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일기 : 영원한 여름편 -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55년 1월에 시작한 일기는 소로의 나이 마흔인 1857년 12월 13일에 끝난다. 그가 사망하기 불과 5년 전이다. 1855년의 일기가 생태적인 측면에 집중해 있다면, 1856년에는 그의 소신과 사상을 엿볼 수 있고, 1857년에는 소소하고 단순한 삶에 대한 생각을 기록한다. 


부제가 「영원한 여름」이지만 3년 동안 열두 번의 계절을 지나며 쓴 이 책은 그의 일기이자 에세이이며 생태 관찰 일지라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매일 매일 날씨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봄에 시작하는 자연의 생명력으로 삶을 믿게 된다는 소로는 자연 속에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곧 세계임을 얘기한다.  


​이슬에 젖은 축축한 흙의 질감, 겨울이 무색한 양치류의 싱싱함, 얼지 않은 겨울 시냇물의 청명한 아름다움, 진눈깨비가 내려앉아 늘어진 나무에 의해 연출되는 숲의 곡선과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 쓴 듯한 환한 우듬지, 단단한 아름다움의 겨울 등 주변의 자연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야생 동물의 발자국도 찾기 어려운 허리께까지 쌓인 눈에 대한 걱정이 무색하게 구름 없는 맑은 다음 날 월든 호수의 푸른 물빛. 그 푸르름에 그림자조차 파랗다. 다람쥐의 움직이는 소리와 나무 사이로 비치는 빛내림, 반면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음악 이상으로 아름다울뿐 아니라 이 소리들은 봄의 전령이기도 하다. 백참나무 잎 하나를 주워 세세히 들어나는 잎맥을 보며서 시들어가는 것도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소로가 느끼는 자연의 생생함이 150년을 훌쩍 지난 지금에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ㅡ 


자연을 향한 소로의 감상은 단순한 경외심을 넘어서 우리의 삶과 잇닿아 있다. 
소유와 소비의 악순환에 대한 서술을 시작으로 느릅나무를 빌어 진실한 급진주의와 진실한 보수주의의 조화와 협력을 당부한다. 보수주의는 진보의 성장을 막지 않고 오히려 성장을 떠받치는 굳건한 기둥이 되어주라고 권한다. 소로는 개혁을 이루더라도 급진주의자가 보수주의자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쎴는데, 앞서 주장한 기둥과 가지는 세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하는 소로의 바람이라고 짐작한다. 또한 무의미한 전쟁을 빌미로 국민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국가들을 비판하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계기에 의해서든 자신의 단순하고 수수한 삶을 잃을까 두려워했던 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만족과 이웃과의 대화에서 얻는 영감을 그 어떤 것에든, 이국의 화려한 도시에서의 생활에서든, 바꾸고 싶지 않았다. 소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큰 부자라고 썼는데, 이제 마시는 물까지 돈주고 사야하는 세상에서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더라는.  


소로는 사람들이 그 자신처럼 자연을 존중하는 소박함을 음미하는 삶을 지향하기를 희망하면서 사물의 본성과 질서에 대해 사유하고, 신념과 신조를 떠들기 이전에 자신의 됨됨이를 성찰해야함을 짚는다. 


ㅡ 


​그는 많은 시간을, 고독을 벗삼아 걷는다. 
주변을 둘러보고 느리게 걷고 사유하는 일상을 제쳐놓은 채 생계를 꾸려가는데 모든 정신과 활력을 탕진한 삶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하찮다고 여기는 대상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소로는 우리가 자연을 학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책임 아래 있는 자연을 학대하는 자는 자연학대죄로 기소당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데, 어쩌면 인류 전체가 이 죄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ㅡ 


소로는 일기를 통해 자연에서 누리는 삶과 생태계를 이루는 자연을 포함한 타자와의 사귐에 대한 경이에 대해 아름답게 기록하면서 모든 것에 신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앞서 썼듯 이 책은 열두 번의 계절을 지나오는데, 계절에 따라 이어지는 자연의 변화는 놀랍다. 석양빛과 자줏빛이 어우러진 저녁 노을, 계절의 변화에 따른 동물들의 움직임과 그들이 내는 소리, 이를 관찰하는 소로. 일기에는 자연의 변화가 주는 그의 철학적 사고와 사색이 가득하다. 그는 나무를, 식물을, 크고 작은 동물을, 존중해야함을, 그리고 인간이 좀더 자연에 더 인정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로가 일기에서 시종일관 자주 언급하는 단어는 '수수함'과 '단순함'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라고, 수수한 하루의 사색과 산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소로는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 도서지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덟 작품이 실린 소설집이다.
각각의 소설들은 현재 우리의 모습ㅡ외적, 정서적ㅡ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의 소감을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나는 실린 모든 작품에서 공감하고 이입했다.  





 
 


전쟁으로 한순간에 사라진 일상. 현재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최근들어 고조되는 한반도 위기. 아비규환 속에 신은 어디있냐고 자문하는 <쓰게 될 것>의 '엄마'는 전쟁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에게서 신의 모습을 본다. 결국 고향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면서 소풍을 가자고,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자고 딸에게 말하는 엄마의 참담한 심정에 희망은 남아있을까.  


우리는 보여지는 것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경우가 크다. 바꿔 말하면 자 나신 역시 누군가로부터 보여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셈이다. 본인의 생각과 판단은 뒤로한 채 여론에 따르는 방관적 태도가 만연한 요즘, 타인을 신뢰하고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참 어렵기만 하다.  


살면서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들,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믿고 싶어서 믿는다기보다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때가 있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살다보면 더없이 귀한 존재다. 털어놓는 마음을 제 기준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섣부른 위로나 조언없이 그저 들어주고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 멋지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인간의 쓸모>에서는 학교가 빈민층 아이들만 가는 혐오 시설이 되어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 표현이 극단적이라고 여기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전인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할 학교는 갈수록 입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간다. 그럴 바에는 지름길을 선택하고자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해야 하는 것은 많지만, 하고 싶은 것은 점점 줄어든다. 소설의 '배아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미래를 설정해 놓고 거기에 현재의 '나'를, 우리 아이들을 끼워맞추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고思考하지 않는 인간. 이게 우리가 받아들 심각한 사안이다.  


실패를 혐오하는 세태에서 초조와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들. 불행에 익숙해져 불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하는, 그래서 불행해 익숙해져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 


내가 선택했다고 믿었던 것들 중에서 정말 내 의지대로 선택한 것이 얼마나 될까. '예측 가능한 미래'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다니는 요즘, 과연 인간이 제 미래를 얼마나 예측하고 선택할 수 있다고 장담할 것이며, 한 개인에게 들이닥치는 불가항력적인 미래ㅡ전쟁, 천재지변, 뜻하지 않은 사고ㅡ는 예측할 수 없고 대비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인생에 정답이 있을리가.  
나는 <홈 스위트 홈>의 '나'에게서, <인간의 쓸모>의 노아와 안나에게서, <유진>의 이유진에게서, 일부분이나마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 소개글에서처럼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해야만 하는, 누군가는 써야만 하는 이 시대의 이야기들임이 분명하다. 소설은 시대에 대한 답이라기보다 거울에 가깝다. 그것도 너무나 투명한 거울이다. 




#도서지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탕 중독 - 혈당을 낮추고 비만, 노화, 만성 질환에서 해방되는 3주 혁명
대릴 지오프리 지음, 이문영 옮김 / 부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나 표지의 그림처럼 '설탕'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당'이 곧 탄수화물을 포함한 모든 당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것이다. '당'이 노화를 가속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건강에도 상당히 치명적이라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에 대한 부분은 중.노년층뿐 아니라 청소년 시기부터 습관을 들여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탕은 코카인보다 여덟 배 중독성이 강하다. 즉 탈설탕에 대한 의지력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나 설탕 중독을 개인의 탓이라고 치부할 수 없고 죄책감을 가질 이유는 더더욱 없다.  


우리가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몇 가지 중 하나는 천연 당이든 가공 당이든 모든 당은 똑같다는 것이다(그래서 과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고, 특히 주스로 만드는 건 더욱 좋지 않다). 호르몬을 급증시켜 배고프게 하고, 지방을 늘리며,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물론 가공 첨가당이 자연 당보다 몸에 더 해로운 건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혈당 수치를 높이고 당 연소 상태에 빠지게 하며 장 건강을 파괴하는 식품 세 가지가 밀, 고기, 유제품인데 이 음식들은 모두 대사 과정을 거쳐 결국 당으로 변한다. 따라서 주스나 아이스크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당 식품을 섭취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당을 흡수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식품들은 모두 산으로 변하는데 이로 인해 미네랄 결핍이 일어나 당 갈망이 더 심해진다는 데 함정이 있다. 대부분 설탕 끊기에 실패하는 이유는 대체로 미네랄 결핍일 가능성이 크다.  



장은 면역계의 80퍼센트, 신경계의 80퍼센트를 차지하며 두 번째 뇌라고 여겨진다. 설탕(및 인공 감미료)은 장내 환경을 파괴하여 장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원흉이다. 설탕을 섭취하면 장, 뇌, 간, 생체 시계, 호르몬, 심장 등 몸 전체가 대가를 치른다. 신체 내부를 건강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음식과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  


ㅡ 


요즘에는 식재료를 사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보니 책에 나와 있는 식재료를 구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을테지만, 개인적으로 서구 식재료 위주라서 우리 땅에서 수확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식재료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일단 저자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보다는 더 먹어야할 음식들을 소개한다거나 식단의 다양화 및 식사 시간을 조절하라는 등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서술해 읽는 데 부담이 덜하다.   


책에는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실천서와 그에 대한 방법, 그리고 섭취해야 하는 식품(음식)과 간단한 레시피가 실려 있어서 의지를 갖고 해보겠다는 독자들은 도움이 될 듯하다. 특히 영양 보충제 복용 방법 등 사소한 것까지 구체적으로 서술해서 부분적으로나마 활용해볼 요량이 있는 이들에게도 유용하다. 




※ 도서지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 - 시인이 관찰한 대자연의 경이로운 일상
니나 버튼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장만한 시골집에서 지내면서 일상의 경험을 통해 주변의 자연과 생물들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토양과 균류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의 생태를 이야기한다. 






 
동물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인간에게 친숙한 존재이고 동시에 예술적 영감을 준다. 인간의 생활과 별개로 동물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지적 능력과 의사 소통 능력이 훨씬 뛰어남을 쓰면서 새와 벌의 비행의 정교함과 정확함, 벌이 구축한 공동체 사회, 작디 작은 곤충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큰 기여도, 수적 우세와 응집력으로 번성한 개미 등 아주 오래 전부터 기후와 생태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해 온 동물들에 대해 서술한다. 더불어 인류사와 동물의 상관 관계를 짚으며 현재 자행되고 있는 동물 학대와 혐오, 동물의 생래적 습성과 이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 인위적으로 품종 개량을 서슴치 않는 인간의 이기, 인간의 관점(특히 감정적인 면)에서 동물의 생태적 패턴을 규정하는 우리의 오해와 그릇됨을  짚는다.  


저자가 말한 생물의 크기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인간은 제 몸뚱이를 기준으로 크기를 재단하지만, 사실 지구에서 사는 생물들 중에 가장 흔한 크기는 적어도 인간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개미 정도의 크기가 가장 흔한 크기다. 야생 동물은 이 땅의 진장한 주인이자 땅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그의 말에 동감한다.  


ㅡ 
 
식물은 지구 생물체량의 99퍼센트를 차지한다. 굳이 수치적으로 따지자면 지구는 식물이 장악한 셈이다. 무엇보다 식물이 없으면 지구의 그 어떤 동물도 생존할 수 없다. 


저자는 식물이 가진 예민한 감각을 일종의 감정으로 간주해도 될지 묻는다. 집에서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이 부족하면 바로 윤기를 잃는 이파리, 너무 더우면 늘어지는 가지,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제때 피는 꽃, 어느 때부터인가 새롭게 올라오지 않는 선인장. 이틀 전, 고무나무의 줄기가 단단해지려면 맨 아랫단 잎을 떼어주어야 한다는 조언에, 수경으로 키우기 시작한 고무나무의 잎 한 장을 두눈 질끈 감고 떼어냈는데 그 자리에서 하얗게 올라오는 수액을 보고 속상했다. 얘가 눈물을 흘리네, 싶더라는. 이러니 식물에게 감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나. 식물은 지구에서 생태와 환경을 가장 잘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존재다. 피터 싱어는 식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는데, 난 그 의견에 반댈세.


동물만큼이나 식물도 인간에게 혹사당하는 중이다. 인위적 품종 개량, 의도적 멸종(대표적인 사례가 바나나), 대규모 플렌테이션에 의한 엄청난 양의 물 소비, 농약 및 살충제 사용에 대한 심각성은 말하기도 입이 아픈 지경이다. 


저자는 시골집에서 생활할 때 애써 잔디를 관리하지 않아도 마당이 저절로 자라며 그들이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다고 썼다. 이에 관련한 글을 읽으며서 옛날에는 집 옆에 <보호하는 나무>를 심었다는 스웨덴 전통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집 마당에 심은 나무 한 그루에 온전한 먹이 사슬 형태를 이룬다는 것만으로도 참 경이로운 일이다.  


ㅡ 


저자는 생명의 역사를 생물학적, 사회 및 사회과학적, 환경 및 인문학적 관점에서 탐구하면서 지구의 역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서술한다. 또한 공장식 축산을 비롯한 현재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생태계 오염에 따른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생물 종의 다양성과 개체수 감소의 우려를 나타낸다. 인간 외 생물들이 야생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 확보와 환경 조성의 중요성 또한 짚는다. 


읽으면서 동물권에 관련한 책들이 생각났는데, 동물이 내재적 가치를 가진 존재인지에 대한 여부와 그에 대한 동물의 권리 논쟁은 고대부터 이어져왔음이 떠올려진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아퀴나스, 칸트, 벤담, 싱어, 레건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도덕적 지위 여부에 대한 주장은 달랐는데 근래 들어 반려 동물이 확대되면서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이와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실험 동물에 대한 찬반 대립은 여전하고, 경제적 측면과 생태적 측면이 격돌하는 순간에는 거의 다 경제적 측면이 우위에 놓이며, 공장식 축산의 가혹한 환경은 동물의 내재적 가치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이러한 논쟁 역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서문에는 자연에 들어선 인간은 손님으로서 방문을 하는 것이라고 썼는데, 이 문장이 무척 공감이 된다. 한여름에 산장에 며칠 머물다보면 특히 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아, 내가 이들의 공간에 침투한 거대한(?) 이방인이겠구나"라는 생각.  


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인간 외의 생물들과 유대하며 살아야하는 이유를 철학, 문학, 역사, 과학을 통해 설득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자유와 단합, 고독과 유대 사이의 역학.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존중해야 할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도서지원 #리딩투데이 #독서카페 #리투서평단 

#살아있는모든것에안부를묻다 #니나버튼 #열린책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남편
모드 방튀라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화자인 아내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절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두 아이를 낳고 15년차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의 사랑은 어째 섬뜩하다. 당장, 남편의 다정함, 부부 간의 안정된 유대감, 충분히 예상되는 평안할 그들 미래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보다는 더 열렬하고, 남편이 외도를 하고 거짓말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통제되지 않는, 말초적 자극의, 그런 맹렬한 사랑을 갈구한다. 그런데 소설이 진행될수록 처음과는 다른 화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격한 말투와 실제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상당히 거리가 있다. 심지어 남편은 아내를 '내 순둥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소설에 그냥 쓰인 단어는 없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아내의 관심사와 초점은 오로지 남편과 사랑에 맞춰져 있다. 거기에는 두 아이를 포함한 누구도, 그 무엇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아내는 부르주아층 남편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고, 고등학교 교사이자 프리랜서 번역가이며, 자타가 인정하는 미인이다. 남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해 집착해서 스스로를 적당히 과장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타인과 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과도하게 칭찬해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는 방식을 선택하고, 부부 애정 정도를 다른 부부와 비교하며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오매불망하는 남편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어떨까?
아내는 자식도, 부모도, 친구도 필요없다. 오직 남편만 있으면 충분하다(심지어 남편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제 자식들을 질투하고, 아이가 세상을 떠나는 건 견딜 수 있어도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은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남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확대 해석하며 시비를 따지고 집착하면서 남편이 떠날까봐 불안을 안고 산다. 남편에 대해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불쾌하게 여기며, 남편이 그녀가 예측한 범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막연한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남편이 그녀와 결혼한 것을 후회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남편의 우편물과 자동차 네비게이션 행선지와 이메일을 확인하고, 소지품을 뒤지는 그녀는 결국 의부증 증세까지 보인다.  


ㅡ 

이쯤되면 독자는 아내가 점점 불편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여성을 좀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남편의 직업은 멋지고, 학력이 화려하고, 외모가 출중하고, 스포츠에 능통하고, 부르주아 가정에서 성장한 반면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아내는 미모 외에는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해 부부의 관계가 불균형하다고 여긴다. 남편을 곧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그의 가치가 곧 자신을 내세우는 도구가 된다. 또한 남편의 행위 하나하나가 자신에 대한 애정 척도가 된다(예를 들어 남편이 장을 봐온 물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느끼며 영수증에 찍힌 액수를 보고 남편의 사랑을 계량화한다). 남편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남편이 좋아하는 모습에 집착하고, 무슨 책을 번역하든 결국 남편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한마디로 모든 사고 체계가 남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그녀의 자격지심이나 낮은 자존감을 이유로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아내를 통해 우리는 반문할 수 있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애, 성적 욕망의 억압, 순종적이고 헌신하며 무엇이든 능숙하게 해내는 슈퍼우먼의 현신. 무엇 하나 오롯이 본인 위주의 삶을 설정하기 어려운 기혼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가 교사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업 시간에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고 수업 시간만큼은 그녀가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둥이'가 아닌 팜파탈을 꿈꾸는 그녀가 막심을 만날 때면 남편 앞에서 포장했던 모습을 모두 거둬내고 자신의 성적 욕구에 충실하며 민낯을 드러내는데, 그녀가 집착하는 사랑을 덜어낸 육체적 관계에서 훨씬 편안한 모습을 보인다. 소설을 완독하고 나면 그녀가 집착하는 건 정작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에필로그>를 읽다보면 아내가 정말로 착각하고 있는 점은 따로 있다. 


나는 왜 서글퍼지는 거지....... . 




※ 도서지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