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 미래소설의 경우 수십에서 수백 혹은 수천 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데, 켄 리우는 이러한 보편적 관념에 따라 쓰지 않는다. 그는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자유롭게 배경으로 삼으면서 시대성이 갖는 한계를 가뿐하게 초월한다. 이는 전작인 <종이 동물원> <제왕의 위엄>에서 이미 충분히 보여지고 있다. 이 소설집 역시 현재에도 상용화되지 않은 전투 로봇이나 디지털화된 분야가 한 세기 전에 등장하는 등 역사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습을 SF 요소와 거슬림없이 조화롭게 녹아내고 있다. 


윤리 및 철학적 주제 안에서 드론, 학교폭력, 자연파괴, 난민, 종교, 기계화로 인한 일자리 부족, 에너지 경쟁, 정보 업체를 통한 국제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각각의 단편 안에 담아내고 있다. 







실질적으로 언론을 통해 전투 현장에서 드론의 역할과 쓰임은 점점 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무인이기에 아군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민간인 피해뿐 아니라 드론 조종사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피해자임을 간과한다. 임무 수행이라지만 민간인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원격 사살에 대한 죄책감, 인간 개개인의 목숨값을 매기고, 살려야하는 자와 죽여야하는 자의 기준을 정해야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기밀이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루프 속에서>의 스토버 박사는 더 높은 기준을 지향하는 '깨끗한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초정밀화 된다고 해도 과연 전쟁이 깨끗할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든 프로그래밍에 의해 기계가 인간의 목숨줄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중이다. 



문명화=기계화라는 공식이 자연스러워지는 세상에서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의 사랑과 다층적인 감정, 그리고 육체를 통한 경험이다. 인간의 뇌를 디지털화하는 게 허구에 그칠까? 디지털 유령으로 존재하는 이들. 그들은 인류에게 또다른 형태의 신으로 군림할지 모른다.   



조금 벗어난 얘기일지도 모르겠으나,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를 읽고 <그 짐은 영원히 그대 어깨 위에>까지 페이지가 넘어오자 문득 오래 전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라면 수천 년이 흘러 인간은 다 퇴화하고 손가락만 남을 것이라는 우스갯말이. 그런데 나는 음성 언어의 퇴화보다 문자의 퇴화가 더 우려된다. 문장은 생략하고 그림 이모티콘이나 캐릭터 스티커가 일상화되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선사 시대의 벽화가 포개졌다. 우주 여행을 눈앞에 둔 지금 시대에 정작 인간 세상은, 어쩌면 선사시대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ㅡ 


폭력과 범죄가 사라지는 사회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린 소설들에서처럼 설령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또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고결한 덕행이라고 믿고 행한 폭력적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있는가'라는 딜레마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끝까지 따라다닐 명제다. 인류가 쌓아온 역사를 토대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현재의 기술과 지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카슈미르를 비롯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분쟁,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세계 곳곳의 내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기후 이상 현상, 불과 얼마 전에 발생한 대규모 지진 피해 등 인류는 지구(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고 있다. 무선네트워크 하나로 연결된 정보화 시대에 불평등.불공정한 경제 및 금융 시장 장악과 세계화, 일방적 성장 지향이 가져온 현실이 어떠한지를 곰곰이 따져봐야할 때다.



인간은 찰라의 행복을 반복함으로써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람이 사람, 아니 생명체를 살리고자하는 데에는 엄청난 대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살아 있기에 살려야하는 것일 뿐. 세상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이들은 바로 당신과 나, 그리고 한 명 한 명의 우리임을, 켄 리우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차피 지구는 폭발할 운명이다. 인류에 의해 그 시기가 더 당겨질지 늦춰질지는 미지수이지만. 만약 인류가 지구 밖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그때는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의 아담의 말처럼 육체를 포기하고 뇌를 디지털화해 무엇이든 가능한 결핍이 없는 세계에서 신처럼 존재하면 되는 걸까? 그전에 내 수명이 다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듯 싶다.



윤리적 딜레마와 현실적 문제, 그리고 역사와 SF를 이토록 담백하고 부드럽게 읽을 수 있다니. 하루만에 다 읽고 만족스러워 책을 뒤적이며 몇 작품은 다시 읽는 중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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