설인 줄 알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중간에 도달할 즈음 다정하게 "하영아~"라고 전화를 걸어온 그 사람의 목소리가 진짜 들리는 듯해 온몸에 소름이 끼쳤고,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그이가 만들어 놓은 덫에 빠지는 듯한 이 느낌적인 느낌! "이거... 어떡하지......"라는 말이 저절로 입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에 그 사람을 의심하게 되어 버렸다.  


이야기가 흐를수록 짙게 전해져오는 그들의 슬픈 서사. 완독 직후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생각하려했으나 잔뜩 뒤엉킨 실타래가 머릿속 중앙을 떡하니 자리를 차지했다. 뒤죽박죽이 된 실타래의 시작은 누구였을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한 편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려 했던 사람. 그 시나리오대로 현실을 조작할 수 있다고, 그렇게만 된다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던 오만함. 이기적인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해 죄의식 없이 저지른 가스라이팅과 켜켜이 쌓인 거짓들. 그로인해 많은 이들, 특히 소중한 존재인 가족이 입은 상처와 고통.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면서 서로를 속이고, 알아도 모르는 척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 모두가 안쓰럽고 안타까운 한편 그들 모두가 나는 무서웠다. 







 
의도가 없는 아이들의 무례함, 초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는 간교하고 악의적인 행위들. 친해지고 싶어서 혹은 친하다고 생각해서 한 장난이라는 거짓말.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안이함과 대책 없는 낙관적인 태도.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여기는,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른들의 짧은 생각과 무심한 행동.  


어른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시기에 방치되고, 아무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해 가슴 한 켠이 늘 구멍 뚫린 듯 살아왔던 그들은 중년에 이르도록 여전히 십대에서 자라지 못한 채 삐뚤어진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폭력과 양육에 있어서는 방관도, 방임도 유죄다. 


출세는 했으나 만들어진 삶을 살면서 최대한 자기를 감춰야 하는 사람,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단역이지만 아무런 원망과 좌절 없이 자기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 자신의 어떤 행동이나 말이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평소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달라질 수 있으려나.  


이 소설에서 가장 궁금한 지점은 에필로그다. 소설의 마지막에서야 서술하는 윤희재의 서사. 에필로그가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함께 얘기나눠보고 싶은 부분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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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군상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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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 작품 세계를 망라한 완성작으로 읽힌다.
소설은 때로는 뜨끔할 정도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때로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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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신
리즈 무어 지음, 소슬기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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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묵직한 미스터리 스릴러를 읽었다. 
일단, 책을 펼치면 내려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스티븐 킹의 추천사는 옳았다. 이번 주에 하루 100여쪽씩 일주일 간 읽을 예정이었는데, 700여쪽에 가까운 책을 이틀만에 달렸다. 그야말로 반박불가 페이지터너! 




 



등장인물 각각의 관점을 달리해, 짧게는 두 달, 길게는 20년을 오가며 서술한다. 특히 중요한 대목에서 인물 시점 혹은 시간적 배경을 전환하는데, 독자는 궁금해서라도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반라 보호구역 안, 외부와 분리된 숲 한가운데에 자리한 캠프장, 그리고 캠프장보다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군림하는 성을 연상시키는 100년 된 독립독행. 이러한 서술 방식과 공간적 배경은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가장이 절대적 존재인 반라 집안,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앨리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권위에 억눌렸던 베어, 오빠를 대신하는 자격조차 얻지 못한 채 정서적 학대를 견뎌야하는 바버라, 마지막 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칼,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꿨던 루이즈, 구차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존 폴, 연쇄 살인마 제이컵 슬루터, 그리고 속을 알 수 없은 T.J. 휴잇. 14년 간격으로 일어난 남매의 실종에 연루된 사람들.  


독자는 소설이 중반부를 지나도록 범인을 예측하기 어렵다(잘난 체는 아니고 대체로 중반부를 넘어서면 온갖 트릭에도 범인이 보인다). 몇몇 용의자를 꼽아볼 수 있으나 그들에게 증거는 있지만 대체로 동기가 부족하다(결정적 증거와 자백이 없기도 하고). 반대로 반라 집안에 적대감을 가진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아서 동기에 무게를 둔다면 용의자의 범위는 넓어진다. 



사건의 결말을 놓고 보자면 원인은 크지 않다. 너무나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함에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혹은 하찮게 치부되어 벌어진 사건이다. 현실에서도 유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어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고, 이입해 읽었다. 부자와 가난한 자, 군림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 그들만의 카르텔 등 오히려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한 이기심과 욕심이 비극적인 사건을 더 비극적으로 몰아갔다.   


십수 년이 지나서야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존 폴만큼이나 파렴치하고 냉혹한 그 남자는 속죄를 할까. 그리고 제 삶을 찾아가기 위해 용기를 낸 그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탄탄한 서사와 구성,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 덕분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한시도 지루할 틈 없이 읽었다. 긴 연휴, 추천한다.
(긴 연휴라고해도 일단 펼치면 금새 읽겠지만...)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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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을유세계문학전집 14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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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그중 일곱 편은 처음 읽는다.
작가의 박학다식이 한껏 드러난 소설들. 이야기를 여러 분야의 학문과 지식을 통해 분석적인 방식으로 서술하는데, 독자가 의심의 여지를 가질 필요 없이 기승전결이 분명하다. 


관습 혹은 관례에 묶여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는 사고의 유연성 부재. 남녀노소, 다양한 민족과 직업이 혼재하는 사회 안에서 수많은 이유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갖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고독. 유전병 남매를 자멸의 길로 이끈 고립과 단절. 여과없이 보여주는 인간의 폭력성. 가장 두려워해야할 자기의 양심. 집착에 이른 사랑의 광기. 죽음을 불사한 사랑.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삶을 잠식당하는 인간들. 과유불급過猶不及과 인과응보因果應報.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은 인간의 다양성과 사회의 부조리를 고딕소설로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여성 학대와 차별,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고정관념과 폭력, 의심과 시기와 탐욕, 사기술에 가까운 처세가 능력으로 인정되는 세태 등 사회적 문제들은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가 이어지는 한 사라지지 않을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애절하게 쓰여 있다.  


지금 세태에 굳이 따지자면 장르소설에 가까운 그의 작품들이 많은 독자들에게 호불호 없이 읽히는 이유는 아마 넓은 스펙트럼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이야기의 힘에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거의 모든 소설이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독자는 이야기에 훨씬 더 이입하게 된다. 특히 소설을 마무리하는 문장에 있어서 포만큼 재치있는 작가가 있을까싶다. 


재미있다.
앨런 포의 지적인 위트에 빠져보시길. 





※ 도서지원

슬픈 우리 인간 세계는 이성의 냉정한 눈으로 보아도 지옥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모든 동굴을 탐험해도 무사한 카라티스가 아니다. 아아! 암울한 무덤의 공포를 모두 공상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프라시아브 왕이 오쿠스강을 따라 항해할 때 동행했던 악마들처럼, 그 공포는 잠들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공포가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그 공포가 잠자게 내버려두어야만 한다. 아니면 우리가 멸망할 것이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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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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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천재 글렌 굴드와 그의 천재성에 열패감을 느끼며 피아노 연주자의 길을 포기한 두 친구 이야기. 


음악과 예술가로서의 본질에 대한 고뇌,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진정성, 연주자로서의 성공과 실패, 완벽과 최고에 대한 집착, 최고가 아니면 아무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아집. 여기에 가르치는 학생이 자신을 뛰어넘는 꼴을 보지 못하고 젊은 음악도들을 망쳐놓는 무책임한 교수와 돈과 지위만 밝히는 무식한 예술가들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다.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대부분의 문장을 '~, 난 생각했다'로 끝맺음을 한다는 점이다. 확인되지 않은 것들을 사실처럼 서술하고는 마지막에 자기의 생각이라고 선을 긋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백의 형태로 서술되는 소설에서,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진실은 거의 없다. 그저 그의 생각일 뿐이다.   


글렌은 승자, 베르트하이머와 자신은 패자라고 생각하는 화자 '나'. 
그는 자기와 베르트하이머가 글렌과 만나지만 않았다면, 호로비츠의 제자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대가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또한 자기가 피아노를 계속했다면 글렌 때문에 최고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최상급에는 속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리고 그것이 예술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몰락한 자'로 전락시킬 이유가 될 수 있을까?  


화자 '나'는, 자기는 애당초 피아노 대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면서 죽음조차 선망의 대상이었던 글렌의 죽음 이후 자살한 베르트하이머를 동정한다. 그러나 정작 글렌에게 집착하는 자는 '나'다. 결국 '몰락한 자'는 자살한 베르트하이머라기보다 친구를 빌어 비겁하게 자기 합리화를 늘어놓고 있는 '나'라고, '난 생각했다'(화자를 따라해봤다).



그들이 '몰락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천재적 재능이 없어서도 아니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타인과 비교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보잘 것 없게 만들고, 모든 불행의 원인을 남탓으로 돌리거나 실패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기보다는 명분을 만들어 핑계를 대는 데 급급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제 삶을 의심하며 패배감에 익숙해져 버린 데에 있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목적 없이 목표만 좇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사는 게 숨가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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