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크리스마스  
 
 
독일 공군이 바스토뉴 상공에 떨어트린 마그네슘 신호탄을 시작으로 짧았던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은 끝났다.  독일군은 공군의 폭격으로 크리스마스 대공세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서북쪽과 동남쪽 두 갈래로 공격해서 수 시간 내에 바스토뉴를 점령할 계획이었던 코크트는 이끄는 사단의 약한 전력에 당황했고, 이들과 미군은 샹 마을에서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다. 이 시각 독일의 마우케 전투단과 쿤켈 전투단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샹 마을에서 채 3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헴룰의 작은 마을을 공격했다. 샹, 롤리, 헴룰 인근의 전투 지역에서 폭격에 의한 피해는 엄청났으며 마을 주민들의 안전은 무시됐다.
  
 
 
"대공세는 엄청난 희생만 초래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마을 몇 개를 점령한 것으로 끝났다." (코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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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독일군에서도 현실 파악을 하고 있는 장교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지경이 되도록 히틀러를 원수 자리에 계속 놓아두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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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1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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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오브 로마] 2부에 해당하는 <풀잎관> 증 1권의 주요 내용은 술라가 당분간 히스파니아로 떠나 있고, 마리우스는 가족 여행을 빙자한 동방 시찰을 다녀오며, 추후에 로마의 골칫거리가 될 폰토스의 왕 미트리다테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로마 시민권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불만과 비교적 평화로운 로마의 전반적인 제도에 대해 서술한다.  
 







 
 
제국의 위기 상황이 지나면 의례 대두되는 문제는 세금이다. 로마에 세금을 내고 있는 동맹시들의 불만은 전쟁에 의한 젊은이 착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교묘하게 이루어지는 토지 약탈, 지역 내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아 쇠퇴하는 지역 경제다. 다음으로 시민권 문제. 제국 안에서 로마 시민권은 그 자체로 엄청난 특혜다. 로마 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로마 정부 사업에 입찰하거나 로마 시민과 결혼할 수 없었고, 기소되어 사형 판결을 받더라도 로마 법원에 항소할 수 없었다. 죽을만큼 매질을 당하고 아내를 도둑 맞아도 가해자가 로마인이면 법적 보상도 받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로마 최고의 협력자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공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이탈리아인들로서는 당연히 불만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인에게 시민권을 주는 데 대한 반대는 로마 상류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민층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로마인들은 시민권에 인색할까? 이에 마리우스가 지적하는 바는 배타성이다. 태생이 로마인이 아니면 열등한 존재, 즉 이탈리아인들보다 더 나은 존재라는 태생적 우월감을 놓고 싶지 않은 심리. 
 


"로마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진정 그렇게 큰 죄입니까?"


 


인구 조사에서 수 만명이 등록된만큼 인구조사 조작은 카이피오의 고발과는 별도로 사실일 수 밖에 없다. 이에 인구조사를 주도했던 크라수스 오라토르는 가짜 시민권자들을 축출하고 그들의 자손까지 태형과 재산 몰수와 추방의 벌을 내려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가짜 시민권자들을 명부에서 지우는 것은 타당하나 그 이상은 그들이 로마와 공존해야할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이탈리아인들에게 분노와 복수심을 불러 일으킬 뿐인 무모함은 자제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이 말을 받아들이는 원로원 의원은 두 사람ㅡ루푸스, 드루수스ㅡ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에서 생각해봐야 할 시의성. 로마는 순수 로마인만으로는 제국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는 현대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전체 인구를 놓고 볼 때에는 인구 증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지만, 국가마다 출산율의 고저는 다르다. 무엇보다 인구비율이 직사각형 형태로 바뀌었고, 시간이 더 지나면 역삼각형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곳곳에서 내전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폭력적 충돌은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난민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이제는 기후 난민까지 발생하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순수혈통, 단일민족을 내세워 배타적인 시선으로 '우리'만을 껴안고 살면 될까?  
  
 



 
마리우스와 술라의 반목은 아직까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지만 술라의 귀환으로 이제 곧 가시화 될 것이다.  마리우스의 말대로 두 사람의 일체감은 진정한 우정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전장에서의 편의(혹은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마리우스는 술라가 루푸스와 같은 진정한 우정을 나눌만한 사람이 아님을 안다. 술라가 언젠가는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가족으로 받아들일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마리우스는 술라가 보이는 현재의 행보에 크게 놀라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술라가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라고 납득한다. 마리우스가 신뢰하는 아내에게조차 술라의 천성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의리였나 싶은 생각도 들고. 
 


 
폰토스의 왕 미트리다테스를 중심으로 당시 동방의 정세를 구체적으로 서술해 놓았는데 새삼,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혼으로 맺은 동맹이 대단히 유용하다는것, 반대로 딸을 국가 혹은 권력 유지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한 혼인에 의한 동맹의 허무함, 그리고 권력에 대한 욕망은 혈육의 정을 넘어선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매 권마다 당시 여성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입(손가락)이 아플 지경이다. 이 책에서, 부모에게 관심을 못받고 자란 카이피오와 리비아의 딸 세르빌리아는 더 힘이 있다고 여기는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 아이의 행위는 물론 아주 부적절하다. 세르빌리아의 양육 환경과 나이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만약 세르빌리아가 남아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랬다면 과연 세르빌리아를 돼먹지 않은 아이로만 치부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언제는 아니였냐만, 이 책의 최악의 인물은 카이피오다. 속물인 제 아비보다 한술 더 뜨는 위인이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사기까지. 리비아가 이혼한 게 행운이었고, 그 아비 아래에서 자라지 않아도 될 아이들에게는 천만 다행한 일이다. 세상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유년 시절, 리비아는 오빠를 그토록 증오했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남편에게 매질을 당하고 불륜이 들통나고 이혼까지 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재혼해 행복한 삶을 찾은 리비아 곁에는 오빠가 있었다. 그리고 마리우스와 드루수스가 손을 잡고, 데면데면했던 술라와 루푸스가 마리우스와는 결이 다른 우정을 나누다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첫 번째 속주 총독으로서 동방 원정을 손쉽게 해결하고 원하는 바를 얻은 술라의 시선은 다시 로마로 향한다.
  



 
뻘.
이 책 사이사이에는 다음 시대를 풍미할 인물들이 꼬맹이로 이름을 드러낸다. 카이사르, 키케로, 소小 카토. 어... 무시무시한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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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2월 2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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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튼 휘하의 제3군단이 남쪽에서 바스토뉴로 향하던 중 강력한 독일군의 저항에 직면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연합군의 전투폭격기는 독일군의 집결지를 폭격하여 적의 공세를 분쇄한 덕택인지 바스토뉴 방어선의 미군 병사들은 사기가 높았다. 여전히 혹한과 폭설은 병사들을 곤혹스럽게 했고, 식량 사정 역시 나아지지 않아서 많은 병사가 벨기에 시민들이 나누어주는 음식에 의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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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프랑스인, 벨기에인, 네덜란드인의 파시스트들로 구성된 게슈타포의 산하 부대(지휘관은 스위스인)가 민간인을 사살했다는 대목에서 "왜? 이들에게는 어떤 신념이?"라는 당황스러움이 가시기도 전에 더 충격적인 것은 학살한 주민들 시신 위에 '벨기에 놈들에게 살해당한 독일 영웅들을 위한 복수'라고 쓰여 있는 문구였다. 심지어 그 가해자들 중에는 벨기에인도 있었다. 그야말로 거지같은 전쟁이다. 그 와중에도 크리스마스이브 밤이라고 캐롤송은 울리고, 미군 고위 장교는 황제놀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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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심장을 쳐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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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아멜리 노통브의 첫 작품은 <적의 화장법>이다. 마지막장을 덮고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오후 네 시>를 비롯해 작가의 작품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었더랬다. 인간 밑바닥에 깔려 있는 본능과 심리를 날카롭게 들춰내는 탁월함과 동시에 놓치지 않는 풍자와 해학까지 겸비한, 그것도 중편 혹은 경장편을 통해 압축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현역 작가 중 손가락에 꼽지 않을까 싶다. 다만 몇 년 전에 나온 작품들에서 힘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은 있었으나 지금, 이 작품에서 그 날카로움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972년, 자아가 강한 마리는 꿈꿨던 화려한 미래와는 너무 다른 세계에 정착한다. 스무살 나이에 한 남자의 아내이자 엄마가 됐다. 태어난 딸 디안은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럽고 예뻤으나 마리에게는 자신을 주저앉힌 존재를 넘어 주변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한 경쟁자일 뿐이다.  




이 소설은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고, 출산을 전후로 삶의 주체가 달라지는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설 초반, 마리가 출산을 하기 전까지 마리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됐다면, 출산 이후에는 디안에게 옮겨진다. 예를들어 3인칭 화자가 마리의 부모님을 엄마, 아빠로 지칭했다면 디안이 태어난 순간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로 바뀐다.



여성이 출산을 하면 적어도 일정 기간동안 개인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엄마'라는 존재만 남는다. 그런데 마리는 좀 다르다. 어린 디안이 분석한 엄마 마리는 남자를 선호하며 질투에 있어서는 남녀차별이 없다. 과시하기를 좋아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에 있어 자식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딸에게 향하는 것에 극도의 질투를 느끼면서도 그 흔한 고민이나 죄책감조차 없다.


마리는 엄마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서도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하나 뿐인 언니에게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고 그녀의 소박한 삶을 경시하며 아이들 앞에서 타인에 대한 험담을 여과없이 쏟아내는 모습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반면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만족하는 마리의 언니 브리지트는 동생의 행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진심으로 기뻐한다(정작 마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지만).  
 

영아기때부터 엄마와의 관계가 주종관계로 전락해버린 디안은 타인과의 관계에 부정적이며 무관심하다. 이러한 경험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두 번으로 이어진다. 절친 엘리자베스 덕분에 정서적 안정감을 찾아가나 싶었지만, 대학에서 만난 올리비아로 인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엄마와의 관계를 반복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그리고 올리비아의 딸을 통해 자신의 유년 시절을 투영하며, 마리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올리비아가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냉혈한이라면, 마리는 분별력이 없고 무지했던 것이다.


마리는 고작 대여섯살 된 딸이, 조부모의 집에 가서 살겠다고 해도, 부모 대신 키워준 조부모를 잃고 상심에 빠져 친구집에서 살겠다는 데도 그리 놀라워하지 않는다. 남보다도 못한 모녀 사이는 서로의 관계를 이해당사자가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소설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마리의 극단적인 양육태도는 편애를 당하는 디안뿐만 아니라 편애를 받는 셀리아에게도 좋지 않다. 오히려 다른 의미에서 디안보다 셀리나가 더 딱한 지경이다. 어쨌든 디안은 마린의 그릇된 양육 방식에서 벗어났으니까. 세월 한참 흐른 뒤에도 마리는 자신이 디안에게 정서적 학대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각성해 본 적이 없는 그녀는 오래 전에 자신이 상처줬던 행동, 셀리아에게 퍼부었던 그릇된 애정에 대한 과오는 인지하지 못한다. 그녀는 채 어른이 되기 전에 어른의 자리에 놓여진 아이였다.


그렇다면 이 가정에서 디안의 아빠 올리비에는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그는 마리가 디안에게 쏟아내는 정서적 학대를 방조했다. 아빠의 의무를 저버렸고 아내를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남편의 입장에서 상황을 합리화했으며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이나 중재에 나서지 않았다. 딸이 열다섯 살에 공식적으로 집을 나가겠다는 선언에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딸을 위한 최선이라는 말로 변명했다. 아빠 올리비에의 형식적인 애정은 오히려 디안을 죄책감에 들게 했을 뿐이다. 마치 딸이 부모를 버린 것 처럼. 그래놓고 딸이 이룬 성과에 대한 자긍심은 생물학적 부모라는 이유로 공유한다. 이러한 태도는 막내딸 셀리아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무책임의 극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남매와 올리비아의 딸 마리엘의 이야기는 이미 현실에서 차고 넘친다.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하는 부모, 가족 구성원간의 폭력적인 갈등, 근친 살인 등의 범죄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수치가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성이 본능이라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여겨야할까?
  

소설의 마지막은 충격적이지만, 문을 열어주는 디안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다.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이 저절로 샘솟지 않는다. 부모든 형제든 연인이든 사랑은 노력이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공감하려는 노력,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과 연대감. 그것이 자신을 아끼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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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2월 2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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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히틀러의 목적이 서쪽을 향한 진격임을 여전히 눈치 채지 못했다. 독일의 파이퍼 전투단은 스투몽과 슈뇌를 포기해야할 상황에 직면했고  마침내 귀대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엘센보른 능선의 미 포병대는 능선 아래 마을들과 페몽비유를 매일같이 포격했고, 독일군은 바스토뉴 점령을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병사들은 추위와 보급도 전쟁 중이었다. 독일군은 낙하하는 미군의 보급품을 쏘아 맞추기 바빴고, 미군은 보급품과 침낭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낙하산을 사수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미군 전투기는 적군으로 오인해 민간을 향해 폭격을 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아군 부대에 포탄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오인 사격은 양측 진영 모두에서 급격히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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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작전이나 의중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미군이 의아하다. 정보력의 부재인지, 지휘관의 무능력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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