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의 정의로운 사전 - 정의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박일환 지음 / 청어람e(청어람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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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에게 자유를 완벽하게 누릴 수 있도록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의 첫째 원칙이고, 가장 빈곤한 사람들의 복지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의 둘째 원칙이다. (존 롤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린시절부터 평생동안 배우고 생각해야 논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서는 여건상 나누지 못하는 부분들이다. 선생은 교육 일정에 맞춰 진도 나가기에도 빠듯하고, 학생은 수행과 지필고사, 학생부를 채울 과외할동으로 1년내내 시험기간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니 깊이있는 대화와 토론의 부재에 대해서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싶다.

아이들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평등이 무엇인지, 정의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딱!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대답한다. 그나마도 시험 공부한 것이 머릿속에 남아있을 경우다. 진보와 보수, 시민, 노동자 등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런 걸 왜 알아야하냐는 표정이다. 거기다 환경, 윤리, 난민까지 이야기하면 식상하다고, 다 안다고,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이 많다. 물론 동물권이나 페미니즘 같은 각자 관심있는 분야가 있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정치와 경제, 사회 문제에 있어서는 신경쓸 여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렵지 않게 쓴 사회일반 책을 만났다.
오래 전부터 인류의 중심에서 고민하는 윤리와 도덕, 정의, 자유, 평등, 인권부터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사회적 이슈인 환경과 생태, 국가와 시민, 전쟁, 진보와 보수, 경쟁과 협력, 노동 등 그리고 근래에 빼놓을 수 없는 소수자, 페미니즘, 차별과 혐오, 동물권까지 30개 키워드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함께 고민해야할 부분들을 던져주고 있다.

아주 깊이있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열네 살) 중학생 친구들과 읽고 토론하기에는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10월에 중딩 친구들과 함께 할 책으로 결정했다. 중학생 뿐만 아니라 사회일반 문헌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가 읽어도 좋을 책이다.

요즘에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서가 꽤 많이 출간되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경우에는 청소년을 위한 다이제스트 형태로 출간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탐탁지 않다. 이왕이면 청소년 눈높이에 맞게 저자가 직접 쓴 책이 출간되기를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기다려진다.



[책 속 문장]

24.
무엇을 어떻게 평등하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일치된 답을 찾기가 어려워요. 정해진 공식이나 정답이 없기 때문인데, 그럴수록 공통분모를 찾아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할 때가 많다는 걸 인정하고, 꾸준히 지평을 넓혀가야 해요.

71.
"복종을 위한 복종을 가르치는 건 가치가 없으며, 누구나 안전과 청결, 예절에 대한 고려와 충돌하지 않는다면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개인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건전한 가르침"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연방법원)

79.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루돌프 폰 예링)

131.
차별이 나쁜 건 절대로 자신보다 우위에 있거나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별의 칼날은 항상 자신보다 약자이거나 소수자에 속한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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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그 섬에서
다이애나 마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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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동료 사진기자로부터 건네받은 사진 한 장. 사진 속에는 소 두 마리를 몰며 밭을 가는 남자의 모습이 있다. 21세기에 캘리포니아에서 소로 밭을 가는 모습에 흥미를 느낀 저자는 사진 속 남자를 찾아간다. 찾아간 농장은 자신들을 '열 번째 섬'이라고 일컫는 포르투갈 아조레스 제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집단 ('열 번째 섬'은 북미 대륙에 사는 디아스포라를 아우르는 말). 모라이스와 만난 후 주말에 그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파티를 즐긴 후 여름마다 고향을 찾아가는 아조레스 이민자들을 취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해 9월 취재 중 만났던 프랭크의 호의로 아조레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2주 계획으로 간 섬에서 만난 사람들과 밧줄 투우. 서슴없이 음식을 나누고 여자가 혼자 산책하기에 안전한 장소를 묻는 저자의 물음에 당황해 하는 안내 데스크 직원이 사는 곳. 저녁을 나누면서 노래와 춤이 함께 하고, 이방인에게도 친근하게 대하는, 인터넷이 되지 않아 손편지를 쓰고 노새가 수레를 끄는 곳.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는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다이애나는 캘리포니아에 돌아온 후에도 섬을 잊지 못한다. 4년 후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자 희망 퇴직 후 다시 아조레스로 돌아간다. 
 
테르세이라 섬에 도착하자 바로 우연찮게 재회하는 소방대장(다이애나는 처음 만남에서 그의 말을 잘못 알아 듣고 이후에도 그를 주방장이라고 부른다). 덕분에 집을 구하고, 그녀가 별다른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답사할 장소, 인터뷰해야 할 다양한 사람들을 안내해준다. 밝은 바다에 청록색 거품이 일고 푸성귀 가득한 장기판 모양의 들판과 양옆으로 해안가가 둘러진 섬. 하지만 사이사이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하다가 로마나가 그 해 섬에서 머무르는 마지막날 같이 대화를 하던 중 다이애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무일푼인 상태로. 
 
캘리포니아로 돌아 온 다이애나. 프리랜서로 일하던 중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에 채용된다. 생태와 지역 사건에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시에라 주의 가뭄과 화재에 대해 취재하고 2015년 그에 대한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는 사이, 어느새 집으로 돌아온지 6년이 지났다. 상금을 받자 그녀는  1년간 휴직계를 내고 다시 또 아조레스로 향한다.  
 
 
손주를 둔 나이에도 재기와 활기가 넘치는, 해마다 섬에 돌아오지만 고향 사람들과 공통점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슬픈 로마나. 함께 있으면 지치지도 않고 끝없이 말을 쏟아내는 구두장이 할아버지와 그의 친구들, 오랜 세월 이민자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매니, 노르베투, 루이스 등 아조레스인들은 그들의 고향을 대부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어 있는 섬은 여행자들에게 낭만과 사랑을 전한다. 실제로 섬 원주민과 여행자들 중에도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기도 하고, 이별을 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여행자들이 아조레스 제도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쇼핑몰이나 영화관 따위는 없고 와이파이도 없어서 할 일이 없다는 불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볼 거라면 굳이 아조레스를 찾아갈 이유가 무언가? 
 
전 세계 삼림의 1%만 존재해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생태계로 꼽히는 고대 숲 라우리실바,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추형 화산 내부로 걸어갈 수 있는 아우가르 두 카르방 등 책은 단순히 아조레스의 아름다운 경관이나 여행자의 기록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조레스의 역사와 가난 때문에 떠나야 했던 사람들, 남아서 견뎌낸 사람들,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이와 아조레스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지치고 힘들 때 마다 아조레스를 기억하는 듯 하다. 그곳에서 얻은 에너지를 추억하고 그것이 모자라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힘을 받는. 
 
369.
카카후가 멸종 위기에 처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다로 처음 나가는 어린 새들이 계속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어째서 길을 잃은 것인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일생을 살면서 길을 잃는 것이 어린 카카후 뿐일까.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길을 잃는다. 그럴 때마다 충전이 될 수 있는 자신만의 히든 플레이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이 꼭 아조레스가 아니더라도. 
 

 
"If thiis were the last night of the world what would I do?"

 

 



 
  출판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 나는 내가 여기 사람들을 넘어섰든지 여기 사람들이 나를 넘어섰든지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요. 뭐가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더 나은 사람도 더 못한 사람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여기 사람들과 공통점이 없을 뿐인데 가끔은 그게 너무 슬퍼요." (로마나) - P195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늘 동전처럼 앞뒤로 뒤집어졌어요. 세상을 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 존재까지도 자유자재로 뒤집어졌죠. 그러다 보니 내 안에 있는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루이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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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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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간단한 책소개를 접했을 때에는 중상류층 이상의 집안에서 자란 똑똑한 여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겪게되는 인종차별에 대한 극복과 성장, 이라고 짐작했다. 
 
예상을 전혀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이페멜루 가족의 경제 상황이 넉넉치 않았다는 점, 가난한 유학생으로 시작했다는 점, 인종차별은 흑인 인종 차별에 집중했다는 점 등이 조금 달랐다. 
 
소설은 십삼 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머리를 땋기 위해 흑인 머리 전문 미용실을 찾아가는 이페멜루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3인칭으로 쓰여진 소설은 이페멜루와 그녀의 첫사랑인 오빈제의 관점을 교차해가며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보통의 나이지리아 가정에서 성장한 이페멜루. 똑똑한 그녀는 대학 3학년 때 교수들의 장기간 파업으로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는 우주 고모의 권유로 미국 유학을 가기로 한다. 연인인 오빈제와의 이별을 비롯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비자 심사가 바로 통과되어 유학 길에 오른다. 도착한 미국.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상황은 더 어려웠다. 열악한 환경에서 학업과 양육을 병행하며 고군분투 중인 우주 고모, 연금 번호도 불법으로 타인의 것을 빌려써야 하며, 무엇보다 일자리가 나지 않아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으로 몰린다. 오직 어린 육촌 동생 디케만이 위로가 된다. 때마침 권유 받은 아르바이트. 비록 성관계를 직접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의뢰자의 성적 만족을 위한 행위에 자괴감과 죄책감을 느끼며 오빈제와의 연락을 끊는다. 이후 가정 보모 자리를 구하면서 수입이 일정하게 되자 안정을 찾아간다. 학위를 마치고 부유한 백인 남자 커트와 사랑하고 이별하고 다시 블레인과 사랑하지만 나이지리아로 귀국을 결정하면서 그와도 이별한다. 
 
이페멜루를 미국으로 보내고 어느날 연락을 끊어버린 그녀로 인해 상심은 커지고 심리적으로 방황하던 오빈제. 그의 어머니는 학회 참석을 위해 가게 될 영국행 명단에 아들을 보조 자격으로 이름을 올린다. 체류 비자는 6개월. 그 이후는 오빈제의 몫임을 분명히 한다. 오빈제는 그곳에서 살아내고자 발버둥쳤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위장 결혼. 하지만 승인 마지막 순간에 불법 체류자로 검거되고 본국으로 추방되어 돌아온다. 권력의 힘을 알게 된 오빈제. 권력자의 비리를 비판하고 주관이 뚜렷했던 오빈제였건만, 그는 이제 친척의 도움을 받아 '치프'의 비위를 맞추며 부를 쌓는 사업가가 되었다. 더없이 아름답고 순종적이지만 맞춤형 아내 로봇같은 아내 코시와 예쁜 딸 부치가 있지만 오빈제의 삶은 공허하고 외롭기만 하다. 그런데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떨려오는 그녀, 이페멜루가 이곳, 나이지리아로 돌아온다. 13년만에! 
 
57(1).
그녀(코시)는 모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동시에 양쪽을 편들고 있다. 그녀는 늘 진실보다 평화를 택했고, 늘 다수의 의견을 좇았다. 

 
 
 
소설은 이페멜루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스무살 무렵에 자국을 떠나 삼십대 여성이 되어 돌아 온 이페멜루는 미국에서 지내면서 직접 겪은 흑인 차별에 대해 블로그를 통해 써내려간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차별과 혐오, 조롱 뿐만 아니라 대화에서 전해지는 뉘앙스와 분위기 등 내밀한 부분까지 전달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비미국인을 포함한 미국 내 흑인들에 대해 칼럼 형식의 포스팅을 하는 이페멜루의 블로그는 비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바라보는 미국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그들의 정체성까지 짚어낸다.  
 
블로그 계정을 처음 개설하고 올린 글에서 이페멜루는 인종 문제에 대한 해법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이 드물기에, 미국 사회가 미국인 흑인과 미국인 백인 사이의 그것을 더 드물게 만들기에, 미국의 인종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연인의 사랑을 빗대고 있는데 인류애로 읽어야하는건지 싶다. 그렇다면 이페멜루가 미국 대학에서 영화 '뿌리'를 보고 토론했던 내용들, 흑인을 물건처럼 사고 파는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을테니까.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의아스러웠던 점은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미국 내 흑인의 인권 신장이나 평등에 대해서는 무신경한 이페멜루의 태도다. 도서관 경비원 화이트씨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증거없이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된 사건에 대해 시위를 하기로 한 블레인은 동참을 권유했지만(사실, 그는 이페멜루의 참가를 당연하게 여겼지만) 그녀는 다른 장소에 있었다. 잊어버렸다는 거짓말로. 
 
196.
그녀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단지 플래카드를 들고 대학교 도서관 앞에 서 있는 것보다 캐버나의 환송회에 가는 것이 더 좋았을 뿐이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미국 시민권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러한 시위가 인종주의를 더 부추긴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마음가는대로 살고싶은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이였을까.
어쩌면 그녀는 이런 비슷한 양상이 반복되면서 구별지어지는 것이 진절머리나서 귀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인종주의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 경쟁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페멜루는 가슴 뜨거운 감동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있어 그녀는 귀국을 결정한다. 
 
결혼 상대자가 있고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 상태에서 귀향을 결정하는 이페멜루. 그녀는 고향 라고스에서 비로소 '흑인'이 아닌 삶으로 돌아와 안정감을 느낀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열악한 인프라, 여전한 가난, 사회적 도덕성의 결여가 판을 치더라도. 결국 이페멜루가 찾던 것은 정체성인가...... .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이페멜루와 오빈제의 만남. 그들은 서로를 통해 그동안 억지로 감추고 눌러왔던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소설의 후반부, 두 남녀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이페멜루만큼은. 그녀가 오빈제의 경제력에 기대지 않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온전한 성장과 독립을 이뤄내려한다면 일단 혼자 일어서보는 것은 어땠을까. 물론 그가 혹은 그녀가 있어야 자신의 삶이 완성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가정 내에서 억압에 대한 개인의 성장이었다면, 이 소설은 범위를 넓혀 흑인들 (특히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가리키며, 그 안에서 순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작가도 작품과 함께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한 여성의 성장기에 그치지 않는 성장 소설이다. 
 
 
 
"인종주의는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므로 감소시켰다고 칭찬할 것도 없다."

 (p133-2)

 

 

 


 

그녀가 어떤 신용 카드를 발급받을 자격이 된다는 그 안내문에는 그녀의 이름이 우아한 이탤릭체로, 철자도 맞게 적혀 있었다. 그 편지는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 줬고, 그녀를 좀 덜 투명 인간 같게, 좀 더 존재감 있게 만들어줬다. 그녀의 존재를 아는 누군가가 있었다. - P224

평생 영어를 써 왔고, 중등학교 때는 토론 동아리 회장을 맡았고, 미국식 발음은 뭔가의 미완성형 같다고 늘 생각했던 그녀가 오그라들거나 움츠러들어선 안됐지만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몇 주간, 가을의 스산함이 내려앉는 동안에 미국식 악센트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 P226

내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내 외모는 그 위풍당당한 저택의 주인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공적 담론에서 ‘흑인‘이라는 집합 명사는 ‘가난한 백인‘과 곧잘 짝을 이룬다. ‘가난한 흑인과 가난한 백인‘이 아니다. ‘흑인과 가난한 백인‘인 것이다. 실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P281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침묵을 택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미국에 와서 흑인이 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이가 자신의 세상이 거즈에 쌓인 것 같다고 느꼈을까? (2권) - P118

그들의 삶은 고집스럽게 희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들은 미용실을 열고 싶어 하고, 대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그들은 자신의 차례가 올 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우리, 에어컨이 있는 중산층의 삶을 사는 우리는 이 빈민가의 삶에서 겨우 한 발째 떨어져 있다고 쓰고 오빈제가 동의할까 생각했다. (...) 그래도 그녀의 마음은 평화로웠다. 고향에 돌아와서, 블로그를 쓰고 있어서, 라고스를 다시 발견해서. 그녀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존재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2권) - P404

"인종주의는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므로 감소시켰다고 칭찬할 것도 없다." (2권)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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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스, 행복하기에도 모자란 하루야 피너츠 시리즈
찰스 M. 슐츠 지음, 강이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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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와 함께 애정하는 스누피와 친구들 캐릭터.

한 손에 늘 애착 담요를 붙들고 엄지 손가락을 입에 넣고 다니는 라이너스는 버럭쟁이 누나 루시에게도 조곤조곤 말하고, 새들을 쓰담쓰담 해주는 따뜻한 아이다.

또래 친구들은 잘 모르는 어려운 말들을 줄줄 욾다가도 위대한 호박님과 산타클로스를 믿는 순수한 소년.

도서관에서 공짜로 책을 빌려주는 게 수상하고, 주사기를 찔러대는 의사선생님은 자신을 다트판이라고 생각하며 행복이란 수업이 끝나는 것, 그리고 누나에게 칭찬받는 것이라는 라이너스.

학교가 가기 싫어 '아마도' 배탈이 나서 못가게 될 거라는 뻔히 보이는 꾀병이나 성가신 안경에 담요를 꿰어 손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발상, 깐깐한 누나를 이기기 위해 살짝 비겁해지는 것쯤 감수하는 행동은 귀엽기만 하다.

타인을 위해 내 것을 챙길 때 하나 더 챙기고, 때로는 아끼는 것을 양보할 줄 알았던, 한때 예뻤던 내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찾아서 붙잡아와야 할테데...... .

꼬맹이 라이너스의 말에 인생의 정답이.

넌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고 싶어?

"못 말리게 행복하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못 말리게 행복하게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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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스토리콜렉터 75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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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ㅡ 마이클 로보텀

나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그 영예는 잭과 결혼한 매그에게 돌아가야 한다. 두 사람은 완벽한 두 아이를 둔 완벽한 부모다. 남자아이 하나, 여자 아이 하나.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꿀 케이크보다 더 달콤한 아이들. 메그는 다시 아이를 가졌고, 나는 흥분의 도가니다. 나 역시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애거사
애거사의 아빠는 그녀가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집안의 모든 돈을 가로채서. 엄마는 여호와 증인에 몸담았고 재혼했다. 열한 살에 함께 등교하던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 새아버지와 엄마는 그녀를 원망한다. 왜 동생의 손을 잡지 않은 거냐고. 열세 살에 함께 방문 전도를 다녔던 중년의 남성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열다섯 살에 임신했다. 그 남자의 거짓 증언으로 종교 집단으로부터 비난 당했으며, 출산한 딸은 즉시 입양 보내졌다. 그 아이가 유일하게 살아난 애거사의 자식이다. 이후 결혼 했지만 사산한 후 불임과 이혼을 거친다.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다. 제대로 된 완벽한 가정을, 간절하게 갖고 싶다. 그러던 중 메간을 알게된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나도 그녀처럼 살 수 있다. 아이만 있으면. 어차피 여호와는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 이제 애거사는 가족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고 지속적으로 몇 년간 성폭행을 당하고 열다섯 나이에 출산 후 아이를 뺏기며, 결혼했지만 사산으로 이혼까지 하고 불임이 된 여자. 두 번의 유괴를 감행했지만 데려온 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이쯤되면 이 여자가 왜 이토록 아이에, 항복한 가정에 병적으로 집착하는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애거사가 그토록 로망하는 메간의 가정은 완벽한가? 부부싸움 후 찾아간 전 남자친구와 실수로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한 아이가 남편의 아이인지, 사이먼의 아이인지 확신을 못해 전전긍긍하는 메간이나 임신한 아내를 두고 섹스 파트너를 두고 있는 잭은 또 어떠한가.

소설에서는 애거사의 성장과 결핍, 집착에 집중하고 있지만 사이먼 또한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으로부터 오는 친부에 대한 부재를 메간의 태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누구도 완벽한 삶은 없다.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 수도 없는 중산층의 잣대에 맞춰 그 안에 들어가려 아둥바둥하는 사람들, 그리고 양쪽 부모가 모두 있어야 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는 있어야 하는, 간혹 가족여행은 다녀야하는 삶이 그래도 남만큼 사는 거라고 되어버린 인식. 그래서 SNS에 행복을 과시하는, 내가 나로 사는 삶이 아닌 보여지는 삶에서 사람은 과연 평온할까.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받아 극복하는 것이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울고 싶어질만큼 애쓰지 말자고.

애거사의 비참할 만큼 불운한 시절은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건 전 남편 니키와의 이혼이다. 그 위기를 서로 보듬어 가며 넘겼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행복한' 가정은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소설의 마지막, 정신병원에 입원한 애거사가 열다섯 살에 낳아 강제로 헤어져야했던, 그래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딸을 기다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딸이 저를 보러 올 거예요. 그애는 리즈에서 먼 길을 와요."
"따님 이름이 뭔가요?"
"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애는 무척 예쁘고 영리해요. 여기 도착하면 자기 이름을 말해줄 거예요."





177.
내 안에는 시계가 설정되어 있다. 모래가 똑똑 떨어지는 모래시계. 내게 남은 시간은 2주도 안 된다. 그때가 오면 나는 내 아기를 잃어야 할 것이다...... . 아니면 찾아내거나.
(애거사)

289.
내일이면 로리를 집으로 데려가 헤이든에게 보여줄 거고, 헤이든은 내가 얼마나 완벽한 엄마가, 그리고 얼마나 완벽한 아내가 될 수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내게는 이제 가족이 있다.

565.
참 이상도 하지, 삶이란. 우리는 행복을 찾지만 생존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존재. 우리는 기대를 너무 높이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제자리걸음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 수는 없었을까하는 헛된 생각에 빠져 있다. 곧 우리는 모든 남들과 똑같이 신을 모르고 돈에만 혈안이 되어 남의 등에 칼을 꽂는 지치고 질투심 강한 인간들이 될 것이다. 돈이 더 많았으면, 더 예뻤으면, 더 젊고 더 운이 좋았으면, 또는 그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헛된 희망으로 가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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