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보에 되돌아온 사람은 남과 어울려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암에 걸린 페트로프, 우울증이 있는 마르야, 시인 시도로프, 유일하게 부부가 함께 사는 가브릴로프 부부, 레노치카가 그들이다. 체르노보에는 컴퓨터는 고사하고 전화선도 끊겼으며 우편함도 멀리 있어 연락이 쉽게 닿지 않는다. 체르노보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말리치, 채소밭, 저장품, 이웃 뿐이다.
얼마 안 있어 체르노보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체르노보 사람들은 으스스한 존재다. 바바 두냐가 종종 말리치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금으로 들어온 돈을 찾기 위해 은행에 가는 것인데 그녀는 그 돈을 모아서 독일 마르크로 환전해 손녀 라우라에게 모두 주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우체국 우편함에서 소포와 편지들을 찾고 필요한 것들을 산다. 마르야는 바바 두냐가 말리치에 갈 때마다 돌아오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말리치 사람들은 바바 두냐를 안다. 그들은 그녀뿐만 아니라 죽음의 땅으로 귀향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북쪽, 벨라루스 접경 지역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기 원자로가 폭발해 50명이 사망하고 피해 복구 과정까지 포함한 20여만 명이 방사능에 피폭되었다.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최고 등급인 7단계에 해당하는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평가되었고, 체르노빌은 죽음의 땅으로 불렸다.
소설은 80대 노인 바바 두냐가 체르노빌을 연상시키는 '체르노보'로 귀향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죽음의 땅으로 전락하고 폐허가 된 체르노보에 첫 귀향자로서 언론에 의해 전세계에 알려진다. 바바 두냐의 생활권인 말리치에서 그녀를 모르는 이는 없다.
원전 사고 이후 체르노보에서는 벌을 찾아볼 수 없고, 고양이는 기형으로 태어난다. 사람이 살지 않고 방사능 피폭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기에 우편물이나 전화선이 끊긴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르노보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 이전, 체르노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돌아온 것은 아니다. 바바 두냐 역시 체르노보에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남편으로 인해 힘든 시절을 보냈던 여성이다.
그들은 늙고 아픈,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연대의 개념은 없었다. 마을 공동체로서 뭔가 같이 해 본 일이 없고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해 본 일도 없기 때문에, 바바 두냐는 자신들이 마을 공동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폭자라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 고립,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며 서로를 보살핀다. 법정에서 바바 두냐의 증언과 출소 후 그녀의 선택은 이러한 공감을 기반한다.
생면부지의 소녀를 구하기 위해 폭력을 감수하고,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이리나와 라우라의 삶의 진실을 알게 되지만 낙담하지 않으며 오히려 딸을 위로하는 바바 두냐. 그녀가 갖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지치지 않는 생명력은 지켜보는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소설에서 바바 두냐는 망자들의 혼령을 볼 수 있다. 이 장치는 소설을 유쾌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건의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판타지적 요소와 서정적이면서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는 한 편의 긴 산문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길지 않은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 한 켠이 찌릿했다가 따뜻했다가 웃음이 빵 터지기도 했는데, 책 뒤표지의 한 저널리스트의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이 책을 꼭 껴안고 싶었다"는 말에 동감하면서, 만약 바바 두냐가 앞에 있다면, 그녀와 깊은 포옹을 나누고 싶었다.
가장 약한 몸으로 폐허가 된 땅과 삶, 그리고 인간성을 지켜낸 바바 두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