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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평점 :
1988년생 스물여덟 살, 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사이러스 샴스.
태어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비행기 격추 사건로 사망했고, 이후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조국 이란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성장하는 내내 전혀 기억이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이방인으로서 갖는 내재적 불안감을 안고 살아왔다. 청년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 싶고, 그로써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찮게 살다가 이름없이 죽어간 부모의 삶과 죽음보다는 자신의 죽음이 그들보다는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의미있는 죽음에 집착해 죽기 전에 의미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래서 '순교 프로젝트'를 결심하고 그에 맞는 인물을 찾아낸다. 예술가 오르키데. 말기암을 진단받고 삶의 끝에 놓인 스스로를 작품화하는 중년 여성 예술가와 마주한다.

이 소설은 두 세대를 아우르며 이해하는 화해의 장이자 한 청년의 성장기이고, 삶과 사랑, 애도와 그리움을 담은 연서戀書다. 1980년대를 중년의 나이로 지나온 알리와 로야 세대, 2010년대에 이십 대 청춘을 보내고 있는 사이러스 세대. 소설은 이렇게 30년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서술한다. 각 장章마다 제사題辭 가 있는데 사이러스가 쓴 시나 산문이다. 이 글들은 죽음을 맞은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데, 이는 사이러스의 방식대로 그들의 인생을 기리는 것으로 읽힌다.
여성과 모성이라는 굴레에서 절실하게 벗어나고 싶었던 로야.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양계장과 아들 사이러스 외에는 삶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알리. 이 두 사람 외에도 지 노바트, 아라시 잔 등 전쟁과 억압 속에서 한 시대를 살아낸 그들의 삶을 통해 독자는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공유한다.
사이러스는 화가 오르키데와 순교에 대해 대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털어놓으며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오르키데의 말과 질문을 들으면서 사이러스는 자신의 진짜 자아가 무엇인지 본인 스스로 모르는 것에 답답해한다. 어머니의 허망한 죽음, 평생 양계장 노동자로 살면서 아들이 성인이 되자 마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죽음을 맞은 아버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하찮은 죽음에 대한 혐오로 인해 의미있는 죽음에 매달렸지만, 정작 중독에 허우적거리며 자아를 찾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다. 사이러스는 오르키데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동안 겪어왔던 험한 경험들이 무의미하기만 한 건 아니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 말라고,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그러니 스스로에게 나이들 기회를 주라고 말하는 오르키데. 비로소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을 인정하고, 자신을 위해 슬픔과 외로움의 시간을 버텨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사이러스.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사나흘에 불과했지만 사이러스에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 유의미했을 터다.
이십대 청년은 의미 있는 죽음을 찾아 헤매지만, 진정 찾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살아야할 이유였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가지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확신이 늘 정답의 길로 이끌지도 않는다. 소설에는, 타인의 시선에서는 성공한 삶이었으나 한평생 부채감을 벗어버리지 못했던 이도 있고, PTSD의 고통을 껴안으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행복한 날보다는 참고 견뎌야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게 인생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함을, 소설은 말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소설의 분위기가 우울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읽으면서 복선으로 등장하는 몇몇의 지점과 암시하는 장면들 그리고 시대와 인물을 교차하는 서술방식은 미스터리 형식을 갖추고 있어 은근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몽환적인 사이러스의 꿈속 대화는 읽는 사람의 슬픔을 건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터지는 반전. 그 반전 또한 너무 애달퍼서 마음이 아프다.
주인공 사이러스뿐 아니라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위로가 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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