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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근래에 갈등이 잦은 가정 문제를 풀어보고자 핀의 가족은 단합 스키 여행을 떠난다. 결혼을 앞둔 오브리를 제외한 핀의 일가족과 핀의 친구인 모린, 엄마와 친자매처럼 지내는 캐런 이모의 가족, 열 명이 동행한다.
산장에 도착한 직후 저녁을 먹으러 가는 도중 예상치 못한 일로 사고를 당하고, 캠핑카는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산 아래로 추락한다. 핀은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아빠 잭은 중상이며 다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날이 밝으려면 적어도 열두시간을 버텨야하는데, 한겨울 밤의 추위가 두려움보다 크다. 더구나 저녁 식사를 하려고 나선 길이다보니 방한복을 제대로 챙겨입지 않았다. 아침까지 기다리자는 의견과 얼어죽기 전에 길을 나서야한다는 의견이 나뉘면서 핀의 언니 클로이와 그의 남자친구 밴스가 떠난다.
날이 밝자 엄마 앤과 카일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현장을 떠나고, 아빠 잭이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하는 사이 캐런 이모의 남편 잭은 오즈를 불러내 앤을 찾아오라고 회유한 후 그의 장갑을 가로챈다. 밥의 간교로 오즈는 강아지 빙고를 데리고 엄마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고 이제 캠핑카에는 캐런 이모 일가족과 의식이 없는 잭, 그리고 모린, 다섯 명뿐이다.
다행히 앤과 카일이 도로를 찾아내 캠핑카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구조된다. 캠핑카를 떠났던 클로이와 밴스도 순차적으로 구조되지만, 결국 오즈는 발견되지 못했다. 잭의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으며, 클로이의 손발가락은 모두 잘릴 지경이고, 모의 발도 동상으로 온전치 않다. 오직 캐런 가족만 건강한 상태로 귀가했고, 심지어 밥은 위기 상황에서 조난자들을 보호한 영웅이 되었다.
잭은 의식이 돌아온 후 앤이 클로이를 붙잡지 않은 것과 오즈를 두고 캠핑카를 떠났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서로 친구 이상의 감정을 공유하는 듯한 밥만이 앤의 숨통이 되어준다. 앤이 오즈를 사지로 내몬 장본인이 밥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녀는 밥에게 위로 받았던 모든 순간들을 용납할 수 있을까? 두 딸과 아들을 잃은 앤의 삶에는 생기가 꺼진 딸, 분노만 남은 남편, 죽은 아들이 사랑했던 강아지 빙고, 그리고 죄책감만이 남았다.
어느 순간부터 사건의 진실은 왜곡되고 각자 조각난 사실의 파편만 쥐고 있어, 그들의 기억은 조금씩 어긋난다. 이에 모린은 진실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사건의 조각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사고 현장에서 즉사한 주인공 핀의 영혼이 화자가 되어 살아남은 자들을 지켜보며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외견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보이는 보통의 가족들을 통해 가족이라는 공동체 뿐만 아니라 개개인 또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짚어낸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도덕성과 죄책감의 딜레마가 처한 입장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음을, 그래서 우리가 집단적 관점이 아닌 개인의 관점에서 공감능력을 가져야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핀의 가족 간의 갈등은 사고 이전부터 수면 아래에 고여 있는 상태였다. 아빠 잭은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오즈를 혼자 돌보다시피하느라 다른 가족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고, 엄마 앤은 가족구성원 안에 발달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음과 동시에 남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해 친구의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사실 소설에서 추락사고는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유발시키는 원인이라기보다는 내재해 있던 요소를 겉으로 드러내 해결해 나가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독자로부터 평소 숨겨져 있는 본성을 통해 도덕성의 한계를 고민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기가 닥쳐왔다. 산 아래로 떨어진 캠핑카 안에서 그들의 민낯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남편이 의식을 잃고 동행한 두 딸 중 하나는 즉사했고 하나는 길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앤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눈벽을 쌓고 구조대를 부르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오즈를 대하는 밥과 카일의 태도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우연히 길에서 차를 얻어 타 아무런 친분 관계가 없는 카일은 오즈를 위기 사황에서 함께 극복해야할 동료로 여기는데, 오히려 오랜 세월동안 가까운 이웃으로 오즈를 지켜봐온 밥은 그를 바보 혹은 위험 요소로 치부한다. 캐런은 딸 내털리가 충분히 방한이 가능한 복장임에도 불구하고 앤이 죽은 핀의 부츠를 모린에게 주자 원망하며 이후 성인으로서 미성년자인 모린에 대한 사회적 책임까지 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미묘한 감정 변화는 시작일 뿐 막상 구조가 끝난 후에는 감당 못할 죄책감이 그들의 일상을 위협한다.
잭은 어쩔 수 없었다하더라도 사고를 일으키고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크다.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은 앤에 대한 분노 역시 자신을 향한 것이다. 앤은 벼랑에서 카일의 손을 놓으려고 했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고, 밴스는 잠시나마 클로이를 두고 혼자 길을 떠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헤어나지 못한다. 가장 현명한 인물로 묘사되는 모린 역시 핀의 시신을 마주한 순간, 죽은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던 것과 밥의 잘못된 행동을 짐작했지만 차마 나서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크게 죄책감을 가질 것으로 여겨졌던 밥과 캐런에게서는 그런 기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핀은 말한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평범한 일상 안에서는 누군가를 해치거나 위협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그들은 그저 상황에 의해 어쩔 수없는 선택을 한 것 뿐이라고. 그러면서 앤과 모린, 그리고 밥의 가족을 대비시키며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도덕성을 버리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꽃은 핀이 죽어서야 알게 되는 가족들의 다른 모습들과 숨겨진 내면이다. 오즈를 외면하는 엄마가 사실은 오즈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 오즈가 세상의 전부인 양 여겼던 아빠가 사고 직후 아주 잠깐이나마 오즈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이해받지 못하는 엄마의 외로움과 그로인한 외도, 그 외도가 사실은 누구보다 남편의 이해를 원했던 표현이라는 것, 아내의 외도를 알면서 어쩌지 못했던 아빠의 고통,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 클로이가 정작 간절히 원했던 것은 엄마의 관심과 보호였던 것, 그리고 틈만 나면 핀에게 시비를 거는 내털리의 속내는 핀과 친해지고 싶었다는 사실. 그 모든 진실과 사실들을 살아서는 알 수 없다니.
230.
나는 죽고 난 후에야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되고,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냉소주의가 우리들에게 만연해 있음을 깨달았다.
작가는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비겁해질 수 있으며, 완벽하게 결백한 사람도 없다. 다만 우리가 왜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살아야 하는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핀의 입을 빌어 극한 상황과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이란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잘못을 인정하고 슬픔을 위로하며 먼저 떠난 이들을 기억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정신과 의사도 클로이의 말문을 열지 못했지만, 클로이가 사고의 아픈 기억을 털어놓음으로써 위로를 받으며 슬픈 감정과 핀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 대상이 동생의 친구 모린이었던 것처럼. 그래야만 남아있는 자들의 삶이 아픔으로 얼룩지지 않을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