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자 수확자 시리즈 1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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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우리는 법에 따라 우리가 죽이는 무고한 이들을 기록해야 한다. 





 


 
지구 밖에 건설한 식민 행성의 재난으로 인류는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지구라는 유한한 세계에 갇힌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은 인구 수를 조절하는 것. 그래서 죽음을 독점하고 배급하며 관장하는 수확령이 만들어졌다.  


2042년, '클라우드'는 '선더헤드'로 진화했고, 세상의 모든 정보가 선더헤드의 무한에 가까운 메모리 속에 담겨 누구나 접속할 수 있게 되었으며 죽음을 정복했다. 무한한 지식을 얻었고, 불사의 삶이 가능해진 완벽한 세상에서 개선은 필요없다. 교육도, 연구도, 배움도 모두 불필요해져버린 세상. 


인류의 가장 큰 성취는 죽음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행정부를 끝장낸 것. 선더헤드가 정치가 아닌 행정을 도맡자 부정부패가 사라졌다. 생태와 공존을 기반으로 한 세계법이 정립됐다. 다만 인구 조절을 위해 사람을 죽여야한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선더헤드에게 권위가 넘어가지 않은 조직은 수확령, 단 하나뿐이다. 인간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을 기계한테 내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수확자의 일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선택되는가.
수확자가 될 첫 번째 조건은 수확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야 한다. 이 직업의 역설은 이 일을 하기 싫어하는, 즉 살해하기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확자들 본인도 그들이 죽이는 이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동시에 유죄임을 안다. 수확자는 죽음의 도구일 뿐이고, 도구를 휘두르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다. 죽는 '그'가 아니면 내가 죽을 수 있으므로. 따라서 모두가 공범이며, 그 책임을 공유한다. 


수확자는 경외의 대상이자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다. 수확자의 지위는 법 위에 있지만, 법을 거역하고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법 규칙을 넘어서는 도덕성을 요구한다. 수확자 수습생은 역사, 철학, 과학을 공부함으로써 영구적으로 생명을 빼앗는 책임을 맡기 전에 생명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깨우치며, 수확자에게는 겸손, 청렴이 강요된다. 보편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보다 더 많은 배움의 양을 요구하는 수확자 수습생. 


문득 이토록 막강한 권력을 현재 세계 곳곳의 정치인들에게 주어진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확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과 요건이 남다른 도덕성이라지 않은가. 


수확자라는 직위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그리고 선더헤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수확자들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들이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다. 수확자가 받는 징계는 마치... 시시포스 같더라. 



법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을 '거둔다'라고 표현하며 수확자들이 사회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봉사를 한다는 사실을 어린시절부터 교육시킨다. 수확자들의 기록은 왜 인간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를 증언하는 공공 기록이다. 그 기록에는 행동뿐 아니라 수화자들의 감정도 기록한다. 그들에게도 회한, 후회, 슬픔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과 다를 게 무언가. 


수확자들은 권력과 폭력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경계한다. 그리고 좋은(?) 수확자들은 자기 일을 좋아하게 될까봐 우려한다. 아무리 합법적이라고 해도, 고결한 명분이 있더라도, 무작위로 선정한 사람을 죽이는 트라우마는 그들을 늘 괴롭힌다.  


수확령은 세계에서 유일한 자치체제다. 선더헤드는 수확령에 간섭하지 않지만, 세상에 존재해야 할 수확자의 숫자는 제시한다. 전 세계에서 연간 약 5백만 명을 거둔다. 수확 시대 이전의 사망률에 비하며 극히 적은 수치다. 여기서 독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합법적 '살해'가 범죄와 사고로 인한 죽음의 수치보다 적다면 수용할 수 있는가?


ㅡ  


소설의 시작에서 등장하는 패러데이처럼 의무보다는 연민을 선택하는 숭고한 수확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초능력 꼬마 소녀가 밀폐된 공간에서 수 마리의 늑대를 상대로 잔혹한 핏빛 대결을 벌였던 영화 <마녀>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로언의 훈련 장면에서 보여지듯 고결한 소명을 폭력과 살인 욕구를 분출하는 데 이용하는 빌런 수확자도 있다. 수확자 수습생을 선택하는 과정이나 수확자가 수확을 거부하는 부분에서도 잔인한 딜레마가 따라온다.  


수확령에서도 사소한 다툼이 있고, 부패와 규정을 악용하는 사태는 갈수록 잦아진다. 정의와 고결한 소명을 혐오하고 적대시하고, 연민과 관용을 약점으로 보며, 수확자가 새로운 군주이자 권력자라고 믿는 자가 있는 한 수확자의 허울을 쓴 살인광은 언제든 나타날 것이다. 이미 초창기부터 수확령의 폐해를 우려한 최초의 최고위 수확자 프로메테우스의 예감이 과하지 않은 이유는 수확자, 그들이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패러데이는 두 제자에게 '절대 인간성을 잃지 마라'고 말했다. 인간성을 잃으면 살해 기계에 지나지 않게 되므로.  



그동안 읽어왔던 미래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기존 작품들이 기계화, 인간성 상실, 인공지능의 장악 등 대체로 현대 사회를 반추하며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부각했다면 수확령이 인간의 목숨을 거둔다는 설정을 제외하면 오히려 외형상 유토피아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그러나 완벽한 세상에서 언제 닥쳐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라져가는 앎을 향한 열정과 지적 욕구,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부재. 


죽음이 당연한 운명이 아니라 예외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끝도 없는 회춘을 거듭하면서 수백 살을 살면서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선더헤드는 모두가 동등한 재산을 갖게 할 수 있음에도 인간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어느 정도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분투할 수 있도록. 또한 선더헤드는 수확령을 간섭하지 않는다. 무시하는 걸까, 경멸하는 걸까? 인간이 아닌 디지털에게서 당하는 경멸과 무시는 어떤 기분이 들게 할까? 


선더헤드는 빌런이 아니다.
그런데 왜? 기분이 별로... .



이 미래소설은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원초적인 것들이 성취된 후에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인구 조절 문제로 인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거둔다는 설정만 제외하면 여러 면에서 정치, 행정, 복지 등 완전한 사회 구조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떤 구조적 환경에서도 인간의 악의와 선의는 대치하게 마련이고, 이를 군더더기 없이 흥미롭게 그려낸 듯 하다.  


세 권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각 권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완성되어 깔끔하게 마무리된 점이 좋았고, 사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수확자 퀴리의 「수확 일기」 였다. 몇몇 수확자들의 일기가 등장하는데,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지점이다.  


끝으로, 무조건 재밌다. 




170.
평균 나이가 1천 살에 가까워지면 삶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우리 모두가 모든 예술과 과학에 능한 르네상스의 아이들이 될까? 숙달할 시간은 충분하니 말이다. 아니면 지루함과 독창성 없는 일과가 지금보다 더 우리를 좀먹어, 무한한 삶을 살아갈 이유가 줄어들고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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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에디터스 컬렉션 15
메리 셸리 / 문예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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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인간들은 모두 내게 죄를 저지르는데 왜 나만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거요?" 



인간에 의해 창조되고 그 창조자에의 해 버림받은 한 괴물의 이야기다. 작가는 이 괴물의 눈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모순, 그리고 오류와 부조리에 대해 지적한다.   
 







괴물이 지켜본 오두막 노인의 일가를 통해 선택된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평생을 소모해야하는 사회적 부조리,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노인과 괴물의 대화는 인간의 가식과 허위를 비판한다. 또한 프랑켄슈타인이 갖는 양심의 가책에 따른 죄책감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의아한 부분은 괴물이 그토록 자신의 처지와 감정을 호소하는데, 빅터는 왜 그렇게 공감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결핍과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는 빅터를 보면서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 외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지식과 식견과 소명 의식 없는 지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다시금 생가해보는 시간이었다. 비단 빅터뿐 아니라 이러한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보여진다. 허위뿐인 그들이 외치는 정의와 공익은 얼마나 공허한가.   


빅터는 자신의 창조물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시점에서도 여전히 분노만 한다. 애초에 창조주가 되겠다는 자신의 그릇된 야망을 후회할 뿐, 세상에 무방비로 던져진 괴물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는다. 빅터는 마지막 순간까지 괴물에 대한 죄의식은 커녕 증오와 저주를 품고 죽어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빅터의 죽음을 비통해하고 그동안 저지른 죄악을 후회하며 양심의 가책으로 스스로를 증오하며 고통을 느끼고 심지어 상대를 불쌍하게 여기는 이는 괴물이라는 것이다. 


괴물이 원한 건 오직 행복과 애정이 다였는데,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아니던가. 단순히 외모에 대한 편견으로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된 괴물을 보면서 집단은 얼마나 많은 개인을 얼음 동굴로 몰아넣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빅터가 만든 괴물도, 빅터 본인도 점점 더 '진짜'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자니 탐욕과 악의로 타인의 불행을 욕망하는 세상에서 괴물이 아닌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수월할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조차 삶이 비록 고뇌 덩어리라고 해도 자신의 삶을 지키겠다고, 고결해지고 싶다고 하는데, 왜 정작 인간은 추구해야할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는지.  


ㅡ 


 <프랑켄슈타인>에서 나타나는 논제들은 실제로 우리 사회의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다. 동물을 실험용 연구체로 이용하고, 생명 연장과 반영생을 좇는 현대 사회의 현상은 프랑켄슈타인의 집착과 광기와 아주 흡사하다. 


현재, 세상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인간의 존재 가치에 찍는 물음표의 숫자도 더불어 늘어나고 있다. 멀지 않은 시간 안에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범죄까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창조한 피조물은 현대 인류에게 경종을 울린다. 다가올 세상은 어느 영화에서처럼 범람할 기계가 인간의 이기심을 겨냥해 복수에 미쳐 날 뛰게 될지, 아니면 조화롭게 살아갈지의 여부는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이 판본의 흑백 삽화는 소설의 분위기와 독자의 감정을 더 극대화시켜준다. <프랑켄슈타인>은 영상과 공연물로 이미 대중화되어 있어서 아주 익숙한 작품이다. 그러나 문헌으로 읽는 <프랑켄슈타인>은 아주 다른 사유를 전달할 것이다. 줄거리에서 전해지는 메세지 이외에도 더 많은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으니 꼭 책으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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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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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우리는 광기craziness와 속임수cunning와 보살핌care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거예요. 셋 모두랑요. 'c'가 세 개네요. 권투선수 마테오는 제가 미쳤대요. 제가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다고, 제가 말해요. 



소설은 각각 프랑스와 체코에 있는 부모가 HIV 보균자가 된 딸 니농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탈리아까지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독자는 그 여정에 동참함로써 민주화투쟁 이후에 살아남은 자들,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킹을 한다는 청년들, 인신 매매 및 장기 매매, 과잉 노동환경과 불공정한 임금 체계, HIV 보균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 타인의 오롯한 고통에 대한 측은지심, 롤빵 하나에 담긴 낯선 이의 아픔과 고통을 향한 위무를 만날 수 있다. 독자를 안내하는 사람은 시장에서 타마를 팔며 그들의 삶을 관조하는 맹인 초바나코스이다.  








스물세 살, 니농은 HIV 보균자로 진단받는다. 그녀는 삼 년 전, 단 하룻밤을 보낸 탈옥수로부터 감염됐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교도소를 그를 만나러 갔다. 그는 니농과 성관계를 했을 때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사과하는 남자. 그녀가 그를 용서하든 말든 달라질 것이 없다. 


니농의 연인, 지노의 검사 결과는 음성이다. 그는 무사하고, 니농은 그의 사랑을 거부한다. 지노는 니농과 헤어질 생각이 없다. 두 사람은 싱그러운 6월, 지노의 고모가 사는 고리노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한다. 


지노의 아버지 페데리코는 아들 지노에게 니농과의 결혼을 그만두라고 애원한다. 누군들 그와 다르겠나.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아버지는 총을 구입해 아들의 연인을 죽이고자 한다. 그러나 오직 고통으로만 채워진 젊은 여인의 눈동자를 본 순간 도저히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그리고 아들의 결혼을 허락하는 페데리코. 오래 함께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서두르라는 아버지의 진심어린 사랑과 충고.  


딸에게 선물할 향수를 구입하는 아버지 장. 향수 가게 점원은 좋은 아버지를 둔 니농이 운이 좋다고 말한다. 부모는 니농을 사랑하지만 엄마는 어린 시절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 3년 전 하룻밤에 그친 사랑으로 인해 HIV에 감염됐지만, 지금의 연인은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한 삶을 약속하고 청혼했으며, 자신을 죽이려던 시아버지는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했다.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모는 먼 길을 달려오는 중이다. 니농은 운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한순간에 에이즈 환자가 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한 키오자의 선착장에서 재회한 장과 즈데나. 그들의 회한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을 듯 하다. 


 ㅡ 


격동의 시대를 거친 한 가족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기에는, 소설은 아주 담담하다. 이탈리아에 있는 니농과 프랑스에 있는 장, 프라하에 있는 즈데나, 그 외에도 페데리코를 비롯해 여러 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얘기를 짧은 단락으로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는 구성은 마치 지중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이야기 전달자 역할을 하는 타마장수 초바나코스를 왜 맹인으로 설정했을까? 보여지는 것, 혹은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그러나 듣는 행위는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초바나코스가 장을 비롯한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초바나코스가 전달하는 얘기에 집중한다.  


무엇보다 초바나코스의 시각 장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시력을 잃은 원인은 소설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나 그가 시력을 잃은 것, 1917년 모리엔에서의 기차 탈선 사고, 니농의 HIV 감염 등은 누구에게라도 불시에 닥칠 수 있는 '사고'라는 공통점이 있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목숨을 건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건만, 여전히 세상은 형태를 달리한 아비규환 상태다. 즈데나가 베네치아의 버스 안에서 만난 토마스의 말처럼 우리는 믿기 어려운 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삶의 잔인함과 두려움을 견디고 있다.  


우리는 그저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니농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누군들 죽음을 피해갈 수 있겠냐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니농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산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리고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타마를 살지도 모를 일이다. 장은 그 타마에 어떤 기원을 담으려나.  



추신.
​버스에서 내린 즈데나와 토마스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서 헤어지는데, 이 장면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토마스는 즈데나에게 그 어떤 사심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위로를 다하고, 즈데나는 편견 없이 그의 호의를 받아들인 후 서로의 갈 길을 향해 간다. 이것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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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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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미래소설의 경우 수십에서 수백 혹은 수천 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데, 켄 리우는 이러한 보편적 관념에 따라 쓰지 않는다. 그는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자유롭게 배경으로 삼으면서 시대성이 갖는 한계를 가뿐하게 초월한다. 이는 전작인 <종이 동물원> <제왕의 위엄>에서 이미 충분히 보여지고 있다. 이 소설집 역시 현재에도 상용화되지 않은 전투 로봇이나 디지털화된 분야가 한 세기 전에 등장하는 등 역사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습을 SF 요소와 거슬림없이 조화롭게 녹아내고 있다. 


윤리 및 철학적 주제 안에서 드론, 학교폭력, 자연파괴, 난민, 종교, 기계화로 인한 일자리 부족, 에너지 경쟁, 정보 업체를 통한 국제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각각의 단편 안에 담아내고 있다. 







실질적으로 언론을 통해 전투 현장에서 드론의 역할과 쓰임은 점점 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무인이기에 아군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민간인 피해뿐 아니라 드론 조종사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피해자임을 간과한다. 임무 수행이라지만 민간인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원격 사살에 대한 죄책감, 인간 개개인의 목숨값을 매기고, 살려야하는 자와 죽여야하는 자의 기준을 정해야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기밀이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루프 속에서>의 스토버 박사는 더 높은 기준을 지향하는 '깨끗한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초정밀화 된다고 해도 과연 전쟁이 깨끗할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든 프로그래밍에 의해 기계가 인간의 목숨줄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중이다. 



문명화=기계화라는 공식이 자연스러워지는 세상에서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의 사랑과 다층적인 감정, 그리고 육체를 통한 경험이다. 인간의 뇌를 디지털화하는 게 허구에 그칠까? 디지털 유령으로 존재하는 이들. 그들은 인류에게 또다른 형태의 신으로 군림할지 모른다.   



조금 벗어난 얘기일지도 모르겠으나,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를 읽고 <그 짐은 영원히 그대 어깨 위에>까지 페이지가 넘어오자 문득 오래 전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라면 수천 년이 흘러 인간은 다 퇴화하고 손가락만 남을 것이라는 우스갯말이. 그런데 나는 음성 언어의 퇴화보다 문자의 퇴화가 더 우려된다. 문장은 생략하고 그림 이모티콘이나 캐릭터 스티커가 일상화되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선사 시대의 벽화가 포개졌다. 우주 여행을 눈앞에 둔 지금 시대에 정작 인간 세상은, 어쩌면 선사시대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ㅡ 


폭력과 범죄가 사라지는 사회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린 소설들에서처럼 설령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또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고결한 덕행이라고 믿고 행한 폭력적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있는가'라는 딜레마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끝까지 따라다닐 명제다. 인류가 쌓아온 역사를 토대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현재의 기술과 지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카슈미르를 비롯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분쟁,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세계 곳곳의 내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기후 이상 현상, 불과 얼마 전에 발생한 대규모 지진 피해 등 인류는 지구(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고 있다. 무선네트워크 하나로 연결된 정보화 시대에 불평등.불공정한 경제 및 금융 시장 장악과 세계화, 일방적 성장 지향이 가져온 현실이 어떠한지를 곰곰이 따져봐야할 때다.



인간은 찰라의 행복을 반복함으로써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람이 사람, 아니 생명체를 살리고자하는 데에는 엄청난 대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살아 있기에 살려야하는 것일 뿐. 세상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이들은 바로 당신과 나, 그리고 한 명 한 명의 우리임을, 켄 리우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차피 지구는 폭발할 운명이다. 인류에 의해 그 시기가 더 당겨질지 늦춰질지는 미지수이지만. 만약 인류가 지구 밖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그때는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의 아담의 말처럼 육체를 포기하고 뇌를 디지털화해 무엇이든 가능한 결핍이 없는 세계에서 신처럼 존재하면 되는 걸까? 그전에 내 수명이 다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듯 싶다.



윤리적 딜레마와 현실적 문제, 그리고 역사와 SF를 이토록 담백하고 부드럽게 읽을 수 있다니. 하루만에 다 읽고 만족스러워 책을 뒤적이며 몇 작품은 다시 읽는 중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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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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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넘어서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돈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삶에서 비켜갈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돈=권력=계급의 논리 안에서 한 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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