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알폰스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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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후 소비가 대중화되고 필요의 경제에서 욕망의 경제로 이행되면서 사랑조차 경제 능력이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성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고용 그림 제작으로 명성을 얻은 알폰스 무하. 그의 그림이 전 세계를 매혹한 이유는 동유럽 체코 출신의 예술가로서 독특한 예술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상업성을 선택한 예술가를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재능과 시대 상황이 맞물려 본의 아니게 조국의 지배국의 영광을 높이는 데 쓰여진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쉰 살(1910년)의 나이에 고향 체코로 돌아가 18년간 '슬라브 서사시' 연작에 몰두하면서 억압받는 슬라브 민족의 쳔 년의 역사를 담은 무하는 지배-피지배가 존재한지 않는 조화로운 공존의 메시지를 전했다. 
 


인류의 모든 사건은 양면을 지닌다고 했던가.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가난하고 절망에 허덕이던 체코는 신생 공화국으로 탄생했고, 무하는 1928년 완성한 <슬라브 서사시>를 국가에 기능해서 국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프리메이슨이었던 무하는 곧바로 체포되어 일흔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알폰스 무하 편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상업 예술가로 이름을 유명해진 그가 민족주의자이자 코스모폴리타니스트의 길을 걸었던 그의 인생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떠올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하와 반대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 작품과 인생을 별개로 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적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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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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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에이든의 결혼식 날, 호텔 앞에서 우연히 시선이 마주친 조니를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진 펠리시아. 두 사람은 곧 연인이 되고, 영국에 일자리를 얻은 조니는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그가 떠난 후에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펠리시아. 가부장적이고 애국심을 중요시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아일랜드인으로서 영국군에 입대한 조니를 용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펠리시아를 창녀라고 몰아붙인다. 결국 조니를 찾아나서기로 결심한 펠리시아의 고단한 여정이 시작된다. 





 



주인공 펠리시아의 나라 아일랜드는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이후 여섯 개 카운티가 영국의 일부로 남아 북아일랜드가 되었고, 그에 따라 영국에 대한 감정이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와중에 경제 불황에 의해 공장들이 문을 닫고 대규모 실업 사태와 고용 불안정으로 인해 영국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때 실업자가 된 펠리시아는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증조 할머니를 돌보고 살림을 도맡으면서 가정에 얽매이게 된다. 카톨릭 국가이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결혼하지 않은 채 임신한 펠리시아가 비난을 감수하며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연인을 기다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오로지 조니가 근무한다는 상점 이름 하나만 들고 도착한 낯선 나라 영국에서 펠리시아의 순진함과 고지식함은 위태롭기만 하다. 사람들은 이방인, 그것도 차별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일랜드인을 향한 무시를 쏟아낸다.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주로 하룻밤 상대로 유혹하는 길거리 남자들, 혹은 집단 생활을 하는 종교단체 무리다. 낯선 거리에 선 펠리시아는 갈 곳이 없다. 
 


□  □  
 


이러한 소녀를 버스터미널에서부터 눈여겨 본 남자, 힐디치.  
힐디치는 누가 봐도 친절하고 배려가 넘치며, 회사에서는 유쾌하고 상냥한 직장 동료다. 겉으로 봐서 그의 이면에 불안증과 연쇄살인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연인을 찾아 집을 나왔지만 그 남자의 행방을 찾지 못할테고, 임신까지 한 사실을 관찰만으로 파악한 힐디치가 펠리시아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상당히 용의주도하고 면밀하다. 논리적으로 거짓말을 일삼고, 상황을 조작하고, 임신한 어린 소녀의 동정심을 부추기며, 돈이 없으면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그녀의 돈을 훔치기까지 하면서 자신이 의도한대로 이끌어 간다. 
 


독자는 힐디치의 흑심을 진즉에 알아챘기에 그에게 끌려다니며 거부하지 못하는 펠리시아를 답답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녀는 낯선 타인에 불과한 자신에게 따뜻한 호의를 베푸는 힐디치를 외면할 수 없다. 가족도 자신에게 신경써주지 않고, 아버지는 창녀라고 비난하고, 심지어 그녀가 어릴 때 죽은 어머니조차 꿈에 나타나 더럽다는 욕설을 내뱉지 않는가. 지속적으로 낙태를 유도하는 힐디치의 권유를 거절하는 펠리시아는 낙태를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책감을 가지며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힐디치는 양의 탈을 쓴 악마일까? 힐디치는 펠리시아 이전에 만났던 여성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읊조리며 추억한다. 빚을 갚아주고 호의를 베풀어주었지만 여자들은 모두 그를 떠나겠다고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그 어머니도 숱한 남성들로부터 버림받았던 힐디치가 바랐던 것은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 누군가의 온전한 전부가 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느낀 감정은 상실감이었다.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불행했던 유년시절이 그가 저지른 죄를 상쇄시킬 수 없다. 그러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그를 통해 악은 의외로 우리의 주변에 상시적으로, 또한 보통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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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를 연상시킬만큼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힐디치의 상실감은 과연 특정 인물에 한정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많이 내재되어 있는 감정 중 하나가 상실감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실감에 파묻혀 되는대로 희망없이 살아야만 할까? 
 


작가는 무심하고 각박한 세상에도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펠리시아는 길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비록 종교적인 이유때문일지라도 갈 곳없는 그녀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내어준 자메이카 여성, 노숙자의 이를 치료해주는 치과 의사. 그곳이 어디든 선과 악은 늘 동시에 존재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재회하지도 못했고, 아이를 지키지도 못한 펠리시아. 그러나 모든 것을 벗어던진 그녀는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얻었다. 손의 한 쪽만 따뜻하다면 손을 뒤집어 반대편도 따뜻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은 펠리시아의 여정의 끝을 독자는 알 수 없다. 다만 마지막 문장에서 전해지는 그녀의 자유와 평안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조니, 조니의 진심, 힐디치가 중얼거리는 여성들, 그의 정체가 밝혀짐과 동시에 실종된 펠리시아. 그리고 조니와 재회할 수 있었지만 놓쳐버린 몇 번의 기회들이 안타까워 가슴 한 켠이 저릿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통해 의미하는 바가 크지만, 오롯이 펠리시아의 여정에만 집중해서 읽었다. 그녀의 지난 여정이 아름다웠다고 할 수 없지만, 뿌리박혀 내려온 그릇된 관습에서 자유로워질 앞으로의 여정에, 나와 더 자유로워질 여성들의 여정을 보태어 응원한다.
 



321.
항상, 어디에나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가르는 운명이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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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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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에 출간된 첫 창작집의 제목이 왜 <만년>일까? 


다자이 오사무가 이십대에 쓴 첫 창작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러한 궁금증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니었나보다. 번역가 역시 작품 해설에서 작가의 말을 빌려 그 이유를 짐작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열다섯 편의 작품마다 한 조각씩 (혹은 그 이상으로)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로써 노동하지 않고 기생하는 존재, 유모의 품에서 성장한 유년기, 두렵고 어려운 아버지, 감정의 배출구가 된 문학적 창작, 동반 자살을 시도한 후 혼자 살아남은 요조 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창작집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다자이 오사무,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양>에서 읽혀지는 그의 다정하면서 한편으로 짓궂은 개구쟁이같은,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면도 볼 수 있다. 보증금도 월세도 내지 않는 기노시타에게 휘둘리는 집주인, 싸움꾼이 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꿈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혼하고 첫날밤 아내에게 시범을 보이는 도중 아내를 과실치사로 죽게 하는 리로베, 스물두 살에 거짓말이 신의 경지에 이른 사부로. 그러나 웃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에서도 다자이 오사무가 갖는 우수는 짙게 드리워져 있다.  


 
 
<만년>에는 반제국주의 사상, 남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처지, 자신이 구경거리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지 못하는 사회 낙오자, 제국주의 시대에 국익에 도움이 되어야만 가치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렇지 못한 남성에 대한 비난, 문학과 예술조차 생활력이라고 치부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또한 나약한 지식인과 순수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군을 대비시키며 자신을 비롯한 무기력한 지식인들의 모습에 낙담한다. 더불어 일할 기회도, 의지도 없는 무직 기노시타와 아버지의 유산 덕분에 빈둥거리며 사는 화자의 자조가 자신에게 향해 있음을 독자는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에서 등장하는 화자와 기노시타, 두 사람 모두에게서 오사무가 보인다. 나이도 종잡을 수 없고, 신문만 꼬박꼬박 읽는 백수의 기노시타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며 '인간만사 거짓은 진실'이라고 외치는 [로마네스크]의 사부로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써야만 했던 <인간 실격> 요조와 겹쳐진다. 그래서 [원숭이 섬]에서 도주하는 일본 원숭이와 [참새]에서 자유롭게 날 수 없는 참새가 상징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어릿광대의 꽃]의 요조를 통해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한 결론을 '복수'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역행]에서 '보람없는 노력의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을 한다. 무슨 의미일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결국 복수의 대상 역시 본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 얼굴을 한 젊은이]에는, 모든 작가의 최고작은 만년에 쓰여진다는 의미가 담긴 문장이 있다. 그리고 창작집의 첫 작품인 [잎]의 첫문장은 이렇다. 


 
죽을 생각이었다. 올해 설날, 옷감을 한 필 받았다. 새해 선물이다. 천은 삼베였다. 회색 줄무늬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여름에 입는 옷이리라. 여름까지 살아 있자고 생각했다.  
 


늘 죽음을 염두에 두었던 다자이 오사무는 매 작품마다 '만년'의 작품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몇 번을 읽어도 늘 새로운 의문이 꼬리를 문다. 남성성을 강요당하는 시대에 태어나 반시대적인 사람으로 살아야했던 이의 정서에 깊게 이입하게 되는 나 자신의 정서는 또 무엇인가. 그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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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생리학 인간 생리학
앙리 모니에 지음, 김지현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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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가 풍자한 부르주아의 일상이라니. 발터 벤야민의 언급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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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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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열했고 처절했으면 결정적이었던 전투를 따라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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