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2 - 셜록 홈즈 130주년 기념 BBC 드라마 [셜록] 특별판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마크 게티스 외 엮음, 바른번역 옮김, 박광규 감수 / 코너스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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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커빌 가의 사냥개]

찰스 바스커빌 경의 의문의 죽음을 손에 쥐고 홈즈를 찾아온 그의 주치의 모티머 씨. 찰스 바스커빌 경의 죽음에 대해 공개된 사실은 이렇다. 찰스 바스커빌 경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바스커빌 저택 주변에 있는 산책로를 걷는 오래된 습관이 있었다. 그가 죽은 날에도 찰스 경은 늘 하던대로 야간 산책을 위해 저택을 나섰으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날씨가 축축했기 때문에 산책로를 따라 난 찰스 경의 발자국을 쉽게 추적할 수 있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찾아 나선 집사 배리모어는 산책로 끝에서 찰스 경의 시신을 발견했다. 사후 검시를 통해 밝혀진 사인은 고질병인 심장 질환에 의한 자연사였다. 신문기사를 들어 홈즈에게 여기까지 사실을 전달한 모티머 씨는 앞서 말한 바스커빌 가에 대대로 전해오는 저주를 상기시키며 찰스 경의 죽음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이야기한다. 찰스 경은 자신의 가문에 내려오는 끔찍한 운명을 믿고 있었고, 사건이 일어나기 3주 전쯤 밤에 저택의 입구에서 의문의 검은 짐승을 목격했으나 곧바로 사라졌으며, 무엇보다 시신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거대한 사냥개 발자국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모티머 씨가 홈즈에게 의뢰하는 것은 찰스 경의 죽음이 아니라 얼마 후면 미국에서 도착할 상속자 헨리 바스커빌 경에게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할지에 대한 조언이다.


헨리 바스커빌 경과 모티머 씨가 도착하고 헨리 경은 홈즈에게 '황야에서 멀어지라'고 쓰여진 협박 편지를 보여준다. 수신처가 노섬벌랜드 호텔이라고 되어 있는데, 헨리 경은 도착한 후에 호텔을 정했고, 그가 노섬벌랜드 호텔에 묵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영국에 도착한 후 별다른 일이 없었냐는 홈즈의 질문에 헨리 경은 호텔 방문 앞에 놓아둔 구두 한 짝이 사라졌다는 말을 전한다. 사건의 전후 사정을 모두 들은 헨리 경은 바스커빌 가의 저택에 갈지 여부를 두고 심사숙고 후에 결정을 내리겠다는 말과 함께 오후에 다시 만나자고 한 후 돌아갔다. 오후에 홈즈와 왓슨이 호텔에 도착해보니 이번에는 헨리 경의 다른 구두 한 켤레 중 한짝이 또 사라졌다. 신문 활자를 오려 만든 편지, 검은 턱수염의 미행자, 새로 산 갈색 구두 한 짝과 낡은 검은색 구두 한 짝 분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갈색 구두 한 짝. 헨리 경이 영국에 도착한 이틀 사이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홈즈는 헨리 경이 저택가로 가기로 한 결심에 찬성하고, 모티머 씨로부터 찰스 경의 많은 재산과 관련한 유산 상속 문제에 대해서 듣게 된다. 홈즈는 헨리 경에게 왓슨을 동행시킨다. 그리고 홈즈를 사칭하는 의문의 사나이.

헨리 경과 왓슨이 바스커빌 저택에 도착한 날 들은 첫 소식은 사흘 전에 흉악한 살인범 셀던이 탈옥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늦도록 잠이 들지 못한 왓슨은 여자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는고, 아침이 되어서 그 울음 소리의 주인공이 집사 배리모어의 아내였음을 눈치챈다. 찰스 경의 시신을 찾은 사람도, 헨리 경을 미행했던 사람과의 인상착의와도 비슷한 배리모어. 그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의심이 가는 부분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사건에 유독 관심이 많은 박물박사 스테이플턴, 왓슨을 보자마자 헨리 경으로 착각하고 오빠 몰래 다가와 곧장 이곳을 떠나 런던으로 돌아가라고 경고하는 스테이플턴의 여동생 베럴, 늙은 괴짜 이웃 플랭클랜드, 늦은 밤마다 창가에 서 있는 배리모어, 황야에서 들려오는 개가 짖는듯한 괴이한 소리, 찰스 경이 죽기 전에 만나기로 약속한 L.L이라는 이니셜의 여성, 그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 그리고 헨리 경의 옷을 입은 채 절벽에서 추락사한 탈옥범 셀던. 드디어 현장에 나타난 셜록 홈즈, 그리고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는 진실!



[마지막 문제]

천재 수학자이자 대학교수인 모리아티는 좋지 않은 소문이 퍼져나간 탓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런던으로 와서 육군 교관으로 일을한다. 그러나 악마적인 성향을 가진 그는 최고의 두뇌를 이용해 거미줄을 치듯 악행을 계획하면서도 자신은 움직이지 않은 채 조직된 수많은 하수인들을 통해 일을 수행하는, 한 마디로 범죄 세력의 중심에 있었다. 또한 교활하게 안전장치를 곳곳에 심어놓아 경찰은 법정에서 그의 유죄를 선고할 만한 증거를 확보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셜록 홈즈는 호적수를 만난 것이다. 홈즈는 모리아티로부터 사회를 구해낼 수 있다면 자신의 탐정 경력을 내려놓아도 좋다고 했다. 모리아티 조직의 일망타진. 왓슨과의 여행, 그리고 홈즈의 마지막.



[빈집의 모험]

홈즈가 실종된지 3년이 지났다.

아너러블 로널드 아데어가 자신의 방에서 리볼버 탄환에 맞아 머리가 무참히 으스러진 상태로 사망했다. 방문은 잠겨 있었고 그의 방 안 탁자에는 10파운드 지폐 두 장과 10파운드 17실링어치의 금화와 은화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으며 그 옆에는 카드 노름을 함께 즐겼던 클럽 친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데어가 방문을 잠글 이유가 전혀 없었고, 살인범이 잠갔다고 하더라도 6미터 높이의 창문에서 도망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창문 아래쪽 화단과 도로 사이의 풀밭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따라서 아데어가 스스로 문을 잠갔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해되었으며, 범인은 어떤 방법으로 방을 빠져 나갔다는 말인가?

이 사건의 수수께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왓슨 앞에 기적처럼 나타난 셜록 홈즈. 모리아티와 함께 폭포에서 떨어져 실종됐다고 여겼던 홈즈의 귀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대표하는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를 비롯해서 모두 열한 작품이 실렸다. 이 모음집에는 홈즈가 좀더 막강한 적수들을 상대하고 있고, 심지어 주인공 홈즈가 실종 및 귀환을 다루고 있어 1권보다는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아서 코난 도일은 <마지막 문제>를 끝으로 셜록 홈즈 시리즈를 끝내려고 했는데, 독자들의 엄청난 요구로 다시 시리즈를 시작했고, 그때 들고나온 작품이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였다고 한다. 만약 작가가 독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시리즈를 접었다면 이 흥미로운 소설이 세상에 나올 수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니 그점도 재미있다.


소설에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3일 동안 물 한모금도 넘기지 않은 홈즈의 집념, 저열한 악당을 상다하기 위해 좀도둑이 되는 것쯤은 감수하는 발랄함(?), 감정이라고는 없는 이성주의자같지만 부부의 사랑에 감동도 받는 훈훈함 등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 또한 인종차별, 여성을 억압하는 가정 폭력 등을 통해 당시 사회적 편견과 의식에 대해서도 깊지는 않지만 짚어볼 수 있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요소 없이도 재미를 느낄 수 있고 피로도가 낮아 정통 추리소설이 아직까지 사랑받을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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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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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수전 손택의 작품을 <타인의 고통> <사진에 관하여> <해석에 반하다> 순으로 읽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을 거꾸로 되짚어간 셈이었다. 이 세 권을 읽었을 당시 수전 손택이라는 사람에게 앉은 자리에서 홀딱 반해버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단 이 평전을 통해 읽은 손택의 인생은 독자인 나에게 있어 반전의 연속이다. 사실 그의 20대 이전의 삶을 거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몇 가지 면에서 짐작하지 못했던 면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비교적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에서 쓴 저자의 글 덕분에 나 역시 수전 손택이라는 인물을 주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손택의 개인사에 깊이 아는 바가 적기에 저자의 글과 인용된 손택의 말을 통해서 손택 이면에 대해 혼자 짚어가는, 그리고 내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손택 그 이상의 입체적인 인물을 만날 수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먼저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긍정적인 가정상이 형성되지 않았던 손택이 결혼을 이른 나이에 했다는 것이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부재했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남편을 통해서 본인이 상상한 이상적인 가정 안에서 이루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바람했던 가정상과는 괴리를 느끼고 이혼을 단행한 수전의 결정은 강한 자아를 본격적으로 표출한 시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를 상품화해 홍보에 이용한 부분도 상당히 낯설었다. 초기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여성과 흑인해방, 게이와 레즈비언의 대안적 생활 방식 인정과 같은 개혁에 관련한 문헌들을 접하면서 손택이 받았던 영향들을 떠올려봤을 때 상업적 홍보에 외모를 이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또한 대중적이고 타인의 시선을 즐기며 이것을 적절히 즐기는 처세와 돈을 좇아 글쓰기를 했다는 것 역시 의외였는데,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로 대표하는 미국에서 먹고사니즘에 초연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자신의 역량을 개인의 명성에 보태어 공익 활동을 하는 데에서 오는 나의 개인적 딜레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코 열정을 넘어선 치열한 삶이다. 그가 삶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죽음을 얼마 앞둔 상태에서 '살기 위해서 삶의 질 따위는 필요없다'고한 손택의 말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이와 무관하게 끊임없는 배움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고, 영화를 비롯해서 춤, 연극, 오페라 등 문화예술을 사랑했으며,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고통을 토로하면서도 내면에서 단 한번도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와일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스물한 살'처럼 살았다. 60대 후반에도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예술과 정치의 새로운 발전을 접하면 흥분할 줄 알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지식인으로서 손택의 정체성은 도덕적 의무에 기반한다. 손택은 2001년 5월, 예루살렘국제도서전에서 예루살렘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 중 두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손택이 이스라엘의 정착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손택은 주최측을 직접적으로 모욕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그의 비판은 정치적 신념이 아닌 작가로서의 소명에 기초한다. 손택은 이 소명에 책임감이라는 윤리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급진적이고 거친 손택의 행보가 개인적이냐 대의적이냐를 놓고 왈가왈부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지식인이 가져야 하는 소명과 책임 의식을 회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손택은 모든 도덕적 소명을 대중 안에서 이루고자 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았으며, 뉴요커와 파리지엔느로, 세계인으로 하루를 48시간으로, 만년 스무살 청춘처럼 살았던 사람. 유년 시절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워했던 그가 찾아낸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은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수전 손택'이라는 본인 그 자체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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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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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라는 남자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좀머 씨'라고 부르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아내에게 생계를 맡긴 좀머 씨가 하루종일 하는 일은 '걷기'다. 겨울이면 검은색에 폭이 지나치게 넓고 길며 이상하게 뻣뻣한 너무 큰 외트를 입고 고무장화를 신었으며 빨간 색 털모자를 쓰고 다녔다. 여름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캐러멜색 리넨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항상 손에는 지팡이와 등에는 배낭을 메고 마을 근교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매일마다 좀머 씨의 걷는 모습을 보지만 정작 그가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잰걸음으로 하루에 열넷 혹은 열여섯 시간까지 근방을 헤매고 다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7월 말 어느 일요일 오후,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그친 직후 여느날과 다름없이 길을 걷고 있는 좀머 씨를 발견한 마을의 남자가 집까지 태워다주겠다며 차에 타기를 재촉하자 그가 던진 한 마디.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한 소년이 있다.

어린 시절 하늘을 날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기에 날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나무타기를 좋아하고, 조금 더 자라서는 짝사랑하는 소녀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실망하며, 그보다 더 자라서는 호랑이같은 피아노 선생님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무기력한 자신과 일방적인 세상에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5~6년쯤 지난후 소년은 더이상 나무를 타지 않는 대신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며 피아노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내키는대로 연주한다. 열여섯 번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소년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으며 고전문학 작품을 읽고 보호자 없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볼 수 있다. 그의 인생 크고 작은 변곡점에는 항상 좀머 씨가 있었다.








소설은 한 소년이 몇 년에 걸쳐 좀머 씨라는 남성을 지켜보고 우연찮게 자신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기에 좀머 씨와 맞닥뜨리며 그에 대한 감정과 단상들을 잔잔하게 펼쳐놓는다.


소년은 나는 것보다 땅에 다시 내려올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에 두려움을 느껴 대신 나무타기를 한다. 어린 소년이 나무타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무 위는 늘 조용하고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며 탁 트인 시야와 귓가에 울리는 자연의 소리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 위에 있으면 항상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좀머 씨다. 키가 고작 1미터를 겨우 넘긴 어린 소년은 좀머 씨가 자신이 나무를 타듯 자기 만족과 괘락을 위해서 걸어다니는 것이고 거기에 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다고 이해한다.


소년이 좋아하는 카롤리나가 그에게 월요일에 함께 하교하자는 말을 건넸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한 소년에게 카롤리나는 약속이 취소됐음을 알리고 제 갈길을 간다. 낙담한 채 터덜터덜 걸어가는 소년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 좀머 씨. 변함없는 걸음걸이로 시계의 초침처럼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남자, 소년은 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로부터 1년 후, 피아노 레슨을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유로 10분이 늦은 소년. 그날 레슨 선생님은 그의 사정을 듣지도 않은 채 소년에게 온갖 모욕과 멸시를 퍼부었고 제 분에 못이겨 분노를 폭발했다. 고작 10분 지각했을 뿐인데(물론 피아노 연습도 안했고, 문제의 코딱지도 있었지만). 소년은 자괴감을 거쳐 불공정하고 포악스러운 세상에 분노를 일으키며 작별을 고하리라 작심하고는 죽음으로써 세상에 복수를 하고자 제일 큰 가문비 고목에 올랐다. 숨을 들이쉬고 셋에 뛰어내리겠노라 호언장담하지만 머뭇거리는 그 순간 여지없이 나타난 좀머 씨. 나무 위에서 그의 행동을 지켜본 소년은 각성한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다니,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도 있는데!


이제 사춘기에서 어른으로 가는 입구에 서있는 소년은 해질 무렵 친구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찮게 제 발로 강으로 걸어들어가는 좀머 씨를 발견하고 말리지도 못한 채 지켜본다. 소년이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이유는 아주 오래 전 좀머 씨가 외쳤던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라는 말과 물속에 가라앉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후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는 그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에기디우스 좀머'였다.







소설 속에 화자인 소년은 특별하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인물상이다. 어른들의 시시콜콜한 잔소리가 듣기 싫고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한번 쯤은 거절당해 봤으며 어른들의 부당한 분노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성과에 대한 압박감과 조바심,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조여오는 시간의 부족과 긴장, 그리고 스스로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 등은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내내 달고 다녀야하는 족쇄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좀머 씨는 소년을 통해 이야기한다.

딱 한번 도움을 간청하였을 때 침묵하거나 외면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세상에서 의리를 지킬 필요는 무엇이며, 이런 세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지만 소년이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두려웠듯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좀머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도망치는 것 뿐. 어쩌면 스스로 강물에 들어간 것 역시 그 연장이 아니었을까... .


지금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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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1 - 셜록 홈즈 130주년 기념 BBC 드라마 [셜록] 특별판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마크 게티스 외 엮음, 바른번역 옮김, 박광규 감수 / 코너스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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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2차 영국-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영국으로 송환된 의사 왓슨은 하숙집을 구하던 차에, 세인트 바솔로뮤 병원에서 근무할 때 조수였던 스탬퍼드의 소개로 알게된 홈즈와 한 집에서 하숙하게 된다.


홈즈는 키가 1미터 80센티가 넘고 깡마른 몸매에 날카롭게 쏘는 듯한 두 눈, 가느다란 매부리코, 각진 턱은 빈틈없고 강하며 단호한 인상을 나타낸다. 학문에 대한 맹렬한 열정과 특정한 분야에서 광대한 깊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잉크나 화학약품으로 손이 얼룩져 있을만큼 늘 실험과 연구에 빠져 있는 반면 때로는 거실 소파 위에 누워서 하루종일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고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 실력과 펜싱 및 복싱도 실력도 갖추었다. 그런데 현대 문학, 철학, 정치, 천문학에 대해서는 일자무식 수준이었다. 하숙한지 처음 일주일 동안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괴짜같은 성정에 외로운 신세라고 여겼는데, 알고보니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마디로 홈즈는,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3월 어느날 아침, 왓슨은 식탁 위에 있는 잡지를 뒤적거리던 중 홈즈가 쓴 글을 읽은 후 그의 직업이 자문 탐정임을 알게 된다. 자문탐정이란 형사나 사립탐정이 수사를 하다가 막힐 때 사건의 엉킨 실타래를 풀여주는 역할을 한다.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증거를 말해주면, 홈즈는 그것을 토대로 범죄 역사와 과학적 지식을 살려 실마리를 잡아주는 것이다.








[주홍색 연구]

브릭스턴 로드의 로리스턴 가든 3번지에서 발생한 사건. 새벽 2시경 순찰 중이던 경관은 빈집에 불이 켜져 있고 현관문이 열려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들어가고, 그곳 응접실에 누워있는 남자의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시체의 옷 주머니에는 명함 몇 장을 비롯해 금시계, 시계줄, 금핀, 금반지, 명함 케이스, 지갑없이 얼마의 돈, 문고판 소설 한 권, 수신자가 다른 편지 두 통 등이 들어있었고, 소지품을 강탈당한 흔적은 없었으며 사인에 관한 증거물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실내에는 몇 군데 핏자국이 있지만 시신에는 상처 하나 없었으며 주변에서 여성의 반지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벽에 피로 쓰여진 글씨 RACHE. 피해자는 정황상 이녹 J.드레버이고, 다른 편지 한 통의 수신자는 드레버의 비서 조지프 스탠거슨이다. 그건데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탠거슨까지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호텔 벽에는 이번에도 RACHE라는 단어가 쓰여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목격자가 있다. 범인이라고 추정되는 남자를 목격한 우유배달 소년이 전하는 인상착의는 사건 첫날, 홈즈가 짚어낸 인상착의와 일치했다.


며칠 후 홈즈는 자신의 집에서 범인을 검거한다. 그의 이름은 제퍼슨 호프. 홈즈는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고, 어떤 방법으로 집까지 불러들였을까? 그리고 그는 왜 드레버와 스탠거슨을 살해한 것일까? 이 범죄의 원인은 20여 년 전, 서부개척을 나섰던 모르몬교도의 무리와 그들에게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젊은이의 복수심에서 출발한다.









[네 사람의 서명]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인도 주둔 연대의 장교였던 모스턴 양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영국 기숙사 학교에서 생활하던 중 1878년 12월, 즉 10여 년 전 자신을 만나러 온 아버지와 재회하기 위해 런던의 호텔로 향한다. 그러나 그녀가 도착하기 전날 외출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으며 이후 실종 상태다. 그리고 6년 전, 정확히 1882년 5월 4일 일간지에 신원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모스턴 양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그녀의 소재지를 묻는 광고가 실렸다. 모스턴 양이 신문 광고란에 주소를 내보내자 바로 그날 큼직하고 값어치가 상당한 진주가 배달되고 그 뒤로 매해 같은 날 진주가 배달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익명의 편지까지 도착하고 편지의 내용이 미심쩍어 홈즈를 찾아온다. 홈즈는 필체를 보고 진주를 보낸 사람과 편지를 쓴 사람이 같은 사람임을 확신한다. 6년 동안 매해 진주를 보내고, 만나자는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편지의 내용에 따라 모스턴 양은 홈즈, 왓슨과 함께 편지 발신자가 지정한 장소에 나가자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는 세 사람을 외진 동네의 한 저택에 내려놓았고 새디어스 숄토라는 한 남성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는 모스턴 양의 아버지가 인도에서 복무했을 당시 친분이 두터웠던 존 숄토 소령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보물을 모스턴 양에게 분배하기 위해 불렀으며, 일행은 이를 성사시키기위해 숄토 소령의 다른 아들 즉 새미더스의 쌍둥이 형 바솔로뮤를 방문하지만 그는 이미 폰디체리 저택 자신의 침실에서 시신이 되어 그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보물이 사라졌다. 새디어스를 통해 듣게 된 모스턴 대위의 죽음의 진실, 바솔로뮤의 의문의 죽음, 모스턴 양과 새디어스 두 사람이 동시에 갖고 있는 '네 사람의 서명'이라는 글씨가 적힌 종이의 비밀이 가리키는 것 무엇일까?








[빨간 머리 연맹]

어느날 전당포를 하는 윌슨 씨 앞에 직원 빈센트 스폴딩이 신문의 광고를 보여주며 '빨간 머리 연맹'에 가입하라고 부추긴다. 가입 자격은 오로지 머리카락 색깔이 불타는 듯한 빨간색이면 된다. 별다른 일 없이 4시간 동안 앉아서 백과사전을 베끼기만 하면 업무 끝. 벌이들이는 돈이 제법 쏠쏠했는데, 연맹에 가입한지 8주만에 사무실 문은 굳게 잠긴 상태에서 연맹이 해체되었다는 통보가 써진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대형 범죄를 일으키기 전 사소한 사기극에 불과했으니, 우리의 홈즈는 이번에도 역시 명쾌하게 해결한다.








[신랑의 정체]

결혼식 당일 감쪽같이 사라진 신랑. 신부는 그의 집주소도, 그가 다니는 회사의 위치도 정확하게 모른다. 평상시대로라면 신부의 계부는 이러한 상황에 화를 내고도 남았을텐데, 무슨일인지 느긋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그리고 계부와 사라진 신랑의 주고받는 듯한 의심스러운 두 사람의 동선. 홈즈는 의뢰인의 계부인 제임스 윈디뱅크를 집으로 소환한다. 사라진 신랑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입술이 뒤틀린 남자]

서른일곱 살의 세인트 클레어는 온화한 성품에 좋은 남편이자 다정한 아버지로 평판이 자자하다. 특정한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회사 일에 관여하고 있어서 늘 아침에 시내로 나갔다가 저녁 때가 되면 돌아온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간 어느 월요일, 세인트 클레어가 외출한 직후 애버딘 선박 회사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는 귀중한 물건을 찾아가라는 전보를 받은 부인은 오후에 소포를 찾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가 어느 건물 2층 창문에서 겁에 질린 남편을 발견하게 된다. 경찰을 대동해 올라간 그곳에는 장애를 가진 휴 분이라는 자와 인도 선원이 있었고, 남편은 사라졌으며 핏자국과 그의 흔적을 알려주는 소지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건물은 아편굴로 유명한 곳이다. 한편 아내 친구의 남편이자 담당 환자인 아이자를 데려오기 위해 아편 소굴인 '골드 바'를 찾아간 왓슨은 그곳에서 세인트 클레어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위장 잠입한 홈즈와 마주친다.


성실하고 가정적인 세인트 클레어가 아편굴에 간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놀라운 반전!



[얼룩 끈]

두 달 후 결혼을 앞둔 헬렌 스토너라는 젊은 여성이 홈즈를 방문한다.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이야기하면서 2년 전에 결혼을 2주 앞두고 죽은 언니의 죽음에 의문을 갖는다. 사건 당일 밤, 헬렌의 방에서 알 수 없는 말을 한 후 자기의 방으로 돌아간 줄리아는 얼마 안 있어 비명을 지르며 문 밖으로 흐느적거리며 나오고, 이 소리에 놀라 뛰쳐 나온 헬렌은 그녀로부터 외친 마지막 단말마를 듣게된다.





"오, 하느님! 헬렌, 그건 끈이었어! 얼룩 끈"


줄리아의 방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튼튼한 덧분이 달려 있으며, 밤마다 두꺼운 쇠 빗장까지 걸어놓았었다. 벽과 바닥에는 빈 공간이 없었고 굴뚝은 네 개의 큼직한 꺽쇠로 막혀 있었다. 게다가 폭행을 당한 흔적과 독살을 의심할 만한 결과는 없었으며, 그날 줄리아가 방에 혼자 있었다는 사실 또한 확실했다. 다만 줄리아의 양손에는 까맣게 탄 성냥과 성냥갑이 각각 들려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고 말았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저택의 공사로 어쩔 수 없이 언니가 사용하던 방으로 옮긴 헬렌은 한밤중에 언니의 죽음을 예고했던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 언니처럼 결혼을 앞두고 휘파람이 들리자 헬렌은 두려움에 홈즈를 찾아왔던 것이다.


저택 근처를 배회하는 집시들, 그들과 친분이 있고 딸들을 학대한 의붓 아버지, 줄리아가 죽기 직전 남긴 얼룩 끈. 줄리아는 어떻게 죽음에 이른 것이며, 무엇때문에 2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일까?








홈즈와 왓슨의 첫만남을 시작으로 여덟 편의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왓슨이 표현하는 홈즈의 이미지를 읽고 있자니, 표지 앞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현대판 셜록 홈즈 버전의 드라마에서 왜 이 배우를 캐스팅했는지 짐작이 간다. 연인을 잃은 남자의 처절한 복수, 인간의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 등 인간의 근원적인 심리를 다루는 사건과 19세기 당시 세포이 항쟁 등 영국과 식민국의 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등 스토리에서 넓은 시야를 보야주고 있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갖는 매력은 무엇보다 인물 '홈즈'라는 캐릭터다.

사건의 현장과 주변 뿐만 아니라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까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능력과 해박한 지식,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고 냉정한 듯 보이지만 의뢰자에게 깊이 이입되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방식, 무심코 내뱉는 듯한 위트와 세상의 잣대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시크한 태도, 부를 축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탐정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 등은 그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사건 해결사 홈즈와 소설을 통해 인간의 과거가 현재의 모습을 이룬다는, 즉 개인이 갖는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의 변하지 않는 부조리야말로 진부함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의 매력을 탐구하기 위해 2권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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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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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실패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스물세 살 쇼타는 높은 취업 관문에 좌절하고 가족, 친구들과 단절한 채 현재는 도쿄의 고층 빌딩 유리창 닦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가을, 여지없이 면접관의 냉담한 반응에 낙담해 자살을 생각한 그는 고층 빌딩을 둘러보던 중 가느다란 로프에 매달려 유리창 닦는 일을 하는 사람을 발견한 후 충동적으로 입사를 결정해 1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하고 있다. 어느날, 고급 맨션에서 작업을 하던 쇼타는 그 건물 3706호에 사는 노부인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그녀는 쇼타에게 청소하는 건물의 내부 사진을 찍어와 달라는 부탁을 한다. 정말로 도쿄 빌딩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노부인에게 받은 선금으로 장비를 구입하고 업무 당일의 파트너에게 들키지 않도록 카메라를 가슴께에 장착한 쇼타는 남모르게 촬영하는 데에 성공한다. 집으로 돌아와 촬영한 결과물을 확인하고, 자신이 무척 위험한 장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새끼 손가락 정도 굵기의 와이어, 견고한 고층 빌딩에 비하면 너무나도 부실한 금속제 곤돌라, 심지어 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쉽게 흔들려 아무것도 작업자들을 보호해 줄 수 없는 여건, 더욱 놀라운 건 어느새 쇼타 자신이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 자신이 설계했던 미래였다면 지금쯤 양복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런 사람들을 창 밖에서 지켜보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알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드는 쇼타는 문득 고층 빌딩 유리창 닦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일을 마친 후 작업 현장을 되돌아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이 하루에 이렇게 많은 유리창을 닦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그런데 쇼타는 유리창을 닦고 있을 때면 고층 빌딩에서 일을 하다 추락사 한 선배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쇼타에게 살아있을 때 실제로 했던 말들이나 평소 자기의 생각, 일상의 잡담들을 쉼없이 늘어놓는다. 쇼타는 이러한 현상을 노부인에게 털어놓는데, 그녀는 자신도 같은 경험이 있다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사진을 보며 피사체를 분석하고 유추한다. 노부인과 쇼타는 사진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과나 식사를 나누면서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상대의 외로움과 현실에서의 좌절을 서로공유하며 위로한다.


어느날 쇼타는 함께 작업을 하는 동료에게 도촬 사실을 들키고, 그 동료 역시 재미삼아 촬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후 촬영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3706호를 방문해 자기의 의사를 전달한 쇼타는 그동안 찍은 사진으로 실내에 거리를 만든 노부인에게 조명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노부인과 헤어진 쇼타는 두 달만에 그녀가 살고 있는 맨션의 유리창 청소를 하게 되고 청문 밖에서 3706호가 비어있음을 확인한다. 노부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실패와 좌절로 인해 현실을 외면한 채 살아있기 때문에 살고 있는 청년 쇼타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노부인. 두 사람은 거래로 시작된 만남을 갖게 되면서 대화를 하게 되고 스스럼 없는 대화는 상대방의 입장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한다.


쇼타는 고층 건물 유리창 닦이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자신의 예정된 미래가 유리벽 안쪽에 있는 삶의 모습이었던 것과 유리벽 밖에서 위태롭게 줄에 매달려있는 자신의 현재 처지를 비교하며 자괴감을 넘어 무력함을 느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건물 안쪽에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데 노부인의 부탁을 받고 사진을 현상하면서 느낀 것은 자신이 동경했던 유리벽 안쪽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작은 주택가 골목에서 살고 싶었지만 안전을 위해 자식이 마련해준 고층 빌딩에 살면서 섬에 고립된 듯 살고 있는 노부인은 소통이 전혀없는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에 과연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며 쇼타에게 촬영을 부탁한다. 넓은 실내 공간을 채울 수 없어 상자를 세우고, 홀로 된 삶을 확인시켜주는 거울을 가려놓은 노부인은 도시인의 외로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쇼타는 곤돌라에서 촬영을 할 때면 죽은 선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의 삶에 관심을 보이자, 보이지 않는 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선배의 목소리가 자신의 내면에서 나왔던 울림은 아니었을까. 쇼타는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학생이었다. 다양한 삶의 경험없이 오로지 한 가지 길이 정답인 것처럼 살아온 그에게 실패란 곧 패배와 절망이었을 것이다. 쇼타에게 죽지못해 혹은 죽어도 그만인 고층 빌딩 유리창 청소 일이 노부인을 만남으로써 삶에 있어 한 겹의 경험으로 전환된 것은 아닐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추억을 나눈다는 것, 관계의 힘이다. 이러한 관계가 자신을, 그리고 상대를 소중한 사람으로 만든다. 노부인을 알고 청소를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녀가 사는 맨션을 찾는 쇼타에게 노부인은 더이상 유리벽 안에 있는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존재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단 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에 발을 딛지 못하고 허공에서 부유하던 청년이 새롭게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세상의 잣대에 맞춰 사는 것이 꼭 성공한 삶이 아님을, 그래서 누군가가 규정해 놓은 삶의 의미가 아닌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기를, 그리고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세상에 바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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