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풍부한 사진과 이해하기 쉬운 간결하고 구체적인 지도다. 무엇보다 지역에 편성된 부대의 명칭을 기입해 읽으면서 지도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은 나에게 무척 도움이 되었다(전쟁사 책을 나름 읽는다고 읽는데도 나는 여전히 군대 단위를 모르겠다. 다만 부대 명칭을 통해 짐작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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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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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네즈-말메디 교차로에서 사망한 시신에서는 이마, 관자놀이, 뒤통수 등 여러 곳에서 총상이 발견되었고,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는 시신도 있었다. 확인 사살을 했다는 흔적이었다. 전쟁 범죄 재판을 위한 증거를 수집했고,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냉전시대 초기에 다하우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은 모두 감형되어 1950년대에 석방되었다.  
 


수감된 기간이 고작 10여년에 불과하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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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벌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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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히틀러는 "마지막까지 싸우는 자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라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위대한 격언을 철석같이 믿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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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에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는 동안 독일군은 더 많은 사단을 노르빈트 작전에 투입했다. 1월 5일부터 지속된 전투는 미국의 우세였지만 피해도 만만치 않았으나 25일 즈음부터 독일군의 공격은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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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장은 1월부터 벌어졌던 벌지 전투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정리해주고 있다. 읽다보니 벨기에와 6.25전쟁 직후의 우리나라 상황과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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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반격 
 
 
전선에 있는 독일 장교들은 모든 장교들은 바스토뉴 공략을 포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히틀러는 재공격을 독려했다. 새해 첫날 아침, 바스토뉴를 통과한 미 기갑사단은 동쪽 측면에서 비조리, 네프, 마게레트를 공격했고, 3일에는 미.영 연합군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날씨와 독일군의 저항으로 진격은 매우 더뎠지만 독일군은 오통에서부터 쫓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일군의 상황이 상당히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은 공격은 지난한 전투를 끝낼 결정적인 공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독일군 뿐만 아니라 미군의 인적.물적 피해도 극심했다.  
 ​ 
 
11일, 독일군이 후퇴한다는 징후가 점차 분명해졌다. 12일 새벽에는 소련군이 비스와강 서쪽의 산도미에서 독일군 교두보를 공격했고, 다음날에는 바르샤바 남쪽과 동프로이센을 공격했다. 소련군은 동부 전선 전역에 걸쳐 670만 명을 동원했고, 그 와중에 아르덴에서 후퇴하고 있는 제6기갑군은 헝가리로 이동했으니 독일군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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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지옥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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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더블 서프라이즈 
 

새해 전야 자정, 새해를 알리듯 아르덴 근처의 모든 미군 포병대가 일시에 포문을 열었고, 독일은 해가 바뀌기 직전에 북풍 작전(노르트빈트 작전)을 개시해 제6집단군 좌익을 공격했다. 한편 독일은 공군의 총공격을 시도한다. 날 수 있는 모든 항공기를 총동원해 연합군의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활주로에서 모두 파괴한다는 작전이었다(이제 독일군에는 경험이 많은 노련한 조종사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들도 일본의 가미카제 돌격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살아 돌아오라'는 단서를 달면서 각 편대에 조종사들을 감시하는 제트전투기가 한 대씩 따라붙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가미카제와 뭐가 다른가. 더 황당한 사건은 보안을 위해 보덴플라테 작전을 대공포부대에 알리지 않아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무리를 보고 당연히 오인한 대공포대들에 의해 16대 전투기가 격추당했다는 것. 독일군의 기습은 일부 성공했으나 결과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고 조종사를 보충할 인력을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이로써 독일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스트라스부르에 대한 시각은 미군과 프랑스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 미군이 지리적 가치를 따진다면 프랑수는 주권 회복의 상징으로서의 가치를 둔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도가 지리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제는 상징성이 갖는 가치의 무게가 훨씬 큰 것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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