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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에 대하여 - 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8월
평점 :
12.
무관심은 잔인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매우 활동적이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무엇보다 추악한 권력의 남용과 탈선을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경제적 공포 / 비비안 포레스트)
세월호 참사 이후 6년 연 동안 <한겨레> 지면에 실은 칼럼을 역은 책이다.
저자 본인이 난민이자 이주노동자였고 현재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약자의 입장에 서 있다.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으로서 가난의 대물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기득권층, 그리고 불평등과 불공정이 고착화 된 것에 방관하는 이들을 향해 분노를 눌러 묵직한 목소리를 낸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노동자다.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인데 노동자들의 제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러도 그저 안타까워할 뿐 아무도 촛불을 들지 않으며, 최저시급을 놓고 영세업자와 계약직 노동자가 자신의 입장을 들어 서로에게 핏대를 올릴 뿐, 재벌 기업한테서 최저임금 인상분을 충당한다거나 자영업자들의 임차료를 보전하는 등의 근본적인 대안의 구상없이 정부나 정치권은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혹은 약자끼리의 싸움을 부추기는 사태를 방관한다. 서민은 매체에서 보도되는 실업, 사고, 사건 등으로 인한 불행이 나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대 80으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대부분 80에 속하는 이들은 80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절망과 포기, 무관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요즘 최고의 키워드 중 하나는 혐오다.
착한 방관자는 비겁한 위선자라고 일갈하는 저자는 혐오의 정치학을 지적한다. 혐오에 분노로 맞서지 않는 '착한 방관자'가 다수이기만 하면, 그래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다수이기만 하면 된다는 정치 프레임. 혐오는 지배를 관철시키는 감정기제로서 한쪽 방향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청년실업, 입시지옥 등 사회적 문제를 젊은 세대가 함께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여혐'과 '남혐'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바로 지배 세력이 지향하는 '혐오의 정치학'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혐오를 기반하는 정치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는 이주노동자, 난민,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가 높다.
난민의 범죄를 언급하며 분위기를 조장하지만 사실 난민 범죄율에 대한 데이터는 없을 뿐만 아니라 근거도 없다. 우리는 종종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내국인 취업문이 좁아진다고 말하지만 대체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꺼려하는 3D업종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들이 산업현장에서 비켜난다고 해도 그 자리를 한국 사람이 차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난민으로, 이주노동자로 살아온 저자는 자신의 학연과 프랑스의 복지제도가 아니었으면 살아남기 힘들었거라고 말하며, 학연도 없고 복지제도도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였다만 어쩔 뻔 했을까라고 탄식한다. 저자는 성소수자들의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 사회를 위해 연대하는 앨라이Ally다. 세계는 점차 동성혼을 인정하는 추세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는 현재 물신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확증편향까지 겹쳐져 떠다니는 불안에 젖어 있다.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측은지심測隱之心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꼽았다. 굳이 맹자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친절과 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 감성을 지닌 사회적 동물임을 잊지 않기를, 저자는 당부한다.
47.
혐오는 감정이기 때문에 합리성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또한 혐오는 약자와 소수파를 차별.지배하기 위한 강자와 다수파의 감정기제이기 때문에 제어가 되지 않는다.
58.
소수자를 어두운 곳에 밀어넣고는 어둡다고 비난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을 이미 옳음과 그름, 정상과 비정상으로 자리매김해버림으로써 우리 사회는 자기 성숙의 모색과 실천에서 멀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권이 들어와도 개혁을 못하는 부분이 교육이다. 저자의 마음처럼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을 무한경쟁의 틀 안에 몰아넣고 반인권, 반시민, 반노동의 교육 현실에 절망한다.
78-79.
자식이 학교에 다니면서 인간성을 확장하고 인간의 염치를 알며, 올바른 인격과 연대 의식을 형성하는지에 관심을 갖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자식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고, 등급과 석차로 표시되는 성적에 관심이 있다. 자식이 헬조선의 'N포세대'가 될 거라는 불안이 부모를 압도하는 탓일 것이다. 또한 등급과 석차에만 집착하는 부모 세대의 태도는 민주공화국의 공교육 이념이 우리 사회에 정립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참된 교육자라면 자유, 평등, 평화, 연대, 공공성 등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가치 형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다만 석차와 등급을 매기기만 하는 학교 교육에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 1등급은 2등급 이하를 차별하고 2등급은 그 이하 등급을 깔보고 9등급 남학생은 여학생을 혐오한다. 이런 사회에서 성소수자와 난민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교육 현장은 사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시장'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사교육은 말할 필요도 없고 공교육 초등 3학년 과정에 있는 과목인 영어를,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을 허용했다. 이는 선행학습을 정부가 앞장 서 공식화한 꼴이다. 저자는 70년 적폐가 가장 심하게 쌓여 있는 부분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국군주의에 기반한 근대 교육이 현재까지 내려왔다는 것은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개선의 의지도 없어 보인다. 민주시민의 요체는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장은 배움이 아닌 경쟁의 장이다. 사유를 통하여 '나'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웃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워야하건만 암기와 주입식 수업으로 친구를 오로지 경쟁 상대로만 여겨야 하는 현 교육 과정에서 인격이나 인간성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는 그저 취업을 위한 기술을 배우는 반교육적, 반인권적 행태이다. 저자는 대학 서열 체제의 엄중한 숙고, 글쓰기와 토론의 강화 등 교육의 방식과 체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리의 교육에 필요한 것은 건실한 교육 철학과 이를 밀고 나갈 정치적 힘이라고 주장한다.
금수저들이 대물림하면서 기득권을 강화.유지 시켜온 사회 귀족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지금'을 저당잡힌 채 살아야 함에도 보장된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 무엇으로 삶을 누려야 할까?
우리는 법망을 잘 피하는 큰 도둑에는 관심이 없고, 작은 도둑에 분개한다. 광고 문구에서 공공연연하게 돈이 권력과 신분임을 드러내고, 돈벌이와 자본의 이윤 추구가 사람의 안전보다 우선하는, 돈으로 삶 자체를 죽이기도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정치의 기본 소명은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다. 그리고 진보의 중요한 가치는 공감과 감정이입을 통한 연대다. 우리나라는 정치 지도자의 부재 속에서 공생 관계에 충실한 거대 양당이 지배하고 있다. 두 정당은 정책 지향에 있어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몰상식하고 광신적인 세상에서 성소수자들, 이주노동자들, 난민들이 겪는 고통과 무관심 속에 방치된 노동자와 사회 약자들, 그리고 불안한 미래 때문에 무한경쟁에 내몰려 오늘을 저당잡혀 사는 청소년들에게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 그 가해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는 도덕적 우월감을 걷어내야 한다. 저자는 개탄만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분노하고, 참여하고, 연대하여 설득해야 한다고,설득을 포기하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야 하는 것에 암담함을 느끼지만, 잘못된 행태를 고치기보다는 순응하는 쪽을 선택했다. 나중은 없다. 폭력적이고 비인권적인 현재를 인지했다면 지금 바꿔야 한다.
175.
탐욕이 용인되는 것을 넘어 권장되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사회가 정의로울 수 없는 것은, 가진 자와 힘센 자의 탐욕이 가진 자와 힘센 자의 것이어서 제어되기 어렵고, 그리 인해 수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생존 조건조차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정신은 한편으로 절제되지 않는 탐욕 때문에 인간다움을 잃고, 다른 한편으로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 때문에 인간다움을 잃는다. 이제 '정신의 신자유주의화'가 완성 단계에 이르러 연대, 사회정의, 공공성이라는 사회주의적 가치는 조롱거리가 되거나 약자의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만 남은 듯하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