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 다섯수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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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아쓰시의 소설 모음집이다. 책에 실린 네 편의 중단편 소설들은 중국 고전을 줄기 삼아 인간의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그리고 인간의 자아와 실존에 대해 쓰고 있다. 

  


 





[산월기]에서는 야망이 컸으나 출세를 하지 못하는 것에 절망하고 대신 문인으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 끝에 결국 짐승이 되어버린 한 남자가 맹수가 되어서야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된다. 야망만 컸을 뿐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했고 오만했으며 스승과 벗과의 교류를 무시했기에 급기야 인간의 성정을 잃고만 이징은 자존심의 늪에 빠져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던 자신을 맹수라고 자평한다. 
 


맹수가 된 이후에도 종종 인간의 마음으로 돌아오지만 그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그와중에도 이징은 가난으로 굶어죽어가는 처자보다 자신의 시가 후세에 남을 것인가를 더 신경쓴다. 이것이 이징이 맹수로 변하고 인간의 성정을 점점 잃어가는 까닭이다. 작가는 사유와 깨우침 없이 사는 것은 맹수와 다를 바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다음 작품인 [명인전]에서도 맥을 이어간다. 천하에 제일가는 궁시의 명인이 될 뜻을 세운 기창은 고금을 통해 아직 본 적이 없는 궁술의 대가라는 감승 노인을 찾아간다. 찾아간 노인은 활에 화살을 메기는 기창을 보고 불사지사를 언급한다. 그의 문하가 된 기창은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진인이 갖추어야할 것은 겸허와 초월의 자세임을 이야기하면서 이 작품 역시 내면의 깨우침을 강조하고 있다. 





​책에 실린 두 중편 중 하나인 [제자]는 공자의 제자 자로에 대한 이야기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 스승에게 가장 헌신적인 제자였다. 용감하고 솔직하지만 거친면이 있어 공자의 걱정이 컸던 제자이기도 했다. 순수한 몰이해성, 신기한 어리석음, 외곬성. 공자가 자로를 두고 한 말인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표현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전하는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제자들의 다른 생각이나 행동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악기를 연주하는 데에도 깊은 생각이 필요하고, 진심이 동반하지 않은 행위는 선이 아니다. 자로가 문하에 들어오고 자신에 대한 구설수를 들을 수 없게 되자 더이상 자신의 비평을 들을 수 없는 것을 애석해하는 공자의 인품도 대단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스승이라도 아주 적은 양이긴 하지만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는 어린 제자 자공의 지적은 안회에 대한 질투심에 기인한다고 해도 흘려들을 수 없다. 
 


공자는 세상과 등진 은둔형 성인이 아니었고, 자신의 사상이 세상에 쓰임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세상은 공자를 우러렀지만 그의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는 없었다. 하루 아침에 나라가 생기고 멸하는, 먹고 먹히는 시대에 인仁은 군주에게 도박이었을 것이다. 공자의 위대한 사상을 두고 제자 자공과 재여는 선천적 비범함이냐 후천적 노력이냐를 두고 왈가왈부한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을 터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사람, 자로. 그래서 늘 위태롭게만 보였던 그의 죽음 앞에 스승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능]은 기병을 주력군으로 한 흉노를 상대로 보병 5천명을 이끌고 북쪽 변방에서 몇 차례의 전투 후 참패하고 적군의 포로가 된 한나라 장수 이능이 겪는 정체성 혼란과 딜레마를 통해 예의와 충忠에 논하면서 동시에 사마천의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이능이 군대 안에 숨어든 여인들을 죽인 이유가 단순히 군사들의 사기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왜 누가 죽어야만 각성하는가. 그러나 의도와 달리 이능이 여인들을 죽인 것은 악수惡手로 돌아왔다. 하지만 누가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을 할 뿐이다.  
 


이능은 흉노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생활 방식을 납득하고 선우가 주장하는 예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한다. 고국의 주군에게 가족이 죽임을 당하고 흉노에 동화되어 가정을 이뤄 살아가는 이능과는 달리 같은 상황에서 포로로 잡혀왔으나 추운 북쪽으로 유배보내진 후 누구하나 자신의 자취를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정한 길을 가는 소무가 있다. 누더기를 걸치고 아무런 말 없이 우교왕이 된 옛 벗을 바라보는 소무의 눈빛에 초라해짐을 느끼는 이능의 심정은 혼자만의 자격지심일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능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앞에 두고도 결코 자신에게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을 허락하려 하지 않는 소무. 그리고 조국에 대한 충성을 내색하지 않았지만 무제의 죽음을 듣고 통곡하는 소무를 보면서 자신에 대한 회의에 쫓기는 이능을, 후세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그 회의에 대한 답은 아마도 이능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돌아오라는 권유를 받고도 갈 수 없는 이능이 19년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소무를 보면서 어느 곳에서도 온전하지 못한 정체성에 괴로워하는 그의 회한이 안타깝다. 당시로서는 충의 정신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능 역시 가문에 속한 한 일원, 명장의 손자로서 존재했을 뿐 자신 스스로 구축한 자아성의 결핍을 말하고자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해서 한무제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에 귀를 닫고 제 목숨 연명하기에 바쁜 간신들이 내뱉는,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고, 사리분별 없이 총명하지 못한 무제를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겠으나 주종관계의 시대에 한 나라의 수장의 역량은 절대적이다. 장부라는 이유만으로 이능을 존중해준 흉노의 선우와 달리 결국 이능의 가족까지 모두 사형시킨 무제는 대조를 이룬다. 유능한 장수를 적으로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무제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신영복 선생은 이 책의 '추천의 글'에서 뿐만 아니라 당신의 저서에서도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가 인간 관계의 실상이며 이상이어야 한다고 말씀했다. 말씀대로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작품은 인간 이해에 깊이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있으며, 보여지는 여백을 채우는 것은 독자의 공간이기에 선우가 제신한 예의에 대한 질문, 그리고 등장인물들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자아와 사유를 읽는 우리가 채워야 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관계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야함을 짚어준다. 

 

개인적으로 논어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 또한 논어를 제대로 이해할 때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또 읽어야한다는 것이지...). 읽고 싶었던 책을 즐겁고 길게 읽었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철수 화백의 담백하고 정갈한 수묵화가 쉼의 시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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