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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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에 대한 믿음. 우리가 사는 방식에 대한 믿음. (뒤에 남은 사람들) 
  
 
[싱귤래리티 3부작]
자유와 모험을 원했던 리즈는 십대 시절 도전적으로 떠났던 배낭 여행에서 강간을 당한 후 육체의 한계를 느낀다. 이후 알고리즘 프로그램 개발회사에 취업한 그녀는 육체를 넘어선 새로운 정신을 창조하고자 하고, 뇌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을 데이터화해 정신으로써 영생을 얻고자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육체를 스스로 소멸시킨다. 리즈의 언니 에이미는 육체로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영생에 회의적이다. 그녀는 홍옥의 신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죽은 후 누군가로부터 추모를 받을 수 있는 삶을 선택 할 것이다. 
 
 
'싱귤래리티'가 도래한 후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택했다. 불치병에 걸린 돈 많은 노인들로부터 시작한 인간 정신 데이터화. 파괴적인 스캔 과정을 거친 두뇌가 피투성이 곤죽이 된 채로 생명을 잃지만 정신은 영원하다. 그 데이터는 인공지능인가? 인간인가? '나'는 시물레이션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고자 한다. 이미 정신을 데이타화 한 누나는 자신과 가족을 회유하지만, 아내와 딸 루시는 자기의 신념을 잘 따라주었다. 루시의 졸업식. 잭과 댄스 파트너가 된 루시는 다녀오겠다는 인사 대신 작별의 뉘앙스가 담긴 인사를 건네고, '나'가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스스로 한 선택이라고, 자신을 놓아달라고 말하는 루시. 세상에 남은 시간은 이제 모두 부부의 것이다. 
 
207.
현실 세계를 포기하고 시뮬레이션이 되기를 선택하는 순간, 그 사람들은 죽어. 죄악이 존재하는 한 죽음도 존재해야 해. 삶이 의미를 얻는 수단이 바로 죽음이니까. (뒤에 남은 사람들)  
 
220.
저마다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이 우리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우리는 죽음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우리 아이들을 통해 우리 안의 일부가 계속 살아간다고. 그것만이 유일한 형태의 진정한 불멸이라고. (뒤에 남은 사람들)

 
 
어린 의식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은 알고리즘들이 여러 루틴을 재결합하고 재배치한 결과다. 부모는 열 명일 수도, 더 이상일 수도 있다. 이제 출산의 고통이나 생명 탄생의 경이는 없다. 르네의 엄마는 싱귤래리티 이전의 사람, 고대인으로 업로드를 하기 전에 육체를 지닌 채 26년을 살았다. 엄마는 영원히 우주로 떠나기 전 르네에게 함께 여행할 것을 제안하고 르네는 이를 받아들여 45년간 여행을 한다. 그녀가 엄마와 함께 본 세상, 엄마가 26년간 고대인으로 살았던 그 세상. 르네는 엄마와 함께 본 그 세상을 잊지 못할 것이다.
 
258.
순록 떼, 금빛 들판, 텅 비어가는 도시들, 비,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비, 버려진 세상의 껍데기를 어루만지는 비.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호弧]
열여섯 살에 임신을 했고 자신의 삶을 바꿔줄 줄 알았던 남자친구는 유학을 떠났다. 생후 1년도 안된 아이를 부모님 집 앞에 버리고 도망친 레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먹고 살 길을 찾아 인간박제를 만드는 보디워크스에 취직한다. 솜씨가 좋아 승승장구 하던 레나는 사주의 아들 존 월러를 만나고 그로부터 불노장생의 신약 개발에 대해 듣는다. 존의 권유로 그녀는 영원히 삼십 대의 젊음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얻음과 동시에 존과 결혼한다. 그러나 존의 유전적 결손으로 인해 재생 시술은 오히려 그의 노화를 촉진하고 암을 유발시켰다. 남편은 죽고 그가 생전에 냉동 보존했던 정자를 이용해 레나는 딸을 낳는다. 임신한 상태에서 그녀가 수십 년 전에 낳은 아들, 이미 육십이 넘어 외모상으로는 레나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늙어가는 아들을 만났다. 그녀는 인생의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음을 안다. 
 
43.
죽음은 평등의 수호자로 위세가 대단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부자들은 피해 가는 모앙이었다. 세상에 분노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당연했다. (호弧) 
 
52.
혹시 지금 내 아들이 자식을 버린 여자를 똑같은 짓을 한 남자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비난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이제 그 질문이 얼마나 편파적인지 깨달았다. (호弧) 
 
59.
세계 곳곳에서 삶이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 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 (호弧)  
 
62.
나의 기록은 죽음을 향한 인체의 여정을 유례없이 철저하게 담은 기록물이 될 것이다. 실존의 적나라한 진실에 덧씌워진 환상을 오랫동안 천천히 벗겨 가는 과정을. 그것은 낭만적이지 않다. 보기에 흐뭇하지도 않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자주 지루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이고, 그것이 진실이다. (호弧)   

 
 
 
[매듭 묶기]
어느날 난족 마을에 찾아온 미국인 이방인. 그는 난족의 매듭 문자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과 함께 미국으로 가 일을 도와준다면 신품종 벼를 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이에 응한 촌장 소보에. 이방인 토무는 단백질을 이용한 신약 개발을 주업무로 하는 연구자로서 난족의 매듭 문자에서 아미노산 사슬의 영감을 얻어 소보에를 미국 연구소까지 데려온 것이다. 그러나 품종 저작권과 특허 사용료, 그리고 비싼 비용에 대해서 아는 바 없었던 토무는 소보에와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는 이와 같은 상황을 소보에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고, 싹이 나지 않는 볍씨를 주어서 돌려보낸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소보에, 그러나 무언가를 조치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반면 소보에의 기술을 토대로 알고리즘을 완성한 토무. 그는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부탄이 어떨까? 
 
133.
나는 토무와 나눈 대화를 매듭 책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그 책이 나중을 위한 경고가 될지도 모른다. 후손들은 나처럼 생각이 짧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모든 맛을 한 그릇에]
골드러시가 한창인 서부 개척 시대. 가게를 운영하는 릴리의 옆집에 세를 얻어 살고 있는 중국인 남자들은 강에서 금을 채취한다. 그들의 언어는 거칠고 시끄러우며 무엇보다 작은 셋집에서 스물일곱 명이 잠을 잔다. 또한 남자들끼리 해먹는 음식에서는 알 수 없는 기름지고 진한 냄새가 난다. 이들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릴리. 그들의 감칠맛 나는 음식, 식물을 이용한 약재, 그리고 무엇보다 로건이 해주는 중국의 관우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백인 강도들과의 다툼으로 법정에 서게 된 로건으로부터 그가 미국으로 이민오게 된 사연을 들은 릴리와 마을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받아들이지만, 1882년 중국인 배제법으로 당시 미국에 머물렀던 중국인들은 배제법 폐지를 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289.
'인종과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정치적 견해 등'이 사유인 건 아니지요.' (...) 세상은 참혹한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법은 그중 일부만 들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더군요. (모든 맛을 한그릇에)




■  ■  ■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열두 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인간적'에 대해서 고민하게 한다.
젊음과 영생 그리고 죽음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 자연에 순응하며 지구에 속한 한 존재로써 살아가는 소수민족을 경제 순환 논리에 끌어들여 착취하는 문명인. 인간의 두뇌를 능가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유일한 특성인 '사고'능력까지 기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오히려 사고의 단순화로 인해 퇴화하는 인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전을 외치며 스스로 사고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겠다며 얼마든지 제어가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개발자들.   
 
160.
우리가 단지 하루하루 어떤 알고리즘을 따르는 것뿐이라면? 우리 뇌세포가 단지 어떤 신호를 받아서 다른 신호를 찾을 뿐이라면? 우리가 생각이란 것 자체를 안 한다면? 내가 지금 당신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만약 단지 미리 정해진 반응일 뿐이라면, 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물리 법칙의 결과라면? (사랑의 알고리즘)  

 
 

육체의 감각을 포기한 정신, 영혼의 자유는 진정한 자유일까?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며, 때로는 고통일지라도 그 감각으로 인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의 희열. 그것을 놓친다면 삶에서 어떤 맛을 즐길 수 있을까? 그것 뿐이랴.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주고 받는 마음까지 시물레이션을 통해 이룬다. 그것으로 최소한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상쇄하면서.  
 
238.
그러나 로봇은 이 일을 하도록 이미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당신은 그냥 조종 스틱을 엄지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스크린에 지시가 뜰 때 핸들을 주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원격 조종 장치들이 다 알아서 하니까. 당신이 어머니께 효도를 한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동안 안전장치 루틴은 당신이 어머니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보장한다. 원격 조종 머니플레이터가 어머니의 손 한쪽을 들어 올리는 광경을 지켜보며, 당신은 상상한다. 어머니의 살갗이 얼마나 서늘할지, 류머티즘에 걸린 관절을 둘러싼 바짝 마른 근육과 살갗이 얼마나 가벼울지를. (...) 이 로봇은 죄책감을 덜어 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너무 멀리 살고 핑계거리도 너무 많은 이들을 위하여. 어머니 곁의 당신이 본질적으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곁) 

 
  
 
인간의 가치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피부 색깔, 문화, 관습, 그리고 돈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 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낯설고, 돈이 없다는 이유를 앞세워 그들의 가치를 재단하며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있다. 
 
진정한 동화는 상대의 것을 무시하고 우리의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문화, 가치를 수용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인류가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생태계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타인.타민족과 진정한 동화를 이루는 것이다. 
 
작가는 가족과 인류애, 개인의 삶을 바탕으로  SF요소를 빌어와 도래할 미래가 아닌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그의 작품이 출간될 때 마다 찾아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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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케빈 홉스.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티보 에렘 그림, 김효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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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뜨거운 태양과 온 몸에 달라붙는 끈적한 모래를 싫어해서ㅡ찬바람과 거친 파도를 감상할 수 있는 한겨울 바다를 제외ㅡ바다라면 도리질을 치기 일쑤다. 반면 산은 언제가도 좋다. 산이라기보다 나무가 많은 산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재미삼아 친구들끼리 '다시 태어나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나무라고 할 만큼 유독 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숲 혹은 나무에 관련한 책은 틈날 때 마다 찾아 읽는 편이다.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고, 소박하게 그린 삽화가 정감있다. 세밀화 도감처럼 나무에 대한 상식과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그 나무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현재의 환경까지 서술하고 있어 이야기 책을 읽는 듯한 재미까지 맛볼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쓴 흔적이 있는 회양목, 신석기 시대부터 이용된 우산소나무, 호모에렉투스보다 70만년 앞서 존재한 복숭아나무, 신석기인들이 재배했다고 보여지는 호두나무처럼 원시시대부터 존재 했던 나무들부터 이집트인들의 미라 제조용과 그리스인의 와인 재료로 사용된 알레포소나무, 투탕카멘 관의 재료이자 고대 그리스의 죽은 병사의 유해를 담은 항아리 재료였던 사이프러스 등 고대시대부터 이용되어 왔던 나무들. 
 
 
입냅새를 제거하는 시트론, 항균작용이 뛰어나 마리오족이 약재로 이용한 토타라,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던 자이언트흑백나무, 잎을 반창고 대신 쓸 수 있는 흑단, 구강 위생과 아로마 테라피로 의약과 치료에 쓰인 님나무 외에도 치료와 회복에 쓰인 나무들이 많이 있다. 
 
그런가 하면 히로시마 원폭에서 62그루가 되살아난 은행나무, 오염에 강한 키라야사포닌처럼 생명력이 강한 나무와 망고나무, 미국풍나무, 호주 반얀, 자카란다, 손수건나무, 버냐소나무처럼 녹음이 풍성하거나 색깔이 독특한 나무도 보인다. 
 
  
 
견고함으로 무장해 배와 가구의 재로인 티크, 현악기의 재료로써 최고로 칭송받는 캄페스트단풍나무처럼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경제적(제국주의)으로 무차별하게 이용당하거나 베어지는 나무들도 있다. 원유 다음으로 세계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높다는 커피나무, 카카오, 나무의 단단함이 제국국의 배의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로부르참나무, 농지확보와 도시 개발을 위한 다우림 파괴로 현재는 멸종 위기에 처한 마카다미아나무 등이다. 
 


 
 
여러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은 나무들도 있다.
모든 나무를 통틀어 종교적으로 가장 신성하다는 보리수, 마술과 미신의 유물이라는 이유로 영국 내전 중 파괴되었던 글래스턴베리가시나무, 시에라리온ㅡ노예의 자유를 상징하는 케이폭(세이바), 노동자 계층이 사랑하는 술의 재료로써 어머니의 술이라고 불이는 두송, 최근 이탈리아에서 여성 연대를 상징하는 은엽아카시아 등은 종교와 이념 등을 대변한다.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나무들도 있는데 고약한 냄새 때문에 가로수로써는 빵점인 가죽나무, 페루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숨어 있다가 2017년이 되어서di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온 잉카에서나무 등이다. 메타세콰이어와 자작나무에 대해서 읽을 때는 우리나라의 6월 녹음이 푸르른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과 한겨울 눈에 덮인 인제의 자작나무 숲이 그립기도 했다. 
  
 
내가 언급한 나무들은 조족지혈이다. 책에는 100가지 나무가 등장하고 나무마다 얽힌 사연은 하나하나 다 흥미롭다. 인류의 역사에 비할 바가 아닌 나무의 역사. 인간이 말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러도 묵묵히 감내하고 버티는 나무와 숲 앞에 설 때면 자연스럽게 숙연해지고 뭉클해질 수 밖에 없다. 나무가, 숲이, 세상을 지켜왔듯 인간도 그 지킴에 동참해야 한다. 옴니버스 초단편 소설을 읽듯 나무의 사연에 빨려들어 읽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199.
인간처럼 나무도 행복하고 건강하면 병을 물리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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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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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출애굽기 21:23~25) 
 
 
게이브
퇴근길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유난스럽고 낡은 차에 딸이 타고 있다. 집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아내 곁에서 TV를 시청해야 할 아이가! 뒤를 쫓았으나 놓쳐버렸고 급하게 찾아들어간 휴게소의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 너머에서는 낯선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내와 딸이 죽은지 3년이 지났고, 게이브는 딸을 목격했다고 믿는 고속도로의 휴게소들을 전전하면서 딸의 실종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건넨다. 그때 시신 확인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 딸이 살아있는 한 죽을 수도 없다.  
 
프랜
아버지를 위해 한 일이었다. 그 대가로 딸을 잃을 줄은 몰랐다. 이제 그 아이만큼은 지켜야 하는데, 그들은 프랜과 앨리스를 잡기 위해 포위망을 점점 좁혀온다. 어디로 가야하나? 
 
케이트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언니는 집을 나갔다. 케이트는 이혼 후 고속도로 휴게소 카페에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알콜 중독자 엄마가 아닌 아버지가 살아만 있다면, 그래서 자매들의 울타리가 되어줬다면, 삶은 달라졌을까? 케이트는 휴게소 주차장에 캠핑카를 주차해 놓고 살고 있는 키 크고 비쩍 마른 그 남자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게이브는 갓 십대 티를 벗어던진 젊은 시절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열네 살 소녀를 차로 치었고, 소녀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동승했던 친구들은 모두 도망갔으나 그는 구급차가 올 때 까지 소녀의 곁을 지켰고 가해 인정을 했으며 피해자 가족에게 사죄했음과 평소 생활이 모범적이었던 것이 정상 참작이 되어 집행유예와 벌금 처분을 받았다. 피해자 어머니 샬럿은 그를 용서했다. 몇 가지 조건을 달아서. 그 조건으로 게이브는 창살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가족을 잃고 자살을 시도한 게이브 앞에 나타난 자칭 사마리아인. 게이브의 사정을 듣고는 종종 도움을 주는데, 어느날 게이브가 찾아 다녔던 차량을 그가 찾아낸다. 저수지에 가라앉았던 그 우스꽝스러운 차는 가뭄으로 드러나고 트렁크에는 남자 시신 한 구가 들어있다. 죽은 남자가 딸을 납치한 것인지, 그렇다면 딸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 차를 버린 사람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차량을 발견한 후 딸 이지가 납치됐음을 확신한 게이브는 장인을 찾아가고, 상황을 설명하지만 당시 시신을 확인했던 장인은 사진을 한 장 건네며 손녀가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게이브는 그 사진 덕분에 죽은 아이가 딸이 아님을 재확인 한다. 장인은 무엇 때문에 이지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시신을 확인하는 그날, 자신은 왜 느닷없이 구토를 동반한 실신을 했던 것일까? 혹시 샬럿이 복수심으로 가족을 죽이려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장인은 더더욱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더구나 샬럿은 식물인간인 딸 이사벨라를 자신에게 맡겨놓은 채 이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게이브의 가족을 죽이고, 그를 가족 살해범으로 덮어씌우려는 사람은 누구일까? 
 
401.
당신 가족을 죽이고 싶어 했을 만큼 당신을 증오한 사람이 누굴까요?

 
  
 
 □    □     □ 
 
 
든든한 울타리였던 아버지가 열여덟 소년의 치기로 구타당한 후 사망했고, 가해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폭행 살해 후 파티장으로 갔다. 비록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였지만 수십 년을 진심을 다해 아이를 보살피며 엄마인 고용인보다 더 헌신했다. 그러나 샬럿의 유언장에 언급된 자신의 몫은 미미하기만 하다. 지난 일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 열여덟 살 아들이 교도소에서 살해당했다. 그것도 자살로 위장당한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억울하게 잃은 이들 앞에 자연스럽게 나타나 명함 한 장을 건네는 사람들.  
 
'디 아더 피플 The Other People'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줄 수 없는 죄의 댓가를 대신 응징한다. 금전 거래는 없다. 다만 그들이 답례를 요구할 때 응해야만 된다. 거부하면 최대한 빨리,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한다. 다단계 살인청부업자. 당신이라면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게이브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사마리아인'의 입장,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살인을 의뢰했지만 도덕적으로 살해 가담을 할 수 없었던 프랜, 손녀를 살리기 위해 사위에게 '너'의 딸이 죽었다고 말해야 하는 해리, 식물인간이 된 딸의 복수를 위해 한 남자의 인생에 종신형을 선고한 샬럿. 그들의 입장과 감정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충분히 탄탄한 스토리와 쫀쫀한 긴장감은 소설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가 된다. <초크맨>의 기운을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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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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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에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나'와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경기도 광주의 작은 동네를 떠났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아버지와 연락하며 살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갑자가 만나고 싶다며 전화를 해 온 아버지. 자신들을 버리고 재혼까지 하며 잘 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가득 안고 만났건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신은 최선을 다했으며 어머니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말한다. 진실의 여부를 밝혀줄 어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는데, '내'가 모르는 진실은 무엇일까? 
 
 
어린시절부터 어머니는 과잉보호라고 하기에도 지난칠 만큼 '나'의 '안전'에 집착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적응 기간이 지난 고학년이 되어서도 학교 앞까지 배웅을 하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왔고,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신들은 한가족이 분명함에도 타인에게 한 가족으로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어디든 데리고 다녔으며 '내'가 당신이 정한 구역을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종'계획을 세워 일탈이라고 한 것이 고작 버스를 타고 동네를 벗어나는 것이었는데, 그나마도 실패로 끝나고 혼자 산책 삼아 다니던 소나무 숲에서 길을 잃어 문제의 '그녀'를 만나게 된다. 유명한 가수였다가 유력한 정치인의 내연녀가 되어 소나무 숲의 집에 갇힌 여자. 그 여자의 죽음이 원인이 되어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185.
어머니와 내가 작은 동네를 떠난 이후로 어머니는 나와 함께 어디를 가든 내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했다. "이래야 우리가 가족처럼 보일 거 아니니." 역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말은 참 이상하다. 왜냐하면 팔짱을 끼든 끼지 않든, 손을 잡든 잡지 않든 어머니와 나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딸에 대한 어머니의 과한 사랑과 집착을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던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했고 더없이 자상했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화를 낸 것은 어머니가 소나무 숲의 여자와 교류한다는 사실을 안 그때였다. 그녀가 술에 취해 '나'의 집앞에 차를 몰고 와서 술주정을 부리며 소란스럽게 굴었던 그날, 처음으로 화를 낸 아버지. 며칠이 지나 그녀가 음독 자살을 하고 소나무 숲 집에서 '나'가 놓고 왔던 가방이 발견되어 경찰이 집으로 찾아온 얼마 후 아버지는 작별 인사 한 마디도 없이 집을 떠났다. 다만 어느날 밤 어머니에게 "우린 실패한 거야"라는 짧은 말만을 남기고. 아버지는 왜 그렇게 도망치듯 서둘러 떠나야 했을까?  
   
 
어머니는 죽기 얼마 전이 되어서야 당신의 과거를 말해 주었다. 서해에 있는 섬 출신으로 열아홉 살에 집에서 도망쳤고, 주경야독으로 공부해 방통대를 다니면서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다가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고. 그리고 고향에 결혼한 여동생과 남자 조카가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죽고 없다고. 그러면서 그들의 죽음을 '나'가 슬퍼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왜? '나'는 그들을 모르는데. 
 
223.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복기했다고 생각했다. 터져 나오는 말, 그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느꼈지만 어쩌면 그 반대가 아니었을까? 내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면, 그건 어머니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그건 터져 나오는 말이 아니라, 너절함을 가장한 취사 선택된 말이었던 것일까? 

 
 
   
어느날 남편의 신문 스크랩북을 들춰보던 중 엄마가 어린시절 살았다는 섬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된 '나'. 신문에는 동해상에서 북한 함정에 나포되어 1년여의 억류 끝에 귀국했지만 반공법상 월북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후 미금도(어머니의 고향)에 정착해서 결혼하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보안사 수사관들에게 끌려가 고정간첩이라는 죄를 뒤집어써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강요받고 20년 행을 선고 받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어머니와 고향이 같을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흘려버렸던 그 기사. 
  
 
돌이켜보면 미심쩍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엄마가 거짓으로 말한 동네의 큰 화재, 명절이면 아버지만 본가에 가고 어머니와 '나'만 집에 남아 있었던 상황, 어린시절 정서적으로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나'에게 신문과 뉴스를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것, 남들과 교류하지 않는 어머니가 유독 소나무 숲 집의 여자를 돌보다시피 관계를 맺은 사실, 단순히 '그 여자'의 집에 드나들었다는 사실만으로 화를 내고, 떠난 것도 납득이 안되지만 단 한번도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타인으로 산 아버지, 그리고 털어놓지 않는 오빠의 존재.  
 
이 퍼즐을 맞춰줄 사람은 오직 아버지 뿐이다. '나'는 아버지가 계신 경주로 향한다. 그리고 알게된 진실. '나'는 과연 누구였던 걸까?  
 
 
  
소설에서 어머니의 지상과제는 '나'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온전한 한가족으로 보여지는 것에 과민하게 신경 쓴 이유도 오로지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가능하면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았는데, 왜 소나무 숲의 집 여자에게만 그 경계를 넘어오도록 한 걸까? 어머니는 숨겨진 존재로 살아가는 그 여인에게서 자신과 여동생과 '나'의 모습을 본 게 아닐까? 출산이 임박하도록 불러오는 배를 감추고 몰래 아이를 낳을 수 밖에 없었던 여동생, 여동생이 낳은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완전한 제 아이로 키워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채 살아야만 했던 '나'.   
 
연예 기획사에서 근무하는 남편의 소속 연예인 윤소이. '나'는 남편의 회사 송년회 때 마다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매니저 부부와 한 자리를 차지했던 그녀가 사라진 것에 집착한다. 어느해 송년회 때부터 보이지 않은 그녀는 편지 한 장만을 남겨두고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남편으로부터 그녀가 사라진 것이 차라리 회사에 더 잘된 일이라는 말과 '사라졌다'는 용어에 집착하며 윤소이의 흔적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나'는 평소에 인사조차 하지 않았던 윤소이의 은퇴에 이토록 집착하는 걸까?  
 
안전에 대한 강박으로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던 어머니,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산발적으로 내뱉은 어머니의 말들이 주변에서 부유하듯 떠다녀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작은 자극에도 흔들려왔던 정체성을 농담으로 대체했던 '나'.  
 
252.
삶의 어떤 부분들은 아무리 내 이름을 지워도 결국은 내게로 돌아온다고,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에는ㅡ이러한 종류의 상징들이 으레 그렇듯ㅡ진부하고 손상되기 쉬운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10.
같은 의도의 다른 일면, 혹은 이중적인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동일한 환상.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그런 환상을 지속하고 싶어서 무모한 도박을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삶은 그런 식으로 매 순간 판돈을 걸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는 결혼을 앞둔 '나'를 향해 이제야 딸의 인생이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지상과제를 완수했다고 믿는 것이려나. 그러나 어디에 안전과 행복이 완전하게 보장된 삶이 있을까. 진실이 늘 옳은 것도, 행복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나'의 안전은 외부가 아닌 그들 안에서 지켜져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비밀이 아닌 진실과 이해로써. 
 
282.
얘, 그냥 흘려버려. 그냥 지금의 너의 삶에 집중해, 너의 행복을 지키려고 노력해. 그리고 나는 언제나 결국은 어머니가 말하는 대로 해다. 어떻게 어머니는 내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너의 삶, 너의 행복, 너의 안전. 하, 어머니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당신은 실패했어요. 나는 내 삶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어요.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한 전개 방식을 취한다. 화자 '나'의 가족사를 통해 개인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더불어 그들의 비밀을 풀어내는 과정이 읽는 맛을 배가한다. 
 

267.
우리의 선택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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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 짐 로저스의 어떤 예견
짐 로저스 지음, 전경아.오노 가즈모토 옮김 / 살림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세계 3대 투자가로 불리는 짐 로저스가 돈의 흐름을 예측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역사에 입각해서 앞날을 읽으며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사고하지 말고 변화에 대응하라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이 책에서는 21세기에 가장 매력적이고 자극이 될 나라와 현재 추세로라면 쇠락의 길을 걷게 될 나라를 들어 그 나라들의 장.단점을 짚어내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한반도가 맞이할 극적인 변화에 대해서 언급한다.
한국은 현재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북한이 개방하면 해결된다고 보고 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잘 풀렸던 것처럼 평화적 관계 전제 하에서 본다면 여러모로 아주 이상적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북한의 천연자연과 노동력, 남한의 기술력과 자본이 조화를 이루고 무엇보다 현저하게 줄어들 국방비와 긴장감을 생각하면 더할나위 없다. 다만 이 책이 출간된 연도가 2019년이다. 그래서 2020년 6월 현재에는 변수가 생겼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폐기하고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지 불과 보름이 채 되지 않았다. 모쪼록 현 정부가 이 고비를 무사히 해결해 저자가 그리는 그림이 완성되기를 희망한다. 
 
북한은 여러모로 잠재적인 국가임을 강조한다. 북한의 잠재력을 예의 주시하며 진출을 준비하는 주변의 강대국들의 속내를 한국은 잘 간파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개방, 하나된 한반도, 이것만 이루어진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활기찰 것이라고 예견한다. 
 
또하나 짚어내는 것이 있다면 젊은이들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생부터 공무원에 준하는 안정된 직장을 장래 직업 우선 순위에 둔다면 사회는 변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중학교부터 진로 교육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진로 결정에 영향이 미치는지는 미지수다. 많은 직업군에 대해서 아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만 교육해서 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시민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우려를 나타나는 국가는 일본이다.
역사의 필연을 들어보면 폐쇄된 나라는 망하고 개방된 나라는 번영한다고 했다. 일본은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그리고 현재 국내 부채 비율도 높다. 그러나 일본인의 성실성, 높은 저축률, 제품의 품질, 그리고 관세 인하와 이민자 수용을 들어 충분히 회복 가능성이 있음을 조언한다.
 
저자는 이민자를 받으면 사회가 불안정해진다고하지만 이민자가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를 봐도 자국민 범죄자가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이민자 범죄가 일어났을때 언론에서 유독 강조하기 때문이지 실제로 비율로 따지면 이민자 범죄율이 높다고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난민을 꺼리는 이유가 첫째로 난민 범죄를 드는데, 사실 난민 범죄를 수치로 나타낸 정확한 근거 자료는 없다.  
 
  
 
저자가 북한과 일본의 사례를 들어 육성을 권장하는 사업은 관광업과 농업이다. 나는 무엇보다 농업 육성에 강하게 공감한다. 지금 세계는 종자 전쟁이다. 누가 더 많은 종자를 보유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외국 회사에 많은 종자권을 팔았고, 그 결과 현재 한국은 로열티를 받는 종자가 거의 없다(알기로는 전무하다). 가장 중요한 건 농수산물(특히 농산물)의 자급력이 일정량으로 유지해야 한다. 수입이 막할 경우 외국 의존도가 높으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은 꾸준히 투자하고 육성해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어린 아이들의 진로를 농업에 뜻을 두는 것도 좋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어찌됐든 현재 세계의 경제를 이끄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렇다면 지금대로라면 미래가 없는 미국을 이어 세계의 패권국이 될 나라는 어디일까? 
저자는 중국을 지목한다. 무엇보다 긴 역사를 자랑하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았으며 발명과 기술의 기질을 타고난 국가라는 이유를 든다. 부채 비율이 점점 늘고는 있고 시장 자율성이 제한적이라는 부분이 걸리지만, 부채는 우려할 정도는 아니고 자유시장은 좀 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이외에도 러시아, 콜럼비아, 인도 등이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같은, 미래가 기대되는 나라라고 보고 있다. 
 
 
AI등장으로 사라질 산업과 성장할 산업에 대한 조심스러운 예측을 보탠다. 
일단 캐리시스 결제가 세계적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미 많은 국가가 일반적 실행 단계에 올라서 있으며, 추세 또한 현물 통화를 지양하고 있지 않은가. 책에 의하면 캐리시스 결제비율이 한국은 89.1%로 압도적이고 중국, 캐나다, 영국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의외인 나라는 일본과 독일인데, 지인을 통해 들어보니 일본에서는 아직도 동전 회전율이 높다고 한다. 사실 돈을 만드는데, 액면가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니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는 화폐 사용량을 줄이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로 IT기기 사용이 미숙한 고령자들에 대한 대안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족, 제발 돼지저금통에 동전 모으기 하지 말기를!) 
 
 


저자는 시대의 흐름을 역사적 사실과 현재에 보여지는 근거에 의해서 판단하고 예측해 개인의 의견을 피력할 뿐 특정 이념이나 사상에 무게를 둔다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특정 국가, 정당, 이념, 사상, 그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우며, 무엇보다 사고의 틀이 열려있는, 냉철한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보인다. 짐 로저스는 오히려 자신의 말을 무작정 따라하는 이들에게 경고한다. 스스로 모든 것을 확인하라고. 더불어 젊은이들에게 기다림과 인내심을 가지라는 진심어린 조언을 건넨다.  
 
 
세상은 예측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불가항력적인 사고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할 때에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이다. 현재 아직까지는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지 못한 상태이고 세계의 모든 감염학자들이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문득, 짐 로저스는 포스트 코로나를 어떻게 예측할까, 궁금해졌다. 
 
 
사족을 한 번 더 달자면, 그의 예견이 맞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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