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바스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 안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국립오케스트라 단원인 서른다섯 살의 콘트라바스 연주자다. 그는 누군가를 향해 음악을 들려주면서 콘트라바스의 선율이 들리냐고 묻는다. 글쎄... 덩치만큼이나 묵직한 저음을 자랑하는 바스의 선율을 첼로와 구별해낼 수 있는 청중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다. 남자는 오케스트라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악기는 바스라고 자신한다. 바스야말로 음악의 골격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남들이야 뭐라하건 본인 생각이다. 
 
7.
콘트라바스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상상할 수 없어요. 바스가 반드시 끼어 있어야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제1바이올린이나 관악기는 없어도 됩니다. 북이나 트럼펫이 없어도 되고요. 이런 건 다 없어도 됩니다. 하지만 바스는 없으면 안됩니다.  
 
이 남자, 활을 긋고 피치카토로 연주하면서 현마다 음을 들려주며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시시때때로 음율을, 소리를 들었냐고 재차 확인한다. 그런데 홀짝홀짝 마신 맥주 탓일까, 이제는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콘트라바스의 주체할 수 없는 부피와 무게, 그에 따른 연주자의 체력 소모, 길고 큰 활로 인한 연주 기법의 불편함, 습기와 온도에 유달리 약한 특성, 이 덩치를 끌고 다니면 여자와 데이트하기도 힘들다는 것까지 구구절절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바스와 궁합을 맞는 악기나 성악가를 찾기는 쉽지 않고 정작 해보고 싶은 것은 실내악인데, 실내악에서 바스는 객원으로 가능할 뿐 상시 연주자는 필요하지 않다. 오케스트라 내에서도 바스 연주자는 연습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들이 열심히 연습하는지조차 관심도 없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스는 맨바닥과도 같은 존재다.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은 나오고 특별한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해고될 일도 없다. 그야말로 철밥통이다. 하지만 존재감없이 월급을 받으며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괴감은 남자의 고뇌를 깊게 한다. 남자는 자기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면 바스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뿐 재능이 있었다면 아마도 바이올린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70.
어쨌든 저는 절대로 잘리지 않습니다. 내키는 대로 연주하건 말건 잘리지 않습니다. 부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그게 바로 위험 요소입니다. 
 
남자는 사라라는 성악가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존재조차 잘 모른다. 메조소프라노인 사라의 노래에 반주를 해주는 상상만으로도 기쁜데, 실제로 바스는 음 영역대가 맞지 않아 그것도 어렵다. 남자는 결심한다. 자신의 존재를 과감하게 알리기 위해 큰무대에서 "사라!"를 외치며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멋지게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겠다고. 그런데 할 수 있을까? 






 
 


마치 한 편의 1인극을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책을 읽었다. 이 남자의 허세에 헛웃음이 나기도 하고, 툴툴거리며 내뱉는 불평들이 귀엽기까지 했으며, 소심함에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다들 알다시피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를 대표하는 악기는 바이올린이다. 퍼스트 바이올린 수석이 오케스트라 단원을 대표할 만큼 바이올린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콘트라바스는 모든 공연에 연주되지 않는다. 그러나 화자의 말처럼 바스가 갖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든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만 할 수는 없다. 세컨드 바이올린이 멜로디의 선율에 아름다운 화음을 넣어주고 비올라와 연결 고리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크고 작은 고리들이 연결되어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무엇이든 경중은 있을 수 있지만 그에 대한 가치는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타인의 삶을 경시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8년 4월 8일 평온한 일요일 오전, 사이타마현 고나가와의 시티가든 쇼핑몰 스완에서 11시부터 정오까지 1시간 동안 무차별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오타케 야스카즈와 니와 유키즈로 범행 후 자살했다.  

스물한 명의 사망자를 낸 잔혹한 사건, 그중 스카이라운지에서 유일하게 부상없이 살아남은 열일곱 살 소녀 이즈미. 사건 당시 같은 장소에서 한쪽 눈에 총을 맞고 실명한 이즈미의 동급생 고즈에에 의해 이즈미가 살인마 니와 유키즈의 지시대로 다음 살해 대상을 선택했다는 게 폭로되면서 비난의 화살은 그녀에게 꽂힌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10월 어느날, 이즈미는 법률 사무소 변호사 도쿠시타 소헤이로부터 초대장을 받고 모임 장소로 나간다. 그곳에는 '스완' 사건 당일 총격으로부터 살아남은 다섯 명이 자리하고 있다. 이 모임은 그날 사망한 노부인 요시무라 기쿠노 씨의 아들 요시무라 히데키가 주최하며 변호사 도쿠시타에게 의뢰한 것으로써 어머니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모임을 수락한 다섯 명에게는 기본적인 수수료와 진실을 밝힐 때 마다 보너스가 지급된다.  

피해자에서 한순간에 악인이 되어버린 이즈미, 모임 첫날부터 묵비권을 행사하며 모인 사람들을 조롱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하타노, 정의감에 불타는 노인 호사카, 알고 있는 사실을 정확히 말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중년 여성 이쿠타, 그리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불안해 보이며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도산. 그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503.
너도 마찬가지였어! 살기 위해 남을 방패막이로 삼는 녀석이었어! 내가 즐기려고 사람들을 죽인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하지만, 그래. 꼭 너만 그런 건 아니야. 모두 자신만 생각하며 기회와 능력, 필요만 있으면 남을 죽이지. 타인 따위 벌레처럼 짓밟지. 그래. 그게 바로 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이야. 부끄러할 필요 없어. 네가 옳아. 1밀리미터도 의심할 것 없이 옳아.

죽기 직전, 니와 유즈키의 외침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전작 <도덕의 시간>에서 독자를 도덕적 딜레마에 빠트렸던 오승호 작가가 이번에는 신작 <스완>을 통해서 선과 악의 부조리에 대해 묻는다.  

이 소설에서 진정한 악인은 누구이며 의인은 누구일까?

각자의 눈앞에 총부리가 정조준 되어 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앞다투어 도망간다.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목숨을 담보로 한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여론과 언론은 역지사지와 이해가 없는, 결과만으로 비난을 쏟아낸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어야 옳았을까? 애당초 악인은 사건의 범인들이다. 그러나 악을 비난하는 화살은 자살한 범죄자가 아닌 그저 봉급생활자일 뿐인 경비원들과 기적적으로 생존한 이즈미에게로 향한다. 살아있다는 것이 죄인가? 사람들은 스물한 명이 사망한 사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쏟아내야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는 악이 존재함으로써 선이 증명되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정의와 선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하며 입을 모아 이즈미를 비난하지만, 과연 세상은 선의에 동조할까?

사실 우리는 선의보다 악의에 더 관심이 많다. 매일 쏟아져나오는 뉴스에는 선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도는 거의 없다. 세상에 선의가 없어서일까? 그건 사람들이 악의에 더 열광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고즈에와 이즈미는 주인공 오데트가 아닌 훅조 오딜을 서로 연기하겠다고 경쟁한다. 순결한 사랑을 상징하는 오데트는 오딜이 있기에 빛날 수 있다. 세상은 허구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악마와 천사처럼 흑과 백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 같은 상황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선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의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허물에 대해서 함부로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가능한한 악의를 누르고 선의를 선택하며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주변에 있는 이들의 모습이 우리 자신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번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비난 이전에 그 고통을 서로가 이해하고 위로해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프카의 편지 -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개정판 카프카 전집 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변난수.권세훈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프카가 사유했던 삶과 문학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 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그리스 정부 사이에 체결된 협약으로 에게해 위의 섬들 가운데 소아시아에 가장 가까운 섬(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은 '핫 스폿hot spot'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 지위란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그리스 해안으로 접근하는 수천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장소다. 이 핫 스픗의 공식 명칭은 '1차 접수 시설'이고 난민들은 이 섬을 통과해서 발칸반도나 북유럽 등지로 가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현재 유럽 최대 난민 수용 캠프는 레스보스섬 모리아다. 이곳에서는 난민 보호와 치안을 명목으로 해안 경비대와 프론텍스 파견 정찰함, NATO 소속 선박들이 무자비한 폭력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을 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치안이란 누구를 위한 치안인가? 물론 유럽을 보호하기 위한 치안이다. 난민들이 천우신조로 살아남아 육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약없는 기다림,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 범죄에 노출된 위험, 부족한 식량과 물자와 전기, 그리고 비리와 부정부패. 희망을 갖고 목숨을 담보로 자국을 탈출했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유럽연합과 그리스 정부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수용소 사령관은 난민들을 적절하게 재우고 먹이는 데 필요한 자원 공급을 거부하는 그리스 정부에 책임을 넘기고,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 지원이 따라주지 않는다면서 유럽연합 쪽을 비난한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관료들은 그리스 행정부의 무기력과 무관심을 탓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5년간 10억 유로가 넘는 지원금을 그리스 당국에 송금해 주었으므로 세간의 비난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그 지원금은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그리스는 왜 그들의 입장에서 골칫덩이에 불과한 '핫 스폿' 지정 철회 요청을 하지 않을까?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1948년 제정된 세계 인권선언문 제14조에는 "박해 앞에서, 모든 사람은 다른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으로 망명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전 세계 193개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이 문헌에 서명했다. 그리고 협약문에는, 체결국은 난민 보호를 보장하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국제 협약 이행을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음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인종, 종교, 출신국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며 자국의 영토에 들어온 난민을 국가 안위 또는 공공의 안녕을 위한 이유가 아니고는 추방할 수 없음을 밝힌다. 따라서 현재 레스보스 섬의 난민들에게 망명을 신청할 권리조차 주지 않는 것은 인권 침해다.  


무엇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이들이다. 공식적인 수용소든 비공식적인 텐트촌에 있든, 난민 아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어린이 고유의 활동'을 전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동반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들의 경우에는 성폭력 범죄에까지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아동 관련 협약은 동반 보호자 없는 아동들은 어른들과 분리된 곳에서 잠을 자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당연히 지켜지고 있지 않다.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하는 파트리스 만수르는 이렇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을 '낭비'라고 표현했다. 유치원도, 학교도 없고 언어 소통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그럼에도 유엔인권이사회는 아동 권리 협약 체결 30주년을 요란스럽게 자축했다고 한다. 누구에게 보내는 축하인가? 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아동 학대의 참혹한 실태를 외면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유엔난민기구는 1919년에 베르사유 조약과 국제연맹 헌장의 결실로 창설되어 처음에는 난민지원센타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제네바 국제연맹사무국 부속 기구였다. 1933년에 국제연맹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기구를 창설하여 난민고등판무소라고 명명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지구의 5대륙에 병참기지를 두고 있고, 유엔세계식량계획과 항구적인 공조 협약을 맺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 아주 엄격한 틀로 규정되어 있다면, 난민고등판무관의 독립성은 거의 전적으로 보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 지글러는 모리아를 비롯한 핫 스폿 전역에서 자행되는 현장에 난민고등판무관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난민고등판무관은 난민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며, 에게해 핫 스폿을 비롯해서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눈 멀고 귀 먹은 관료들과 시급히 맞서 싸우라고 일갈한다. 


장 지글러는 더 나아가 1951년 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경제 이주민'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그것도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현재에 국가가 가난해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떠나온 사람들도 난민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 국가의 기근을 다른 나라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없다. 그러나 현재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가해자는 경제 선진국이며 그 피해는 대체로 가난한 나라가 입는다. 공정하지 못한 게임에 가까운 FTA는 빈부격차를 늘리며 개발도상국의 빈민층을 나락으로 몰고 있다. 먹이사슬처럼 이어진 국가 간 경제가 기근 난민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핫 스폿은 유럽연합의 기구들과 각 회원국이 협조하여 대외 국경 지역에서 망명 신청자들의 일차적인 접수, 신원 확인, 명부 작성, 지문 채취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핫 스폿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영토에서만 운영 중이다. 단 그 외 국가에서 요청하거나 유럽 위원회에서 운영국에 보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핫 스폿을 설치할 수 있다.' 

(유럽 의회)  
 
그러나 장 지글러는 말한다. 


우리 유럽 민족은 반反난민 국가들에게 제공되는 지원금의 즉각적인 중단을 관철시켜야 한다.
우리는 유럽 대륙 어디에서나 보편적 망명권이 엄중하게 존중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핫 스폿을,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건, 즉각적이고 결정적으로 폐쇄할 것을 요구한다.
그곳이 바로 유럽의 치부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 미국은 종교 박해를 피해 나라를 떠난 난민들이 세운 나라다. 우리나라 역시 전쟁의 폐허에서 국제 사회의 지원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18년 예멘인 500명 넘는 인원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관심 밖이었던 난민 문제에 대한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당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결과를 떠나서 대부분의 정서가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자 나름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놓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스스로, 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지, 난민 문제가 온전히 당면한 문제가 아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난민에 의한 범죄율 증가 등 가짜 뉴스에 휘말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난민을 수용할 시 우려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객관화시켜서 판단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우리도 난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홍수와 가뭄, 폭설, 폭염 등 이상 기후와 코로나19처럼 전 세계를 잠식하는, 영화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전염병으로 더이상 세계에서 안전 지대는 없다.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된다면 지구는 7.5년 안에 아주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학계 보고가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구라도 난민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지금 핫 스폿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지켜야하는 것이 바로 인권, '인간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77.
나 자신이이처럼 인간성이 상실된 현장의 직접적인 책임자는 아니지만, 유럽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니 이제까지 침묵한 한 인간으로서, 나 역시 이처럼 참혹한 광경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가담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능력을 인정받는 변호사 솔렌은 예상치 못한 판결을 받고, 의뢰인은 법정을 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눈앞에서 7층 난간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그로인한 충격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끊어지듯 자책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솔렌에게 정신과 의사는 우울증과 '번아웃 증후군'을 진단하며 약 처방과 봉사활동을 권유한다. 도저히 로펌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은 그녀는 의사의 말대로 자원봉사를 검색해보고 마침 '글쓰기 자원봉사'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솔렌이 희망했던 직업은 작가. 그러나 법학과 교수였던 부모는 딸이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와 콜레트를 꿈꿨지만 부모의 반대로 결국 법학을 전공해 변호사가 된 솔렌. 구미가 당긴 그녀가 용기를 내 찾아간 곳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고 면접 담당자인 레오나르가 제시한 곳은 여성 전용 쉼터다. 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기대감에 차있는 레오나르도의 눈빛을 보자니 차마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아 승낙한다. 


'여성 궁전'이라 불리는 여성 전용 쉼터에서 대필 작가 자원봉사 첫날. 낯선 장소가 부담스러워 구석 한쪽에 앉아 있는 솔렌을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다가 문득 주머니에서 발견한 젤리 반쪽. 쉼터에 거주하는 꼬마가 건네준 젤리 반쪽을 보면서 그 아이에 대해 궁금해졌고 다음주에 하루 더 가보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들에게 다가가고자 마음을 먹은 솔렌은 휴게실 정중앙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다가온 한 여성이 영수증을 내밀며 마트 계산원이 잘못 계산한 2유로를 환불해 달라는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한다. 고작 2유로를 돌려받기 위해 편지를 써달라고 하다니... . 그제서야 솔렌은 자신이 사회의 한 단면만을 보아왔으며 편협된 사고를 갖고 있다는 새살을 깨닫는다. 영수증을 내민 여자의 편지를 대필하면서 솔렌은 자기 자신을 향한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목요일 아침, 얼마 전 결별한 연인 제레미가 솔렌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들었고 마침내 다른 여성과 결혼해 두 살가량의 아이까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옛 연인을 보게 된다. 그의 옆에 있어야 할 사람도, 천사처럼 예쁜 아이의 엄마도 왜 내가 아니란 말인가. 솔렌은 쓰라린 상처를 잊기 위해 일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아들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여인의 사연까지 보태져 울음을 떠뜨리면서 제레미와의 지난날을 하소연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로 하나둘 모여드는 여자들. 누군가는 따뜻하고 달콤한 차를 가져다주고, 누군가는 가슴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녀들이 솔렌에게 내린 처방전은 줌바 댄스 강연이다. 


솔렌은 줌바 댄스 강연이 끝나고 안내 데스크 직원 살마의 권유로 작은 식당에서 여성 궁전 직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살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일주일 후 쉼터의 모든 사람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생티아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솔렌에게 횡포를 부리고 그 과정에서 노트북이 부숴져 솔렌은 어쩔 수 없이 종이와 연필을 사용하게 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필을 의뢰하고 그녀는 여성 궁전에 늦게까지 머무르거나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 잦아진다. 쓰는 글의 양이 많아지면서 솔렌은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더불어 그들과 차와 이야기를 나누고, 줌바 댄스 강습에 참여하면서 쉼터 여성들에게 익숙해질 뿐만 아니라 함께 한다는 온기와 기쁨의 감각을 느낀다. 


어느날 솔렌은 이리스로부터 연애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그녀의 과거와 줌바 댄스 강사 파비오를 향한 마음을 듣는다. 그리고 진심을 끌어올려 써내려간 이리스의 시에서 진정성을 느낀다. 한때 소설을 쓰고 싶었던 솔렌. 상상만으로 매혹적이지만 환상으로만 존재했던 소설쓰기가 가능할까? 솔렌은 가능성이 있는 길만 선택하며 살아왔기에 실패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다. 기본 문법조차 부족한 이리스가 시를 쓰는 모습에서 솔렌은 자신의 비겁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다가 벼락처럼 솔렌을 덮친 위기.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솔렌은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연락이 닿지 않는 그녀를 찾아온 레오나르에게 자신이 자원봉사를 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그의 경청에 홀가분함과 위로를 얻는다.


얼마 전부터 솔렌의 눈에 들어온 노숙인 릴리. 제빵 재능이 있는 열아홉 살 릴리를 위해 솔렌은 펜을 쥐고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릴리가 여성 궁전에 정식으로 입소하는 날, 솔렌은 여성궁전을 들러보다가 드디어 자신이 써야할 소설의 주인공을 발견한다. 바로 그녀다. 







소설은 현재 파리와 1925년부터 33년까지, 두 시간적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유하고 엘리트 집안에서 실패를 모르고 성공만 추구하며 달려온 솔렌. 그 길에는 오로지 변호사로서의 성공을 우선으로 두었기에 꿈도, 사랑도 모두 한쪽으로 밀어놨었다. 성공만 하면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것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러나 한 번의 실패로 무너져버린 솔렌의 곁에는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도, 명성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다 정신과 의사의 처방으로 우연히 자원봉사를 나가게 된 '여성 궁전'. 그곳에는 가정폭력과 여성 학대, 전쟁 등으로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여성들이 있었다. 


솔렌에게 전단지를 읽어달라고 하고 영국 여왕에게 사인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써달라며 떼를 쓰는 크베타나는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손뜨개질로 좌판을 하는 비비안은 중산층 계급의 유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남편의 가정폭력은 살인적이었다. 고향 기니에서 네 살 때 할례를 당해 딸에게는 같은 폭력이 가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온 빈타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산다. 내면에 쌓인 결핍과 분노로 인해 사사건건 시비와 다툼을 일으키는 생티아, 전쟁을 피해 아프카니스탄을 떠난 살마, 가족으로부터 존재를 거부당한 트랜스젠더 이리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잠들지 말아야했고 걸어야했던 15년간의 노숙 생활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없게 된 라 르네.  


전쟁에서 가장 취약한 대상은 어린아이와 여성이다. 법을 이기는 오래된 악습의 피해자도 여성이다. 강간 등의 성폭력으로 임신한 여성을 향하는 것은 고통 분담과 위로가 아닌 손가락질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다시 설 수 있는 힘을 앗아가는 건 빈곤이다. 가난이야말로 그들이 새롭게 시작할 힘을 앗아간다. 


유복했던 어린시절부터 변호사가 된 이후까지 가난과 직접적으로 대면해 본적 없는 솔렌은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여성에게 가해지는 참혹함을 보게 되지만, 더불어 그들의 진정한 연대를 만나고, 그곳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삶에서 살아있음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그리고 솔렌은 용기를 내어 청소년 노숙자인 릴리에게 손을 내민다. 이제 행동할 때다.


19세기 후반, 스무 살에 구세군 사관 생도가 되어 일생을 여성과 취약 계층을 위해 살다간 블랑슈가 있다. 그녀는 구세군 사역에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하면서 약혼까지 파혼한다. 그런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알뱅은 그녀의 사역 인생에 가장 충실한 조력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준다. 1926년에 문을 연 여성 궁전을 세우기까지, 블랑슈가 세상과 싸운 과정은 전투를 치르는 전사와 흡사하다. 그녀가 여성을 향해 가졌던 소명의식은 현재 여성 궁전을 지키는 사람들과 솔렌의 펜 끝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전쟁 난민에서 여성 궁전의 직원이 되어 누구보다 입소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살마처럼 세상에는 작은 기적들이 맞물려 선순환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솔렌이 레오나르와 여성 궁전의 사람들을 만나 변화했듯 우리는 더 넓은 연대와 공감을 이룰 수 있는 변화를 꿈꿔야 할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