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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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은 남자, 엄마를 잃은 두 아이. 망연자실한 그들에게 찾아온 말하는 까마귀. 아빠, 아이들, 까마귀가 화자가 되어 1인칭으로 끌어가는 이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아내가 사망한 후의 절망에 빠진 가족들, 가정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 그래도 삶을 지속시켜야하는 치유의 과정을 그린다. 
 
1부 지난밤을 조금이라도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 사오일 정도 후, 위로를 전하는 조문객은 하나둘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그녀가 죽음으로써 모든게 완벽히 사라진 아무 의미도 없는 공간에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까마귀다.  
  
아이들의 뒷바라지 중심으로 일상을 설계하고 기계처럼 살아야하며 무엇보다 아내의 부재에 공허함을 느끼는 남편. 사라진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는 이도 없고, 엄마의 죽음으로 학교 가는 날이나 쉬는 날이나 아무 차이가 없게 되어버렸으며 더이상은 '그냥' 아이가 아닌 용감한  아이로 거듭나야 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아이들. 엄마의 죽음은 아빠도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트라우마를 아이들에게 안겼다.까마귀는 그들 곁에서 쉴새없이 떠들어댄다. 
 
 
2부 둥지 지키기
아내의 부재의 흔적을 적절하게 처리해 주는 처가 식구와 친구들, 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그들에게 전하는 다정한 위로.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들로부터 떨어져나간 한쪽 세상을 채울 수 없다.
엄마가 그리울수록 싸우는 두 아이. 아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처럼 죽은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고 여기면 덜 그리우려나. 
남편은 기억을 떠올린다. 큰 아이를 출산했을 때, 작은 아이를 출산했을 때, 그 순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행복해 했는지. 오래 전 부부가 너무 행복해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두려워 하던 그 시절. 모든 게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인 남편은 무엇을 써도 결론은 같은 문장, 오로지 아내에 대한 그리움 뿐이다.
 
"내 아내가 그립다." 
 
아빠와 아이들은 서로를 동정한다. 그리고 그들이 엄마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인정한다. 이제 한심한 꼴을 벗어던지고 함께 의지하고 도움을 줘야 할 때다.  
 
 
3부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
아이들은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죽은 엄마가 아빠처럼 나이를 먹도록, 절대 죽음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엄마를 할머니라고 부르도록 말이다. 그리고 엄마가 이러한 자신들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아내가 죽은 후 이삼년 동안 절망의 바다에 홀로 떠 표류하며 가시지 않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당혹스러워 하던 남자. 그러나 아내를 잃은 남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엄마를 잃은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 또한 아이들과 발맞춰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간다. 설령 아이들이 더디더라도 이제는 기다려 줄 수 있다. 이렇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아빠에게 까마귀가 말한다. 
 
"넌 혼자가 아니야, 꼬맹아." 
 
그들은 이제 진정으로 아내.엄마의 유골을 뿌릴 때가 됐음을 안다. 아내가 사랑하는 장소로 가는 동안 아이들은 아빠에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고, 잠깐 졸고 있는 사이에 그의 곁에서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경호원처럼 옆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남자는 따스함을 느끼다. 남편과 아이들은 목청껏 외친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갑작스런 사고로 아내(엄마)를 잃은 가족. 그의 부재는 남은 가족들에게 혼란과 절망을 안기고 헤어나올 수 없는 슬픔 속으로 밀어 넣는다. 친척과 친구의 위로도 그때 뿐, 조각난 일상을 견뎌내야 하는 건 오로지 세 사람의 몫이다.
남편은 자신의 슬픔을 추스리기도 벅찬데, 아이들은 느닷없이 사라진 엄마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른다. 어른들은 그저 쉬쉬하고, 아빠는 예전의 그 아빠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괴팍해지고 거칠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아빠가 자신들을 돌아볼테니까. 
 
한 사람의 존재가 물리적으로 사라지고 얼마 후 집으로 찾아 온 까마귀. 그들 곁에서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커녕 수다스럽고, 욕설과 비속어를 쓰며, 말장난을 던진다. 때로는 아이들의 장난에 동참하고, 그들이 온전히 슬픔을 겪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아빠의 쏟아지는 분노의 상대가 되어 싸움을 한다. 이처럼 까마귀는 가족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과 공허함을 받아들이고 그 폭풍같은 과정을 거치는 동안 곁에서 지켜봐준다. 때로는 잔인한 현실을 상기시키고, 때로는 담담한 위로를 건네면서.
 
39.
고개를 아래로, 병뚜껑, 휘적휘적.
고개를 아래로, 대걸레, 깡충깡충.
그는 내게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지. 
  
 
과연 까마귀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해봤다.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은 까마귀의 존재 자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까마귀가 무엇이면 어떠랴. 누구든 까마귀가 될 수 있고, 남편이 될 수 있고, 아이가 될 수 있다. 내가 타인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다.
까마귀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물론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슬프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순간 문득문득 그(녀)의 부재가 실감날테도, 그 실감이 그리움이 되어 잠깐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아프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누군가를 맞이하고 떠나보내며 가슴 한 구석 추억과 그리움을 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한다고 목청껏 외치는 그들의 고함소리가 아프지 않게 들린다.
짧지 않은 산문시 같은, 길지 않은 이 소설이 한 문장 한 문장이 흘려 읽히지 않았다.
 
 

"네가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 - P18

넌 그저 절망하지 않게 된 것뿐이야. 슬픔은 네가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고, 슬퍼하는 데 까마귀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지. - P149

만일 까마귀가 아빠에게 뭔가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속된 표현을 쓰자면 : 신념. - P153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 내 임무는 끝났어.
이제 그만 이 순환 고리, 아이들/아빠 사이의 경계, 깡충/힐끔/깡충/정지의 굴레에서벗어나도 될까 - P158

아이들의 목소리는 바로 그들 어머니의 삶과 노래였다.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아름답다. 이 모든 것이.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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