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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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코로나19의 급진적인 확산으로 인류는 재난영화 한가운데에 서있다. 마스크와 소독제는 필수품이 되어버렸고 최대한 접촉을 삼가하며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다. 반가운 사람과 만나도 악수와 가벼운 포옹조차 결례가 되어버린 세상.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놓쳐버릴 수 있는 위기와 마스크를 비롯한 일회용품의 증가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는 극에 달하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7.5년 후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인류는 지구 온난화로 소설에 등장하는 재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Apocalypse 끝과 시작 
 
먼 행성계에서 발견된 의문의 우주 거주구 3420ED에 탐사하러 갔던 '나'는 1천년 이상 지난 인공구조물과 현재에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기술 문명을 보유한 곳으로 보이며 유기물 한 줌 없는 그곳에서 기계들에게 붙잡힌다. 기계들의 리더 셀은 '나'를, 자신들을 구출하러 온 라이오니라고 믿는다. '나'는 다른 기계들을 통해 3420ED는 월등한 생명공학 기술을 보유한 불멸의 도시로 자신들의 건강한 복제를 계속해서 생산하고 교체하는 방식으로 외부와는 단절한 채 수백 년간 번영했던 곳임을 알게된다. '나' 역시 주형 복제 시스템을 통해 태어난 로몬이다.
(최후의 라이오니 / 김초엽)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대륙은 없고, 살 수 있는 곳이라고는 두 대륙 사이의 여명 지대 뿐인 행성에서 고래라고 이름붙인 거대한 동물만이 육지를 대신하고 있다. 감염을 두려워해 서로가 이방인을 받아주지 않던 차에 떠내려온 다른 고래의 등에 올라타 탐사를 하던 세 사람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고립되고 표류한다.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난 빙산에 내리고 그곳에서 처음 이 행성에 도착한 조상의 시신과 용품들을 발견한다. 이제 화자는 희망을 부여잡고 자신의 글을 미래의 후대가 읽어주기를 바라며 펜을 잡는다.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 듀나) 
 
31.
죽음에 기생하여 생명을 이어가는 삶의 방식. 
 
35.
공포와 불안이 퍼지자 질병보다 빠르게 그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 폭력은 감염병보다 빠르게 전파되었다. 

 
 
 
 
Contagion 전염의 충격 
 
코로나 확산으로 더이상 서울에서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무작정 시골로 향한다. 그 대열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미정은 걸어걸어 여주에 도착하고 어느 상가 건물에서 은색이 찬란한 작은 스테인레스 상자를 주워 가방에 넣은 후 그 건물에서 잠이 든다. 이후 잠이 들고 눈을 뜰 때 마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유경을 다시 만나다니... .
(미정의 상자 / 정소연) 
 
전염병이 창궐하고 팬데믹 체제로 변한 도시. 항체 미보유자는 출입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하는 식량을 배급받는다. 이 배급을 맡은 이들은 항체를 보유한 자원 봉사자다. 감염으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안락사 후 화장시켜 가족에게 돌려보낸다. 빈 집은 계속 늘어나고 황폐해진 도시는 도둑조차 없다.
(그 상자 / 김이환) 
 
  
 
 New Normal 다시 만난 세계 

 
세상은 전염병과 지구 환경 오염으로 인해 새로운 체제로 구축되었다. 
 
동료와 함께 하는 가벼운 술 한잔의 여유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신하고 식사는 언감생심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문자 표기법이 바뀌고 우리가 소소한 행복으로 여겼던 평범한 행위들이 역사로 남게 되었다. 후대는 이러한 역사를 불편해 한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 배명훈) 
 
언콘택트 시대. 태아를 배양해 아이를 낳고, 연애도, 산책도, 가족과의 만남도 온라인 가상 세계에서 실현한다. 전염병과 지구 온난화로 예측할 수 없는 이상 기후와 자연현상 등으로 바깥 세상은 위험천만이다. 인류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다.
(벌레 폭풍 / 이종산)  
 
195.
당신은 오랫동안 모범적인 수감 생활을 했기에 사면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 소설집을 2년 전에 만났다면 별 생각없이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창궐로 이제 재난 소설은 더이상 소설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무엇보다 네 편의 소설은 지금 당장 현실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만큼, 그리고 예언서처럼 읽힌다. 집 앞에 놓인 비대면 배달 음식을 먹고, 온라인으로 연애하고, 가상 세계를 현실 세계화 하고접촉을 죄악인양 끔찍해하며 문자 표기는 점점 최소화한다. 탄생에 대한 축복도 없고, 망자에 대한 애도도 없다. 인공지능이 늘 곁에서 다역을 맡아 주고 있으니 친구도, 가족도 필요 없다. 이 허구의 이야기들이 점점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는 사실이 두렵고 슬프다.  
 
빙산에 갇혀서 희망을 써내려가는 소녀, 연인과 결혼하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문 밖으로 나오는 포포처럼 우리가 지금보다 더 인간다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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