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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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 배경을 관련해 열한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작가의 개인사를 알지 못하지만 읽으면서 그녀가 플로리다 출신이거나 적어도 꽤 오랜 기간 그곳에서 거주했을 거라는 짐작이 들 만큼 플로리다에 대한 물리적, 서정적 묘사는 무척 섬세하다 (작가는 뉴욕 출신임을 다 읽은 후에 알았다).  
 
 
불안증을 달래기 위해 밤산책을 나가지만 살고 있는 동네는 빈집이 많고 강간과 폭력 범죄가 빈번이 일어나는 곳이다. (유령과 공허)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가장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가 군대 입대한 사이에 모자는 이사를 하지만, 돌아온 아버지로부터 잡혀오고 결국 엄마는 떠난다. 홀로 남아 아버지의 폭력과 방치 등 온갖 학대를 견뎌낸 주인공 내면에는 가족의 상이 형성되지 못한다. (등근 지구, 그 가상의 구석에서)
외딴섬에 가족도 없이 남겨진 어린 두 자매. (늑대가 된 개)
남편의 갑작스런 볼일로 인적 드문 외진 캠핑장에 두 아이들과 남겨진 주인공은 낙상으로 머리를 다치고 꼼짝하지 못한다. (미드나이트 존)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유복한 가정환경의 친구를 질투하는 어맨다, 아내의 친구를 사랑하는 맨프레드, 숨막힐 듯한 플로리다를 떠나고 싶은 그랜트. (사랑의 신을 위하여, 신의 사랑을 위하여)
지친 일상과 플로리다를 벗어나 낯선 나라, 살바도르에서 보내는 휴가. 헬레나는 섹스 파트너를 구하며 하루하루를 즐기지만, 우연히 마주한 태풍에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이는 없다. (살바도르)
한때는 대학강사였으나 장학금을 놓친 것을 계기로 부랑자가 된 제인. 노숙자, 청소부,  급기야 매춘까지 감행하지만 경찰에 구속된다. 어떻게 해도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위와 아래)
젊은 시절 꽤 괜찮아 보이는 사람과 연애했지만, 강간에 가까운 성관계를 강요당했던 '나', 어느날 불법이민자로 보이는 다친 여성에게 도움을 주려 했으나 거칠게 거부당한다. (뱀 이야기)
가슴을 짓누르는 무언가 때문에 도망치듯 플로리다를 떠나 두 아들과 함께 이포르에 온 그녀. 주인공은 기 드 모파상 취재와 휴식을 목적으로 프랑스로 날아왔건만 달라진 건 없다. (이포르) 
 
  
 
사람은 인생이 꼬이거나 문제가 생기면 환경 탓을 한다. 
부모 혹은 남편을 잘못 만나서(물론 사실 이련 경우도 있다), 돈이 없어서, 가정환경이 불우해서,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등 많은 핑계들을 진실처럼 인정한다.  
 
그러나 극단의 문제(폭력, 학대)가 아니고서는 이를 해결할 방법은 대체로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쉽게 깨고 나오지 못하는 고정관념과 트라우마, 문제의 원인에서 자신을 제외시키고 회피하려는 의식은 보탬이 되지 않는다. 
 
흑인과 가난한 자들이 사는 지역도 모두 사람이 사는 곳이며, 낯선 곳에서 호의를 베푸는 남성의 직업이 고작(?) 상점 주인이라고 해서 불온한 마음을 먹었다고 볼 수 없다. 어린 시절 가족에 대한 긍정적 경험이 없다고 해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압박과 권태에 대해 진솔하게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인생의 가치관을 세워놓지 않은 채 대상을 상대로 한 끊임없는 비교는 상실감만을 안겨줄 뿐이며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이념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이라고 규정되어진 삶의 방식이 정답이 아님을 깨닫지 않는 한 우리는 온전히 자립된 인생을 살기 힘들다.  
 
학대받은 어린 시절을 지나 사고로 청각 장애까지 안게 되지만 가정을 이룰 수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 가족을 이룬 주드처럼, 주변에서 위험하다고 걱정했던 동네에서 별일 없이 아이들을 키워내고 늙어가는 것 처럼, 권태에 빠져 주변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미나처럼, 낯선 사람의 호의를 호의로 받이들이게 된 헬레나처럼,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낸 제인처럼 인생에는 모범답안이 없다. 
 
 
삶은 엄청나게 대단하지도, 보잘 것 없지도 않다. 각자 나름의 고통과 우울과 불안을 동반해 살고 있으며, 사소한 기쁨으로 그 불행을 위로 받는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이야 학교에서 늘 배우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가. '내'가 타인을 외모로 점수를 매기듯 나 또한 타인으로부터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한 인간의 일생은 기나 긴 역사 안에서 보면 찰나일 것이며,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먼지 한 톨 만큼의 크기도 아닐테다. 놀라운 발전을 이룬 인류의 업적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흘러가는 세월의 한 부분임을, 우주의 한 원소임을 종종 상기한다면 삶의 고통 또는 권태로움의 가운데를 지나기가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한 번의 호흡이 끝나고 다음 호흡이 시작되는 사이 정지된 모든 순간이 길다. 그러고 보면 늘 전환의 순간에 있지 않은 것은 없다. 내일이라도 곧 아이들은 어른이 될 것이고, 어른이 되면 집을 떠날 것이다. 그러면 남편과 나는, 우리가 함께 걸어어다닌 그 모든 시간과 내 몸과 내 그림자와 달에 더해서, 우리가 소리지르지 않고 소리지를 수 없는 그 모든 것의 무게 아래 웅크리고 있는 서로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외로운 인간은 너무 작고, 달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알아차리기에 우리 삶은 너무 순식간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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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 낯선 길에서 당신에게 부치는 72통의 엽서
변종모 지음 / 꼼지락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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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변종모 여행가의 신작 포토 에세이.
'함부로' 사랑하지 못하고, '수시로' 떠나지도 못하는 사람으로서 제목부터 아련해진다. 길 위에서 떠올려지는 단상 단상이 72통의 편지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자라기보다 관광객에 가깝다. 자유여행이라고 하지만,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랜드마크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다. 현지인들의 문화와 일상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향유하기보다 서비스 품질과 문명의 이기의 첨단화를 들먹이며 돈으로서 가치를 평가하기에 바쁘다.  
 
 
캄보디아 아이들의 미소, 새벽 담배를 나누어 피는 노인, 포르투갈 출근 시간의 어느 낯선 플랫폼,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기에 머리를 깎고 몸에 흰 실을 감은 인도 브라만 계급의 소년, 소원이 별이 되는 치앙마이의 보름밤, 사소한 것들을 귀하게 여겨 매일이 행복한 쿠바, 욕심이 없는 미얀마, 모든 계절을 삼킨 늦가을의 부르고뉴. 
 
 
누구가에게 가장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으리라 짐작하고, 홀로 여행하지만 연대를 꿈꾸는 사람. 행복할 일 없는 일상이더라도 불행하지 않으니 족하며 아이와 강아지가 어울리는,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 근사하다는 사람. 오로지 '내'가 되기 위해서 걷는다는 사람. 
 
 
삶의 냄새가 나는 글을 한 번에 읽기가 아까워 두세장을 쪼개고 쪼개어 읽는다 
 
 
 

 
□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홀로여행자였다. 
 
□ 정말 걷다 보면 낫는다는 말은 믿어도 좋겠다. 
 
□ 누군가에게 무어라 요구하지 않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좋은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 그리움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우체국으로. 
 
□ 누구나 가슴속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 없누 문신이 있을 것이다. 
 
□ 살아가는 자세는 이처럼 누군가에 부담스런 손짓이 아니라 공손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향기로워야 한다. 
 
□ 나도 이렇게 잠시 흔들리다가, 어느 날 멈춘 곳에서 누군가에게 소금처럼 쓰일 일이 있을까? 그물처럼 성긴 지붕아래서도 저들처럼 빛나는 눈으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 삶이란 바깥으로 채우는 일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채워나가는 일. 내 안의 열정으로 바깥의 냉랭함을 다스리는 일. 스스로 뜨겁지 않으면 세상 그 무엇도 뜨겁지 않을 것이다. 
 
□ 말문을 다는다는 것은 더 이상 너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보이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 우리가 견뎌온 모든 것들은 절대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스스로 찬란하게 드러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바위가  굳의 또 다른 세상이 되기까지의 시간에 비한다면 잠시가 아니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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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쇼팽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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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손가락이 잘린 시체. 그는 피아니스트일까요. 쇼팽의 음율과 소설의 조화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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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 -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김승진 옮김 / 부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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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부족주의)에 의한 폐해와 그에 대응하는 실패 사례를 통해 지향해야 할 바를 구제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미국인이 미국의 오류에 대해서 쓴 저서이기에 표면적으로는 괴리가 느껴질 수 있으나 이를 각 국가의 정당정치와 집단주의, 그리고 차별에 적용시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베트남,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전쟁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대응 사례와 자국 내 인종민족주의 및 이념의 정체성을 들어 극복하지 못한 집단주의의 원인을 지적한다.  
 
 미국내 집단주의와 차별에 대한 부분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이는 한국 (정치)사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여성과 남성, 경제적 지배층과 피지배층 등 차별과 서로를 향한 혐오는 곳곳에서 날이 서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이분법적 냉전시대는 종식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적이 아니면 동지고, 좌파가 아니면 우파다. 중도는 기회주의자로 치부되고, 배려와 공감과 연대는 선거 시즌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다.   
 
책에서는 미국 내 이민자 정책으로 인구 비율에 있어 유색 인종이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흑인과 멕시코계 뿐만 아니라 백인 가난한 계층, 무슬림, 여성, 게이와 트레스젠더, 진보 진영, 트럼프 지지자들 등 모든 계층이 공격받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길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 수도 있는 공포와는 비할 바 아니라고 일축한다. 더불어 경계를 허물기 보다는 서로 동료의식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고 충고하다.
 
259.
우리는 동료 미국인으로서, 공동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가진 부족적 적대를 인식해야 한다.
테러를 우려하는 사람은 이슬람 공포증이라고 비난받지 않으면서 그 우려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인구 구성의 대대적인 변화와 이민자의 유입을 걱정하는 사람도 인종주의자라고 비난받지 않으면서 그 우려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라고 다를까. 기득권층, 남성 우월주의자, 우익 단체들, 정규직 등 사회 주류의 자리에 있는 이들은 역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서로를 향해 끝이 없는 혐오를 쏟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척점에 있는 대상이 무언가를 가져간다는 것이 내가 가질 몫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민의식의 결여다. 지니온 역사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상대에 대한 이해와 목적의식을 공유하며 연대해야 한다. 
  

 

 


개인이 제정신이 아닌 것은 드문 일이지만 집단은 제정신이 아닌 게 정상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너무나 자주, 가난한 다수가 새로이 얻게 된 정치권력을 사용해서 그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소수에게 보복을 하고, 소수는 또 소수대로 새로이 권력을 갖게 된 다수의 공격 대상이 될 것을 두려워해서 폭력에 의존한다. 이것은 로켓 과학이 아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부족 정치의 원칙일 뿐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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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휴식하라 - 회복과 치유를 위한 33일간의 철학 세러피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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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가치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하는가?'

 

새로운 책이 나올 때 마다 챙겨서 읽는 안광복 선생의 신간이다. 이 책의 목적은 저자의 여는 글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p7

아무리 바빠도 밥 먹고 화장실 갈 시간은 있어야 하는 법, 성찰의 시간도 다르지 않다. 하루 15분, 30분이라도 조용히 물러나 삶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를 가지시길 바란다.  

 

하루에 한 챕터씩, 33일간 읽을 수 있게끔 나눠져 있다.

상처, 욕망, 집착, 매너리즘, 용기, 혜안 등 굳이 순서대로가 아니어도 내가 필요로 하는 지혜와 조언을 지성인들을 통해서 구할 수 있다. 

 

  

 

■ ■ ■ ■ 

 

 

인생의 모든 순간에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공자)

공자의 말씀을 빌어 '스물 살다움'과 '50대다움'에 대해 말한다. 종종 SNS나 지인들을 보면 '어른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들을 본다. 어린시절의 순수함과 '꼰대'가 아님을 강조하는 표현일까? 아마 더하여 책임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 않을까한다. 그런데, 사실 모든 사람이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라. 어린 시절이 순수하기만 하지는 않다. 지나간 과거이기에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그 시기에도 치열하게 성장의 아픔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나 잘못은 어리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다. 이를 거쳐 어른이 되는 것인데, 어른이 되기 싫다니...... .

갈수록 어른이 필요한 세상이다.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노후에 누군가에게 혜안을 줄 수 있는. 

 

  

 

다 이기지 마라 ㅡ 다원적 평등 (마이클 월저)

다원적 평등이란 어떤 측면에서는 존경받지 못할 사람들도 다른 면에서는 명예롭게 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어린시절부터 각자의 다양한 재능을 인정받은 경험이 필요할 듯 하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의 성적이 절대적인 현 교육제도에서 한 분야에 천재성을 보이면 모를까 입시 주요 과목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나타나는 재능은 묻히기 쉽다. 미술이나 음악에 재능이 있어도, 엘리트 체육 특기자가 아니라면 체육에 관련한 재능도 성적이 우수해야 하며, 다중지능에 나와 있는 항목들은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재능을 끄집어 내기도, 그 재능에 평등을 부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현재 한참 자라고 있는 아이들만큼우 이제라도 다양한 평가 방식을 통해 다원적 평등을 꾸준히 보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러면 다음 세대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좀 달라지지 않을까? 

  

  

 

번아웃 탈출 (아우구스티누스)

'진정 번아웃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의미 찾기'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이 문장에 무척 동감한다.

한 시절 그렇게 살았다. 진학을 하고, 취직을 하고, 샐러리맨이 되어서 수입이 생기면 갖고 싶을 것을 샀다. 왜? 주변 사람이 모두 그렇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야하는 거라고 가르쳐 준 이는 없지만, 그렇게 배웠다. 타고난 성정과 교육이 더해져 성실과 정직을 모토로 집단생활을 했기에 나름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근래 시중에 직장 생활이나 번아웃에 관련한 서적들이 쏟아지듯 출간되는 걸 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삶의 방식을 누구도 표면적으로는 강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부모에게서, 선생에게서, 주변인들에게서 학습되어져 의미 부여 없이 달린다는 거다. 달릴 때 달리더라도 자신이 왜 달리는지 알고 달리면, 그 달리기에 가치를 부여하면, 조금이나마 힘이 덜 부칠듯 싶다.

  

  

 

노예는 반복할 뿐이지만 자유인은 성찰한다 (아리스토텔테스)

오랜 전 광고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가 있었다. 그런데 책에서는 더 보태자면 "열심히 일했으나 성과가 없더라도 쉬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쉴 틈이 없다고 불평한다. '나'는 일상의 노예인가, 아닌가!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해 볼 일이다. 

 

  

 

최고의 스펙은 도덕성 (디오게네스)

얼마 전 의도치 않게 EBS 다큐에서 도덕성에 관한 실험을 한 프로그램을 동영상으로 시청했다. 이 얄궂은 도덕성은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나라고 얼마나 다를까싶다. 정도의 차이일 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성공을 향해서는 도덕성 쯤은 그저 철학책에 나오는 구시대적 유물같은 단어에 불과하다. 저자의 '욕심이 없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도 마냥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고개를 숙인다. 

  

 

 

성장을 끌어내는 '관심의 눈' (제러미 벤담)

신독愼獨 :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도 도리에 더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마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신독의 태도를 갖추는 과정이다(p139)'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운 행동과 사고를 취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자존감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남의 시선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시선으로 타인을 보고, 타인의 어떤 시선을 의식하며 살고 있을까? 비난과 경쟁에 사로잡힌 시선이 아니라, 서로서로가 각자의 보이지 않는 인내와 노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면, 그리고 내가 나를 자주 들여다 본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만해지리라 생각한다.  

 

 

 

혐오하지 말고 분노하라 (마사 누스바움)  

누스바움은 분노와 혐오를 나눈다. 분노는 세상을 발전시키지만 혐오는 사회를 타락시킬 뿐이다. 왜 그럴까? 분노는 정당하지 못한 처사에 대해 상대와 맞서게 한다. 반면, 혐오는 상대를 피하고 외면하게 만든다. 분노는 눈을 치켜뜨고 상대와 싸우는 가운데 진실을 밝히게 하지만, 혐오는 상대를 멀리한 채 편견만 키워 나간다. 

p149

 

혐오에 대한 질문을 소수집단 혹은 사회적 약자에게 던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혐오'의 주체가 아니다. 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간 집단과 그 사회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을 혐오하느냐고. 

 

 

 

유혹하지 말고 설득하라 (귀스타브 르봉) 

 

"대중을 유혹하려 하지 말고 꾸준하게 설득하여라. 옳은 신념을 가꾸고 내려놓지 마라."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천에서 떨어진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어떤 후보는 당선이 되면 복당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린다. 이들의 정치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재선을 노리는 후보들 중에도 장기적인 플랜이 있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당선이 급급해 옳든 그르든 다수가 원하는 공약을 천편일률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들 뿐이랴. 하루를 초시대로 사는 현대인들은 당장에 성과가 보여야 하고, 대기만성형은 무능력자임을 돌려 말할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옳은 신념을 설득하는 것도, 지켜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하라. 세상은 더 빨라지지만 그 빠른 세상을 기억하며 사는 인간의 수명은 더 길어질테니.  

 

 

 

보고 싶은 것 말고 보아야 할 것을 보라 (아마르티아 센)

깊게 뿌리 내린 민주주의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가 광복과 경제적 자립을 스스로 하지 못한 반면 민주화 만큼은 시민의 힘으로 이뤄냈기에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이를 잘 지키기 위해서는 누구도, 무엇도 절대적으로 옳은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때문에 드러나는 문제점을 수용하고 공감하며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입된 욕망에서 탈출하라 (발터 베냐민)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늘 새롭고 화려한 상품에 둘려싸여 있다. 광고에 등장하는 상품만 사면 광고 속 주인공처럼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꿈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꿈을 실현하기도, 어떤 이는 꾸는 것 조차도 어려운 세상이다. 세계가 하나의 금융으로 묶여 있는 현재에 자본주의의 출구는 어디일까? 저자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묻는다. 

 

새로운 대안은 자본주의가 심어 준 욕망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하는 용기'를 품을 수 있을 때 열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과연 쇼윈도가 가리키는 세상과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을까? 

p104

 

어려운 듯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틀어보면 크게 어렵지 않다. '성공=부자'라는 공식의 틀만 깨면 된다. 인간이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이상,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부자의 기준이 매일 달라질테니까.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 가치로 인해 매일의 삶이 만족스러운가? 그렇지 않다면 그 가치를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 □ □ □ 

 

 

독자가 철학을 이토록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쓰는 분이 얼마나 될까싶다. 저자는 '철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늘 깨뜨린다. 철학에 관련한 책을, 누구나 차 한 잔 하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철학 에세이요, 명상집같은 느낌도 함께 든다.  

요즘에는 '하루 견과류', '하루 비타민'처럼 영양 식품을 하루 분량치로 소포장해서 판매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하루에 서너쪽씩 읽는 '하루 철학'. 마음 영양제 한 봉씩 먹는다는 생각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그날만큼은 넉넉하고 든든한 하루가 될테다. 

 

 

 

참을 수 없는 세계란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강박적 추구에도 불고하고 '영원히 지속되는 일상적 진부함'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이런 세상은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반복되는 삶의 패턴들 속에서 진지한 생각거리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다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생각할 것 없는 상태 자체에 대해 따져 뭉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그 다른 세계를 상사하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는데서부터 출구가 열리기 때문이다.

발터 베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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