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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가 읽은 작가들 ㅣ 버지니아 울프 전집 14
버지니아 울프 지음, 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3월
평점 :
이 책은 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의 회원들이 오랫동안 읽고 나눈 울프의 에세이를 우리말로 옮기고 다듬어 내놓은 책으로써 울프 자신이 쓴 독자로서의 자서전과도 같음을 서문에서 얘기하고 있다.
울프가 읽었던 작가들을 고전~17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 등 4부로 나뉘어 구성했다. 나는 그중에서 관심이 많은 작가가 가장 많이 포진된 3부 19세기를 먼저 읽었다.
고대 그리스어를 시작으로 디포, 찰스 디킨스, 월터 스콧, 제인 오스틴, 토마스 드 퀸시, 조지 엘리엇, 존 러스킨, 조지 메러디스, 헨리 제임스, 투르게네프, 조지프 콘래드, D.H 로렌스 등 이외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부터 낯선 작가들까지 상당히 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다루는데, 독자는 이 작품들을 읽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의 매력적이고 친절한 안내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빨려들어간다.

울프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
울프는 월터 스콧 경이 장면을 창조해내고 우리 스스로 그 장면을 분석하도록 내버려두는 예술가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그는 위대한 예술, 셰익스피어적인 예술, 사람들이 말하면서 스스로를 드러내게 하는 예술을 실행하는 마지막 소설가라고 단언한다. 제인 오스틴을 두고 그녀가 만약 더 길게 살았다면 헨리 제임스와 프루스트의 선구자가 되었을 것이라면서 여성 중에서 가장 완벽한 작가이자 불멸의 작품을 쓴 작가라고 칭했다.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는 인간 행위의 이유나 인간 제도의 특성에 관한 어떤 면밀한 탐구와도 같고, 단조로움이 있지만 어떤 통찰의 힘과 뭔가를 간파하는 힘이 있으며, 그의 에세이는 훌륭한 격언, 전환과 독립성, 독창성으로 넘쳐난다는 칭찬과 함께 독서하지 않고도 문제 없이 지낼 수 있는 보기 드문 비평가들 중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토마스 드 퀸시는 정확하지 않고, 화려하게 꾸미고 강조하는 것을 싫어했으나 완벽에 가까운 작문의 재능을 지녔다고 얘기한다.
디킨스에게는 분석이나 해석, 특별한 생각이나 노력 없이 스토리에 있어 어떤 효과를 계산하지 않고 생산해내는 힘, 거칠지만 비범하게 자신들을 표현하는 말들 속에 인물들이 풍부하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플롯을 탄탄하게 하기 보다는 여러 명의 인물들을 투입해 흥미로운 사건을 상세하게 그려나간다. 그래서 디킨스의 소설은 개별적인 인물들의 모임이 되어 버리기 쉬운데, 이러한 위험을 극복한 작품이 '데이비드 코퍼필드'라는 것. 울프는 이 작품이 디킨스와 소설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칭하지만, 한참 뒤의 결론을 보면 디킨스에 대한 호의는 거의 없는 듯 보인다.
러시아 문학이 영국 문학을 압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러시아인들의 삶이 갖는 폭과 깊이와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조작하거나 왜곡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어떤 영국 소설이 <전쟁과 평화> <죄와 벌> <아버지와 아들>처럼 압도적인 진지함의 용광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얘기한다. 울프는 체호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중에 독자를 가장 매혹시키고, 가장 밀어내는 작가로 톨스토이를 꼽는다(난 아닐세). 토머스 하디는 인간 드라마에 심원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주는 자연 풍경이 인간 존재를 에워싸고 있는 감각을 살리는 데 뛰어나고, 헨리 제임스에 의해 문학에서 사라진 위엄과 퇴색된 유행의 지난 과거를 가장 잘 음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책 전반에 서술되어 있으니 흠뻑 취해 앉은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밖에 없다. 3부가 이백칠십 쪽 정도의 분량을 차치하는데, 울프의 책을 앉은 자리에서 꼼짝 않고 단숨에 읽은 적은 올랜도 이후 처음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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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의 독서는 세밀함과 진정성이 넘치고, 작가와 문장과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와 몰입도가 높으며, 때로는 객관적 시각으로 반추한다. 개인적으로 글자를 읽을 줄 알게 된 대여섯 살 무렵부터 독서를 시작했는데, 그동안 이토록 면밀하게 독서를 해왔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울프는 독서를 얘기하면서 여성, 사회적 계급, 예술, 열정, 유머도 놓치지 않는다. 문학적 성공은 계급 면에서 결코 하향되는 법이 없고 예외 없이 계급의 상승을 불러왔으며, 사회계층 간의 평준화라는 바람직한 양상으로 거의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글을 쓸 정도의 교육을 받고 중산계급으로 올라간 후 작가로서 출세까지 하게 되면 노동계급의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언어로, 그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됨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진실로 민주적인 시대의 예술은 올 수 있는지, 온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게 될지 물음표를 놓는다.
스스로를 두고 독서를 하지 않으면 문제 없이 지낼 수 없는 삶이라고 말하는 울프에게 있어서 책과 읽기가 어떤 의미인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와중에도 울프의 독서력과 이를 분석하고 흡수하는 능력이 경이롭고, 그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책을 덮고 나면 이 책에서 언급됐던 작품 하나하나를 뽑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절로 생긴다. 개인적으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꽤 읽었다고 여겼는데, 이 글을 읽다보니 놓친 부분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조만간 '설득'을 재독해볼 참이다).
서문을 통해, 울프가 생각하는 진정한 독서는 비평가나 학자의 권위에 개의치 않고 책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을 좇는 것이며 지극히 사적인 체험으로서의 자유로운 독서를 일컬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냐는 질문에 울프는 오롯이 자신의 본능과 이성을 따라 자신의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낚시와 항해의 비유를 들어 독자가 고전 작품들을 읽어야하는 까닭에 대해 역설한다. 이러한 울프의 주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귀담아 들어야할 귀한 충고이다.
4부 첫 작가가 조지프 콘래드다. 읽고 싶어 자꾸 책장에 손이 가는 중이다. 독서는 시공간을 초월한 작가와의 만남이라고 했었던가. 그야말로 버지니아 울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