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에곤 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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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인간, 날 것을 받아들엿던 에곤 쉴레.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유년시절을 보내지 못했던 그는 본능에 충실한 그림을 그려왔다. 
 
거칠고 날카로운 듯한 그의 그림.
스물여덟 살에 전염병으로 사망한 그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았다면 그의 그림은 달라졌을까? 
 
​혼란의 시기에는 어디에라도 열정을 쏟아붓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발리도 그렇고 쉴레도 그렇고, 짧은 삶이 참으로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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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구스타프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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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아르누보운동의 대표 주자, 구스타프 클림트.
주로 여인을 그렸던 그의 그림에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두 개념이 다 존재한다.
미술 역사상 가장 완벽한 사랑의 표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키스> 에서조차도 사랑에 의한 절정의 순간에 드리운 죽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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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을만큼 행복한 사랑의 순간이라...... .

왠지 경험해보고 싶지 않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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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오귀스트 로댕 
 

예술(art)이라는 말보다 작(work)라는 말을 더 좋아했을만큼, 여러 의미에서 관념이 아닌 육체 예술가였던 로댕은 얼정적인 창조가였고 일중독자였다. 욕망도 쾌락도 삶도 모두 일에 쏟아 부은 예술가였다. 



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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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수잔 발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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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수잔 발라동이 등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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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문화예술 작품에서 '성장'의 주체가 남성이었고 여성은 사랑의 대상이었다면, 수잔 발라동은 여성을 수동적 인형같은 존재에서 성장의 주체로 끌어온다. 그리고 '죄'의 원인을 여자에게 두었던 기존의 관념에서 그림을 통해 죄의 동등함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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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가 한 편의 영화같은 수잔 발라동. 지난한 삶에 노년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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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생각해 보면 마녀와 마법사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남자는 마법사인데, 여자 마법사는 굳이 마녀인가. 그리고 남성의 노화는 연륜이 쌓여 존경의 대사잉 되지만, 여성의 노화는 미의 퇴화로 여겨질 뿐이다. 최근들어 이러한 시선은 점차 달라지고 있지만 글쎄 여전히 어려보인다는 말이 칭찬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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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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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알았다. 전작에서 농인 시설 이름을 왜 '해마의 집'이라고 했는지. 



[법정 수화 통역사] 두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농인보다는 양육과 교육, 그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과 인식의 문제, 그리고 발달장애와 비혼모를 향한 사회 구성원들의 편견을 다루고 있다.  
 





 



발달장애는 부모의 애정 부족과 양육 환경에 원인이 있다는 주장을 하며 '육아 서포트 조례안'를 통과 시키려는 정치인과 서로의 이득이 맞물려 정육학을 기본으로 하는 청각 주도 교육만을 시행하겠다는 가지 히데이코는 권력과 돈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편법을 자행한다. 
 


자폐 스펙트럼과 함묵증을 안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에이치의 엄마는 비혼모다. 에이치와 같은 반 미와의 주선으로 아라이는 에이치의 집을 방문해 소년에게 수화를 가르치게 되고 들을 줄 알지만 음성 언어를 하지 않는 아이는 그날부터 '용위 귀'를 갖게 된다. 
 


어느날 에이치 집 근처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 에이치. 그런데 이 사건 이면에는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에이치의 엄마 마키코, 증언을 하겠다고 용기를 낸 에이치. 때론 아이가 어른보다 더 강하다. 
 



 
일단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 교육 기본법'이라는 명칭부터 어불성설이다. 정통적 가족의 가치관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무엇이 정통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1인 가구를 시작으로 현대 사회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동성부부와 자녀, 조손가구, 비혼자와 자녀, 자녀가 없는 2인 가구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그런데 '올바른' 가족의 형태를 국가가 규범해 놓는다는 것은, 국가가 가정 교육에 개입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잘못된 관습과 고정관념을 확립시켜놓는다는 의미다. 또한 발달장애를 비롯한 자녀 문제를 부모와 가정 환경에 일방적으로 무조건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지의 극치다. 이러한 모습은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그려지는 미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마키코와 에이치, 그리고 가지 일가를 통해 현재 사회 저변에 잘못 인식되어 있는 부분들에 대해 짚는다. 우리는 스스로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아직까지 인정하기 어렵다. 이는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한 여론과 해결 방식과 결과,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책을 쓴 어느 전문의가, 난치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갖은 아이를 낳는 것은 '확률'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확률에 걸려든 것 뿐이라고. 법정 수화 통역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 말이 생각났더랬다. 


 

'보통'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저 확률을 피해간 것 뿐이다. 그리고 '정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상의 잣대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없다. 그보다는 인정, 공존, 조화라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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