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을 지워 드립니다 - 기시미 이치로의 방구석 1열 인생 상담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환미 옮김 / 부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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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행복, 실패와 불행을

동일시하게 된 이후로

인간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미키 기요시

아들러 심리학 카운슬러인 기시미 이치로가 우리나라 영화 열아홉 편을 끌어와 등장 인물들과의 상담을 통해 사랑, 결혼, 부부, 부모, 자아, 인생, 관계에 대해서 짚어본다. 책에서 언급한 영화 중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와 <버닝>을 제외하면 모두 본 영화라서 정황을 알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영화의 내용을 모른다고 해서 책을 읽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자의 <미움 받을 용기>가 기억에 남아 있는 독자라면 만족하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저서를 아껴준 타국 독자들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 역사,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 이 글을 쓰기 위해 한국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제들을 다뤄보자는 생각을 실행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 ■ ■ ■

 

사랑하면 결혼을 하고, 결혼 후에는 내 집 마련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듯 현재 보다는 미래를 설계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함께 있는 현재가 충분한지를 먼저 들여다보라고,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한다. 저자는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어 '사랑이란 상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며,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외일수도 있지만 미래가 필요 없는 게 사랑이라고. 

결혼은 완전한 평등을 토대로 해야하며 대상을 향해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것도, 행복하게 해달라는 것도 올바른 결혼은 아니므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신뢰를 쌓고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와 같은 관계 방식은 연인이나 부부가 아니더라도 모든 관계에 있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상대가 완전한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동등한 대화를 이끌 수 있다. 나는 상사니까, 부모니까, 선생이니까, 선배니까, 어른이니까처럼 경험과 연륜이 많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만 버린다면 가정과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관계 문제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동의했던 내용 중 하나는 지금 겪는 문제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이를 역사적 문제에서 왜곡시켜 적용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현재의 내 모습에서 누구를 탓해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물론 유년 시절의 가정폭력을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며 이는 그것과는 별개다). 문제 해결의 중심을 타자에 놓으면 해결은 요원하다. 그 중심에 자신을 놓아야만 길이 보인다. 남 탓은 해결을 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동의 내용 중 또 하나는 자신으로서 살라는 것. 엄마, 아빠,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아닌 그 자신으로. 자식을 보호하지 말고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기 방어기제를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비난이 두려운 건 아닌지, 아이가 상처받고 책임져야 할 부분을 자신의 몫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는 온전한 자립이 아니라 그저 부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반항에 불과한 건 아닌지, 진정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부딪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부모는 아이의 이런 준비를 못미더워 보호라는 핑계로 일방적 강요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공감했던 부분은 우리는 행복과 성공을 동일하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행복과 성공이 다름은 분명히 알지만, 우리는 대체로 (경제적으로)성공한 사람은 행복하고, 돈이 많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는 거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친구들을 만날 때 가끔 좋은(?) 차를 타고 거침없이 돈을 쓰는 이를 보면 뭔가 걱정없이 살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작은 행복과 대비되는 큰 행복이란 없으며 큰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닌 성공 혹은 행운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때론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변명을 늘어 놓지만, 변명 이전에 그 선택을 자신이 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만 어느 때에라도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있다. 실패가 온전히 내 몫이 될 때, 언젠가 찾아오게 될 성취감 또한 온전히 내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나의 실패를 내 것으로 인정하며 살고 있는가?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지금의 이 삶이 실전이다. 그래서 언젠가 더 괜찮아질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를 충만하게 살고자 한다.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그 어디든 완전한 이상은 실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정과 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되레 이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완전함과는 거리가 먼, 부정과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이상을 찾아낼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단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상의 일단一端, 혹은 편린을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오히려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현실 세계에서 이상을 떠올린다는 것은, 불완전하지만 이 세계에 이상이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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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스티브 잡스가 반한 피카소
이현민 지음 / 새빛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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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화를 아우른 책으로 보여져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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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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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느 리즈는 프랑스 보리바주 호텔 128호실 협탁 서랍에서 원고를 발견한다. 소설의 내용에 깊이 빠진 그녀는 작가가 실수로 두고 갔다고 여겨 156쪽에 기재되어 있는 주소로 편지와 함께 소설을 보낸다. 그러나 원고의 주인인 실베스트로로부터 돌아온 답은 그녀를 매우 놀라게 한다. 
 
그 소설을 쓴 사람은 실베스트로가 맞지만, 그 원고는 33년 전 그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분실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미완의 원고였고, 그것이 삼십 여년이 지나 완성된 원고로 안느 리즈에 의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사실. 이에 안느는 캐나다에서 잃어버린 원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프랑스 바닷가 호텔 방 협탁 서랍에 있었던 건지 추적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제 안느는 하나둘 공범을 끌어들여 색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강간으로 인해 임신을 하고 아이를 입양보낸 후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우울증을 겪는 나이마, 용기가 없어 짝사랑하는 여성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청년 로메오, 한때는 교수였으나 도박 중독으로 가족을 놓치고, 안느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어머니의 외도를 알게 된 윌리엄, 사랑하는 여인과의 미래를 꿈꾸던 바로 그 순간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다비드, 치매로 기억을 잃었지만 무의식에서도 사랑하는 그의 이름에 반응을 보이는 드니즈, 청소년 시절 부모의 부재로 방황을 했던 엘비르, 젊은 시절 병약한 몸 때문에 사랑했던 연인을 보냈지만 잊지 못하고 중년의 나이가 된 작가 클레르, 교통사고로 인해 남편과 뱃속의 아이를 잃은 후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기, 공황 장애로 삶의 의욕을 잃고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바깥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실베스트로.
  
위의 인물 들은 대부분 원고를  한 번 쯤은 읽었고, 이로부터 위안을 받았다. 소설 내에서 원고의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원고를 쓴 이가 청년이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담은 연애소설이라는 정도만 짐작할 따름이다. 그래서 독자는 원고의 어떤 내용으로 인해 그들이 삶을 위로 받고 정화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사실 이 소설에서 주요 인물들은 원고를 읽은 사람들이 아닌,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한두가지 아픔을 안고 살 듯이 실베스트로를 비롯한 등장인물 대부분은 크고 작은 사연이 있다. 그들은 서로서로 편지를 통해 오히려 가까운 주변인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했던 스스로의 민낯을 털어놓으며 추처럼 달고 있었던 짐을 조금씩 내려놓고 자신도 모르게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중심에는 물론 안느가 있다. 버럭버럭 화를 내며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하는 실베스트로를 당근과 채찍으로 설득하고, 마기와 윌리엄 사이에서 두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원고를 추적하기 위해 홈즈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대상을 설득하고 앙해를 구하며 이해시키기 위해 편지를 쓰고 또 쓴다. 안느가 이러는 이유가 뭘까? 
물론 직업적 성향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녀는 사람과 세상에 애정이 많은 사람일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연에 일일이 교감하고 글을 나눌 수 없을테니 말이다. 냉소적인 내 친구라면, "다 살만하니까 하는 짓이야."라고 하겠지만. 사는 게 마냥 좋기만 한 사람도 없고, 마냥 좋다고 하더라도 안느처럼 마음 쓰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마음.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전자계정을 사용한다. 그래도 연말카드나 축하카드 정도는 여전히 손글씨를 쓰고 있고, 마음이 동할때는 연필로 꽉꽉 눌러 써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일기는 지금도 따박따박 손으로 쓰고 있고. 한때는 우표를 백 장씩 사놓고 사용할 떄도 있었는데... . 그래서 나는 편지가 주는 위력을 충분히 납득한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2016년임을 감안하면, 시대착오적인 소설일 수도 있다. 전화, 문자, 이메일 등 불과 몇 초만에 전송이 가능한 혁신적인 통신시대에 손편지라니, 가당키나한가 (일단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원거리에 있는 그들이 안느의 편지에 반응을 했던 건 그녀의 성실하게 눌러 쓴 글자 하나하나 때문일테다. 그녀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면 나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동참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소설에 들어가기 전에 지명과 인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실제했던 일임을 명시한다. 그저 낭만적인 허구로 여겨졌을 등장인물의 위안과 평온이, 그리고 그들이 어딘가에 실제한다는 사실에, 나는 독자로서 기쁘다.
 
 
 

살면서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것들은 진통제도 듣지 않는 만성 통증처럼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답니다. - P25

기억을 갉아먹는 암 덩어리만큼 비열한 게 또 있을까? - P145

우리는 왜 사춘기 때만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사랑에 빠져드는 걸까요? 나이 먹은 사람들은 오히려 아직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듯 더욱 망설이잖아요. 이상하지 않아요? - P286

소설이라는 배가 우리를 태우고 멀리까지 데려가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고 우리를 영원히 변화시킨다는 것도 알죠.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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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무사와 고양이 눈
좌백.진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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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당에서 요괴에게 잡아먹힐 뻔한 나현은 반려견 아초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세월이 흘러 나현은 철부지 무사로 성장하고 드디어 강호로 나갈 때가 되자 아버지의 명령으로 아초와 함께 작은 아버지 댁을 향해 길을 떠난다. 아버지가 주신 빠듯한 여비와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주신 비상금까지 흥청망청 쓰고 작은 아버지 댁에 입성하지만 애초에 목적한 강호로 나가기 위한 자금은 고사하고 주작대로의 진 대인 저택으로 가 모산파에서 온 선인을 만나라는 말만 듣고 내쫓기다시피 떠난다.  
 
도사, 나현, 아초. 
탄탄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모산파 도사, 강호에 들어서면 스승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무사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방편도 필요한 초보 강호 무사,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디에든 쓸모가 있을 반인반견 아초. 이 세 파트너의 모험이 시작된다. 
 
개잡종, 개새끼라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한때마나 자신을 지켜줬던 유일한 친인의 복수를 하는 중년인, 오로지 장식용으로 소녀들을 이용하는 공자를 위해 목숨을 버린 언니를 대신해 그의 목숨을 거둔 십이와 죽음을 눈 앞에 둔 순간 그녀의 곁에 있던 고양이, 천음절맥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여자 아이에게 기를 불어 넣어준 (요괴의 영혼을 가진)고양이, 절대악을 처리하기 위해 뭉친 여자 무사들, 주군을 향한 충성심으로 죽죽어서도 영혼의 시간을 반복하는 황구 백구 흑구 세 무사. 
 
 
반려동물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무협 단편.연작소설이다. 
누와르는 읽어도 무협이라고는 아주 오래 전 읽다가 던진 초한지(정사 삼국지는 역사서니까 제외)와 일 년전에 읽은 켄 리우의 판타지 무협 <제왕의 위엄>이 전부. 그래서 소설에서 등장하는 무기나 용어 들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읽어다는(사실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읽을 것 까지는 아니었는데).  
  
 
일단 무척 재미있어서 책장이 아주 잘 넘어간다. 도사, 나현, 아초의 케미는 웃음이 절로 나오고,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충성의 무게는 안타깝기만 하다. 뼈 때리는 시의성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고. 
 
<고양이 꼬리>에 등장하는 공자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최상위 계층의 안하무인 캐릭터. 무공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을 위력 삼아 사람을 부리고 풍류와 예술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람을 장식용 소비재로만 아는 오직 인격만 없을 뿐.  
 
'도사'는 어떤가. 속세를 떠난 수행자가 돈이라니!
"나는 아직 수행이 깊지 못해서 솔잎과 이슬만 먹고 살 수도 없고, 사람이 검소하지 못해 기장밥에 고사리 반찬으로 살지도 못한다네. 젊었을 때 잔뜩 벌어서 재물을 쌓아 두고 산 아래 사람들에게 양식을 배달시켜 먹는 편이 여러모로 현명하지 않겠나. 지금의 고생은 다 그때를 위한 투자라네. 자네도 옷이며 검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노후를 위해 저축하는 것이 좋을 걸세." (p172)
이 얼마나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란 말인가. 도사의 나이 이십 대 중반. 그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의 마음가짐 아닌가(이 대목이 정말 재미있는 게 그는 도교 모산파를 적으로 두고 있다. 도교를 숭상하는 도사가 경제적 노후 대책이라니). 정말 똘똘한 청년 도사님이로구만. 야무지다, 야무져.  
 
 
선의와 신의를 지키는 자들이 약자로 전락하는 세상 이치는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강호의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공자나 천룡왕이 치른 댓가가 독자에게 시원함을 던져 주려나. 이처럼 소설은 무협소설임과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담았다. 깔깔 웃다가도 사이사이 안타깝고 애잔한 마음이 드는 건 소설 속 인물들이 익숙하고 친근해서 아닐까.  
 
여운이 길었던 작품은 <들개이빨>과 <고양이 꼬리>.
물론 나현 삼총사는 말할 것도 없이 이후에도 더 만나고 싶다. 
 
 

삶이란 본래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 P219

이별은 딱 이런 방식이 좋지 않을까. 극히 자연스럽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삶이 느닷없이 중단되듯이 그렇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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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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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은 남자, 엄마를 잃은 두 아이. 망연자실한 그들에게 찾아온 말하는 까마귀. 아빠, 아이들, 까마귀가 화자가 되어 1인칭으로 끌어가는 이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아내가 사망한 후의 절망에 빠진 가족들, 가정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 그래도 삶을 지속시켜야하는 치유의 과정을 그린다. 
 
1부 지난밤을 조금이라도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 사오일 정도 후, 위로를 전하는 조문객은 하나둘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그녀가 죽음으로써 모든게 완벽히 사라진 아무 의미도 없는 공간에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까마귀다.  
  
아이들의 뒷바라지 중심으로 일상을 설계하고 기계처럼 살아야하며 무엇보다 아내의 부재에 공허함을 느끼는 남편. 사라진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는 이도 없고, 엄마의 죽음으로 학교 가는 날이나 쉬는 날이나 아무 차이가 없게 되어버렸으며 더이상은 '그냥' 아이가 아닌 용감한  아이로 거듭나야 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아이들. 엄마의 죽음은 아빠도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트라우마를 아이들에게 안겼다.까마귀는 그들 곁에서 쉴새없이 떠들어댄다. 
 
 
2부 둥지 지키기
아내의 부재의 흔적을 적절하게 처리해 주는 처가 식구와 친구들, 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그들에게 전하는 다정한 위로.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들로부터 떨어져나간 한쪽 세상을 채울 수 없다.
엄마가 그리울수록 싸우는 두 아이. 아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처럼 죽은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고 여기면 덜 그리우려나. 
남편은 기억을 떠올린다. 큰 아이를 출산했을 때, 작은 아이를 출산했을 때, 그 순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행복해 했는지. 오래 전 부부가 너무 행복해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두려워 하던 그 시절. 모든 게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인 남편은 무엇을 써도 결론은 같은 문장, 오로지 아내에 대한 그리움 뿐이다.
 
"내 아내가 그립다." 
 
아빠와 아이들은 서로를 동정한다. 그리고 그들이 엄마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인정한다. 이제 한심한 꼴을 벗어던지고 함께 의지하고 도움을 줘야 할 때다.  
 
 
3부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
아이들은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죽은 엄마가 아빠처럼 나이를 먹도록, 절대 죽음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엄마를 할머니라고 부르도록 말이다. 그리고 엄마가 이러한 자신들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아내가 죽은 후 이삼년 동안 절망의 바다에 홀로 떠 표류하며 가시지 않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당혹스러워 하던 남자. 그러나 아내를 잃은 남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엄마를 잃은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 또한 아이들과 발맞춰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간다. 설령 아이들이 더디더라도 이제는 기다려 줄 수 있다. 이렇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아빠에게 까마귀가 말한다. 
 
"넌 혼자가 아니야, 꼬맹아." 
 
그들은 이제 진정으로 아내.엄마의 유골을 뿌릴 때가 됐음을 안다. 아내가 사랑하는 장소로 가는 동안 아이들은 아빠에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고, 잠깐 졸고 있는 사이에 그의 곁에서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경호원처럼 옆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남자는 따스함을 느끼다. 남편과 아이들은 목청껏 외친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갑작스런 사고로 아내(엄마)를 잃은 가족. 그의 부재는 남은 가족들에게 혼란과 절망을 안기고 헤어나올 수 없는 슬픔 속으로 밀어 넣는다. 친척과 친구의 위로도 그때 뿐, 조각난 일상을 견뎌내야 하는 건 오로지 세 사람의 몫이다.
남편은 자신의 슬픔을 추스리기도 벅찬데, 아이들은 느닷없이 사라진 엄마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른다. 어른들은 그저 쉬쉬하고, 아빠는 예전의 그 아빠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괴팍해지고 거칠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아빠가 자신들을 돌아볼테니까. 
 
한 사람의 존재가 물리적으로 사라지고 얼마 후 집으로 찾아 온 까마귀. 그들 곁에서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커녕 수다스럽고, 욕설과 비속어를 쓰며, 말장난을 던진다. 때로는 아이들의 장난에 동참하고, 그들이 온전히 슬픔을 겪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아빠의 쏟아지는 분노의 상대가 되어 싸움을 한다. 이처럼 까마귀는 가족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과 공허함을 받아들이고 그 폭풍같은 과정을 거치는 동안 곁에서 지켜봐준다. 때로는 잔인한 현실을 상기시키고, 때로는 담담한 위로를 건네면서.
 
39.
고개를 아래로, 병뚜껑, 휘적휘적.
고개를 아래로, 대걸레, 깡충깡충.
그는 내게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지. 
  
 
과연 까마귀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해봤다.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은 까마귀의 존재 자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까마귀가 무엇이면 어떠랴. 누구든 까마귀가 될 수 있고, 남편이 될 수 있고, 아이가 될 수 있다. 내가 타인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다.
까마귀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물론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슬프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순간 문득문득 그(녀)의 부재가 실감날테도, 그 실감이 그리움이 되어 잠깐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아프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누군가를 맞이하고 떠나보내며 가슴 한 구석 추억과 그리움을 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한다고 목청껏 외치는 그들의 고함소리가 아프지 않게 들린다.
짧지 않은 산문시 같은, 길지 않은 이 소설이 한 문장 한 문장이 흘려 읽히지 않았다.
 
 

"네가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 - P18

넌 그저 절망하지 않게 된 것뿐이야. 슬픔은 네가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고, 슬퍼하는 데 까마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지. - P149

만일 까마귀가 아빠에게 뭔가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속된 표현을 쓰자면 : 신념. - P153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 내 임무는 끝났어.
이제 그만 이 순환 고리, 아이들/아빠 사이의 경계, 깡충/힐끔/깡충/정지의 굴레에서벗어나도 될까 - P158

아이들의 목소리는 바로 그들 어머니의 삶과 노래였다.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아름답다. 이 모든 것이.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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