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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캐드펠 수사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배경을 살펴보자.
때는 1139년 10월이다.
스티븐 왕의 강력한 통치력에도 불구하고 서부에서는 내분의 조짐이 이미 완연했고, 많은 영주들은 판도가 바뀌면 언제라도 다른 쪽과 제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드 황후는 3주 전에 이복형제인 글로스터의 로버트 백작과 기사들을 이끌고 애런델에 들어와 있었다. 슈루즈베리 시골에서야 모든 게 평화로워 보였지만, 사람들은 모든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주교조차 내전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는 더 강한 힘을 가진 자의 편과 친구가 되기를 기대했다.
땅이나 재산, 강력한 동맹 세력을 얻기 위해 혼인을 하는 경우는 흔하디 흔했다. 신부들 혹은 나이 어린 신랑들이 (반)강제적으로 제물이 되는 시절이었고,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여 할어버지뻘 되는 남자와 기꺼이 결혼할 만큼 교활한 신부도 있었다. 장원의 후계자들 역시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출세를 위해 영주를 찾아다니며 줄을 대기 바쁘고, 여차하면 얼마든지 그 줄을 바꿔 잡는 것쯤이야 예사로운 일이었다
일례로 로저 드 클린턴 주교가 이 책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휴언 드 돔빌 남작에게 주교관을 빌려준 데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남작에게 아첨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행위였다.

위의 배경에서 살펴봤듯 곧 육십대를 바라보는 휴언 드 돔빌 경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베타 드 마사르는 고작 열여덟 살이다. 십자군 원정대의 전설적인 기사이자 장군인 기마르 드 마사르의 손녀이자 유일한 상속녀인 그녀가 후견인인 외숙부에 의해 할아버지뻘인 돔빌 경에게 '결혼'이라는 거래의 품목으로 혼인을 앞두고 있다. 혼란한 시국에 가장 약자는 역시나 여성과 어린이다. 결혼식 전날, 은밀하게 어딘가를 다녀오던 돔빌 경이 길에서 객사했다. 그런데 이 남자, 탐욕스럽게 살아온 만큼 적이 많아도 너무 많다. 주변 인물들 대부분이 살해 동기가 하나쯤은 있으니.
외숙부에 의해 할아버지뻘이 되는 남작에게 팔려가다시피 강제 혼인의 위기에 처한 마사르 일가 중 유일한 상속자인 이베타 드 마사르, 조카딸을 팔아넘긴 뒤 그녀의 상속분을 차지하려는 외숙부 고드프리드 피카르, 남작의 어린 신부 이베타의 연인 조슬린 루시, 자식이 없는 돔빌 남작의 유일한 상속자 사이먼 애귈런, 20년 간 아내로서의 지위를 누려온 숨겨진 정부 어바이스, 그리고 안타까운 결혼식 행렬이 슈루즈베리에 들어올 때부터 그들을 지켜보던 의문의 늙은 나환자 라자루스.
역시나...
왠지 당사자보다 자기가 더 열을 올리고 열심이더라니, 탐욕이 탐욕을 응징한 이 범죄의 가해자. 일말의 동정심도 가지 않는다.
아! 또다른 죽음의 반전.
뿌린대로 거둔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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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섯 권까지 읽다보니, 생뚱맞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났다. 그의 소설은 거의 대부분 기승전'사랑'이다. 정말 늙지도 않고 청춘을 유지하며 사랑을 예찬하는 작가가 아닐까싶었는데, 엘리스 피터스도 마찬가지. 뛰어난 추리력과 열린 사고를 통해 이성적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캐드펠 수사와 원칙을 지키면서 상황에 따라 정도를 지는 한에서 합리적으로 유연성을 발휘하는 라둘푸스 수도원장이 있지만,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거나 공정성을 잃지 않는 인간애를 가진 이들이다. 종교를 떠나 이 혼탁한 세상을 구원할 덕목은 사랑과 연민이려나... .
개인적으로 3권 이후 마음에 쏙 드는 인물은 라둘푸스 수도원장인데, 그를 보면서 부여된 특권과 힘을 그처럼 쓴다면 사회가 많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다수를 이루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사건은 훈훈하게 마무리 되고 아름다운 두 남녀는 더없이 행복한데, 나는 책을 덮으면서 왠지 서글프고 쓸쓸하더라.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