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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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우리는 광기craziness와 속임수cunning와 보살핌care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거예요. 셋 모두랑요. 'c'가 세 개네요. 권투선수 마테오는 제가 미쳤대요. 제가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다고, 제가 말해요. 



소설은 각각 프랑스와 체코에 있는 부모가 HIV 보균자가 된 딸 니농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탈리아까지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독자는 그 여정에 동참함로써 민주화투쟁 이후에 살아남은 자들,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킹을 한다는 청년들, 인신 매매 및 장기 매매, 과잉 노동환경과 불공정한 임금 체계, HIV 보균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 타인의 오롯한 고통에 대한 측은지심, 롤빵 하나에 담긴 낯선 이의 아픔과 고통을 향한 위무를 만날 수 있다. 독자를 안내하는 사람은 시장에서 타마를 팔며 그들의 삶을 관조하는 맹인 초바나코스이다.  








스물세 살, 니농은 HIV 보균자로 진단받는다. 그녀는 삼 년 전, 단 하룻밤을 보낸 탈옥수로부터 감염됐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교도소를 그를 만나러 갔다. 그는 니농과 성관계를 했을 때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사과하는 남자. 그녀가 그를 용서하든 말든 달라질 것이 없다. 


니농의 연인, 지노의 검사 결과는 음성이다. 그는 무사하고, 니농은 그의 사랑을 거부한다. 지노는 니농과 헤어질 생각이 없다. 두 사람은 싱그러운 6월, 지노의 고모가 사는 고리노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한다. 


지노의 아버지 페데리코는 아들 지노에게 니농과의 결혼을 그만두라고 애원한다. 누군들 그와 다르겠나.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아버지는 총을 구입해 아들의 연인을 죽이고자 한다. 그러나 오직 고통으로만 채워진 젊은 여인의 눈동자를 본 순간 도저히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그리고 아들의 결혼을 허락하는 페데리코. 오래 함께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서두르라는 아버지의 진심어린 사랑과 충고.  


딸에게 선물할 향수를 구입하는 아버지 장. 향수 가게 점원은 좋은 아버지를 둔 니농이 운이 좋다고 말한다. 부모는 니농을 사랑하지만 엄마는 어린 시절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 3년 전 하룻밤에 그친 사랑으로 인해 HIV에 감염됐지만, 지금의 연인은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한 삶을 약속하고 청혼했으며, 자신을 죽이려던 시아버지는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했다.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모는 먼 길을 달려오는 중이다. 니농은 운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한순간에 에이즈 환자가 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한 키오자의 선착장에서 재회한 장과 즈데나. 그들의 회한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을 듯 하다. 


 ㅡ 


격동의 시대를 거친 한 가족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기에는, 소설은 아주 담담하다. 이탈리아에 있는 니농과 프랑스에 있는 장, 프라하에 있는 즈데나, 그 외에도 페데리코를 비롯해 여러 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얘기를 짧은 단락으로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는 구성은 마치 지중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이야기 전달자 역할을 하는 타마장수 초바나코스를 왜 맹인으로 설정했을까? 보여지는 것, 혹은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그러나 듣는 행위는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초바나코스가 장을 비롯한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초바나코스가 전달하는 얘기에 집중한다.  


무엇보다 초바나코스의 시각 장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시력을 잃은 원인은 소설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나 그가 시력을 잃은 것, 1917년 모리엔에서의 기차 탈선 사고, 니농의 HIV 감염 등은 누구에게라도 불시에 닥칠 수 있는 '사고'라는 공통점이 있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목숨을 건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건만, 여전히 세상은 형태를 달리한 아비규환 상태다. 즈데나가 베네치아의 버스 안에서 만난 토마스의 말처럼 우리는 믿기 어려운 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삶의 잔인함과 두려움을 견디고 있다.  


우리는 그저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니농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누군들 죽음을 피해갈 수 있겠냐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니농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산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리고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타마를 살지도 모를 일이다. 장은 그 타마에 어떤 기원을 담으려나.  



추신.
​버스에서 내린 즈데나와 토마스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서 헤어지는데, 이 장면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토마스는 즈데나에게 그 어떤 사심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위로를 다하고, 즈데나는 편견 없이 그의 호의를 받아들인 후 서로의 갈 길을 향해 간다. 이것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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