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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평점 :

일곱 살 원과 은철의 관점으로 진행하는 소설은 1970년대 삼악동 삼벌레고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삼벌레고개는 등고선에 따라 계급을 나타내듯 살림살이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데, 원과 은철은 그중에서도 계급의 중간에 위치한 중턱의 우물집에서 산다. 어느 봄날, 은철의 우물집 바깥채에 원의 네 식구가 세입자로 들어오고 원과 은철은 단짝이 되어 스파이 놀이를 하며 동네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전쟁 이후 5.16쿠데타를 거쳐 인혁당 사건과 국가비상사태 선언이라는 정치적 상황, 중동 특수라는 경제적 붐이 일어나면서 세상은 흑과 백의 논리로만 정의되었고, 이에 따라 이념과 가진자와 못 가진 자로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 구분되었다.
일곱 살 은철과 원에게 있어서 딱지를 뺏어간 형 금철과 10원을 꿔간 후 갚지 않는 언니 영은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두 아이는 자기들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들 역시 똑같이 나이를 먹기 때문에 손위 형제와의 나이차를 좁히지 못한다는 것이 억울하다. 형제들의 나이의 차를 줄일 수 없는 것처럼 아랫동네와 중간동네, 윗동네의 격차는 줄어들지 못한다.
작은 동네 안에서도 온갖 인간군상은 다 드러난다. 이사온 첫날부터 부동산 계약서에 거침없이 서명하는 새댁 효경은 뭔가 배운 티가 나는 사람으로 동네 여자들의 질투를 일으킨다. 보험외판원 성계희로부터 정보를 얻어 점을 봐주는 보살 임말숙, 수학자라고는 하지만 직업이 불분명한 고성한, 구멍가게를 하는 통장 박가네, 그들의 집에서 일하며 정보원(?) 역할을 톡톡히 하는 가정부들, 남편이 사우디 노동자로 근무하면서 보내는 돈으로 신세 편하게 살고 있어 동네 사람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사우디댁, 간첩인지 대학생인지 종잡을 수가 없는 청년, 안덕규의 집을 수시로 찾아오는 수상한 사람들. 그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언제나 그랬듯 이웃으로 계모임을 이어가고, 소소한 반찬을 나누고, 뜬소문을 수다거리로 삼아 살아갔을 것이다.
어느날 금철의 객기어린 장난으로 은철의 무릎이 부서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순분이 믄득 떠올린 것은 사실 확인없이 안덕규의 누나를 놓고 동네 여자들과 험담을 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부끄러움에 대한 각성이다. 그리고 안덕규는 자신의 외모를 바꾸기 위해 혀로 잇몸을 문질렀던 영과 화가 난다고 밥그릇을 뒤엎은 원에게 부끄러운 짓에 대한 엄격한 벌을 내린다. 우리가 짚어야할 부끄러움은 과연 무엇일까?
간첩의 누명을 쓰고 끌려간 덕규는 아이들의 이름처럼 결국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시신을 통해 남편이 극단의 고통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효경은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켜 딸들과 단절한다. 여기에서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순분과 효경의 연대다. '간첩과 그 가족이 살고' 있으며 '장애아'가 사는 우물집은 이제 스스럼없이 드나들어도 되는, 계모임의 계주가 사는 이웃이 아닌 불편한 존재로 전락한다. 은철이 걷는 연습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은 원이고, 엄마 대신 살림을 도맡은 영의 곁에서 말없이 위로가 되어 준 사람은 금철이다. 또한 효경이 잠깐 정신이 돌아왔을 때 도움을 요청한사람은 순분이다. 이 연대가 덕규의 죽음과 은철, 원의 장애를 막지는 못했다하더라도, 우리가 연대를 해 나가야하는 까닭은 효경이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줄 수있기 때문일 것이다.
토우란 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의 상을 일컫는다. 폭력적 강요와 억압, 인권을 상실한 시대에 인간성을 지킬 수 없었던,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이 토우로 살아야했던 그 시대, 우리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