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 200주년 기념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메리 셸리 지음, 데이비드 플런커트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신이 되고자했던 인간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 괴물인가, 

괴물을 창조해 낸 오만한 인간이 괴물인가! 



소설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고 그 창조자에의 해 버림받은 한 괴물의 이야기다. 작가는 이 괴물의 눈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오류와 부조리에 대해 지적한다.  


괴물이 지켜본 오두막 노인의 일가를 통해 선택된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평생을 소모해야하는 사회적 부조리와 눈이 보이지 않는 노인가 괴물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의 가식과 허위를 비판한다. 또한 프랑켄슈타인이 갖는 양심의 가책에서 그가 향해야 할 죄책감의 방향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를 독자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자신의 오만한 발명으로 가족과 친구의 죽음에 대해서만 향한 가책 뿐만 아니라 피조물에 대한 미안함도 따라야 할 것이다. 


괴물의 외로움을 짐작해 대조해 볼 수 있는 장치는 소설 초반에 시작한다. 북극탐험을 위해 항해하는 월튼은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무엇보다 친구가 없는 외로움을 토로한다. 그에게는 편지를 보낼 누나가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선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없음을 가장 아쉬워한다. 하물며 자신이 왜 세상에 존재하고, 어째서 버림을 받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감정과 사물을 인지하고 습득하면서 외로움을 비롯해 다양한 감정을 알아간다. 괴물이 프랑켄슈인에게 요청한 것은 오직 자신과 흡사한 여자 생명체를 만들어 달라는 것 뿐(이것은 아마도 오두막에서 관찰한 일가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년시절 단란한 가정에서 유복한 성장과정을 거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고, 그가 자신을 찾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수에 대한 두려움만 있을 뿐 괴물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괴물을 발견하면 가슴에 칼을 꽂아달라는 프랑켄슈타인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월튼이 괴물에게 연민을 갖는 이유는 괴물이 가졌던 공포, 두려움, 외로움 등을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괴물은 호소한다. 


300.

모든 인간들이 내게 죄를 저질렀건만 왜 나만이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친구를 무례하게 내쫒은 펠릭스는 왜 미워하지 않는 건가? 자기 자식을 구해 준 은인을 죽이려 든 농부는 왜 비난하지 않는 건가? 그래, 그들은 선하고 순결한 존재들이지! 나, 바침하게 버림받은 나는 멸시당하고 쫒겨나고 짓밟히는 실패작이고, 지금도 부당하게 당한 기억을 떠올리면 피가 끓는다. 


이 울부짖음,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죄인이 되어야 하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 계층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고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돈이 없으면 변호사를 구할 수 없고, 부당 해고와 산업재해로 인해 무릎이 꺾이고 멸시를 당하고 외면을 당하는 이들은 늘 그들이다. 


159.
나는 괴물, 인간들이라면 마땅히 도망치고 멀리해야 하는 지상의 오점인 걸까? 

 


현재, 세상은 인공지능 개발로 신인류를 창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인간의 존재 가치에 찍는 물음표의 숫자도 더불어 늘어나고 있다. 멀지 않은 시간 안에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범죄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듯 싶다.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창조한 피조물은 현대 인류에게 경종을 울린다. 다가올 세상에 범람할 기계가 복수에 미쳐 날 뛰게 될지, 조화롭게 살아갈지의 여부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200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나온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무엇보다 삽화가 압도적이다. 이미 메리 셸리의 작품을 읽은 독자라 하더라도 내용의 긴장감을 더해 주는 삽화의 매력을 무사하지 못할 듯 싶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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