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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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작품이 실린 소설집이다.
각각의 소설들은 현재 우리의 모습ㅡ외적, 정서적ㅡ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의 소감을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나는 실린 모든 작품에서 공감하고 이입했다.  





 
 


전쟁으로 한순간에 사라진 일상. 현재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최근들어 고조되는 한반도 위기. 아비규환 속에 신은 어디있냐고 자문하는 <쓰게 될 것>의 '엄마'는 전쟁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에게서 신의 모습을 본다. 결국 고향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면서 소풍을 가자고,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자고 딸에게 말하는 엄마의 참담한 심정에 희망은 남아있을까.  


우리는 보여지는 것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경우가 크다. 바꿔 말하면 자 나신 역시 누군가로부터 보여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셈이다. 본인의 생각과 판단은 뒤로한 채 여론에 따르는 방관적 태도가 만연한 요즘, 타인을 신뢰하고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참 어렵기만 하다.  


살면서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들,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믿고 싶어서 믿는다기보다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때가 있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살다보면 더없이 귀한 존재다. 털어놓는 마음을 제 기준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섣부른 위로나 조언없이 그저 들어주고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 멋지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인간의 쓸모>에서는 학교가 빈민층 아이들만 가는 혐오 시설이 되어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 표현이 극단적이라고 여기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전인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할 학교는 갈수록 입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간다. 그럴 바에는 지름길을 선택하고자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해야 하는 것은 많지만, 하고 싶은 것은 점점 줄어든다. 소설의 '배아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미래를 설정해 놓고 거기에 현재의 '나'를, 우리 아이들을 끼워맞추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고思考하지 않는 인간. 이게 우리가 받아들 심각한 사안이다.  


실패를 혐오하는 세태에서 초조와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들. 불행에 익숙해져 불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하는, 그래서 불행해 익숙해져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 


내가 선택했다고 믿었던 것들 중에서 정말 내 의지대로 선택한 것이 얼마나 될까. '예측 가능한 미래'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다니는 요즘, 과연 인간이 제 미래를 얼마나 예측하고 선택할 수 있다고 장담할 것이며, 한 개인에게 들이닥치는 불가항력적인 미래ㅡ전쟁, 천재지변, 뜻하지 않은 사고ㅡ는 예측할 수 없고 대비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인생에 정답이 있을리가.  
나는 <홈 스위트 홈>의 '나'에게서, <인간의 쓸모>의 노아와 안나에게서, <유진>의 이유진에게서, 일부분이나마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 소개글에서처럼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해야만 하는, 누군가는 써야만 하는 이 시대의 이야기들임이 분명하다. 소설은 시대에 대한 답이라기보다 거울에 가깝다. 그것도 너무나 투명한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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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중독 - 혈당을 낮추고 비만, 노화, 만성 질환에서 해방되는 3주 혁명
대릴 지오프리 지음, 이문영 옮김 / 부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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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표지의 그림처럼 '설탕'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당'이 곧 탄수화물을 포함한 모든 당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것이다. '당'이 노화를 가속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건강에도 상당히 치명적이라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에 대한 부분은 중.노년층뿐 아니라 청소년 시기부터 습관을 들여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탕은 코카인보다 여덟 배 중독성이 강하다. 즉 탈설탕에 대한 의지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나 설탕 중독을 개인의 탓이라고 치부할 수 없고 죄책감을 가질 이유는 더더욱 없다.  


우리가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몇 가지 중 하나는 천연 당이든 가공 당이든 모든 당은 똑같다는 것이다(그래서 과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고, 특히 주스로 만드는 건 더욱 좋지 않다). 호르몬을 급증시켜 배고프게 하고, 지방을 늘리며,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물론 가공 첨가당이 자연 당보다 몸에 더 해로운 건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혈당 수치를 높이고 당 연소 상태에 빠지게 하며 장 건강을 파괴하는 식품 세 가지가 밀, 고기, 유제품인데 이 음식들은 모두 대사 과정을 거쳐 결국 당으로 변한다. 따라서 주스나 아이스크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당 식품을 섭취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당을 흡수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식품들은 모두 산으로 변하는데 이로 인해 미네랄 결핍이 일어나 당 갈망이 더 심해진다는 데 함정이 있다. 대부분 설탕 끊기에 실패하는 이유는 대체로 미네랄 결핍일 가능성이 크다.  



장은 면역계의 80퍼센트, 신경계의 80퍼센트를 차지하며 두 번째 뇌라고 여겨진다. 설탕(및 인공 감미료)은 장내 환경을 파괴하여 장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원흉이다. 설탕을 섭취하면 장, 뇌, 간, 생체 시계, 호르몬, 심장 등 몸 전체가 대가를 치른다. 신체 내부를 건강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음식과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  


ㅡ 


요즘에는 식재료를 사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보니 책에 나와 있는 식재료를 구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을테지만, 개인적으로 서구 식재료 위주라서 우리 땅에서 수확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식재료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일단 저자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보다는 더 먹어야할 음식들을 소개한다거나 식단의 다양화 및 식사 시간을 조절하라는 등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서술해 읽는 데 부담이 덜하다.   


책에는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실천서와 그에 대한 방법, 그리고 섭취해야 하는 식품(음식)과 간단한 레시피가 실려 있어서 의지를 갖고 해보겠다는 독자들은 도움이 될 듯하다. 특히 영양 보충제 복용 방법 등 사소한 것까지 구체적으로 서술해서 부분적으로나마 활용해볼 요량이 있는 이들에게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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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 - 시인이 관찰한 대자연의 경이로운 일상
니나 버튼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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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장만한 시골집에서 지내면서 일상의 경험을 통해 주변의 자연과 생물들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토양과 균류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의 생태를 이야기한다. 






 
동물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인간에게 친숙한 존재이고 동시에 예술적 영감을 준다. 인간의 생활과 별개로 동물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지적 능력과 의사 소통 능력이 훨씬 뛰어남을 쓰면서 새와 벌의 비행의 정교함과 정확함, 벌이 구축한 공동체 사회, 작디 작은 곤충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큰 기여도, 수적 우세와 응집력으로 번성한 개미 등 아주 오래 전부터 기후와 생태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해 온 동물들에 대해 서술한다. 더불어 인류사와 동물의 상관 관계를 짚으며 현재 자행되고 있는 동물 학대와 혐오, 동물의 생래적 습성과 이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 인위적으로 품종 개량을 서슴치 않는 인간의 이기, 인간의 관점(특히 감정적인 면)에서 동물의 생태적 패턴을 규정하는 우리의 오해와 그릇됨을  짚는다.  


저자가 말한 생물의 크기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인간은 제 몸뚱이를 기준으로 크기를 재단하지만, 사실 지구에서 사는 생물들 중에 가장 흔한 크기는 적어도 인간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개미 정도의 크기가 가장 흔한 크기다. 야생 동물은 이 땅의 진장한 주인이자 땅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그의 말에 동감한다.  


ㅡ 
 
식물은 지구 생물체량의 99퍼센트를 차지한다. 굳이 수치적으로 따지자면 지구는 식물이 장악한 셈이다. 무엇보다 식물이 없으면 지구의 그 어떤 동물도 생존할 수 없다. 


저자는 식물이 가진 예민한 감각을 일종의 감정으로 간주해도 될지 묻는다. 집에서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이 부족하면 바로 윤기를 잃는 이파리, 너무 더우면 늘어지는 가지,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제때 피는 꽃, 어느 때부터인가 새롭게 올라오지 않는 선인장. 이틀 전, 고무나무의 줄기가 단단해지려면 맨 아랫단 잎을 떼어주어야 한다는 조언에, 수경으로 키우기 시작한 고무나무의 잎 한 장을 두눈 질끈 감고 떼어냈는데 그 자리에서 하얗게 올라오는 수액을 보고 속상했다. 얘가 눈물을 흘리네, 싶더라는. 이러니 식물에게 감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나. 식물은 지구에서 생태와 환경을 가장 잘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존재다. 피터 싱어는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는데, 난 그 의견에 반댈세.


동물만큼이나 식물도 인간에게 혹사당하는 중이다. 인위적 품종 개량, 의도적 멸종(대표적인 사례가 바나나), 대규모 플렌테이션에 의한 엄청난 양의 물 소비, 농약 및 살충제 사용에 대한 심각성은 말하기도 입이 아픈 지경이다. 


저자는 시골집에서 생활할 때 애써 잔디를 관리하지 않아도 마당이 저절로 자라며 그들이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다고 썼다. 이에 관련한 글을 읽으며서 옛날에는 집 옆에 <보호하는 나무>를 심었다는 스웨덴 전통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집 마당에 심은 나무 한 그루에 온전한 먹이 사슬 형태를 이룬다는 것만으로도 참 경이로운 일이다.  


ㅡ 


저자는 생명의 역사를 생물학적, 사회 및 사회과학적, 환경 및 인문학적 관점에서 탐구하면서 지구의 역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서술한다. 또한 공장식 축산을 비롯한 현재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생태계 오염에 따른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생물 종의 다양성과 개체수 감소의 우려를 나타낸다. 인간 외 생물들이 야생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 확보와 환경 조성의 중요성 또한 짚는다. 


읽으면서 동물권에 관련한 책들이 생각났는데, 동물이 내재적 가치를 가진 존재인지에 대한 여부와 그에 대한 동물의 권리 논쟁은 고대부터 이어져왔음이 떠올려진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아퀴나스, 칸트, 벤담, 싱어, 레건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도덕적 지위 여부에 대한 주장은 달랐는데 근래 들어 반려 동물이 확대되면서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이와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실험 동물에 대한 찬반 대립은 여전하고, 경제적 측면과 생태적 측면이 격돌하는 순간에는 거의 다 경제적 측면이 우위에 놓이며, 공장식 축산의 가혹한 환경은 동물의 내재적 가치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이러한 논쟁 역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서문에는 자연에 들어선 인간은 손님으로서 방문을 하는 것이라고 썼는데, 이 문장이 무척 공감이 된다. 한여름에 산장에 며칠 머물다보면 특히 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아, 내가 이들의 공간에 침투한 거대한(?) 이방인이겠구나"라는 생각.  


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인간 외의 생물들과 유대하며 살아야하는 이유를 철학, 문학, 역사, 과학을 통해 설득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자유와 단합, 고독과 유대 사이의 역학.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존중해야 할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도서지원 #리딩투데이 #독서카페 #리투서평단 

#살아있는모든것에안부를묻다 #니나버튼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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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
모드 방튀라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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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화자인 아내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절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두 아이를 낳고 15년차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의 사랑은 어째 섬뜩하다. 당장, 남편의 다정함, 부부 간의 안정된 유대감, 충분히 예상되는 평안할 그들 미래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보다는 더 열렬하고, 남편이 외도를 하고 거짓말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통제되지 않는, 말초적 자극의, 그런 맹렬한 사랑을 갈구한다. 그런데 소설이 진행될수록 처음과는 다른 화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격한 말투와 실제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상당히 거리가 있다. 심지어 남편은 아내를 '내 순둥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소설에 그냥 쓰인 단어는 없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아내의 관심사와 초점은 오로지 남편과 사랑에 맞춰져 있다. 거기에는 두 아이를 포함한 누구도, 그 무엇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아내는 부르주아층 남편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고, 고등학교 교사이자 프리랜서 번역가이며, 자타가 인정하는 미인이다. 남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해 집착해서 스스로를 적당히 과장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타인과 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과도하게 칭찬해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는 방식을 선택하고, 부부 애정 정도를 다른 부부와 비교하며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오매불망하는 남편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어떨까?
아내는 자식도, 부모도, 친구도 필요없다. 오직 남편만 있으면 충분하다(심지어 남편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제 자식들을 질투하고, 아이가 세상을 떠나는 건 견딜 수 있어도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은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남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확대 해석하며 시비를 따지고 집착하면서 남편이 떠날까봐 불안을 안고 산다. 남편에 대해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불쾌하게 여기며, 남편이 그녀가 예측한 범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막연한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남편이 그녀와 결혼한 것을 후회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남편의 우편물과 자동차 네비게이션 행선지와 이메일을 확인하고, 소지품을 뒤지는 그녀는 결국 의부증 증세까지 보인다.  


ㅡ 

이쯤되면 독자는 아내가 점점 불편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여성을 좀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남편의 직업은 멋지고, 학력이 화려하고, 외모가 출중하고, 스포츠에 능통하고, 부르주아 가정에서 성장한 반면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아내는 미모 외에는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해 부부의 관계가 불균형하다고 여긴다. 남편을 곧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그의 가치가 곧 자신을 내세우는 도구가 된다. 또한 남편의 행위 하나하나가 자신에 대한 애정 척도가 된다(예를 들어 남편이 장을 봐온 물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느끼며 영수증에 찍힌 액수를 보고 남편의 사랑을 계량화한다). 남편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남편이 좋아하는 모습에 집착하고, 무슨 책을 번역하든 결국 남편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한마디로 모든 사고 체계가 남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그녀의 자격지심이나 낮은 자존감을 이유로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아내를 통해 우리는 반문할 수 있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애, 성적 욕망의 억압, 순종적이고 헌신하며 무엇이든 능숙하게 해내는 슈퍼우먼의 현신. 무엇 하나 오롯이 본인 위주의 삶을 설정하기 어려운 기혼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가 교사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업 시간에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고 수업 시간만큼은 그녀가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둥이'가 아닌 팜파탈을 꿈꾸는 그녀가 막심을 만날 때면 남편 앞에서 포장했던 모습을 모두 거둬내고 자신의 성적 욕구에 충실하며 민낯을 드러내는데, 그녀가 집착하는 사랑을 덜어낸 육체적 관계에서 훨씬 편안한 모습을 보인다. 소설을 완독하고 나면 그녀가 집착하는 건 정작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에필로그>를 읽다보면 아내가 정말로 착각하고 있는 점은 따로 있다. 


나는 왜 서글퍼지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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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 함정임의 유럽 묘지 기행
함정임 지음 / 현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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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취향저격이다.
읽고 있는 중에도 계속 눈에 밟히는, 올해 읽은 에세이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온 책이다. 


이 책은 작가를 사로잡았던 소설가, 시인, 화가, 예술가 들의 생애 공간과 영면처를 찾아간 묘지 기행이다. 지면에 언급된 인물들과 그들의 작품, 그리고 사이사이 발췌한 문장들의 주인(?)까지 꼽으면 수십 명 인사가 책 안에 있다. 단순한 기행을 넘어 영면한 이들의 작품들과 죽음 이전의 삶을 무겁지 않게 톺아보는데, 작가의 인문학적 시야가 돋보인다.  


프랑스의 파리에 있는 몽파르나스, 팡테옹, 몽마르트르, 페르 라셰즈, 오베르쉬르우아즈로 순례를 시작한다. 반 고흐를 따라 암스테르담에서 아를, 파리, 고흐의 마지막 거처였던 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의 여정을 짚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생애 마지막 3년을 보냈고 그곳 성의 예배당에 묻힌 앙부아즈와 다빈치의 이탈리아 고향 마을을 여행한다. 더하여 생폴드방스, 루르마랭, 마르세유, 세트, 드럼클리프, 크레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루앙, 모스크바, 야스나야폴랴나, 베네치아, 베를린, 빈, 샤를빌메지에르 등 수많은 도시와 외곽 마을, 그리고 그곳에 잠든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다정하고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서술한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들을 짚자면, 
책의 처음에 등장하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묘지. 그들은 합장되어 있는데, 서로의 자유를 존중했고 사실혼 관계에 가까웠음에도 한 집에서 살지 않았던 그들이 과연 합장을 원했을지에 대한 가벼운 의구심. 그리고 어머니를 의부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보들레르가 의부의 가족묘지에 묻히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짐작. 이들의 묘지를 따라가면서 든 생각은 비록 본인에 관한 사안이라도 죽음 이후에는 고인의 손을 떠났으니 자신의 죽음 뒤를 걱정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유언을 남기면 뭐하냐고, 말을 안 듣는데). 반면 착한 아들도 있다. 베케트 가까이 묻어달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죽어서 파리로 이사온 수전 손택. 정말 지척에 묻혔더라.   


프랑스 파리의 묘지 중 페르 라셰즈 묘지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몽파르나스, 몽마르트르, 팡테옹도 유명하지만 페르 라셰즈는 파리에 있는 공원과 20개의 묘지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파리에서 가장 넓은 녹지를 자랑한다고. 당대의 건축가와 조각가들이 다양한 재료와 스타일로 기념문과 기념비를 만들어 놓아서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는데, 개선문과 함께 파리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고,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어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안내되어 있다고 한다. 발자크, 프루스트, 조르주 페렉, 짐 모리슨, 폴 엘뤼아르, 에디트 피아프가 잠들어 있다. 그런데 페렉의 유골은 봉안당 벽에 잠들어 있다. 공간에 대한 애착을 보인 페렉이 잠든 곳이 네모칸 작은 벽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들더라는. 


대체로 국립묘지 격인 팡테옹에 안장되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혹은 가족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인사들이 가족묘지에 안장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파리의 묘지에는 프랑스인 외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상당수 영면해 있는데 문득 그들에게 파리는 어떤 의미였을지도 궁금해졌고.  


기억에 남는 묘지는 아무것도 세우지 말고 소박하게 묻어달라는 톨스토이의 당부대로 그믜 묘는 그야말로 푸른 잔디뿐이다. 말년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와 잘 어울리는 묘지다. 다른 하나는 빈에 있는 쇤베르크의 묘. 빈 중앙 묘지에는 음악가군이 배치되어 있는데, 유독 쇤베르크만이 혼자 뚝 떨어져 있다. 흰 대리석을 육면체 비석 모서리를 바닥에 꽂아 기우뚱하게 세워놓은 형상이다. 마치 현대 미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따로 있는데, 파리 시민에게 죽음의 공간이 일상 속에서 조화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묘지의 벤치에서 독서를 하고,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묘지의 바람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고요한 한적함이 얼마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지 알 것이다. 그래서인지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곳곳의 공동묘지는 상당히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더라는. 그래서 사진에서 보여진 장소들의 공기를 맡아보고 싶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잘 사는 것만큼이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꽤 오랫동안 역사 답사를 다니면서 가끔 일정에 문학에 등장한 지역 또는 작가들의 생가를 넣기도 하는데, 차후 본격적으로 문학 중심 답사를 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스무 살부터 그를 사로잡았던 이들을 좇았다면, 나는 나의 청춘 시절을 붙잡아 주었던 문학 작품의 관련한 장소들을 좇아봐야겠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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