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2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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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마을 태고를 배경으로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공간을 이루고, 그 공간이 다시 시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미하우와 게노베파, 크워스카와 나쁜 인간의 시간.
파베우와 미시아, 루타와 이지도르의 시간.
포피엘스키와 게임(신)의 시간.
그리고 아델카의 시간. 


두 차례의 전쟁과 냉전 시대, 민주화 운동, 산업화를 겪으며 태고인들은 때로는 피해자가 되고, 때로는 박해의 목격자가 된다. 독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인류의 삶과 그 안에서 약자로 살아야했던 여성, 장애인, 부랑아 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히 게노베파와 크워스카에서 시작되어 아델카까지 이어지는 여성 연대기는 독자들에게 가슴 뭉클해지는 진한 여운을 안긴다.  






 
 
짧게 끊어가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형식을 취하는 소설의 화자들은 각양각색이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뿐 아니라 전쟁 중에 태고에 들어온 외지인들, 태고인이지만 비주류에 해당하는 인물들, 태고의 동물과 식물, 신, 천사, 게임 등 여러 화자들이 등장한다. 출생, 성장, 젊음, 사랑, 병病, 노화, 선善, 악惡 등 이 세상에 생명을 부여받고 온 존재라면 한 번쯤은 겪게 되는 것들을, 우리는 이 소설에서 다채로운 색깔로 만날 수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각자만의 시간과 속도로 살아간다. 저마다 다른 그 시간들이 맞물리면서 커피 그라인더가 돌아가듯 그렇게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게 삶이다. 


삶의 근원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노년기가 되면 만물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혜안이 트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여전히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해 탄식하는 이지도르처럼, 우리는 늘 의문과 회한을 품는다. 하지만 만물이 존재하는 수만큼 삶의 형태 또한 그 수에 비례할테니 정답이 있을 리 없다.   


태고로 대변하는 우주적 관점과 신화, 자연과 인간의 합일, 정신과 물질, 선과 악(또는 천사와 악마), 육체와 영혼, 삶과 죽음의 넘나들이가 판타지처럼 아름답게 그려지는 소설이다. 한 세대의 죽음은 다음 세대의 탄생을 알린다. 이렇듯 죽음이 곧 끝이 아님을, 토카르추크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이 처음 출간된 직후에 읽고 6년만에 재독이다.  
처음에 읽었을 당시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던 이 책을 두 번째 읽을 때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만족스러운 재독이었다. 전혀 기억에 없었던 부분들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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