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스와프 렘 - 미래학 학회 외 1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외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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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봤던 그 작가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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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여름 - 이정명 장편소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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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시의 자랑거리인 화가 한조는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단순하고 평온한, 그리고 비교적 성공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일상이 흐트러진 것은 마흔세 번째 생일날이었다. 마흔세 살의 첫 아침, 눈을 뜨면 맞아주던 아내는 간데 없고 전날 저녁에 벌였던 조촐한 파티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집안은 온기 한 점 없고 아내의 소형차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느닷없이 사라졌다! 


그가 원할 때 늘 곁에 있었던 아내였건만 한조는 그녀의 전화번호, 그녀가 자주 가는 장소, 그녀의 가까운 친구도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는 아내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겨우 생각해 낸 핸드폰 단축키를 눌러 봤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기계음이 들려왔고, 그의 곁에 있는 반려견만이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들려오는 한조의 휴대폰벨 소리를 따라 간 곳은 아내가 지내던 작업실. 작업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그의 핸드폰과 서류봉투. 봉투 안에는 두툼한 A4용지 묶음이 있었고, 첫 장에는 <나에 관한 너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이 씌여 있었다. 언제든 남편에 대한 글을 쓰겠다던 아내. 아내가 쓴 소설에는 자신과는 너무 다른 한 파렴치한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내는 왜 이런 글을 쓴 것일까? 아내는 두 사람이 사는 동안 내내 모델로서, 보호자로서, 연인으로서, 비서로서 모든 역할을 감당하며 변함없이 사랑으로 헌신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은 피해자이며 남편은 가해자라고 몰아붙인다. 문득, 한조는 열여덟 살의 여름이 떠올랐다. 용기가 없어 외면했던 부끄럽고 부도덕했던 그 과거와의 대면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평온했던 두 가족은 지수의 사망으로 인해 나락으로 곤두박질 친다. 지수의 부모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어린 해리는 외삼촌 댁에 입양된다. 한 가장이 성폭행 살인자가 되면서 아내는 알콜 중독자로, 두 아들은 살인자의 자식으로 낙인찍혔다. 헌신하는 아내를 만나 성공한 화가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한조가 한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배경에는 25년 전, 8월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리소설 형식으로 진실 찾기에 나선 소설은 표면적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다정하지만 의지가 되지 않는 가장,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 야망이 앞선 남자,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두려움으로 진실을 묻어둔 아이들. 욕망과 질투, 죄책감, 사랑 이 모든 감정들이 얽혀져 스스로조차 진실을 망각해 버린 사람들. 


소설의 결말은 충격 이상으로 끔찍하고 슬프다. 딸의 죽음으로 가족과, 가족과 다름없었던  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적의와 공포, 시간이 흐를수록 여고생 피살 사건을 불편해하고 비극적 사건의 연대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을 피해자로 생각하며 피해자 유가족에게 딸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월호 사건, 위안부 문제 등을 대하는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 모습과 겹쳐진다. 잘못은 어디부터 시작됐을까? 무엇보다 어린 소녀가 살아갈 힘이 복수였다는 사실이 많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조차도 오해에서 비롯됐다면 그녀가 쏟아부은 삶의 의미는 어디에 두어야 하나.  


미스터리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독자의 감정선을 흔들어 놓는 작가의 탁월함은 이 소설에서도 빛난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마다 여운이 길었던 작품들처럼 이번에도 어린 소녀가 감당했던 아픔이 한동안 남아있을 듯 하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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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4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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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케는 지독한 공붓벌레는 아니었고 적당히 노력했으며 옹졸하거나 비겁하게 굴지 않았다. 그리고  불결하고 추잡한 장난에는 동참하지 않았기에 잠수 외에 다른 면에서도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자신을 향한 박수에 그는 내심 기뻐했고 그의 울대뼈는 자극을 받았다. 열네 살 말케는 소년단에서 내쫓겨 히틀러 청소년단에 강제 입단되었는데, 당시를 감안하면 그 자체로는 흔한 사례였지만 말케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특별한 사례였기에 전설적이 평판이 따라붙었다. 말케는 여름이 지나자 옷에 털술을 다는 것을 유행시켰으나 겨울이 되어 잠수도 할 수 없고 너도나도 털술을 다는 바람에 자신의 특색이 사라지자 핀으로 고정시킨 목도리를 하고 다닌다. 말케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적이 있을까? 말케가 털술을 목에서 떼어냈을 무렵, 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이 된 선배가 전방에서 처음으로 돌아와 전교생을 앞에 두고 강당에서 연설을 했다. 그의 목에는 전쟁에서 공적을 세운 증표인 철십자상 봉봉이 걸려 있었다. 선배의 열띤 연설에 학생들이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었다면, 말케가 도취된 것은 오로지 봉봉 뿐이었다.  








화자 필렌츠는 지난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말케에 대해 서술한다. 말케는 또래의 소년들보다는 성숙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유난히 큰 울대뼈를 결함으로 여겨 드라이어와 털술, 목도리를 이용해 떻게든 이를 가리고자 애쓴다. 그런데 어느날 전쟁 영웅의 목에 걸려있는 철십자상 봉봉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말케의 목표는 정조준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전쟁과 자원입대에 무관심했던 말케는 자원입대하고 전쟁 영웅이 되어 훈장을 획득한 후 모교의 강연하기 위해 모교로 돌아온다. 그가 강연 사례로 받고 싶은 것은 오직 강당에 서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목표를 이룬 말케는 만족했을까?


화자 필렌츠는 말케의 울대뼈를 쥐에, 자신(대중)을 고양이에 비유하면서 말케를 부추기고 몰아간 공범으로서의 죄의식을 고백한다. 그런데 집단 안에서 존재하는 이들 중, 필렌츠의 고백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귄터 그라스는 전쟁 영웅을 앞세워 대중을 선동하며 많은 사람을 죽일수록 받게되는 훈장을 동경의 대상으로 만든 나치와 이에 화답하듯 무분별 무의식 무비판적으로 열광하는 민중을 비판한다. 이것은 전범국 국민으로서 갖는 반성이자 더 나아가 현재에도 무비판적이고 수동적인 민중을 향한 쓴소리다.


자기만의 공간이었던 난파선이 아직 그대로 있는지 알고 싶은 말케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하는 필렌츠의 대화, 그리고 군화를 벗어놓은 채 무선실로 들어간 말케의 행위에서 독자는 비극을 짐작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비극은 말케를 동경하는 어린 소년들의 모습이다. 민중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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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카의 여행
헤더 모리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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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카는 소련군으로부터 스파이 혐의를 받고 크라쿠프 몬텔루피치 감옥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매춘과 스파이로 기소되어 노역 15년형에 처해져 시베리아로 보내져 이제 다른 장소에서 다른 번호로 불려진다. 굶주림과 추위, 가학적인 노동. 실카는 앞으로 다가올 15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는 한 살 수 없는 것이라는 절망에 휩싸인다. 불과 2년전,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25번 구역의 작은 방에서 독일군 장교 슈바르츠후버가 그녀를 상시로 성폭행하면서부터 실카는 감정을 상실했고, 그것은 아이였을 때 무릎을 심하게 긁힌 일과 같은 것이라고 스스로 세뇌시켰다. 그래야 살 수 있었으니까. 이곳에서는 생각의 스위치를 꺼야만 했다. 길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서.  






 
전작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를 읽고 나는 실카에 대해 궁금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5년 노역형이라니... .  

보르쿠타 수용소는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만 없을 뿐 비르케나우와 다르지 않다. 수용소 내에서 여성 수용자는 집단강간을 고스란히 감수해야하는 가장 약한 존재이고, 간수 - 감독관 - 고참 수용자로 이어지는 야비한 권력자들, 폭력이 난무하며 선의와 악의의 모호한 경계는 하루하루 살아남으려는 자들을 위협한다.  

실카는 보르쿠타에서 상반된 감정에 늘 갈등한다. 동료들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근무환경이 편안한 실내에서 일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그래서 고된 노동을 하는 동료들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 더 나은 대우를 거부하고 막사 생활을 고집하지만, 한편으로는 환자들 곁에 남아 있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 또한 29번 막사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상쇄시키기 위해 병동에서 빵과 약을 몰래 빼돌리면서도 약이 부족해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보르쿠타에 도착하고 첫 집단강간이 있은 후 조시는 실카가 저항도, 자신을 도와주지 도 않았다는 이유로 맹렬히 비난한다. 이런 유사한 비난은 수시로 일어나고, 실카는 자신이 왜 유대인이면서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온 이유가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조시의 원망과 한나의 비난이 왜 그녀를 향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옥같은 곳에서도 우정과 연대는 살아있다. 여성 수용자의 연대는 자수놓기로 이어져 있고, 우정은 새생명 나티아로 상징되며, 29번 막사는 그들의 공동체로 대변된다. 소설에서 실카는 수용자의 환경에 변화를 가져온 영웅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아유수비츠 문신가>의 랄레의 궤적과 같은 선상에 있다. 랄레보다는 실카가 이타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친구의 행복이 삶을 견뎌내는 힘이 된다는 것이 납득이 안되다가 문득 그녀의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니 일정 부분 이해가 되더라는, 그리고 자수를 놓는 사소한 행위가 고통을 견디는 힘이 된다는 올가의 말에도 수긍이 갔다.  

소설에서는 실카가 '이상하리만치 운이 좋지만,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썼다. 그녀의 삶에 어떤 부분이 운이었을까? 수용소 생활 내내 도움을 주었던 의사 옐레나, 그리고 이후 50년을 함께 살아갈 알렉산드르, 무엇보다 그녀의 강인한 생명력이 실카가 타고난 운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헤어진지 20년이 지나 해후한 기타와 실카의 감정을 감히 헤어릴 수 없다. 실카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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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더봇 다이어리 : 로그 프로토콜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9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 알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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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유닛 '나'는 라비하이랄을 떠난 얼마 후 멘사 박사의 인터뷰를 발견했고, 그 내용을 통해 그레이크리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레이크리스는 외계인 유물, 즉 외계인지성체 문명이 탐사 구역 땅속에 남긴 광물과 유기물을 독점하기 위해 광산 운영이나 개척지 건설 혹은 모종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위장했던 것이다. 기사에서 멘사 박사는 밀루의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공식 방문에 그레이크리스의 합류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었다. 멘사 박사에게 증거가 있다면 그레이크리스에 대한 조사는 훨씬 재밌어질테고, 사람들은 이 흥미로운 사건으로 도망친 보안유닛을 잊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이 잘 해결된다면 무엇보다 멘사 박사가 안전한 보존 연합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더이상 그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설 선착장에서 보급선으로 갈아 탄 린은 20주기가 지나 밀루에 도착했다. 라비하이랄보다 작고  정거장의 수용량에 비해 적은 수의 우주선이 정박해 있는 밀루는 지나치게 조용한 것이 기묘하게 신경 쓰였다. 린은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미궁에 빠진 느낌이다. 상대는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에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도대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행위를 이어가는 것일까?









보안유닛 '나'의 이번 여정의 목적은 자신이 대중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을 막고, 델타폴과 그레이크리스와 관련한 소송으로 고전하는 멘사 박사를 돕기 위해 증거를 입수하기 위함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인간과 유닛의 우정, 그리고 배신이 꼬리를 무는 인간 관계를 대척점에 놓고 있다. 돈 아베네와 히루네는 봇 미키를 가족으로 생각하는데, 보안유닛 '나'는 여전히 이 부분을 납득도 이해도 하지 못한다. 봇은 자유인으로 간주되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보호하에 있어야만 하는 소유물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봇에게 진정한 자유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서로를 두고 도망가지 않는 아베네와 미키는 토사구팽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의 생태와 다르다.


'나'가 이해하는 인간을 위한 희생이란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명령'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아베네에 의해 미키는 프로그램의 선택권, 즉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아닌 친구라고 여기는 이들의 생존을 우선했다. 명령이 아닌 우정으로써 희생한 것이다. 보안유닛 '나'는 미키와 아베네의 관계를 통해 그동안 가져왔던 생각의 변화를 겪는다. 그래서 '나'는 고민없이 다음 목적지를 결정했다. 그곳으로.


1권을 읽을 당시 사고하는 기계보다 사고하지 않는 인간이 더 두렵다는 감상을 남겼었더랬다. 지금은 인간의 기계화보다 인간에게 끝까지 남게 될 감정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인간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 조각들이 있기에 바보같은 의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간혹 나도 자신에게 실망스러울 때가 있어서 우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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