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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ㅣ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1년 전, 남편 데이비드가 세상을 떠나고 외로움으로 힘든 루시. 이혼 후 친구로 지내는 첫번째 남편 윌리엄으로부터 함께 전염병을 피해 당분간 시골 바닷가 마을로 피해있자는 권유를 받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를 따라 메인 해안에 있는 크로스비라는 이름의 타운에 집을 빌려 머문다. 소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성이 뉴욕 한복판으로 밀려들면서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점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어내는 데에 아주 탁월하는 것이다. 화자를 중심으로 그의 가족, 친구, 이웃을 넘어서 주변 인물들이 가지가 가지를 치듯 이어지는 서사의 과정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감동스럽다.

등장인물 중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밥 버지스다. 그는 상대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자신이 듣고 있다는 신호를 적절하게 보낸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공감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신의 경험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무엇보다 밥은 루시가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가족 누구도 루시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다. 그리고 루시는 남편이었던 윌리엄과 데이비드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밥에게 한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이다. 예전부터 간혹 (아주 드물게) 밥과 같은 사람을 볼 때면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를 얻는지 궁금했다. 사실 나 자신을 납득하고 이해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타자를 수용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윌리엄이 이부누이를 만나고 와서 어린애처럼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모습이다. 일평생 자신이 외동인 줄 알았고, 자신을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어머니의 비정한 과거를 알게 된,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이부누이 로이스 부바의 존재를 알게 된 윌리엄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설레임과 행복이었다. 루시는 그때서야 단 한 번도 생각치 못했던 윌리엄이 가진 외로움의 깊이를 깨닫는다. 그는 세 명의 아내와 이혼했고, 딸이 셋이고, 결혼 생활 중에도 만나는 다른 여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윌리엄은 외롭다고 느꼈다. 루시가 그랬듯, 누구도 윌리엄의 내면 밑바닥에 깔린 외로움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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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팬데믹 시대에 겪어야 했던 단절과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팬데믹이 아니라더라도 우리는 '이미' 타인의 감정에 무감하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안부를 건네는 것에 인색했으며, 지속적으로 폭력과 혐오를 반복해 왔음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코비드 시국을 빌어 소통의 부재와 타인에 대한 혐오가 지속되어 오고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마치 우리가 외부적 영향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것처럼 굴지만, 실은 훨씬 이전부터 '안전한 거리두기'를 해왔음을, 대화와 경청, 공감과 이해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누구나 혼자가 되는 것은 두렵다. 이 두려움은 전염병 때문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물론 팬데믹 시대에 그 두려움이 극대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혼자'라는 데에서 오는 무서운 외로움을 감정 소모의 가성비를 따져가며 애써 감춘다. 감정에 손익을 매겨가며. 작가는 우리가 아닌 척, 모르는 척하며 눌러왔던 상실과 고립을 이제 서로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럼으로써 더 자유로워지라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결국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혼자 짊어져야 한다. 그러니 그때 감당해야할 외로움과 두려움이 별 거 아닐 수 있도록, 살아있는 동안 충분히 서로에게 다정하고, 서로를 보살피기를.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