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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스와프 렘 - 미래학 학회 외 14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외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평점 :
과학소설로 분류되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들은 과학 이전에 인간 존재, 신과 인간의 관계, 미래 사회 등 본질에 가까운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192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의학 공부를 하며 청년기에 전쟁의 시대를 관통하고 전후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를 지켜본 작가의 작품에는 이를 반영한 비판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욘 티히 연작>에서는 기술의 발달에 의해 발생한 쓰레기와 그에 따란 자연 파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가해지는 부작용과 질병의 발생, 그리고 여러 악영향에 대해 말한다. 또한 삶의 종착지인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생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지적한다. 생명의 잉태가 아닌 생명을 생산해내고 복제하며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 더하여 이것을 산업화함으로써 맞닥뜨리게 되는 생명 존중을 짚어내면서 미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종 객체가 인류를 압도할 것이라는 가상을 세워 경고한다. 더불어 이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인간들을 꼬집으며 저항하지 않는 자유는 자유가 아님을 강조한다. 비록 그 저항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양쪽 모두를 복속시켜려한다고 해도 또 다시 저항함으로써 자유를 드러내야 하며, 외면과 내면의 저항의 한계는 신이 아닌 우리 스스로 정해놓았을 뿐 사실상 한계는 없음을 이야기 한다.
발전과 진보만을 추구하며 오로지 미래만 지향하는 사회, 돈과 이익과 애국심을 빌미로 방아쇠를 당기는 이 세상은 과연 참혹한 현실인가, 환각에 의한 사기극인가를 묻는 작가. 인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닌 건축용 비계와 같은 존재에 불과한, 더욱 완벽한 전자 두뇌를 창조하기 위한 매개이자 도구로서의 역할이라고 가정하는데 일정 부분 동의할만 하다.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에 의해 우리의 일상은 이미 충분히 잠식되었다. 우리는 전자기기가 없으면 단 하루도 생활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는 스스로 신세계를 창조한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만들어놓은 테두리에 갇혀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고찰해야 할 여러 문제들을 던져놓는다. 그의 통찰이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작가는 발전을 명목으로 집단주의 안에서 매몰되는 개인의 존재와 개인성을 상실한 인간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임을 말하면서 인간이 권력자 혹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해야한다면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존재 필요성은 무엇인가를 물으며 보수와 진보, 즉 지속성의 갈망과 변화에 대한 갈망 사이의 딜레마를 묻는다. 또한 여러 작품을 읽다보면 얼핏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개인의 삶을 꼬집는 듯 하지만, 더 넓게 보면 강대국에 의해 세계를 재편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더하여 인간이 갖는 공포의 근원과 의식에 대한 모순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을 짚어내며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창작의 영역까지 침범한 기계의 이야기를 통해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마치 마무리를 하듯 마지막 작품인 『테르미누스』를 통해 위에서 모두 언급했던 전지구적 재앙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음을 말한다.
작가의 작품들에서 재미있는 점은 브랜드명을 실제 명칭, 그대로 사용하다는 것이다. 대체로 미국과 독일 상품들인데, 문란하고 퇴폐적인 성(性)문화를 비난할 때에는 이 나라가 꼭 등장한다. 미국 작가인 필립 K.딕이 소설을 통해 공산당의 미국 침투를 맡았다고 FBI에 신고했다는 말을 들으니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간다. 읽으면서 한 장 한 장 경이로운 마음으로 읽었다. 기발, 익살, 풍자, 해학을 두루 갖춘, 과학적 윤리와 철학적 사유도 놓칠 수 없는 SF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