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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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어온 작가의 소설들을 감안했을때 재미는 보장일터, 거기에 시의성까지 갖추었다면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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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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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상업용 콘텐츠 감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 소설은 분명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그들의 경험은 창작의 산물이라고 쓰면서도 전 세계 상업용 콘텐츠 감수자들의 근무 환경을 다방면에서 조사했음을 밝히며 소설의 내용이 현실과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썼다. 






 
일단 등장인물들의 근무 환경을 보자. 
미디어 플랫폼 헥사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휴식 시간은 하루에 두 번, 그것도 화장실만 다녀와도 그 시간이 끝날 정도로 짧다. 하루에 500개 이상의 '위반 게시물'을 처리하지 못하면 호되게 곤욕을 치르고, 책상 앞을 잠시라도 떠날 때면 타이머가 작동한다. 그리고 게시물의 삭제 여부 결정의 정확도가 90퍼센트 이하가 계속되면 해고 조치를 당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케일리는 헥사에 근무하기 전에 콜센터에서 고객 서비스 대응 업무를 맡았었는데, 근무 환경만 보면 유사점이 있다. 콜센터 업무 시간 및 강도에 비해 급여는 적었고, 업무 시작과 동시에 타이머가 작동했으며, 전화 대응 목표치와 8.5점이라는 고객 만족도 평균치를 달성해야 했다. 그 와중에 고객의 과한 요구와 온갖 욕설 및 억지까지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 응대를 잘못해 고객의 빈정이 상하가리도 하면 고객 만족도 점수는 추락한다. 결정적인 차이와 심각성은 따로 있다. 


그들이 감수하는 영상물의 내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글로 쓰여 있는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드는데, 이것을 영상으로 하루에 수백 개씩 봐야한다면 정서적으로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헥사 영상 감수 직원들은 업무상 PTSD를 겪고 있다. 불면증, 악몽, 각인, 착각, 우울증, 강박, 불안에 시달리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과음 및 흡연은 더 증가한다. 또한 타자를 혐오하는 것에 무감각해져가고, 세상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다. 그보다 더한 심각성은 유해 게실물을 판별해야할 감수자들이 온라인에서 떠도는 거짓 영상과 가짜 뉴스를 믿으며 성격도 극단적으로 바뀌어 간다.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전한다. 
케일리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우려의 마음으로 읽고 있는 독자들이 생각해 볼 것은 그들의 고된 노동과 착취뿐 아니라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삭제 게시물 수위에 준하는 동영상이 불법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며, 성인은 물론 청소년들까지 너무 손쉽게 시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해 동영상을 단시간 시청하더라도 그 영향이 크다고 주의를 준다. 하물며 업무상 수백개씩 영상을 시청할 수밖에 없는 감수자들의 고충은 그들 업무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가 없으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근무하는 곳은 미디어 플랫폼 '기업'이다. 이들의 피해가 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소설을 읽고나면, 정신없이 화면을 밀어내는 손가락을 보면서 케일리가 소설의 마지막에 그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우리 역시 스스로에게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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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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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읽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 소설. 문자와 혐오의 이야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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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다 암실문고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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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미주의 소설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17세기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자연과 더불어 아름다우면서 한편으로는 슬프고 애잔하게 펼쳐놓는다.  


소설은 여러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하고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을 두고 각자의 입장이 드러나는데, 처음에는 시간이나 장소 혹은 상황의 전환이 생뚱맞은 게 아닌가 싶지만, 결국 각각의 이야기들은 한곳으로 모이며, 등장인물들의 인연과 그들의 예술, 그리고 사랑은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깊게 사랑했던 연인에게 말 한마디 없이 떠난 튈린, 느닷없이 사라져버린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상처를 끌어안고 정처없이 떠도는 하튼, 한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고 이름까지 바꿔 세상을 피해 살아야했던 이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음악을 찾아다닌 절대음감의 소유자 야콥, 전쟁이 끝나고 수도원을 세운 아브라함, 어린 나이에 살인 현장을 목격한 마리 에델, 일평생 자유를 갈망하다가 반평생을 함께 해온 반려말의 죽음으로 급속하게 노화한 지빌라 공녀.  


정쟁과 전쟁, 국가의 흥망성쇄, 들끓는 종교, 막을 수 없는 전염병들, 어지러운 국제 정세 등 17세기 당시 궁정 음악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유럽의 변화무쌍한 모습도 소설의 재미있는 요소다. 또한 연인의 육체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자연물과 예술에 빗댄 표현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워 소설을 읽다보면 줄거리를 차치하더라도 이 소설의 가치는 충분하게 느껴진다. 







 
소설은 카드 놀이에서 시작하고, 도박은 주요 소재 중 하나로 쓰인다. 하노버는 더는 도박이 안겨주는 걱정에도, 도박에 요구하는 예측력에도, 그 예측의 취약함에도 강박적으로 사로잡히고 싶지 않다면서 도박을 겁내고 거부하는 이유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하노버의 말이 도박이 아닌 사랑에 대한 얘기로 읽힌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거부하고 도망 갈 때도 있지만, 또 혼자 있는 건 죽을만큼 외롭다. 


야콥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음악을 찾아다녔다. 존재하지 않는 음악은 그의 열정으로 이루어지고, 그 자신이 음악이 되어 간다. 튈린은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이 낳는 고통에 몰두했다. 음악에 대한 사랑, 음악에 의한 고통. 이는 곧 튈린이 가진 열정이다. 이처럼 사랑과 음악은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이 소설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진심어린 어루만짐과 위안을 얻는다는 것의 의미, 슬픔을 넘어서 죽음에 더 가까운 사랑의 상실. 사랑에 내용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 튈린을 뒤쫓다보면 납득이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질문은, 왜 튈린이 하튼을 떠났냐는 것이다. 그것도 일언반구없이, 도망치듯이, 사라지듯이. 그리고 왜 끝내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을까(그 이유가 너무 안타깝다). 생의 마지막날에도 그를 잊지 못했으면서. 튈린은 하튼을 떠나고 더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고, 노년의 하튼 역시 튈린을 그리워한다. 작정한다면 얼마든지 닿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던 두 사람의 심경이 어떠 것인지 알 것 같더라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깊은 슬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열정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음악이 갖는 마법같은 불가사의한 힘.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음악이 가져다주는 기적같은 놀라운 일들. 예술가들의 우정과 대중으로부터 빠르게 잊혀지는 음악가들의 숙명. 소설 속 예술가, 그들의 죽음은 하나같이 느닷없고, 허망하며, 살아 있는 자들을 홀로 외롭게 만든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니 가슴 한 켠이 뻥 뚫린 것같은 헛헛함이란... .
소설은 모든 사물, 풍경, 감정 등을 지나치다싶을 만큼 세밀하게 묘사한다. 자신의 시원과 내면의 언어를 찾아 부유했던 예술가들의 삶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소설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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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일기 : 영원한 여름편 -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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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1월에 시작한 일기는 소로의 나이 마흔인 1857년 12월 13일에 끝난다. 그가 사망하기 불과 5년 전이다. 1855년의 일기가 생태적인 측면에 집중해 있다면, 1856년에는 그의 소신과 사상을 엿볼 수 있고, 1857년에는 소소하고 단순한 삶에 대한 생각을 기록한다. 


부제가 「영원한 여름」이지만 3년 동안 열두 번의 계절을 지나며 쓴 이 책은 그의 일기이자 에세이이며 생태 관찰 일지라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매일 매일 날씨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봄에 시작하는 자연의 생명력으로 삶을 믿게 된다는 소로는 자연 속에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곧 세계임을 얘기한다.  


​이슬에 젖은 축축한 흙의 질감, 겨울이 무색한 양치류의 싱싱함, 얼지 않은 겨울 시냇물의 청명한 아름다움, 진눈깨비가 내려앉아 늘어진 나무에 의해 연출되는 숲의 곡선과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 쓴 듯한 환한 우듬지, 단단한 아름다움의 겨울 등 주변의 자연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야생 동물의 발자국도 찾기 어려운 허리께까지 쌓인 눈에 대한 걱정이 무색하게 구름 없는 맑은 다음 날 월든 호수의 푸른 물빛. 그 푸르름에 그림자조차 파랗다. 다람쥐의 움직이는 소리와 나무 사이로 비치는 빛내림, 반면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음악 이상으로 아름다울뿐 아니라 이 소리들은 봄의 전령이기도 하다. 백참나무 잎 하나를 주워 세세히 들어나는 잎맥을 보며서 시들어가는 것도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소로가 느끼는 자연의 생생함이 150년을 훌쩍 지난 지금에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ㅡ 


자연을 향한 소로의 감상은 단순한 경외심을 넘어서 우리의 삶과 잇닿아 있다. 
소유와 소비의 악순환에 대한 서술을 시작으로 느릅나무를 빌어 진실한 급진주의와 진실한 보수주의의 조화와 협력을 당부한다. 보수주의는 진보의 성장을 막지 않고 오히려 성장을 떠받치는 굳건한 기둥이 되어주라고 권한다. 소로는 개혁을 이루더라도 급진주의자가 보수주의자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쎴는데, 앞서 주장한 기둥과 가지는 세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하는 소로의 바람이라고 짐작한다. 또한 무의미한 전쟁을 빌미로 국민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국가들을 비판하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계기에 의해서든 자신의 단순하고 수수한 삶을 잃을까 두려워했던 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만족과 이웃과의 대화에서 얻는 영감을 그 어떤 것에든, 이국의 화려한 도시에서의 생활에서든, 바꾸고 싶지 않았다. 소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큰 부자라고 썼는데, 이제 마시는 물까지 돈주고 사야하는 세상에서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더라는.  


소로는 사람들이 그 자신처럼 자연을 존중하는 소박함을 음미하는 삶을 지향하기를 희망하면서 사물의 본성과 질서에 대해 사유하고, 신념과 신조를 떠들기 이전에 자신의 됨됨이를 성찰해야함을 짚는다. 


ㅡ 


​그는 많은 시간을, 고독을 벗삼아 걷는다. 
주변을 둘러보고 느리게 걷고 사유하는 일상을 제쳐놓은 채 생계를 꾸려가는데 모든 정신과 활력을 탕진한 삶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하찮다고 여기는 대상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소로는 우리가 자연을 학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책임 아래 있는 자연을 학대하는 자는 자연학대죄로 기소당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데, 어쩌면 인류 전체가 이 죄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ㅡ 


소로는 일기를 통해 자연에서 누리는 삶과 생태계를 이루는 자연을 포함한 타자와의 사귐에 대한 경이에 대해 아름답게 기록하면서 모든 것에 신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앞서 썼듯 이 책은 열두 번의 계절을 지나오는데, 계절에 따라 이어지는 자연의 변화는 놀랍다. 석양빛과 자줏빛이 어우러진 저녁 노을, 계절의 변화에 따른 동물들의 움직임과 그들이 내는 소리, 이를 관찰하는 소로. 일기에는 자연의 변화가 주는 그의 철학적 사고와 사색이 가득하다. 그는 나무를, 식물을, 크고 작은 동물을, 존중해야함을, 그리고 인간이 좀더 자연에 더 인정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로가 일기에서 시종일관 자주 언급하는 단어는 '수수함'과 '단순함'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라고, 수수한 하루의 사색과 산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소로는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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