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개정판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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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작고한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내가 처음 읽은 사노 요코의 에세이는 <사는 게 뭐라고>였다. 그런데 그 책을 펼친 장소가 공교롭게도 전철역 지상 승차장이었다. 혼자 큭큭대던 웃음이 깔깔로 바뀌면서 주변 사람들의 눈총도 받았건만, 전철을 타고서도 좀처럼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더랬다. 당시에 지금은 절판된 노라 에프런의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를 연달아 읽었는데, 이 양반도 만만치 않은 입심을 자랑하는지라 덕분에 한동안 유쾌했었다. 당시 나의 심리 상태가 어떤 지경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수필을 찾아 읽었던 걸 보면 꽤나 가라앉아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어떠한 훈계도 없이 유쾌한 웃음 뒤에 턱을 괴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사노 요코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수필집은 참으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속에 담아 두지 않고 걸름망 없이 툭툭 내놓는 말들에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잠시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든가, 성장기에는 부모의 훈시를 먹고 자라고 성인이 되어서는 정보와 소문에 묻혀 산다든가, 멋쟁이는 일단 부지런해야 한다든가, 사람 만나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 등이 그렇다.  


새끼를 낳은 개를 보고 개는 돌연 개가 아니라 어머니가 됐다고 말하면서 부산스럽고 어수선했던 강아지가 슬픔과 체념을 받아들이는 눈을 하게 된 것을 꿰뚫는다. 여자가 한 번 어머니가 되어 버리면 어머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면서, 세상은 무책임하게도 어머니도 인간이며 여자라고 꼬드기지만, 아무리 꼬드김을 당해도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이기를 계속할 수 밖에 없음을, 그리하여 객관적 입장이 되기가 어렵다는 얘기에 얼마 전에 봤던 <쿠오바디스, 아이다>가 떠올랐다. 보스니아인, 통역관, 그리고 어머니. 그중에서 어머니의 역할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는 아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삶에 지쳐 마지막 순간을 선택하는 이가 발견한 것이 나의 집 창문에서 나온 불빛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친구와 짓궂은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사람은 저마다 각각의 해우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치듯 든다.  


우리는 하루하루 노화되어 노인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렵고, 되고 나서도 어려우며, 그럼에도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어른이 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은 사실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지만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영원히 어린애로 사는 것보다는 낫다.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노 요코의 글들이 나에게는 "잘 하고 있구나"라는 격려로 읽힌다.  


자신이 죽은 뒤 주위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도록 노인이 된 후에는 야멸찬 사람이 되고, 남은 사람들이 성가시지 않도록 나이들어 물욕 없이 살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음과 동시에 땅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진다면 좋겠다는 사노 요코의 글은 소박하고 아름답다. 인생을 관조하는 그의 통찰이 나에게는 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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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가 놓인 방 소설, 향
이승우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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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차 간 남미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업무를 마치고 들른 카페에서 도움을 받은 여성을 쫓아 나와 향한 곳은 바다. 한없이 깊고 나른한 그녀의 목소리에서 어찌할 수 막막함이 운무처럼 피어 올랐다. 그녀는 여행사 가이드 업무로 멕시코에 와 있었고, 그녀의 일정 마지막날에 맞춰 멕시코로 향하던 남편과 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그녀의 삶에는 허망함만이 남았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그녀와의 재회를 기다리는 것이 호기심을 넘어선 간절한 염원으로 바뀐 데에 본인조차 당황스럽지만, 사흘 뒤 욱스말에서 그녀와 재회했다.  










화자의 내면이 서술자가 되어 자기 스스로를 '당신'으로 지칭하는 2인칭 소설이다(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아내가 요양 중인 첫사랑을 버젓이 만나러 다니는 것을 알면서도 단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욕조의 물속에서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반복하는 여자가 만났다. 이들은 사랑으로써 서로를 위무할 수 있을까. 


남자는 좌천과 다를 바 없는 H시 지방 근무 발령을 받는다. 그는 이 결정을 놓고 아내와의 관계를 되짚으며 망설임 끝에 지방 발령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H시를 선택한 결정에 혹시 '그녀'에 대한 무의식이 작용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권태로워진 부부 관계. 첫사랑 K가 투병 중인 요양원에 드나드는 아내와 그가 아내에게 보낸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모두 읽은 남자는 가정을 지키고 싶은 욕구와 무너뜨리고 다시 짓고 싶은 욕구가 충돌한다. 그러나 지키든, 무너뜨리고 다시 짓든, 그 집이 어떤 집인지에 대한 또렷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H시에서 16개월만에 재회한 그녀는 남자에게 거처로 쓸 방을 하나 내어준다. 그리고 처음 찾아간 그녀의 방 한가운데 놓여 있는 욕조. 그녀는 물이 채워져 있는 욕조에 스스럼없이 몸을 담근다. 깊은 밤마다 그녀의 방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ㅡ 


사랑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남자는 권태와 아내의 외도(라고 추정하는) 등 흔들리는 가정과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아는 것은 당장의 욕망 외에는 실상 아무것도 없다. 욕조에서 가라앉을듯 말듯 수면에 겨우 얼굴의 일부분만 내놓고 떠있는 그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바다에 수장된 가족의 죽음에 이입하며, 관처럼 보였던 욕조에서만이 평화로웠던 건 아닐까.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겠다는 착각으로 재회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다. 남자는 다시 찾아간 그녀 집의 욕조 안에 누워서야 여자의 상처에 이입하고, 자신이 간절하게 소망해온 것은 지금과는 다른 삶이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사랑에 실망한다. 순수한 사랑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틀어진 관계는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마치 진통제라도 되는 양 사랑에 대한 착각과 환상을 거부하지 못한다. 실체없는 사랑을 증명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것 또한 사랑이다. 


얼핏 사랑에 관한 내용으로만 해석될 수 있지만, 읽다보면 한데 얽혀 사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 역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환상과 현실의 균형잡힌 줄타기.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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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가 된다 위대한 도시들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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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촉수처럼 생긴 넌출을 달고 있는 BMW가 교차로를 지나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7~8미터 높이의 촉수가 솟구쳐 올라온다. 이 소동이 벌어지는 현장에 자신을 신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청년 '매니'가 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뉴욕의 다섯 개 자치구의 화신이 스스로를 각성한다.  


맨해튼의 매니, 브루클린의 브루클린 토머슨, 스태튼아일랜드의 아이슬린 훌리안, 브롱크스의 브롱카, 퀸스의 파드미니 프라카쉬, 그리고 뉴욕 시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 화신 프라이머리까지. 이들이 뉴욕을 수호하는 여섯 명의 화신이다.  






 




제미신의 <위대한 도시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서 도시를 소멸시키기 위해 다른 차원에서 온 적敵들로부터 도시를 수호하는 다섯 화신들의 대결이 주요 내용이다. 시리즈의 첫 권이니만큼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배경,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시리즈 전체에 대한 배경 설명을 스토리에 더하고 있다.  


5인의 화신은 인종, 성별, 연령, 출신 대륙, 직업이 제각각이다. 화신으로 각성하면서 자기의 사적인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남성, 한때는 1세대 흑인 여성 래퍼였다가 현재는 변호사 출신 시의원,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자존감이 낮은 여성, 아트센터 소장이자 여성 예술가, 취업 비자로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계약직 비시민권자 여성 등이다. 그렇다면 적敵은 어떤 모습으로 출현할까. 정확한 실체는 알 수 없으나 무리를 이끄는 이들은 '횐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인종차별 및 성차별주의자, 성소수자 및 이민자 혐오, 순혈주의자, 다국적기업 프랜차이즈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적들이 타깃으로 삼는 이들은 누구일까? 가정폭력 피해자, 성소수자, 비백인, 노인, 가난한 예술가, 경제적 취약 계층, 백인 우월주의, 난민, 젠트리피케이션, 산업 현장의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다.   



재미있는 부분은 도시의 탄생 과정에서 중심 화신이 붙잡혀 소멸되면 도시는 태어나지도 못하게 되는데, 그 예가 폼페이, 테노치티틀란, 아틀란티스를 든다. 테노치티틀란은 주변국에 장악당하고 유럽 정복국가에 의해 소멸, 폼페이는 화산 폭발로 소멸, 아틀란티스는 침몰, 그리고 탄생하기도 전에 소멸된 소돔과 고모라가 있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그 당시에는 문명국가였으며 풍요와 번영을 누렸고, 소멸의 직접적 원인이 전쟁과 자연재해였으나 그 이면에는 인간의 향락과 타락, 탐욕이 간접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맨해튼에는 할렘이 있고, 센트럴 파크는 흑인과 아일랜드인이 살던 동네이고, 월 스트리트에서 이름 없는 흑인 노예들 무덤이 발견됐다. 선주민과 중국인과 라틴계 사람들과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살던 곳. 뉴욕에 살고 있는 비백인은 어느 대륙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도시는 도시의 의지에 따라 멸할 수도 있고, 재생할 수 있다. 작가는 도시의 의지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며, 여기서 '사람'은 차별과 혐오가 없는 모든 사람을 아우른다. 


도시를 수호하는 것은 화신이고, 화신을 보호해 주는 것은 그들이 맡고 있는 자치구 도시다. 도시는 피상적, 그 이상의 존재다. 5인의 화신은 자기들이 원해서 화신이 된 것도 아니고, 신변의 안전을 위해 화신의 임무를 포기하고 도망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고 그 끝이 죽음일 수도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결국 화신의 자리를 지키며 감수한다. 도시는 그들 자신과 가족, 친구, 이웃이 공존해야하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시city란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묻는다. 땅의 자유와 진정한 가치는 사라지고, 토지가 소유의 개념으로 넘어가면서 그 위에 세워진 인프라와 그 안의 사람들로 구축된 도시는 살아 숨쉬며 재생하는 공간이 아닌 생명력과 인간성이 사라진, 불법과 폭력, 혐오와 편견이 난무하고, 타인을 억압 착취하며 부를 축적하는 단위가 되었다. 작가는 차별과 신자유주의의 현실을 SF적 상상력을 동원해 신랄하게 파헤치며,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인간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다. 


제미신 작가의 기존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조금은 의외라고 느낄 수 있겠다. 전달하는 메세지는 꽤 묵직하지만 시종 액션 및 SF 영화의 분위기라서 상당히 유쾌하게 읽힌다(앞서 말했듯 '맨인블랙'과 '어벤저스'의 조합?). 그야말로 읽는 동안 영화 필름이 스르륵 돌고 있는 듯하다. 제미신의 작품이 약간은 부담스러운 독자라면 이 소설은 좀더 부드럽게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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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가 읽은 작가들 버지니아 울프 전집 14
버지니아 울프 지음, 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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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의 회원들이 오랫동안 읽고 나눈 울프의 에세이를 우리말로 옮기고 다듬어 내놓은 책으로써 울프 자신이 쓴 독자로서의 자서전과도 같음을 서문에서 얘기하고 있다.  


울프가 읽었던 작가들을 고전~17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 등 4부로 나뉘어 구성했다. 나는 그중에서 관심이 많은 작가가 가장 많이 포진된 3부 19세기를 먼저 읽었다.  


고대 그리스어를 시작으로 디포, 찰스 디킨스, 월터 스콧, 제인 오스틴, 토마스 드 퀸시, 조지 엘리엇, 존 러스킨, 조지 메러디스, 헨리 제임스, 투르게네프, 조지프 콘래드, D.H 로렌스 등 이외에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부터 낯선 작가들까지 상당히 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다루는데, 독자는 이 작품들을 읽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의 매력적이고 친절한 안내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빨려들어간다.   






 




울프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
울프는 월터 스콧 경이 장면을 창조해내고 우리 스스로 그 장면을 분석하도록 내버려두는 예술가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그는 위대한 예술, 셰익스피어적인 예술, 사람들이 말하면서 스스로를 드러내게 하는 예술을 실행하는 마지막 소설가라고 단언한다. 제인 오스틴을 두고 그녀가 만약 더 길게 살았다면 헨리 제임스와 프루스트의 선구자가 되었을 것이라면서 여성 중에서 가장 완벽한 작가이자 불멸의 작품을 쓴 작가라고 칭했다.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는 인간 행위의 이유나 인간 제도의 특성에 관한 어떤 면밀한 탐구와도 같고, 단조로움이 있지만 어떤 통찰의 힘과 뭔가를 간파하는 힘이 있으며, 그의 에세이는 훌륭한 격언, 전환과 독립성, 독창성으로 넘쳐난다는 칭찬과 함께 독서하지 않고도 문제 없이 지낼 수 있는 보기 드문 비평가들 중의 하나라고 평가한다. 토마스 드 퀸시는 정확하지 않고, 화려하게 꾸미고 강조하는 것을 싫어했으나 완벽에 가까운 작문의 재능을 지녔다고 얘기한다.  


디킨스에게는 분석이나 해석, 특별한 생각이나 노력 없이 스토리에 있어 어떤 효과를 계산하지 않고 생산해내는 힘, 거칠지만 비범하게 자신들을 표현하는 말들 속에 인물들이 풍부하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플롯을 탄탄하게 하기 보다는 여러 명의 인물들을 투입해 흥미로운 사건을 상세하게 그려나간다. 그래서 디킨스의 소설은 개별적인 인물들의 모임이 되어 버리기 쉬운데, 이러한 위험을 극복한 작품이 '데이비드 코퍼필드'라는 것. 울프는 이 작품이 디킨스와 소설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칭하지만, 한참 뒤의 결론을 보면 디킨스에 대한 호의는 거의 없는 듯 보인다.   


러시아 문학이 영국 문학을 압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러시아인들의 삶이 갖는 폭과 깊이와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조작하거나 왜곡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어떤 영국 소설이 <전쟁과 평화> <죄와 벌> <아버지와 아들>처럼 압도적인 진지함의 용광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얘기한다. 울프는 체호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중에 독자를 가장 매혹시키고, 가장 밀어내는 작가로 톨스토이를 꼽는다(난 아닐세). 토머스 하디는 인간 드라마에 심원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주는 자연 풍경이 인간 존재를 에워싸고 있는 감각을 살리는 데 뛰어나고, 헨리 제임스에 의해 문학에서 사라진 위엄과 퇴색된 유행의 지난 과거를 가장 잘 음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책 전반에 서술되어 있으니 흠뻑 취해 앉은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밖에 없다. 3부가 이백칠십 쪽 정도의 분량을 차치하는데, 울프의 책을 앉은 자리에서 꼼짝 않고 단숨에 읽은 적은 올랜도 이후 처음이지 싶다.   


ㅡ 



울프의 독서는 세밀함과 진정성이 넘치고, 작가와 문장과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와 몰입도가 높으며, 때로는 객관적 시각으로 반추한다. 개인적으로 글자를 읽을 줄 알게 된 대여섯 살 무렵부터 독서를 시작했는데, 그동안 이토록 면밀하게 독서를 해왔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울프는 독서를 얘기하면서 여성, 사회적 계급, 예술, 열정, 유머도 놓치지 않는다. 문학적 성공은 계급 면에서 결코 하향되는 법이 없고 예외 없이 계급의 상승을 불러왔으며, 사회계층 간의 평준화라는 바람직한 양상으로 거의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글을 쓸 정도의 교육을 받고 중산계급으로 올라간 후 작가로서 출세까지 하게 되면 노동계급의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언어로, 그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됨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진실로 민주적인 시대의 예술은 올 수 있는지, 온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게 될지 물음표를 놓는다.


스스로를 두고 독서를 하지 않으면 문제 없이 지낼 수 없는 삶이라고 말하는 울프에게 있어서 책과 읽기가 어떤 의미인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와중에도 울프의 독서력과 이를 분석하고 흡수하는 능력이 경이롭고, 그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책을 덮고 나면 이 책에서 언급됐던 작품 하나하나를 뽑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절로 생긴다. 개인적으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꽤 읽었다고 여겼는데, 이 글을 읽다보니 놓친 부분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조만간 '설득'을 재독해볼 참이다).  


서문을 통해, 울프가 생각하는 진정한 독서는 비평가나 학자의 권위에 개의치 않고 책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을 좇는 것이며 지극히 사적인 체험으로서의 자유로운 독서를 일컬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냐는 질문에 울프는 오롯이 자신의 본능과 이성을 따라 자신의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낚시와 항해의 비유를 들어 독자가 고전 작품들을 읽어야하는 까닭에 대해 역설한다. 이러한 울프의 주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귀담아 들어야할 귀한 충고이다. 


4부 첫 작가가 조지프 콘래드다. 읽고 싶어 자꾸 책장에 손이 가는 중이다. 독서는 시공간을 초월한 작가와의 만남이라고 했었던가. 그야말로 버지니아 울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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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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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라이프를 추구하는 가와이 조지는 카페 여급 열다섯 살 나오미를 데려와 자기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그녀를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근대적인 하이칼라 여성'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조지와 보답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대답하는 나오미와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집에서 나가라고 협박하는 조지. 영어 공부를 두고 대립하며 관계가 틀어지는 모습은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 보인다. 그런데 점점 더 육체적으로 여성미가 더해지는 나오미의 아름다움에 유혹당해 끌려다니는 조지, 나오미는 이를 아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소설에서는 나오미를 시대의 악녀처럼 묘사한다. 버젓이 남편을 두고 문어발식 연애는 기본이요, 무위도식하면서 조지가 벌어온 돈으로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회 생활을 하는 남편까지 자기의 방탕한 생활에 끌어들여 타락시킨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지가 이 모든 것을 수용한다는 점이다. 물론 순간 화를 내고 결별 선언을 하지만 언제나 항복하고 매달리는 사람은 가와이 조지다. 도대체 이 남자, 왜 이러는 걸까? 


조지가 애초에 나오미에게 관심을 보인 이유는 그녀의 서양인같은 외모 때문이었다. 그의 서양인에 대한 동경은 소설 곳곳에서 여러 차례 보인다. 비록 단정하고 생김이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 보이지만, 자기의 마르고 160cm가 넘지 않는 왜소한 체격에 거무튀튀한 피부색에 대한 언급, 그리고 나오미조차 백인 옆에 서면 보잘 것 없는 동양인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또한 자기 처지에 나오미같은 아름다운 여자는 만날 수 없다고 단정한다. 한마디로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이 상당히 크다.  


그런데 이러한 자격지심은 나오미도 마찬가지다. 욕과 비방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난폭한 언행, 상대를 동물에 빗대어 대놓고 빈정거리는 천박함. 누군가에게 경멸을 받는다해도 반박하지 못할만한 처신을 하고 있는 그녀는, 겉으로는 자기 외에는 모든 여성을 우습게 여기고 낮잡아 말하지만 실은 내면에는 열등감과 자기방어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결합이 어땠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그래서 나오미를 통해 허영심을 채우고 싶었던 가와이 조지는 그녀의 본색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인지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음에도 나오미에 대한 애증은 번함없이 반복된다.   


그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부재하며, 질투와 끊임없는 의심과 집착만 존재한다. 아내는 지속적으로 외도를 하며 거짓 눈물로 용서를 구하고, 남편은 외도를 빌미로 아내를 가둬두고 감시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으면서 "나가"와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한다. 이쯤되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결혼인지 알 수가 없다. 당신들은 지치지도 않습니까. 


가와이 조지가 나오미를 쫓아낸 후 후회하면서 그녀가 돌아오길 바라며 자신이 만든 나오미의 성장일기를 들춰보는 장면이 있는데, 성장일기에는 그녀의 신체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놓고, 그녀가 입은 옷부터 매순간을 찍어 일기에 붙여놓은 모습은 가히 변태적이다. 가와이 조지가 말한 나오미의 '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ㅡ 


뭐 이런 관계가 다 있나... 싶은 생각을 하다가 퍼뜩 든 생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연인이든 부부든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자기에 맞추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는 맞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이별을 선택하는데, 맞지 않는 게 정상이다. 사람이 퍼즐도 아니고 어떻게 딱딱 맞춰지겠나. 서로의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기보다 원하는 상대로 만들어가는 것을 '맞춰간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물론 취향이나 성격이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단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가와이 조지는 나오미와 헤어지면 그녀가 결국 게이샤 혹은 매춘부가 될 거라고 여겨 차마 떠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가와이 조지가 그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자신에게 있다. 동정심으로 자신이 그녀를 구원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지만, 나오미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오미가 스스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가와이 조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순진하고, 순진하지 않은 건 조지라고 말하는 나오미의 말에서 어쩌면 가식없이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그녀가 순진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더하여 여성의 정조와 도덕을 따지면서 정작 본인들의 행태는 사뭇 다른 남성들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행태를 꼬집은 건 아닌지.  


내가 납득하든 말든 어쨌거나 그럼에도 서로를 원한다니 어쩌겠는가. 무엇보다 두 사람 방식의 사랑에 있어서 딱히 피해자가 없다. 그들 삶의 방식을 내가 무어라고 토를 달겠는가. 내내 성장을 말하지만 그야말로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두 남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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