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개정판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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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작고한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내가 처음 읽은 사노 요코의 에세이는 <사는 게 뭐라고>였다. 그런데 그 책을 펼친 장소가 공교롭게도 전철역 지상 승차장이었다. 혼자 큭큭대던 웃음이 깔깔로 바뀌면서 주변 사람들의 눈총도 받았건만, 전철을 타고서도 좀처럼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더랬다. 당시에 지금은 절판된 노라 에프런의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를 연달아 읽었는데, 이 양반도 만만치 않은 입심을 자랑하는지라 덕분에 한동안 유쾌했었다. 당시 나의 심리 상태가 어떤 지경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수필을 찾아 읽었던 걸 보면 꽤나 가라앉아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어떠한 훈계도 없이 유쾌한 웃음 뒤에 턱을 괴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사노 요코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수필집은 참으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속에 담아 두지 않고 걸름망 없이 툭툭 내놓는 말들에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잠시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든가, 성장기에는 부모의 훈시를 먹고 자라고 성인이 되어서는 정보와 소문에 묻혀 산다든가, 멋쟁이는 일단 부지런해야 한다든가, 사람 만나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 등이 그렇다.  


새끼를 낳은 개를 보고 개는 돌연 개가 아니라 어머니가 됐다고 말하면서 부산스럽고 어수선했던 강아지가 슬픔과 체념을 받아들이는 눈을 하게 된 것을 꿰뚫는다. 여자가 한 번 어머니가 되어 버리면 어머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면서, 세상은 무책임하게도 어머니도 인간이며 여자라고 꼬드기지만, 아무리 꼬드김을 당해도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이기를 계속할 수 밖에 없음을, 그리하여 객관적 입장이 되기가 어렵다는 얘기에 얼마 전에 봤던 <쿠오바디스, 아이다>가 떠올랐다. 보스니아인, 통역관, 그리고 어머니. 그중에서 어머니의 역할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는 아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삶에 지쳐 마지막 순간을 선택하는 이가 발견한 것이 나의 집 창문에서 나온 불빛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친구와 짓궂은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사람은 저마다 각각의 해우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치듯 든다.  


우리는 하루하루 노화되어 노인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렵고, 되고 나서도 어려우며, 그럼에도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어른이 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은 사실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지만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영원히 어린애로 사는 것보다는 낫다.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노 요코의 글들이 나에게는 "잘 하고 있구나"라는 격려로 읽힌다.  


자신이 죽은 뒤 주위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도록 노인이 된 후에는 야멸찬 사람이 되고, 남은 사람들이 성가시지 않도록 나이들어 물욕 없이 살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음과 동시에 땅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진다면 좋겠다는 사노 요코의 글은 소박하고 아름답다. 인생을 관조하는 그의 통찰이 나에게는 쉼이 된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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