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지 1 패시지 3부작
저스틴 크로닝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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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ㅡ PASSAGE TRILOGY 1

[인류 멸망 5년 전]

미국 정부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개발하기 위해 볼리비아 정글로 조나스 리어 박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단과 군대를 파견한다. 탐사 도중 갑작스럽게 박쥐 떼의 공격으로 파견단은 대부분 사망한다. 몇 년 후 군 주도 하에 '노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프로젝트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험체가 필요하다. 이 실험체를 데려오는 임무는  FBI의 울가스트와 도일 요원이 맡고 있다. 

 

한편, 형편이 어려운 지넷은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하던 중 실랑이가 벌어져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어린 딸 에이미를 때마침 눈에 띈 수녀원에 맡기고 도망을 간다. 수녀원에 혼자 남아있던 레이시 수녀는 에이미를 받다주고 내전 중인 고향에서 탈출한 이력이 있는 그녀는 에이미에게 남다른 감정이 생긴다. 에이미를 동물원에 데려간 레이시, 열세 번째 실험체인 에이미를 데리러 온 울가스트와 도일, 울가스트 또한 에이미를 보자 첫돌 전에 죽은 자신의 딸 에바를 떠올린다. 그때 동물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동이 일어나고 그 소동을 틈타 요원들은 에이미를 데리고 그곳을 벗어난다.  

우여곡절 끝에 '노아 프로젝트' 실험실에 도착한 에이미와 울가스트. 그동안 조나스 리어 박사의 연구는 몇 명의 실험체를 거쳐 뱁콕이라는 살인범을 첫 시작으로 성공을 알린다. 이후 열두 번째인 카터를 끝으로 실험을 마치고, 에이미를 통해 완성체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수술을 마친 에이미는 깨어나지 못하고, 에이미와 교감했던, 감금 중인 울가스트를 불러내 그녀를 깨우고자 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실험체 '트웰브'는 탈출하고, 그들에게 물리면 죽지도 살지도 않은 괴물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과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실험체들로 인해 연구소는 아비규환이 된다. 깨어나지 못하는 에이미를 안고 도일과 레이시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울가스트. 이제는 딸과 아버지가 된 두 사람은 산 속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뱀파이어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으로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만 가끔 확인하던 어느날, 두 사람은 핵폭탄이 터짐을 목격한다. 이제 인류는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누군가를 살려야 한다.

[제로의 시대]

388(1).

그때 누군가가 나를 들어 올렸다. 아빠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덩치가 크고 뚱뚱한, 수염을 기른 백인 남자였다. 그 남자가 내 허리를 붙들고 낚아채더니 다리의 반대쪽 끝을 향해 달렸다.(...) 그 남자는 누가 이 아이를 받아 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때 누군가가 내 다리를 붙잡더니 나를 끌어 내렸고 다음 순간 나는 달리는 열차 속이었다. 열차에 탄 뒤 나는 깨달았다. 이제 엄마도, 아빠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고 지냈던 어떤 사람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391-392(1). 

여기는 지금부터 우리가 살아갈 곳이야. 성벽과 조명들이 우리를 점프들에게서 안전하게 지켜줄 거야. 노아 이야기 기억나지? 여기가 바로 방주야.(...) '최초의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 대부분은 오래전에 죽거나 감염되었고 이제는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생각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들은 스스로 생명을 놔버린 사람들이다. 슬픔 때문에, 걱정 때문에, 아니면 인생의 무게를 더는 감당하고 싶지 않아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하지만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섞인다. 이제 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은 나를 '앤티Auntie'라고 부르는데, 나에게 자식이 없기 떄문이다.(...) 이곳이 지금부터 우리가 살아갈 곳이었다. '최초의 밤', 조명이 켜지고 별들이 꺼진 그날 밤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다시는 별들을 볼 수 없었다.

 

 

[콜로니, 그리고...]

핵폭발 이후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살아남은 인류는 '귀환의 날'까지 규칙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하고 법을 수립해 공동 생활을 이뤄낸다. 파수, 육체노동, 조명 및 전력, 농업, 가축, 상업, 제조, 성소(교육), 병원 등 7개 사업 부문으로 구성된 업무를 분담한다. 그들은 '귀환의 날'이 오면 군대가 그들을 찾아내리라 희망하지만, 파수꾼들의 '긴 여정'을 통해 아마 군대는 없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주민들은 바이럴의 공격을 피해 콜로니 밖으로 나가지 않지만 전기를 공급받는 발전소에 가기 위해 정기적으로 게이트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그날도 다를바 없이 물자 수송을 위해 발전소로 향하는 테오, 피터, 알리시아, 아를로. 언제 어디서 바이럴이 나타날지 알 수 없어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그런데 도착한 발전소에는 아무도 없다. 무슨 일일까? 이 상황에 알리시아는 피터에게 숨겨진 총들을 보여준다. 총이라니! 그 사이 몰려드는 바이럴 들. 괴물들과의 전투로 사면초가에 몰린 원정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피터는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때 나타난 한 소녀. 열다섯 살 쯤 됐을까? 그녀는 엎드려 있는 피터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덮고 숨을 죽이며 바이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소녀와 영혼의 대화를 하는 피터. 그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다.  

 

116(2).

피터는 또다시 이 대화가 기묘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머릿속에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피터가 아이에게 소리내어 대답을 하고 있는 모습을 누구라도 본다면 분명 피터가 돌아버렸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형 테오를 잃고 가까스로 돌아온 콜로니는 이 소녀의 등장으로 갈등이 시작되고, 심지어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진다. 에이미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콜로니 주민들은 소녀가 불행을 몰고왔다고 생각한다. 소녀를 지키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 이제 피터와 친구들ㅡ알리시아, 마이클, 사라, 케일럽, 홀리스, 모사미ㅡ는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지도가 가리키는 콜로라도를 향해 떠난다. 소녀, 에이미와 함께. 

 

74(2).

공포가 사람들ㅡ그가 잘 아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살림을 꾸리고, 성소의 아이들을 찾아가던 사람들ㅡ을 성난 군중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불과 어제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책의 내지가 쑥쑥 넘어갈 정도로 무척 재미있지만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었다.

먼저 사라가 기록하는 일기. 그들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다는 피터의 제안에 사라가 그 역할을 맡는다. 사라가 남긴 기록에 '발췌', '해독 불가'라는 단어가 쓰여진 것을 보면 이 일기는 세월이 지나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일기가 보여지는 방식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언어와 기록의 중요성을 작가가 언급한 것 같아 좋았다. 

 

사라 피셔의 일기 (사라의 서) 중에서

무언가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이상 두려움조차 예전과는 다르다. 콜로라도에 가면 그것을 찾을 수 있을지, 우리가 정말 콜로라도까지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정말 중요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오랜 세월 군대가 오기를 기다린 끝에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바로 그 군대라는 사실이다. 

232(2).

 

사라가 원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 사라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 세상이란 그보다 훨씬 위태로운, 수많은 불행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는 일의 연속이었다

464(2).

 

 

1부의 막바지에 에이미가 예상 밖의 인물과 해후하는 장면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그런 모습만 아니였다면(그 모습이 아니였다면 해후가 가능하지도 못했겠지만) 얼마나 좋았을까. 그들과의 해후가 에이미에게는 위로가 되었을까. 이 만남으로 인류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게 되는 피터와 일행들. 이제 그들은 단순히 개인의 목적을 넘어선 '사명'을 떠안는다.

알리시아를 살리기 위한 선택. 그후 에이미의 완벽한 조력자가 되기 위한 피터의 결심과 마이클, 홀리스가 피터와 함께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장면에서 조금 아쉬워지려고 했는데, 에이미의 선택은 나의 섣부른 예상을 민망하게 했다.

미안해요, 피터.

하지만 피터를 나처럼 만들 수는 없었어요.

554(2).

 

아무리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과정이 올바르지 않으면 정당성을 잃는다는 이 선택을 에이미가 했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뭉클했다면 내 감정이 넘치는 걸까?

554(2).

그 여행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에이미라는 존재 그자체와 마찬가지로, 이 여행 역시도오로지 믿음 하나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한참 읽다보니 재미있는 사실 발견. 8인의 원정대 구성을 보면 리더(피터), 전사(알리시아), 기술자(마이클), 노동자(홀리스, 아를로), 임산부-어머니(모사미), 의료(사라), 그리고 구원자(에이미). 이 사회를 구성하는 보통의 인물들이다. 세상은 천재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조화를 맞춰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1부 마지막.

로즈웰 전지에서 안정을 찾아가면서 홀리스의 아기를 임신한 사라는 희망이,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만 같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독자는 불안하다.

그 단어가 뭐였더라? 행복하다.

그래, 나는 행복하다.

바깥에서 총성이 들린다.

나가봐야겠다.

마지막 문장

PASSAGE 3부작 중 1부.

뱀파이어를 등장시킨 인류 멸망에 관한 소설이다. 비평가와 각종 매체들은 코맥 맥카시의 <로드>와 견주는 것을 비롯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로드>와 이 작품은 결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사실 <로드>는 구성이나 재미를 따지자면 선뜻 쉽게 손이 가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로드>는 인류 종말의 원인이나 사건보다는 인간 내면, 본질에 접근하는, 그래서 인류의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보다 철학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 <패시지>는 과도한 폭력을 욕망하는 인간의 과오가 인류 종말의 원인을 제공하고, 종말을 눈앞에 둔 순간, 그로인해 희생된 소녀가 역설적으로 인류 구원의 희망이 되는 판타지 소설이다. PEN/헤밍웨이 상을 포함해 여러 상을 수상한 작가의 필력이나 구성, 밀도감, 몰입도는 칭찬이 아깝지 않다. 엄청난 떡밥도 모두 회수한다. 소소한 반전 또한 흥미를 높인다. 두께의 압박은 있지만 시간을 들여 읽어도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1부 <패시지>는 등장인물들에게 동기부여를 했을 뿐이다. 이들의 본격적인 여정을, 나는 기다리는 중이다.

아름다운 그대여,

내 눈에 그대는 영영 늙지 않는다.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그대 아름다움은

변치 않으리라. 

셰익스피어, 소네트 104번

‘문득 나타난 소녀‘, ‘난데없이 나타난 자‘, 천 년을 산 ‘최초이자 마지막이며 유일한 자‘가 되기 전 그녀는 아이오와주에 사는 에이미라는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에이미 하퍼 벨라폰테가 그녀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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