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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사랑도 슬픔도 느낄 수 없는, 감정없는 영원한 평온.
모든 감정에서 해방된 순수한 평온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2017년 9월 24일, 한 남성은 자신이 몰고 가던 승용차로 보행자 전용도로에 진입해 보행자 십여 명을 들이받은 후 이어 백화점 벽과 충돌하고 쇠지레를 이용해 시민과 백화점 내 이용객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살해하며 9층 테라스까지 올라가 난간에서 '천사 님'을 외치며 뛰어내려 즉사했다. 그는 향정신성 약물 중독자다.
9년 전, 추락사로 위장한 살인 사건을 동료와 추적하던 형사 진자이 아키라는 범인들의 함정에 빠져 현장에서 동료가 죽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범인 다섯 명을 총으로 사살하고 도주했다. 현재 그는 실종선고를 거쳐 법률상 사망자로 등록되어 있다.
사건 해결은 고사하고 날품팔이로 하루 벌어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진자이를 찾아온 형사 시절 상사였던 기자키 헤이케스는 누군가를 만나달라고 부탁한다. 기자키의 부탁으로 만난 사람은 후생노동성에서 근무하는 미즈키 쇼코, 마토리 즉 마약 단속관이다. 그녀는 진자이 앞에 신종 합성 약물 알갱이 두 개를 내놓는다. 일명 '스노우 엔젤'이다.
경찰과 마토리와 접점이 없는 인물을 찾던 미즈키는 기자키에게 추천을 받아 진자이를 찾아온 것이고, 스노우 엔젤의 유통업자에게 접근하여 마약조직단의 우두머리인 하쿠류 노보루와 연류된 증거를 확보해달라는 협력을 구한다. 미즈키로부터 가능한 정보를 받은 진자이는 말단 마약 판매상 이사 도모히코를 미행하고 약물 중독자로 위장해 접촉한다. 몇 차례의 만남으로 진자이에게 호의를 보이는 이사는 콤비로 함께 일하자며 운반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하고, 진자이는 받아들인다.
125.
마치 혼이 육체의 속박을 벗어난 것 같은 부유감.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와 있는 듯한 비현실감. 신이나 천사를 보았나 싶은 환각, 길고 고된 수행을 계속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숭고한 경지에 도달했나 싶은 더 없는 행복...... .
이사를 따라다니면서 마약이 일반 서민들에게 깊숙이 퍼져있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면서 낙담한 진자이. 어느날 이사는 진자이를 데리고 약물 중독 갱생 시설에 가고, 그곳에서 정부가 약물 중독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또한 이사를 통해 마약 시제품은 인체 실험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위험이 그대로 노출되어 심각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사가 '스노우 엔젤' 제조업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를 확인한다. 한편 진자이는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해 함정수사를 명분으로 일반 시민에게 약물을 파는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다.
184.
아무리 흑막을 검거하기 위해서라지만, 시민에게 위법한 약물을 파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사와 콤비를 이루고 한 달이 넘은 연말 어느날, 진자이를 의심한 이사는 진자이에게 '스노우 엔젤'을 권하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결국 약을 먹게 된다. 더없는 행복, 천국을 경험한 진자이. 그가 깨어나자 이사는 의심을 거두고 '최후의 레시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이틀 후 진자이는 빼돌린 '스노우 엔젤' 한 알을 미즈키에게 넘기고 그가 약물 후유증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샤로노프 박사의 '최후의 레시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만 하루만에 금단현상이 나타난 진자이는 스스로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수없이 플래시백을 반복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아쿠류의 꼬리를 잡았다. 이에 미즈키 쇼코는 함정수사를 통해 일당을 현장에서 검거하기 위해 엄청난 대사기극을 제안한다.
인체에 무해하지만 완전한 의존물질로써 한 번 복용하면 절대 끊을 수 없으며 사람들의 정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전설의 마약 '최후의 레시피', '스노우 엔젤'을 독점하는 자는 세상의 왕이 될 수 있다.
진자이의 기시감. 그리고 믿고 싶지 않은 범인의 실체!

수사 도중 과잉방어로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한 형사가 9년 후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마약 범죄에 이끌리듯 개입되면서 소설은 마지막 반전을 향해 전개된다. 소설은 사이마다 독자가 한 번 쯤 생각해볼 만한 물음표와 메세지를 던져 준다.
비록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으나 한때 경찰로서의 소명감을 잃지 않고 있는 진자이는 아무리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서라지만 시민에게 마약을 팔고 스스로 마약을 복용하는 상황에 갈등하고 회의를 느낀다. 악을 막기 위해 스스로 악인이 되는 것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 이것은 독자에게 던지는 윤리적 딜레마일 것이다.
소설에서 정부는 국가 재정을 위해 보통은 범죄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를 합법화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카지노다. 음지로 흘러드는 돈을 양지로 끌어와 국가 재정에 보탬이 되게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국민을 대상으로 도박을 합법화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합법적인 카지노가 있고, 그로인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도박을 통해 국가의 재정을 보충한다는 설명은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한다는 발상을 전제한다. 이러한 논리는 권력자가 국가를 자신과 동일시 하는 굉장히 위험한 셍각이다.
등장인물 이사는 진자이에게 약물 범죄 박멸 방법 세 가지를 알려준다. 첫 번쩨는 교육, 두 번째는 담배 금지, 세 번째는 약물 구매자 엄벌이다. 그리고 약물 중독자에 대한 국가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왜일까?
소설의 마지막장은 덮었지만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난 진자이, 그리고 스치듯 지나가지만 독자의 머릿속에 여운이 남아있는 두 명의 인물들. 파트너를 죽인 범인은 아직 잡지 못했다. 진자이의 수사는 계속 될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