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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을 위한 철학 - 나를 짓누르는 삶의 중력을 거슬러 은총으로 나아가는 길
시몬 베유 지음, 한소희 엮음 / 구텐베르크 / 2026년 2월
평점 :
경험상, 시몬 베유의 글이 읽기 쉽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책상이 아닌 삶(생존)의 현장에서 철학을 고민하고 연구한 시몬 베유의 날카롭고 인류애적 통찰은 경험해 볼만한 일이다. 이 책은 시몬 베유의 주요 저작들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발췌해 재구성한 책으로써 시몬 베유의 글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독자라면 그의 글을 에세이로 형태로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시몬 베유는 우리가 겪는 좌절과 무력감이 개인이 아닌 악순환되는 사회적 병리 현상에 원인이 있음을 말하면서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집단적 힘을 '거대한 짐승'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보고 있고, 생존 앞에서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으며, 매순간 닥쳐오는 고통과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힘으로 극복하고, 내면을 채워갈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우리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으나 각자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베유는 어떻게 보느냐가 삶 전체를 결정한다고 보았고, 세상을 왜곡해서 바라보는 원인은 본질을 가린 '자아'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단절과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는 우리가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공감했던 부분을 몇 군데 꼽자면, 먼저 사랑이 감정이 아닌 태도의 문제라고 짚은 대목이다.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주고 받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 사랑이 아닌 바라는 것 없이 순수하게 바라보고 자신의 것을 내어줄 수 있는 행위. 베유는 이를 '주의'라고 정의하는데, 그가 말하는 주의는 판단, 충동, 조언, 섣부른 공감이 아닌 판단 없이 들어주고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은 무엇을 느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생각의 멈춤'이다. 시몬 베유가 르노자동차 공장의 켄베이어 벨트에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법'을 배웠다면 지금의 우리는 네모난 화면 앞에서 그것을 배운다. 이러한 지적은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언급되었으나 오히려 '생각 멈춤'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선생들은 학생의 과제물이 AI 결과물인지를 파악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해야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 그야말로 목표는 있으나 목적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뿌리 중 하나가 '장소'라고 짚은 대목이다. 나는 유년 시절의 집이 남아 있는 사람이 부럽다. 유년 시절의 집을 언제라도 가볼 수 있는 사람. 그럴 수 없다는 데에 나는 종종 결핍을 느낀다. 이는 큰 틀안에서 공동체의 단절, 나아가 공동체 부재를 의미하고,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의 고립과 외로움을 키우게 된다. 현재 돌봄이 큰 사회적 이슈인 까닭은 과거와 달리 돌봄의 선순환이 막혀버린 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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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평가와 판단도 배제된 시선으로 나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기.
세상의 모든 대상을 편견과 차별없이 받아들이기.
시몬 베유가 말하는 자아, 주의, 자유, 객관성, 자연의 질서, 아름다움, 우정, 사랑 등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 책이 비록 시몬 베유의 저작은 아니지만 새삼 느낀 점은 그가 글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라면 실제의 삶에서는 감히 실행할 수 없을 듯한 일들을 그는 자신 인생으로써 본인의 철학을 증명해내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 개인의 경험을 학문적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의 삶을 따라가자면 그가 쓴 글에 공감할 수밖에 없고, 그 이유는 그의 지성이 현실과 맞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