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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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인정받는 변호사 솔렌은 예상치 못한 판결을 받고, 의뢰인은 법정을 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눈앞에서 7층 난간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그로인한 충격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끊어지듯 자책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솔렌에게 정신과 의사는 우울증과 '번아웃 증후군'을 진단하며 약 처방과 봉사활동을 권유한다. 도저히 로펌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은 그녀는 의사의 말대로 자원봉사를 검색해보고 마침 '글쓰기 자원봉사'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솔렌이 희망했던 직업은 작가. 그러나 법학과 교수였던 부모는 딸이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와 콜레트를 꿈꿨지만 부모의 반대로 결국 법학을 전공해 변호사가 된 솔렌. 구미가 당긴 그녀가 용기를 내 찾아간 곳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고 면접 담당자인 레오나르가 제시한 곳은 여성 전용 쉼터다. 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기대감에 차있는 레오나르도의 눈빛을 보자니 차마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아 승낙한다. 


'여성 궁전'이라 불리는 여성 전용 쉼터에서 대필 작가 자원봉사 첫날. 낯선 장소가 부담스러워 구석 한쪽에 앉아 있는 솔렌을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다가 문득 주머니에서 발견한 젤리 반쪽. 쉼터에 거주하는 꼬마가 건네준 젤리 반쪽을 보면서 그 아이에 대해 궁금해졌고 다음주에 하루 더 가보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들에게 다가가고자 마음을 먹은 솔렌은 휴게실 정중앙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다가온 한 여성이 영수증을 내밀며 마트 계산원이 잘못 계산한 2유로를 환불해 달라는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한다. 고작 2유로를 돌려받기 위해 편지를 써달라고 하다니... . 그제서야 솔렌은 자신이 사회의 한 단면만을 보아왔으며 편협된 사고를 갖고 있다는 새살을 깨닫는다. 영수증을 내민 여자의 편지를 대필하면서 솔렌은 자기 자신을 향한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목요일 아침, 얼마 전 결별한 연인 제레미가 솔렌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들었고 마침내 다른 여성과 결혼해 두 살가량의 아이까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옛 연인을 보게 된다. 그의 옆에 있어야 할 사람도, 천사처럼 예쁜 아이의 엄마도 왜 내가 아니란 말인가. 솔렌은 쓰라린 상처를 잊기 위해 일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아들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여인의 사연까지 보태져 울음을 떠뜨리면서 제레미와의 지난날을 하소연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로 하나둘 모여드는 여자들. 누군가는 따뜻하고 달콤한 차를 가져다주고, 누군가는 가슴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녀들이 솔렌에게 내린 처방전은 줌바 댄스 강연이다. 


솔렌은 줌바 댄스 강연이 끝나고 안내 데스크 직원 살마의 권유로 작은 식당에서 여성 궁전 직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살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일주일 후 쉼터의 모든 사람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생티아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솔렌에게 횡포를 부리고 그 과정에서 노트북이 부숴져 솔렌은 어쩔 수 없이 종이와 연필을 사용하게 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필을 의뢰하고 그녀는 여성 궁전에 늦게까지 머무르거나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 잦아진다. 쓰는 글의 양이 많아지면서 솔렌은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더불어 그들과 차와 이야기를 나누고, 줌바 댄스 강습에 참여하면서 쉼터 여성들에게 익숙해질 뿐만 아니라 함께 한다는 온기와 기쁨의 감각을 느낀다. 


어느날 솔렌은 이리스로부터 연애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그녀의 과거와 줌바 댄스 강사 파비오를 향한 마음을 듣는다. 그리고 진심을 끌어올려 써내려간 이리스의 시에서 진정성을 느낀다. 한때 소설을 쓰고 싶었던 솔렌. 상상만으로 매혹적이지만 환상으로만 존재했던 소설쓰기가 가능할까? 솔렌은 가능성이 있는 길만 선택하며 살아왔기에 실패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다. 기본 문법조차 부족한 이리스가 시를 쓰는 모습에서 솔렌은 자신의 비겁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다가 벼락처럼 솔렌을 덮친 위기.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솔렌은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연락이 닿지 않는 그녀를 찾아온 레오나르에게 자신이 자원봉사를 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그의 경청에 홀가분함과 위로를 얻는다.


얼마 전부터 솔렌의 눈에 들어온 노숙인 릴리. 제빵 재능이 있는 열아홉 살 릴리를 위해 솔렌은 펜을 쥐고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릴리가 여성 궁전에 정식으로 입소하는 날, 솔렌은 여성궁전을 들러보다가 드디어 자신이 써야할 소설의 주인공을 발견한다. 바로 그녀다. 







소설은 현재 파리와 1925년부터 33년까지, 두 시간적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유하고 엘리트 집안에서 실패를 모르고 성공만 추구하며 달려온 솔렌. 그 길에는 오로지 변호사로서의 성공을 우선으로 두었기에 꿈도, 사랑도 모두 한쪽으로 밀어놨었다. 성공만 하면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것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러나 한 번의 실패로 무너져버린 솔렌의 곁에는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도, 명성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다 정신과 의사의 처방으로 우연히 자원봉사를 나가게 된 '여성 궁전'. 그곳에는 가정폭력과 여성 학대, 전쟁 등으로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여성들이 있었다. 


솔렌에게 전단지를 읽어달라고 하고 영국 여왕에게 사인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써달라며 떼를 쓰는 크베타나는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손뜨개질로 좌판을 하는 비비안은 중산층 계급의 유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남편의 가정폭력은 살인적이었다. 고향 기니에서 네 살 때 할례를 당해 딸에게는 같은 폭력이 가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온 빈타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산다. 내면에 쌓인 결핍과 분노로 인해 사사건건 시비와 다툼을 일으키는 생티아, 전쟁을 피해 아프카니스탄을 떠난 살마, 가족으로부터 존재를 거부당한 트랜스젠더 이리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잠들지 말아야했고 걸어야했던 15년간의 노숙 생활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없게 된 라 르네.  


전쟁에서 가장 취약한 대상은 어린아이와 여성이다. 법을 이기는 오래된 악습의 피해자도 여성이다. 강간 등의 성폭력으로 임신한 여성을 향하는 것은 고통 분담과 위로가 아닌 손가락질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다시 설 수 있는 힘을 앗아가는 건 빈곤이다. 가난이야말로 그들이 새롭게 시작할 힘을 앗아간다. 


유복했던 어린시절부터 변호사가 된 이후까지 가난과 직접적으로 대면해 본적 없는 솔렌은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여성에게 가해지는 참혹함을 보게 되지만, 더불어 그들의 진정한 연대를 만나고, 그곳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삶에서 살아있음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그리고 솔렌은 용기를 내어 청소년 노숙자인 릴리에게 손을 내민다. 이제 행동할 때다.


19세기 후반, 스무 살에 구세군 사관 생도가 되어 일생을 여성과 취약 계층을 위해 살다간 블랑슈가 있다. 그녀는 구세군 사역에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하면서 약혼까지 파혼한다. 그런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알뱅은 그녀의 사역 인생에 가장 충실한 조력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준다. 1926년에 문을 연 여성 궁전을 세우기까지, 블랑슈가 세상과 싸운 과정은 전투를 치르는 전사와 흡사하다. 그녀가 여성을 향해 가졌던 소명의식은 현재 여성 궁전을 지키는 사람들과 솔렌의 펜 끝에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전쟁 난민에서 여성 궁전의 직원이 되어 누구보다 입소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살마처럼 세상에는 작은 기적들이 맞물려 선순환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솔렌이 레오나르와 여성 궁전의 사람들을 만나 변화했듯 우리는 더 넓은 연대와 공감을 이룰 수 있는 변화를 꿈꿔야 할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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