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제도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0
다와다 요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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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 해당하는 『별에 어른거리는』은 Hiruko의 모국을 찾아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데에서 끝난다.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 그들은 독일 발트해 뤼겐 섬을 첫 경유지로 시작해 폴란드 그단스크, 라트비아 리가, 에스토니아 탈린,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입국 비자가 없어서 상륙 하지 못한다)에서 마친다. 그 여정에서 배에 승선한 여러 사람들과 그들이 경유했던 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는 자못 흥미롭다. 거기에 구글 지도를 띄어놓고 그들을 따라가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이 소설은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왔던 '세계화' 혹은 '글로벌'이라는 용어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현되어야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국가, 언어, 민족,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그들의 대화에서 꾸준히 언급되고, 이는 곧 정체성의 실체와 언어적 디아스포라, 그리고 21세기형 제국주의와 대륙 간 차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설정 상 사라진 모국이 부정당하자 현재의 '나'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느끼는 Hiruko. 해체된 과거 소비에트 연방국에 망명처럼 잔재하는 소련이라는 그림자. 존재감이 미미한 극지방 청년의 무너진 자존감. 자신들이 내리는 정의가 곧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주류 유럽인. '미래는 안갯속에 가려 안 보이는 불안정한 시기에 목적도 확실하지 않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나누크의 말에서 독자는 기실 대다수의 세계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배에서 한 식탁에 앉은 그들의 대화에는 덴마크어, 독일어, 영어, 판스카어가 혼재해 있다. 그럼에도 의사소통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그리고 러시아인 페트로비치의 아내는 독일인이다. 형은 탈린에 산다. 그는 러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인 아내의 발음에 익숙해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장트페테르스부르크라고 발음한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맥락의 설정들은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는 국가와 민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전쟁, 환경오염, 산업폐기물 및 쓰레기 유입 등으로 달라져버린 지구의 지형과 기후 변화는 어느 한 나라한테 책임을 지울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총체적 문제다. 시간이 흐를수록 각 국가가 연대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의 비율이 훨씬 커질 것이다.  


자기 자신이 집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Hiruko, 그리고 답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지만 정작 질문이 분명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그들에게서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스스로 가져야할 정체성의 정체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무엇인지를 되짚어보면 좋겠다.




도서지원

나는 이자나미가 아니야. 여자 샘플도 아니야. 나는 Hiruko. 지상에는 다양한 신체가 살고 있어. 인간만 보고 살면 그걸 잊어버려. 다양한 신체를 떠올리며 살고 싶어. 사지, 매, 뇌조, 사슴, 거위, 물고기, 불가사리, 아메바.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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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9
이디스 올리비어 지음, 김지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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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깊은 외로움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년 시절 자신이 만들어냈던 상상 속 친구인 클러리사를 떠올리는 서른두 살 애거사.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클러리사는 어느새 너무나 생생한 형체와 소리를 띠고 애거사의 곁에 존재하게 된다.  



클러리사는 애거사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욕망을 투영한 존재로 읽힌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관습의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식탐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옷을 고를 때에도 자신만의 취향이 뚜렷하고 확실하다.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보다는 자기 자신 역할을 하는 것을 즐긴다. 또한 클러리사는 애거사가 유년시절 성취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뤄낸다. 그렇다면 애거사는 어떤 사람인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할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린시절에는 열등감을 느꼈고, 서른두 해를 살아오는 동안 본인의 의지없이 맡겨진 일을 수동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수행하고,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하면 안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정해진 틀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애거사는 십수 년 만에 클러리사가 다시 나타난 후 그녀의 존재가 점점 커지자 오히려 그녀를 피하고 숨어다니다가 급기야 집을 떠나기에 이른다. 이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애거사의 혼란스러움을 짐작할 수 있다. 한평생 담장 안에 살았던 애거사가 비로소 자유로운 기분을 느낀 때는 브라이턴에서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고, 어떤 속박도 없는 환경. 상상 속 세상에서만 삶의 희열과 행복을 느끼는 애거사. 그안에는 애거사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만 존재한다. 이와 같은 맥락은 소설 전반에 걸쳐 서술되는데,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사회적 관습)과 스스로 만든 성 안으로 칩거하는 애거사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길게 서술한 내용은 아니지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브라이턴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할 줄 모르는 클러리사는 외로웠던 애거사 본인의 유년시절의 모습을 대변하고, 점점 더 건강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클러리사는 애거사의 바람이 담긴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애거사는, 클러리사라는 '틀'을 넘어서지 못하고 동시에 클러리사가 '애거사'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ㅡ 


소설을 읽다보면 의아해지는 지점이 있는데, 애거사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했던 클러리사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실체로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열한 살 소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성장하게 되고 열일곱 살에 이르자 어린아이가 아닌 자주적 자아로서 애거사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애거사가 두 사람의 관계를 이끌어 왔는데, 언제부턴가 클러리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자 한다. 즉 어린 소녀는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주체적인 존재로서 애거사가 창조한 인공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로 나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애거사는 클러리사와의 결합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만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클러리사가 이끄는대로 따라야한다고 믿는다. 이런 측면에서도 애거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가 그녀의 집착과 통제에서 뛰쳐나가는 순간 소멸해버린 후 다시 열한살 소녀가 되어 돌아온 클러리사는, 소설 속에서는 애거사 본인이자 더 넓은 관점에서는 당시 여성들을 대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삶 자체가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있을까, 그녀는 서른 해가 넘도록 어떤 마음으로 살아온 것일까, 라는 생각에 애거사가 안쓰러웠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다른 것은 지금 세태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것. 사람을 만나고 대화에 부담을 느껴 대부분의 소통을 스마트폰 문자나 SNS로 대신하는 요즘 사람들. 부자지상주의와 정상성을 들어 실패와 일탈을 두려워하며 실패를 하느니 차라리 포기를 하겠다는 사회적 분위기. 도전은 무모하고 안주가 현명함으로 인정되는 세태. 깊게 들어가면 대부분의 인간은 자유롭지 않으며, 책 밖의 우리와 애거사의 모습은 다르지 않더라는. 내 안의 클러리사에게 자유를 주는 순간, 우리 자신도 조금은 자유러워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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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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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 소설 여덟 작품이 실린 소설집이다.
실린 소설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키워드는 생존, 소통, 상실, 존재의 의미. 
 
각각의 소설들은 외롭고 비통하다. 「영생불사 연구소」처럼 유머 속에서 고달픈 삶의 애환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녀를 만나다」에서 120살 여성을 통해 열악한 노동 환경과 폭력적인 세태에 유쾌하게 일침을 가하지만, 대체로(사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 역시) 상실의 고통을 담고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지속될 영생불사의 꿈, 그리고 더하여 생의 길이만큼 늘어날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서글픔. 


간절하게 비생물 지성체와 상호소통하고 싶은 화자는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왜 생존하려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더 생각해 볼 것은 314가 끊임없이 물어보는 유토피아 지수에 '나'만이 아닌 '너'도 포함되어 있는가. 기계의 사유는 갈수록 일방적으로 흐르는 우리의 모습에 경종을 울린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화하고 사망하는, 인간이라면 누구가 거치는 과정인 한 생애. 이를 모르는 이는 없지만 우리는 질병과 노화가 두렵고, 죽음은 더 두렵기 마련이다. 제 집에서 죽을 자유조차 박탈 당하는 노화와 질병. 「One More Kiss, Dear」는 이 책의 처음에 실린 「영생불사 연구소」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외롭고 고달픈 영생을 살 것인가, 유한한 삶을 살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노화를 어떤 시선을 바라보아야 할까.


극으로 치닫는 양극화 현상, 차별과 혐오가 부른 죽음을 이야기하는 120살 할머니의 삶은 투쟁, 그 자체다. 특히 이 소설은 변희수 하사를 애도하며 그녀가 바랐던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뭉클해진다. 


가정폭력의 참혹한 결과. 가정 파탄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이래도 가정폭력이 그저 '가정사'일뿐인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많은 식물들이 단일화 되어가거나 유전자 조작 재배종으로 대체되어가는 것에 대한 일침. 더하여 유전자 조작에 의한 단일종으로 구성된 집단이 식물을 넘어서 인간에게도 적용될 섬뜩한 미래 사회. 동물의 장기를 대체하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고, 유전자 복제는 물론이며 우열 유전자를 가려낸 임신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까.


ㅡ 


개인적으로, 가장 비극적인 작품은 「여행의 끝」이다. 전염병으로 유일한 친구를 해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병病'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설정이 지나치게 극단적일 수 있겠으나 지금의 세태를 떠올려보면 생명체가 생명체를 함부로 죽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이른 현 세태는 그야말로 '병'에 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마지막 소설에서 작가가 희망을 배치한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그 자체로서 희망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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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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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60대의 저자가 남극을 비롯한 70여개 나라를 여행하고 탐사해온 자신의 삶을 돌아본 자전적 여행기이자 답사기이며 생애 전반의 회고록 역할을 하는, 생전 마지막으로 집필한 논픽션이다. 


북아메리카, 북태평양 연안, 캐나다, 적도 태평양 콜론 제도, 동부 적도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극해, 남태평양 해안, 남극대륙, 남미 및 마젤란 해안 외에도 세계 곳곳을 탐방하는데 고고학, 역사, 문화, 인류학, 자연과학, 생물학,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인간이 건설한 문화적 환경과 그것이 미친 영향 등 여러 관점으로 접근한다. 










저자가 현장 노트들을 다시 읽으며 이 책을 쓰는 데에 있어서 의도했던 것은1948년부터 1994년까지의 긴 여정을 다시 짚어 걸어보는 것이었다. 그가 긴 시간을 되짚으면서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떠나고만 싶었던 유년기의 동경과 성찰의 시간 사이에서 그는 인간이 초래한 위험과 인간의 승리 및 실패를 통해 배운 것들, 그리고 자신의 실패들과 오류 가능성에 대해 곱씹었다. 그는 이 책을 계획하면서 인류의 문화적 생물학적 역사에서 삶의 유의미한 것이 무엇인지를 직조해내는 것이라고 썼다.  


주로 저자의 4,50대에 여행한 곳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그는 지금껏 이어져 오는 인류와 자연의 역사적 의의를 짚으며, 끊이지 않는 생태계 파괴, 무분별한 난개발과 오염, 중세 식민지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양 무역 산업과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쟁의 심각성을 우려한다. 저자가 가진 의문은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인간에게 무관심한 자연의 세계가 인간 세상을 덮쳐오는 가운데 우리가 문화와 경계선을 넘어 조화를 이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와 소수문화의 붕괴, 그 한편에는 이를 막으려는 노력. 미국인과 유럽인의 우월감과 자만이 가져온 기만적 폭력과 도덕적 망각. 낙원을 동경하면서도 자연을 훼손하는 모순. 각자 개인이 속한 문화가 아닌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들을 만났을 때 각기 다른 문화의 특유점과 품고 있는 의미와 지혜를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의 다양성을 두려워하고 자기가 속한 문화와 풍속만이 옳다는 주장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위험을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라고 충고한다. 이방인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려 노력해야 한다는 저자의 이와같은 메시지는 비단 인류 안에서만이 아닌 다른 종들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연 그 자체가 예술임을 강조한다. 비록 방문자일뿐이지만 일상적 삶의 괴로움에 시달릴 때마다 자연의 색채와 광활함에 위로를 받고 자연 탐사를 통해 살아가는 데 힘과 용기를 얻는다는 저자와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탐방지에서 가져(주워)온 기념품들ㅡ녹색편암, 카르디타 껍데기들, 유칼립투스 열매, 현무암 돌멩이, 황동 탄피ㅡ은 풍부한 생명의 다양성, 태곳적 지구의 흔적, 인간 행동의 폭력성, 무용한 현대의 전쟁 등 우리에게 침묵으로써 이야기를 전한다. 


ㅡ 


우리는 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특히 전 세계가 자본주의 체제에 있는 이상 어느 것 하나 독자적인 것 없이 맞물려 있다. 특히 생태 및 환경 보존과 경제적 이득이 필요한 계층 간 충돌의 갈등 해결은  특정 국가를 떠나 대다수 나라가 해당하는 난제 중에 난제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저자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러 사례와 배경을 서술함으로써 어느 분야 예외 없이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함을 촉구한다. 


그의 탐험은 지식을 수집하고 경험을 쌓는 일, 그 이상이다. 과거의 이해와 미래에 대한 예측이기도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지구 생태와 인류의 유구한 역사,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수한 경이를 통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되짚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책에는 인간 외 생명체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쩌면 인류의 현실적인 문제 해결 이전에 지구별에서 공존해야 하는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을 비롯한 대자연을 목도한 저자가 떠올린 것을 몇 개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경이와 기쁨과 감사, 그리고 이들을 지켜나가기 위해 당면한 수많은 문제점들이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감상일지 모르겠으나 이것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앞서 썼듯 이 책은 여행기이자 답사기이며 동시에 인류와 자연을 다룬, 더할나위 없는 인문교양서다.  2025년, 첫 번째 나의 올해의 책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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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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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 출간한 소설이다. (내가 알기로는.)
작가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사랑과 일상에 대해 얘기한다. 통속적인 사랑부터 동성 간의 호기심,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동경, 우정, 사랑과 우정 사이의 단정할 수 없는 감정, 변심한 연인에 대한 배반감과 증오와 복수심, 비루한 일상에 대한 고백, 중년의 외로움과 성적 욕구, 청춘의 불안과 방황, 결혼에 대한 진지함, 가정을 이룬다는 것의 의미,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등이 담겨 있다.  
 
 






45세 기혼 남성 야마 도비오는 20대 젊은 여성과의 육체적 관계를 갈망하는데 자신이 유부남임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접근하는 이유가 단순한 성적 욕구 때문임을 숨기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한다. 그야말로 능구렁이같은 양반이다. 
젊은이들의 인생 상담에 기꺼이 응하는 고리 마마코의 대담한 반전.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딱 어울리는 발랄하고 천진한 가라 미쓰코는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진지함과 신중함을 갖추었다.
미래지향적이며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 호노오 다케루는 매사 지나치다 싶을 만큼 논리적이고 진지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입장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생각을 하는 공상가 청년 마루 도라이치는 사춘기 소년같다(이름이 하필이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쓴 편지의 내용이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거나 우습고 가벼워 보일지라도 발신자의 마음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건 사실이다. 다른 편지들에서는 철딱서니 없어보였던 가라 미쓰코가 호노오 다케루의 청혼 편지에 대한 답장에 결혼과 자신의 삶에 대해 신중한 답장을 보낸다. 만약 편지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그토록 진지하고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뻔뻔함과 찌질함을 오가는 그들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1990년대의 정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그 대상이 누군든, 당시에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편지만한 것이 없었다(고딩 대딩 때 참 많이 썼더랬다).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은 글이 대신했고, 혹여 오해가 있지 않을까 단어를 고르고 고르며 썼던 편지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25년, 21세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이라면 이런 편지글이 가당키나 하겠냐만... . 편지글은 고사하고 이메일조차 쓰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메시지도 조사와 모음을 다 떼어놓고 자음만으로 대화하는 세상(물론 한국의 경우다)에서 이런 구구절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이제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참 아쉬운 일이다.  


​어긋난 사랑의 작대기와 (독자가 읽기에) 유쾌하고 소소한 반전들.
미시마 유키오가 이런 감성의 소설을 썼다는 것도 의외고, 이 유쾌함 뒤에 오는 씁쓸함과 스산함이 있는 건, 또 미시마 유키오답기도 하고.  


그동안 작가의 소설이 무겁게 느껴져 부담스러웠던 독자라면 적어도 그에 대한 부분은 내려놓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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