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녀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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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고 서정적이기만 할 것 같은 제목과는 다르게 소설은 때때로 가혹하고 때때로 비참하다. 


일단, 이 소설이 1960년에 처음 출간 당시 아일랜드 내에서 외설적이고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격럴한 항의와 비난을 받으며 금서로 지정됐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두 소녀의 열네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4년을 다루는 소설에서는 한창 성적 호기심을 갖을 사춘기 소녀들의 동성애적 기운이 감지되는 우정, 캐슬린을 향한 젠틀먼의 아동성애, 아버지 뻘 유부남과의 교제, 그리고 두 소녀의 성적 본능에 대한 갈망 등이 문제가 됐던 게 아닐까 싶은데, 소설에서 묘사되는 대부분의 장면이 '수위'를 논할 필요도 없을 만큼 두드러지지 않는다. 짐작컨대 표현 상의 문제가 아니라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기독교적 관습에 의한 사회 정서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다.




 

 



순종적인 모범생 캐슬린과 자유분방한 말썽꾸러기 바바. 언뜻 보기에는 유복하고 행동하는 데에 거칠 것이 없는 바바가 캐슬린을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괴롭히고, 캐슬린은 바바에게 일방적으로 속수무책 당하는 것 같다. 그러나 두 소녀의 유대는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한쪽은 정숙한 아내와 순종적이며 모범적인 딸을 원하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를 두고 있고, 다른 한쪽은 알콜 및 도박 중독에 가정폭력을 휘두르며 결국 재산을 전부 탕진하고 아내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사람이 아버지다. 자유를 꿈꾸며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거나 혹은 삶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엄마 들은 딸의 감정을 헤어릴 여력이 없다.  


그렇게 야비하게 캐슬린을 괴롭히면서도 그녀가 가장 큰 어려움이 닥치면 캐슬린의 곁에 있는 사람은 바바다. 그리고 바바가 일을 벌리면 결국 고초를 겪는 사람이 자신이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캐슬린 역시 바바의 손을 놓지 않는다. 질투와 시기, 연민과 동경을 동반한 이 연대는 정서적으로 지독하게 외로웠던 두 소녀의 버팀목이였을 터다.   




이 소설이 정작 금서가 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이런저런 내용보다는 이 소설의 결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들의 선택이 한순간의 일탈로 취급되면서 후회와 반성과 회개를 통해 용서를 구하고 정숙한 여인으로서 거듭나는 장면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삶의 행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어느 시각에서는 불행하다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소설 어디에도 그들에게 후회는 없었다(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비록 슬펐을지언정.  


 『시골 소녀들』 3부작 중에서 첫번째 이야기에 해당하는 이 소설은 보는 시각에 따라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나이 고작 열여덟 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그 누가 알겠나.  


아일랜드가 아니더라도, 1900년대가 아니더라도, 성장기 한 시기를 지나온 혹은 지나고 있는 여성이라면 캐슬린과 바바가 갈망했던 자유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도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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