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메초
샐리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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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타자에 대한 첫인상이 있다. 독자라면 책을 통한 작가의 첫인상도 있기 마련이다. 성향상 사람이든 책이든 첫인상이 미래의 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처음 읽은 책에 호감이 가면 즐겨 읽지 않는 주제를 다룬 작품이더라도 그 작가의 글은 가능한 읽어보려고 한다. 나에게 샐리 루니가 이와같은 작가 중 한 명이다.  
 







 
피터와 아이번, 소설은 두 형제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었던 연인과 헤어지고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피터.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이며 외톨이로 사는 게 익숙하고 가족으로부터 여전히 아이 취급을 받는 아이번. 사고 이후 연인의 미래를 위해 이별을 선택한 실비아. 중년을 바라보면서 20대 청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낯설고 두려운 마거릿.  


지루하고 굳이 살아야할 이유도 방향도 찾지 못하지만 달리 다른 삶을 생각해볼 여력없이 하루하루 지나가버리는 일상. 아내가 떠난 후 묵묵하게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며 헌신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형제의 갈등을 표면 위로 드러내게 하는 동시에 그들 스스로 자기 삶에 물음표를 놓는 계기가 된다. 



소설 전반에 걸쳐 간결하게 쓰여진 문장은 인물의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세세한 생각의 편린들을 산발적으로 쏟아내듯 서술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죽음, 삶, 혼란, 사랑, 이별, 욕망, 그리움 사이에서 방황하며 위로와 안정을 갈구하는 인물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얼핏 읽으면 마치 아이번만이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처럼 보여지지만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세상에서 우리는 정말 혼자가 좋은 걸까? 공을 들여 대화로써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단편적으로 드러난 것을 통해 지레짐작하고 혼자 결론을 내리는 게 시간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더 편리하기 때문 아닐까. 소설에서 나타나는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는 오해와 갈등을 쌓는 원인이 된다. 피터와 아이번의 대화는 형제 사이라고 하기에는 지독하리만치 어색하다.  


피터는 죽고싶을 만큼 외롭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해 엉뚱한 곳에서 자극을 찾고 지친다. 마거릿은 다람취 쳇바퀴 돌듯 매일 똑같은 일상 중에 아이번과의 설레었던 하룻밤에 대해 누군가와 말하고 싶지만 이런 얘기를 털어놓아도 될만한 사이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또한 그들 모두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꺼리고,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다가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말을 삼킨다. 이들 뿐 아니라 나오미, 실비아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나 의도와는 다르게 말하고, 때로는 생각 중 일부를 절사한 상태로 말하다보니 오해가 쌓인다.  


그런데 이런 대화 양상이 소설 밖 현실의 우리에게서 그대로 보여진다. 고정관념, 빗나간(혹은 과잉) 배려, 자존심 등 여러 이유로 우리의 대화는 어긋나기 일쑤다. 진심을 숨기고 쏟아내는 말들. 소설의 후반부에 형제의 말다툼과 폭력에서 피터의 경멸과 혐오과 섞인 말들은 결국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차오르는 분노의 방향은 정작 나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똑같은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소설 속 그들에 세상은 소설 밖 현실과 괴리가 거의 없다. 애증 가득한 가족 관계(부자, 모녀, 형제 등), 같은 업무, 뻔한 반복적 일과. 요즘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흔하게 쓰이는 까닭도 자극을 찾아 부유하는 피터와 다르지 않으리라.  


읽으면서 그들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고민들이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언제부턴가 소설을 읽으면서 인물들에 나를 대입시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그러한 경험을 했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상대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소설적 인물로서 아이번과 마거릿의 관계를, 실비아와 나오미와 피터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적어도 현실에서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죽음보다는 살아가는 것에 무게를 두기로 한 피터를 보면서 말이다. 




※ 도서지원

한때는 인생이 무언가로 이어져야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은 모든 갈등과 의문이 더 큰 정점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이처럼 정작 충분히 고민 해보지 못한 생각들이 그의 삶을, 그의 성격을 떠받친다. 의미에 대한 비이성적인 집착.(...) 삶은 어떤 조건일 때 견딜 만할까?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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