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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리비아는 열일곱 살에 임신해 애덤과 결혼했다. 리비아의 부모님은 딸의 임신에 실망해 외면했고,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가정을 꾸린 그녀는 마흔 살 생일에 성대한 파티를 열겠다고 다짐했으며 그 바람을 곧 이룰 참이다.
마흔 두 살에 목재가구 장인의 위치에 오른 애덤과 육아를 병행하며 뒤늦게 학업에 매진해 변호사가 된 리비아, 그리고 곧 미국에 있는 회사의 입사를 앞둔 아들 조시와 홍콩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있는 마니까지 이들은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가정이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마흔 살 파티를 앞두고 애덤과 리비아에게 딸 마니와 관련해 문제가 생긴다. 리비아는 불과 얼마 전에 알게 된 마니의 사생활로 충격을 받고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해야할지 고민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부녀 관계는 물론이고 그동안 친형제처럼 지냈던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관계까지 파탄이 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리비아는 딸에게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애덤이 이 일로 딸에 대한 애정이 사라져버릴 것이 가장 두렵다. 리비아는 딸 마니가 제발 자신의 파티에 나타나주지 않기를 바란다.
한편 애덤은 예상치 않은 마니의 서프라이즈 계획으로 한껏 들떠 있던 중 갑작스런 소식을 접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이 소식을 아내에게 전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결혼 후 오로지 이 파티만 꿈꿔왔던 아내의 오랜 바람을 망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리비아는 남은 인생 내내 자신을 원망할 것이다. 애덤은 제발 마니가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소설은 만 하루동안 두 남녀가 심리적으로 겪는 갈등으로 채워져 있다. 이 하루동안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가면서 결혼 직후부터 현재까지 그들의 결혼 생활을 함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쫀쫀한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십대에 임신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부모가 되어야했던 애덤과 리비아. 준비없이 아버지가 되었고, 대학에서 토목을 공부해 멋진 다리를 건설하고 싶었던 소년은 의도치 않게 어린 아내와 아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학을 포기하고 부모에게 버림받다시피 결혼해 두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아이를 낳아 키워야했던 소녀는 힘겹고 외로웠다. 어린 부부는 서로가 자신을 떠날까봐 두려웠다.
과거 애덤과 리비아가 느꼈던 감정들이 현재 자식들을 투영해 나타난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연락도 없이 안들어오는 남편을 걱정했던 자신의 마음을, 남편 애덤도 느껴보기를 바라는 리디아의 마음이, 딸 마니를 기다리는 애덤에게 투영된다. 그리고 마니의 일로 인해 리비아가 오래 전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으며, 애덤 역시 자신이 신혼 초에 저지른 잘못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진실을 보려하지 않는 가족구성원들은 오해가 오해를 낳는 과정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간다. 오히려 그들보다 한발짝 떨어져 있는 타인에 의해 비로소 진실을 들여다보는 상황은 서로를 배려한다는 명분에서 시작한 소통의 부재가 불러온 참사다. 무엇보다 이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랑 밑바닥에는 죄책감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 각각 버림받을 수 있다는 트라우마, 새살이 돋지 못한 채 여전히 딱지가 앉아있는 상처, 그리고 죄책감.
애덤과 리비아가 각자의 비밀을 서로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상대를 배려해서라기보다 신뢰하지 못해서 아니었을까?
작가의 전작들이 가정폭력, 여성폭력, 복수 등을 다뤘다면 이 작품은 좀더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간다. 가장 친밀한 존재이지만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이라는 특성에 맞춰 상처와 극복, 그리고 소통과 치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독자는 소설을 통해 딜레마의 해결이 아닌, 딜레마에 빠지게 된 이유를 더듬어 되짚어본다면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이를 먼저 해결해야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때로는 사랑보다 믿음이 우선되어야할 때가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