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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 낯선 길에서 당신에게 부치는 72통의 엽서
변종모 지음 / 꼼지락 / 2020년 4월
평점 :
여행작가 변종모 여행가의 신작 포토 에세이.
'함부로' 사랑하지 못하고, '수시로' 떠나지도 못하는 사람으로서 제목부터 아련해진다. 길 위에서 떠올려지는 단상 단상이 72통의 편지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자라기보다 관광객에 가깝다. 자유여행이라고 하지만,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랜드마크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다. 현지인들의 문화와 일상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향유하기보다 서비스 품질과 문명의 이기의 첨단화를 들먹이며 돈으로서 가치를 평가하기에 바쁘다.
캄보디아 아이들의 미소, 새벽 담배를 나누어 피는 노인, 포르투갈 출근 시간의 어느 낯선 플랫폼,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기에 머리를 깎고 몸에 흰 실을 감은 인도 브라만 계급의 소년, 소원이 별이 되는 치앙마이의 보름밤, 사소한 것들을 귀하게 여겨 매일이 행복한 쿠바, 욕심이 없는 미얀마, 모든 계절을 삼킨 늦가을의 부르고뉴.
누구가에게 가장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으리라 짐작하고, 홀로 여행하지만 연대를 꿈꾸는 사람. 행복할 일 없는 일상이더라도 불행하지 않으니 족하며 아이와 강아지가 어울리는,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 근사하다는 사람. 오로지 '내'가 되기 위해서 걷는다는 사람.
삶의 냄새가 나는 글을 한 번에 읽기가 아까워 두세장을 쪼개고 쪼개어 읽는다
□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홀로여행자였다.
□ 정말 걷다 보면 낫는다는 말은 믿어도 좋겠다.
□ 누군가에게 무어라 요구하지 않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좋은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 그리움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우체국으로.
□ 누구나 가슴속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 없누 문신이 있을 것이다.
□ 살아가는 자세는 이처럼 누군가에 부담스런 손짓이 아니라 공손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향기로워야 한다.
□ 나도 이렇게 잠시 흔들리다가, 어느 날 멈춘 곳에서 누군가에게 소금처럼 쓰일 일이 있을까? 그물처럼 성긴 지붕아래서도 저들처럼 빛나는 눈으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 삶이란 바깥으로 채우는 일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채워나가는 일. 내 안의 열정으로 바깥의 냉랭함을 다스리는 일. 스스로 뜨겁지 않으면 세상 그 무엇도 뜨겁지 않을 것이다.
□ 말문을 다는다는 것은 더 이상 너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보이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 우리가 견뎌온 모든 것들은 절대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스스로 찬란하게 드러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바위가 굳의 또 다른 세상이 되기까지의 시간에 비한다면 잠시가 아니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